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미국에는 인디언과 관련된 신화나 전설이 많다. 일설에는 인디언들이 알레스카 지역을 통해 들어온 동양인, 그러니까 중국이나 몽고인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아마도 맞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 중 하나를 소개하겠다.

어느 인디언이 급한 일이 있어서 하루 종일 말을 타고 달렸다. 너무나 먼 길을 왔기 때문에 저녁 무렵이 되자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지친 그를 보고 한 마디 던졌다.

 

“지금 무척 피곤한 모양이군요?”
“집에다 둔 내 영혼(Soul)이 여기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중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육체는 빠르게 다른 지역에 갈 수 있지만, 영혼의 도달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하긴 많은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처음에는 낯설고 또 무서울 때도 있다. 차츰 적응이 되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평상시와 같이 행동하게 된다. 즉, 그제야 영혼이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만일 샌 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딱 1시간 회의만 하고 돌아간다면 영혼은 어떻게 될까? 아무 문제가 없다. 영혼이 채 자리를 뜨기 전에 육체가 돌아왔으니 말이다. 물론 제트랙이나 시차 적응에도 O.K.

 

 

지난 번 플레이백 디자인을 주재하는 안드레아스 코흐(Andreas Koch)씨를 만나 인터뷰도 하고, 시청회도 진행하면서 친해진 김에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다 바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 한때 소니와 SACD 관련해서 일했던 그는 1년에 6~8회 정도 도쿄를 방문했으며, 소니의 회장과 회합할 땐 급한 경우 1시간짜리 방문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 새로운 포맷에 얼마나 소니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냐도 되고, 코흐 역시 전력투구해서 개발했다는 뜻도 된다. 사실 플레이백이나 코흐씨에 관한 정보는 이미 인터뷰 기사로 나갔으므로, 여기서 그 내용을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본기 IPS-3만의 기술적 성과에 대해 말해보자.

 

 

여기서 제일 먼저 짚고 넘어갈 게 전기적인 문제다. 일단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요구하는 전기의 성격이나 퀄리티가 다르다. 제일 좋은 것은 분리해서 쓰는 것인데, 한 몸체에 담은 이상 어쩔 수 없다. 대신 만반의 보호 회로를 준비했다. 잠깐, 보호 회로라고 하면, 무조건 음이 나빠질 수 있다는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음성 신호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이의 동작을 지켜보다가 전기적인 트러블이 나올 때에만 간섭한다면 어떨까?

 

이 부분에서 본 기는 총 다섯 개의 항목에 걸쳐 체크하고 있다. 기본적인 전원 문제부터 클리핑, 오버로딩, DC 옵셋 그리고 과열이다. 이 중 어느 하나만 감지되면 바로 릴레이를 걸어서 기기를 보호하는 것이다. 앰프쪽을 보면, 일단 프리단이 상당히 훌륭하다. 무려 200dB에 걸친 세밀한 볼륨 스텝을 제공하는데, 나는 그게 그냥 디지털 볼륨인 줄 알았다. 아니다. 단지 디지털로 제어될 뿐 기본적으로 아날로그 볼륨이란다. 사실 이런 볼륨단만 갖춰도 프리앰프 단품으로 얼마든지 수 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코흐씨는 정작 이런 부분에 대한 자랑을 삼가고 있으니, 여기서도 일단 넘어가자.

 

파워부를 보면 8오옴에 130W, 4오옴에 260W를 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단, 작은 공간에 앰프를 수납해야 함으로, 효율이 좋은 클래스 B 방식을 테마로 했다. 순전한 클래스 B 방식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신호 사이의 공백을 처리하기 위한 조치가 들어가, 일종의 리니어리티를 확보하고 있는 점은, 그 어느 앰프에서도 볼 수 없는 기술이다. 확실히 코흐씨는 타고난 기술자라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쪽을 보면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테크놀로지가 들어가 있다. 우선 클락 콘트롤이 유니크하다. 통상 사용하는 PLL 필터를 쓰지 않는다. 이것의 문제는 위상을 다루고 또 지터도 제거해야 하는, 동시에 두 가지 기능을 하는 데에 있어서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위상에 신경 쓰면 지터가 많아지고, 지터를 줄이다 보면 위상이 흔들리는 식이다. 그래서 독자적인 필터를 개발해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사냥하고 있다.

 

업샘플링 알고리듬에 관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대개 “픽스드 필터”(fixed filter)를 쓰는데, 그럴 경우 저주파 대역은 무리가 없으나 고주파 대역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각이 딱딱 나 있는 신호의 경우, 링잉 정도만 묘사하는데 그친다. 반면 여기서 제공한 알고리듬은 정확하게 오리지널 아날로그 신호의 패턴을 재현해내고 있다. 당연히 고역 특성도 우수하다. 역시 DSD의 원천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성과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본 기는 업그레이드 방식이 쉽다. 메이커에 따라 복잡하게 만들어서 심지어 기기를 수입상에 맡겨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는 다르다. 우선 WAV 파일에 업그레이드 정보를 담는다.  그럼 이것은 아이튠즈니 푸바니 그 어떤 어플에서도 다 읽힌다. 이른바 음성 신호로 읽힌다. 그래서 들어온 정보를 본 기는 해석해서 음악이 아닌 업그레이드로 인식하고는 곧 바로 수행하는 것이다. 너무 간단해서 할 말이 없다. 그냥 메이커에서 준 파일을 컴퓨터에서 음악 듣듯 돌리면 끝이다.

또 USB 전송에도 고안이 들어가 있다. 사실 USB 내부를 보면 전기를 흘려보내는 파트와 시그널을 보내는 파트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PC에서 보내는 전원이 온전할 리 없다. 본 기는 그 PC의 전기를 끊고 독자적으로 자기의 전원을 보낸다. 보다 양질의, 확실한 전송이 이뤄짐은 물론이다.

 

사실 본 기에 투입된 기술에 대해 논하려면 몇 개의 아티클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다. 그 중에서 중요한 사항만 체크했으므로, 어느 정도의 감은 잡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본격 시청 자체인데, 이를 위해 세 종의 스피커를 동원했다. 처음에는 북셀프인 dc10 오디오이고, 이어서 플로워 스탠딩 방식의 오디오 피직스 템포 25.

 
물론 두 기기 모두 구동에 일체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나중엔 ATC의 SCM 100 PSL까지 사용했는데, 저역의 구동엔 무리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한 재생음을 들려줬다. 본 기의 제작 컨셉을 생각하면 컴퓨터를 연결해서 다소 캐주얼하게 사용하는 것이므로, 북셀프나 톨보이 정도가 무난하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소스는 맥북 에어에 담긴 DSD 및 다양한 고음질 파일을 사용했고,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 No.1 C장조》 장한나(첼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글렌 굴드(피아노)
-야신타 《Willow Weep for Me》
-엘튼 존 《Goodbye Yellow Brick Road》

 

첫 곡으로 들은 장한나의 연주는, 상당히 실키하고 매혹적인 음색이 귀를 사로잡는다. 매우 튜닝이 잘 되어 있고, 밸런스가 빼어나다. 억지로 음을 내지 않고, 사뿐사뿐 기분 좋게 다가온다. 마치 귀족의 살롱에서 와인 한 잔 마시며 즐기는 듯하다. 정교치밀하고, 대역이 넓으며,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데, 그 음색에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럭셔리하다. 대개 이런 느낌은 초 하이엔드급에나 가능한데, 단품을 모아서 꾸미려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본 기의 존재감이 어필해오는 순간이다.

두 번째 곡은, 그간 익히 들어서 친숙하지만, 역시 뭔가 다르다. 과연 뭐가 다를까? 피아노의 터치나 긴 잔향, 주변의 공기감 등이 우선 다르고, 강약의 대비, 빠름과 느림의 차이 심지어 웅얼거리는 소리까지 다르다. 더 사실적이고, 디테일하지만 또 신선하다. 정보량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특히 빠르게 패시지할 때 열 개의 손가락이 정확히 묘사되는 부분은 특필할 만하다.

다소 느린 듯, 졸린 듯 노래하는 야신타는, 일단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특히, 보컬의 다양한 음성 정보가 휘황찬란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압권이다. 침을 삼키고, 가볍게 한 숨을 내쉬고 그러다 혀가 입천장에 닿고 ... 마치 그녀의 입에 귀를 바싹 들이대고 듣는 식이다. 거기에 주변의 공간감이 빼어나, 녹음 당시의 스튜디오 사이즈가 그려질 정도다. 하지만 너무 정보량의 전달에만 급급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나른하면서 관능적인 분위기를 묘사하는데 소홀함이 없다. 그러니 이쪽에선 그냥 눈을 감고 들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엘튼 존. 참 오랜만에 듣는데, 젊고 싱싱한 보컬이 마치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팔팔하다. 악기와 보컬의 위치가 명확하고, 드럼의 강력한 어택이 살아 있으며, 베이스는 바닥을 가볍게 두드린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생기발랄해서, 과연 이 곡이 그렇게 좋았나 의심이 들 정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첨단의 디지털 기술이 추구하는 것은 되도록 아날로그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자연스러움과 높은 음악성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게다가 다양한 기능이 제공되고 있음은, 최소한의 경비로 하이엔드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