2회. 메카닉 디자인이 빛난 하이엔드 오디오 6선
오디오는 물론 ‘듣는’ 것이다. CD나 mp3, 스트리밍 음원, LP 등을 플레이시켜 앰프로 증폭을 한 후 스피커로 듣는 일련의 과정이 오디오다. 그러나 오디오에서 시각적 디자인은 촉감과 함께 이 ‘듣는 만족도’를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오디오의 전체 형상이 어떻게 생겼고, 표시창이나 노브의 색깔은 무엇을 썼으며, 또 섀시 디자인과 재질, 색깔이 무엇인지에 따라 재생음에 대한 무시무시한 선입견마저 생기는 것이다.
[오디오 그림책 by 김편] 2회는 바로 이 ‘시각적 쾌감’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가 돌아다니면서 접한 많은 오디오 중에서 메카닉 디자인이 돋보인 오디오 6개를 꼽아봤다. 개인적으로 해당 오디오를 처음 보자마자 감탄부터 흘러나왔던 기종들이다. 그래서 그림들을 그리는 내내 옛 생각이 떠올라 절로 행복했다. 음질? 오디오는 생긴 대로 들려준다고 하지 않나. 이들 모두 보는 것뿐만 아니라 역시 듣기에도 좋았다.
"Wilson Benesch (윌슨 베네시) Endeavour 스피커"
지난 2015년 뮌헨 국제오디오쇼에서 윌슨 베네시의 ‘인데버’를 처음 본 순간, 필자는 나지막히 탄성부터 질렀다. 제작사가 친절하게도 내부 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이게끔 스피커를 전시해놓았던 것이다. 덕분에 이 스피커의 가장 큰 특징인 ‘아이소배릭’(Isobaric) 우퍼 2발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아이소배릭’이란 동일한 스피커 우퍼 2개를 커플링시켜 저역의 양감과 확산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인데버’에서는 우퍼가 위아래에서 서로 마주보는 구조.
이 스피커는 또한 인클로저 재질로 카본나노텍(Carbon-Nanotech)을 써서 눈길을 끈다. 물론 스피커 재생의 가장 큰 적이라 할 ‘공진’(resonance)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밖에 서로 다른 길이의 덕트(duct)가 스피커 바닥면을 뚫고 나온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덕트’는 저음 보강을 위해 인클로저에 뚫은 일종의 구멍. 따라서 이 스피커는 밀폐형이 아니라 베이스 리플렉스형이 된다. 정면에서 봤을 때 위가 미드레인지 유닛, 아래가 트위터다. 무게는? 깜짝 놀라지 마시라. 스탠드 포함해 키가 147.5cm인 이 인데버의 무게는 무려 개당 100kg이다.
재생음은 무엇보다 광활한 사운드 스테이지가 일품이었다. 스피커 크기를 잊게 하는 무대의 앞뒤 그리고 좌우 폭과, 자연스러운 대역밸런스를 기본으로 풍성한 저역을 뿜어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잘생긴데다 풍부한 재력까지 갖춘 귀족 그 자체였다.
"Pathos (파토스) Classic One mk3 Hybrid 인티앰프"
아무리 선입견을 안가지려 해도 이탈리아의 오디오 디자인은 정말 특출나다. 파토스 뿐만 아니라 ‘심플리 투’(Simply Two)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진공관 앰프를 탄생시킨 유니슨 리서치, 만들어내는 스피커마다 예술품 수준으로 격찬을 받는 소너스 파베르가 모두 이탈리아 메이커다. 하긴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 명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도 이탈리아 출신이니 그 전통이 어디 갈까.
붉은색 전해 캐패시터를 과감히 노출시켜온 파토스답게 이 ‘Classic One mk3’도 진공관 2발 뒤로 큼지막한데다 심지어 예쁘기까지 한 붉은색 캐패시터를 2개 박아넣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앰프 디자인에 이러한 시각적 액센트를 집어넣는 그 센스와 노하우가 부럽다. 또한 전면 패널 가운데에 타원형 모양의 목재를 심어넣어 ‘셀렉터’와 ‘볼륨’ 노브의 ‘전진기지’로 활용한 디자인적 센스도 돋보인다. 좌우 스피커 단자를 보통 앰프들처럼 뒷면이 아니라 상판에 보란듯이 노출시킨 과감성에도 박수를.
사운드는 역시 생긴대로 나온다. 무지막지하게 스피커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나긋하게 그리고 색채감 있게 음들을 조련하는 스타일. 그렇다고 한 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앰프가 프리단은 진공관을 쓰고, 파워단은 트랜지스터를 쓴 소위 ‘하이브리드’ 방식의 인티앰프이기 때문이다. 8옴에 70W, 4옴에 130W이니 가정에서 쓰기에 출력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Dartzeel (다즐) NHB-108 Model One 파워앰프"
하이파이클럽 청음실에 터줏대감 격으로 자리를 꿰찮고 있는 파워앰프가 바로 다질의 ‘NHB-108 모델 원’이다. 8옴에 100W, 4옴에 160W 출력을 뽑아내는 스테레오 파워앰프인데, 지금까지 여기에 물린 수많은 하이엔드 스피커 대부분을 전혀 힘 하나 안들이고 드라이브시켜 청음 내내 감탄이 끊이질 않았었다.
하지만 필자가 이 다질의 파워앰프에 반한 것은 너무나 강렬한 색감의 디자인 때문. 좌우 방열판에는 채도가 높은 붉은색, 전면 패널에는 흔히 보기 어려운 다크 골드를 입혀 시각적 대비효과가 대단하다. 한마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입은 그 아이언맨 슈트 이미지. 역시 스위스에서 건너온 물건답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반투명 강화유리를 상판에 부착, 앰프 안의 속내를 엿볼 수 있게 한 점. 내부공간의 4분의 1은 족히 차지할 만큼 큼지막한 2개의 토로이달 전원트랜스(앞쪽)와 튼튼하게 고정된 총 12개의 전해 캐패시터(뒤쪽)는 전원공급에 관한 한 ‘있는 집 자손’임을 웅변해준다. 역시 파워앰프는 ‘힘’이다. 전면 패널 양쪽에 나와있는 손잡이는 용도를 떠나 시각적 액센트를 주기에 충분하다.
"April Music (에이프릴 뮤직) 올인원 Aura Note V2"
올인원 오디오로 세계적 명성이 자자한 대한민국 에이프릴 뮤직의 ‘오라 노트 V2’다. 일단 전면 패널과 상판 뒤쪽을 거울처럼 빛나는 크롬 도금으로 처리한 것이 디자인의 핵심이다. 그리고 두꺼운 유리판을 왼쪽으로 밀어(슬라이딩 ) CD를 위에서 장착(톱로딩)할 수 있게 한 메카닉도 빛난다. CD를 갈아끼운 후 크롬 도금의 클램퍼로 디스크를 눌러준 후 다시 유리판을 밀어 잠그는 과정이 턴테이블처럼 은근히 재미있다.
‘오라 노트’는 잘 알려진대로 영국의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케네스 그랜지가 디자인했다. 그는 켄우드 믹서기, 코닥 카메라, 파커 볼펜, 임페리얼 타자기, 영국 고속철도 등을 디자인한 세계적 거장이다. V2(버전2)가 되면서 출력과 DAC 성능이 업그레이드됐다.
디자인 뿐만이 아니다. ‘오라 노트 V2’는 ‘올인원’ 답게 오디오에 관한 한 못하는 게 없다. 125W 출력의 앰프, CD 플레이어, FM 튜너, 블루투스, 헤드폰 앰프, 심지어 PC와 연결시키면 DAC으로도 쓸 수 있다. 요즘은 블루투스 시대로 그닥 활용가능성은 낮지만 아이폰의 경우 USB케이블로 연결하면 음악재생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잘 생긴 팔방미인이다.
"Allnic (올닉) L-5000 DHT 프리앰프"
유럽과 미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오디오 제작사 올닉의 최상위 프리앰프다. DHT는 직열3극진공관(Direct Heated Triode)의 약자. 직열관은 필라멘트를 직접 가열시켜 전자를 방출시키는 진공관으로, 히터에 의해 뜨거워진 캐소드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방열 진공관보다 역사적으로 먼저 나왔다. 실제로 이 앰프에 투입돼 증폭을 담당하는 진공관은 모두 직열 3극관이다. 가운데 앞쪽 2개가 1단 증폭의 3A/110A, 뒤쪽 2개가 2단 증폭의 3A/109B다. 양옆 진공관 4개는 정류관(7233)과 정전압관(6AK6 or 6485)이다.
디자인적으로는 키가 가로길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전면 패널과 트랜스와 진공관, 그리고 어테뉴에이터를 그대로 노출시킨 구조가 압권이다. 특히 올닉이 직접 제작하는 어테뉴에이터의 생얼을 ‘보란듯이’ 보여준 것은 신의 한수라 할 만하다. 각 진공관의 전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오렌지 색깔의 ‘커런트 미터’(current meter)는 시각적 포인트. 커다란 손잡이가 측면 전체를 커버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러면 소리는 어떨가. L-5000 DHT는 프리앰프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은 모조리 갖췄다고 보면 된다. 이게 진공관 앰프가 맞나 싶을 정도로 뛰어난 신호대잡음비(SNR)와 스피드는 기본이고, 분해능과 사운드 스테이지 조성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음악에 담긴 미세한 텍스처까지 잡아내주는 하이엔드 프리앰프의 전형이다.
"KEF Blade2 스피커"
2015년 뮌헨 국제오디오쇼에서 필자를 놀라게 한 또다른 주인공이 바로 이 KEF의 ‘블레이드 투’다. 전작보다 조금 작아진 모델인데, 무엇보다 정확히 반을 쪼개 안의 메카닉을 그대로 보여줘 단연 시선을 잡아맸다. 깃털을 닮은 스피커 전체 형상도 파격적이지만, 저역을 담당하는 우퍼를 4개 투입해 2개씩 서로 등을 마주대하게 한 설계가 돋보인다. 폭신한 스펀지처럼 보이는 여러 흡음재, 바닥과 우퍼 사이에 놓여진 크로스오버 회로, 그리고 KEF의 그 유명한 동축유닛인 ‘유니 큐’(Uni-Q)가 미로처럼 놓여있다.
KEF 스피커를 얘기하면서 ‘유니 큐’를 언급안할 수가 없다. 미드레인지 유닛의 중심에 트위터를 박아넣음으로써 방사음의 중심축을 일치시킨 게 바로 유니 큐이고, 그래서 ‘동축’이다. 같은 영국의 스피커 제작사인 탄노이도 이러한 동축 유닛의 달인인데, 탄노이에서는 자사가 개발한 동축 유닛을 ‘듀얼 콘센트릭’(Dual Concentric)이라고 부른다.
‘블레이드 투’가 들려주는 사운드는 한마디로 ‘자연스럽다’는 것. 그만큼 대역밸런스와 재생음의 리니어리티(linearity)가 출중하다는 것이다. 음들은 술술 유닛과 덕트를 빠져나와 청음실을 꽉 채운다. 전면이 좁은 스타일이기 때문에 음의 회절이나 스트레스, 이런 걱정도 없다. 또한 우퍼가 양 사이드에 붙어있는 만큼 광활한 사운드 스테이지는 두 말 하면 잔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