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ho] C-2 , 스피커의 미래를 빛내는 라이도의 역작
필자가 만나본 많은 오디오 디자이너 중에 마이클 뵈렌슨만큼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오디오를 공부할 무렵에 만난 데다가, 여러 가지 오디오 외적인 부분까지 설명해줬으므로, 이쪽 분야가 대체 어떤 성향과 체질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며칠 동안 함께 술을 마시고, 대구에도 여행을 가고, 스피커며 앰프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므로, 이런 배움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만일 당시에 그런 기회가 없었다면 필자의 시야는 한동안 계속 좁게 닫혀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에 그의 역작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는데, 아이라 C-2라는 모델명을 단 이 제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내가 스피커 디자이너이고, 여태 무수하게 접한 제품들을 반추하면서 그 장점만을 모아서 설계한다면 결국 이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전면 배플은 되도록 면적을 줄이고, 안길이는 최대한 깊게 하고, 뒤쪽에 포트를 내어 자연스런 저역을 확보하고, 유닛은 되도록 분할진동이 적은 메탈 계통 소재를 사용하고, 트위터의 면적은 넓을수록 좋고…. 본기를 만나면서 역시 사부는 사부구나 속으로 탄복했던 것이다.
실제로 사부, 아니 마이클이 운영하는 라이도 어쿠스틱의 성장세는 눈부실 정도다. 무려 전세계 20여 개국에 수출 중이니 말이다. 그를 알게 된 것이 불과 4년 남짓인데, 그 사이 새로 유닛을 설계하고, 신제품을 만들고, 부지런히 해외 오디오 쇼에 다니면서 마케팅을 하는 등, 이 짧은 시간에 그 정도 성과를 이뤄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워낙 완벽주의자에다가 일벌레인 것은 알았지만, 본기를 접하면서 새삼 내 자신이 반성될 정도다.
그럼 마이클의 가르침 중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스피드다. 오디오 용어로 가끔 하이 스피드, 하이 스피드 하는데, 그 개념이 왜 이렇게 현대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중요한지는 실제로 그의 제품으로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사실 이때만 해도, 오디오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운드 스테이지나 음색 정도에 불과했다. 하긴 이미 그 즈음엔 사운드 스테이지는 웬만한 제품은 다 극복하고 있었고, 음색은 취향 정도로만 분류되었다. 클래식 소편성을 좋아하는 분은 아무래도 곱고 아름다운 음이 좋고, 재즈나 록을 좋아하는 분은 좀 거칠고, 끈끈한 음이 좋고, 현악기 쪽은 한없이 투명한 음이 나을 것 같고…. 뭐,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하이 스피드라니?
당시 마이클이 들려준 음은 그야말로 준마가 달리는 듯 한없이 빨랐다. 그럴 경우, 현대 녹음이 갖는 멀티 트랙, 끝없는 오버 더빙, 반복되는 리마스터링 등 복잡하기 한이 없는 테크놀로지에 대응하게 된다. 말하자면, 50~60년대의 녹음을 하이텔 시대로 칠 때, 현대의 녹음은 100메가 초고속망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에 적합한 스피커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런 제약 없이 이 스피드를 극복할 경우, 일체의 혼탁함이나 엉킴이 없는 맑고 투명하고 전망이 좋은 음이 연출된다. 그게 바로 현대 하이엔드의 극치인 것이다.
실제로 마이클의 제품을 들어보면 사이즈로 봐서 상상할 수 없는 넓고 깊은 스케일이 가능해진다. 당시에 들었던 에벤 X-5에서 놀란 것은, 공간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무브먼트의 포착이었던 부분이다. 그냥 앞뒤, 좌우가 아닌 대각선 방향이었다. 물론 일부 정전형 스피커에서는 이 정도의 음장을 포착하지만, 여기에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저역의 양감이나 펀치력을 생각하면 확실히 진화된 음이었다. 그때 받은 쇼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다.
한데 이번에 받아본 C-2에서 놀란 점은, 이런 하이 스피드나 음장에 더한 음색이다. 사실 에벤 X-5만 해도 너무나 정확하고 또 정교한 나머지 약간 모니터적인 성향에 가까워, 딱 그 점이 불만이었다. 물론 음색이 예쁜 프리앰프를 붙이거나 약간 컬러링이 있는 케이블을 부착해서 이 부분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지만, 아무튼 옥에 티라는 느낌이 있었다. 그 부분을 본기에서 완전히 해결해준 것이다. 음을 들으면서 참 대단하구나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간 겪어온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다. 유닛만 해도 수도 없는 반복 실험에 개량을 거듭한 것이며, 인클로저의 형상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진 것이다. 좋은 스피커는 일단 많은 통을 짜보고, 여기저기 부품도 바꿔보고…. 아무튼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얼마나 날밤을 샜냐가 관건이라 보면 된다. 그러므로 그간 오디오 쪽에 한눈팔지 않고 달려온 마이클의 전부가 본기에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유닛을 소개해보자. 본기는 2.5웨이 방식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트위터에 미드베이스 두 개의 포름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은 스펙을 보면 금세 이해가 된다. 통상의 2웨이로 말하면, 저역이 대개 50Hz 안팎에서 끊어진다. 물론 이것은 북셀프의 스펙이고, 미드베이스의 용적을 좀 늘리면 40Hz까지 가능해지지만, 그럴 경우 스피커의 사이즈가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대개는 3웨이 방식으로 해서 40Hz 근방을 커버하는 것이다. 한데 여기서는 두 발의 미드베이스로 40Hz까지 떨어지는 스펙을 얻고 있다. 2.5웨이라는 표현에 뭔가 설득력이 있지 않는가?
그럼 여기서 동원된 유닛을 보자. 우선 트위터부터 살피면, FTT-75라는 형번이 붙은 일종의 리본 트위터다. 물론 마이클의 설명을 들으면 종래의 리본과는 좀 차이가 있지만, 일단은 이렇게 부르겠다. 이 진동막의 크기는 35×70mm 사양이다. 통상적으로 돔 트위터에 쓰이는 2.5인치 구경에 비해 약 두 배에 해당하는 면적이지만, 무게만 따지면 1/40에 불과하다. 깃털보다 더 가벼운 수치다.
꼼꼼히 트위터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진동막 주변을 감싸는 프레임에 일체 틈이 없다. 완벽하게 실딩 처리한 것이다. 이럴 경우 컷오프 주파수가 높아지는 것을 방지해서 미드베이스와의 연결을 스무드하게 할 뿐 아니라, 대역폭도 넓히는 효과를 얻는다. 실제로 이 트위터는 3kHz에서 50kHz(!)까지 담당한다. 일종의 슈퍼 트위터인 셈이다.
한편 이 트위터는 뒷부분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뒤로 자연스럽게 음을 빼내어 소멸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트위터부의 인클로저 내부는 복잡한 매트릭스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후면이 개방된 방식은, 음에 일체 군더더기가 없고, 상쾌한 느낌을 전달한다. 또 이런 구조의 장점을 얻기 위해 미드베이스 유닛에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 부분이 바로 본기의 에센스가 아닐까 싶다.
문제의 미드베이스는 115mm, 4.5인치 구경이다. 단, 세라믹 드라이버라고 쓰여 있는데, 그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정확히는 알루미늄 메탈과 알루미늄 옥시드 두 종류의 소재를 합성시킨 것으로, 그 중에 옥시드 쪽이 일종의 세라믹인 것이다. 이를 얻기 위한 공정이 상당히 복잡하다.
우선 고전압, 고전류의 통 속에 알루미늄 옥시드를 넣고 약 60시간 정도 푹 찐다. 그 과정에 플라즈마 방식이 동원되어, 이렇게 얻어진 순수한 옥시드를 알루미늄 메탈에 입히는 것이다.
그럼 뭐하러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성형하는가?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메탈 콘을 채택하는 장점부터 살펴보자. 진동판의 경우 제일 좋은 것은 소프트하면서 댐핑이 높은 것이다. 또 어느 정도 강도도 있어서 강한 내입력에도 대응해야 한다. 그런 여러 조건을 충족시키는 소재가 메탈인 것이다.
단, 이를 한 종류만 사용할 경우 커버하는 대역이 아무래도 좁다. 그러나 두 개의 소재를 더할 경우 놀랍게도 그 대역이 상당히 넓어진다. 본기에 투입된 유닛이 불과 4.5인치이면서 40Hz~3kHz를 커버하는, 거의 풀레인지 사양을 얻는 것은 바로 이런 제조법에 기인하는 것이다. 실제로 본 유닛은 12.5kHz까지도 대응한다고 하니,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할 것은 드라이버의 뒷부분이 통상적인 제품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후면이 뻥 뚫려 있다. 그럼 마그넷은 어디에 설치하느냐 물을 수 있는데, 그 점에서 동사가 푸시풀 방식으로 부르는 묘안이 나온다. 즉, 마그넷을 열 덩이로 쪼개서 보이스 코일이 감긴 통 주변에 감싸는 것이다. 단, 그 각각에 두 개의 마그넷이 담겨 있어서, 이들이 푸시풀로 동작한다.
그럴 경우, 음이 뒤로 빠질 때 훨씬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다. 개방감 넘치는 음은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참, 이런 결론에 다다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안이 이뤄졌을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유닛부터 차곡차곡 개량을 해서 이렇게 완성품을 만들어낸 마이클의 집념에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이 스파이크. 대개는 나사가 달려 있어서 확고하게 바닥을 지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본기는 다르다. 약간은 허술할 정도로 기울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해야 자연스럽게 공명이 차단된다고 하니, 이 부분에 관한 논란이 있을 듯도 싶다. 하지만 마이클이 설계한 제품이다.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자, 그럼 문제는 음인데, 이 부분에서 나는 감히 '진보된 음'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미 하이 스피드에 음장까지 갖춘 데다가 뉘앙스와 감성이 풍부한 음색까지 커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음색에 강점을 보이는 제품들은 현대 하이엔드가 요구하는 스펙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스펙에만 치중하는 스피커들은 음악성이라는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 점에서 본기가 내는 음에는 향후 스피커들이 지향해야 할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번 시청을 위해 프리는 다질, 파워는 테너 175S라는 조합에 소스는 플레이백 디자인을 동원했다. 참고로 다음과 같은 CD를 시청했다.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 그리모(피아노)
- 피오나 애플
- 소니 롤린스
- 데이브 브루벡
우선 <황제>부터 보면, 화사하고 감성이 풍부하며 신선한 음이 나온다. 무슨 말인가 하면, 원래 이 곡은 남성적인 호방함으로 무장한 곡이지만, 그리모가 그려내는 우아하면서 정취가 풍부한 연주의 맛을 잘 포착했다는 것이다. 즉, 힘이나 기세로 미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면서 빠르게 프레이징하는 부분이 인상적으로 다가오고, 오케스트라 역시 이에 걸맞게 상당히 절제되면서도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준다.
솔로 연주자와 오케스트라의 밀고 당기는 구조로 된 협주곡의 성격 상, 이 부분의 밸런스가 매우 중요한데, 그 점에서 상당히 만족스럽다. 특히, 피아노의 영롱하면서 여운이 깊은 음에는 그냥 아름답다, 라는 표현밖에 동원할 수 없어서 이 점이 안타까울 정도다.
영화 「플레젠트빌」에 수록된 애플의
소니 롤린스의
특히, 라이드 심벌즈의 찰랑거림이나 더블 베이스의 빠른 손놀림 등이 정밀하게 묘사되어, 잘 아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새롭게 들렸다. 단, 앞서 말한 마초 기질이나 어씨한 느낌 대신 상당히 고급스럽고 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점에서 정통 재즈 팬과 현대적인 감각의 팬들 사이에 대립이 있을 듯도 하지만, 이쪽은 이쪽대로 상당히 근사하다. 예전에 들었던 재즈 CD를 다시 듣게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매력이 있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그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여서, 처음 풀 HD 영상을 볼 때의 충격만큼 다가온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상당히 고품위하고 또 아름다움도 느껴져, 확실히 차세대 스피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보인다. 이런 역작을 만들어낸 마이클, 아니 사부에게 큰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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