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마치 메이저 리그나 프리미어 리그에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들이 늘어가듯, 글로벌 하이파이 필드에서도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들이 중원을 채워가고 있다. 과거에 단순 립서비스로 ‘내가 사면 미제, 남에게는 국산’, 식의 부담없는 훈수가 아니라, 내 돈을 주고 살 제품으로서의 진지한 고찰이 대한민국에서 제조된 하이파이를 대상으로 이미 확산되어 있다. 

국산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업에서와 같이 가격상의 타협을 하지도 않는다. 그것을 발전의 단계라고 한다면, 이미 그 단계는 벗어나고 있는 브랜드들이 상당수 축적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온/오프라인 시장에서 거래가 일어나고,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서 신제품으로 시장에 되돌아 오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제품 개발이 여러 부문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시조가 된 앰프 부문에서의 일련의 트렌드가 시장을 주도해왔다면, 2014년 현 시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영역은 역시 디지털 부문이 될 것이다.

 

디지털의 목표, 혹은 완성이 오로지 아날로그로의 무한접근(완벽히 동일하지도 않은 채로)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한편으로는 무척 허탈했을 것이다. 음악듣기에 비중이 더 큰 오디오파일들이라면 구차한 실험을 통한 디지털에 대한 기약보다는, ‘그냥 아날로그를 듣지?’라는 결론을 내리는 편이 더 빨랐을 것이다. 혹자들은 디지털에서 음질적으로 아날로그 이상의 결과물을 기대하기도 한다. 

아날로그에는 없던 그 무엇을 놓고, 마침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으로 근사하게 포장되어 있는 이 ‘디지털’이라는 패키지는 거창하게도 에리히 프롬 식 ‘위대한 약속’을 꿈꾸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날로그에는 없는 디지털의 차별화된 영역이 있다면 결국 ‘컨템퍼러리’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최신예 기술과 인터페이스를 적용시킬 수 있고, 포트폴리오이자 다양성이고, 트렌디 하이파이의 지표이자 나아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접합에 대한 시도 또한 디지털이 주도했을 때 가능한 일로 보인다. 이런 특정 시점에 대한 지표로서의 컨템퍼러리가 중심에 있을 때 비로소 레트로 스타일 또한 그 존재가치를 갖는 것이라 생각된다.

시간이 갈 수록 DAC는 양적 성장과 더불어, 마치 반도체 칩의 업데이트 마냥 지속적으로 스펙이 상향평준화되어 가고 있다. 음질만으로 평가해 보면, 얼핏 하이엔드와 엔트리급의 편차도 좁혀져 가고 있어 보인다. DAC가 이런 현상을 보이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출신성분 자체가 하이파이와는 노선을 달리하던 컴퓨터의 영역이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종종 언급하듯이 그래서 하이파이는 컴퓨터라는 플랫폼을 만나게 되면서 대중화의 거대한 물결을 타기 시작했으며, 다른 부문의 경우와는 다소 다르게 국내산 제품들이 활약할 수 있는 인프라 또한 제공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하이파이에 대한 이해, 흐름을 파악하고 있던 컴퓨터나 IT 전문업체의 제품들은 상당히 신선하면서도 돋보이는 결과물을 시장에 선사하곤 한다.

반(Bann)오디오는 이런 하이파이와 컴퓨터와의 이상적인 접합을 시도한 회사로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에서 하이파이가 요구하는 내용을 구현시키고자 하는 대한민국 브랜드이다. 종종 오해가 있는 바, 반(Ban)오디오는 같은 발음의 전원장치 제조사와는 무관한 회사이다(’n’을 추가한 ‘반’의 표기에는 그런 사연이 있어 보인다). 이미 7년 정도의 히스토리를 기반으로 3종의 파일 플레이어와, 1종의 DAC를 포함하는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대면할 기회가 없었던 바, 반오디오의 프로필을 보면 IT기반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대표가 주도한 프로젝트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동사 최초, 유일의 DAC인 ‘Firebird’는 작명에서 부터 동사의 의욕이 느껴진다. 제품의 디자인에서 별다른 개성을 느끼진다기 보다는 80년대 이래의 보편적인 DAC 포맷 - 슬림하고 심플한 플랫한 섀시에 LED가 깜빡이는 - 을 따르고 있는데, 제품을 시청하는 동안 이 디자인 또한 본 제품의 사운드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미 본 제품에 대해서는 온라인상에서도 소개가 되어 있어서 다수의 DAC사용자들에게 알려져 있을 것을 전제로 필자의 의견을 추가하기로 한다. 본 제품이 지향하는 바를 필자의 소견으로 판단해본다면, ‘Back to Basic 을 수단으로 하는 틈새 제품’이라고 일괄해볼 수 있다. 

시청은 동사의 트랜스포트인 네이피어(Napier)를 통한 순정조합과 전용 앱을 통해서, 하이파이클럽 메인시청실의 시스템인 다즐 + ATC 조합으로 진행했다. 이전에 비교시청회를 통해 짧은 시간 본 제품의 시청기회가 있었는데, ‘Firebird’이외의 시청시스템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아는 음원들에서 매우 유사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이 특이했다. 마치 소스기기에서 프리앰프 사이에 사용한 인터커넥터의 카리스마가 전체 시스템 칼라를 결정해버리는(이런 사례가 많다) 경우처럼, 소스기기에서 전체 시스템의 사운드칼라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아르농쿠르가 지휘하는 비인 콘센투스 무지쿠스의 바하 칸타타곡들은 본 제품의 본령을 가장 잘 부각시켜 주는 곡들로 보인다. 이 녹음 특유의 맑고 청명한 중고역을 거의 유감없이 들려주는 레퍼런스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시청실 스피커에 남아 있는 약간의 부스팅을 제외한다면 사실 레퍼런스 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의 스테이징과 음색을 들을 수 있다. 바닥에 분명히 발을 디디고 서서 노래하는 코러스의 안정적인 울림은 뛰어난 분해력과 더불어 아름다운 하모닉스가 배합되어 이상적인 바하 칸타타 코러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리마스터링 음반 중 ‘Waltz for Debby’를 들어보면 아르농쿠르풍 코러스와는 또 다른 의미의 공간의 매력이 잘 살아난다. 다소 콤팩트한 공간에서의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공기의 흐름과 울림이 세밀하게 느껴진다. 하이햇의 마이크로 다이나믹스는 특히 인상적인데, 기본적으로 사실적인 입체감을 배경으로 뛰어난 해상도와 공간 속으로 퍼져가는 느낌의 광채가 번득인다. 이 정밀한 다이나믹스는 음파가 정교하게도 들려야 하지만 동시에 서로 뒤섞이지 않도록 사운드 품질이 뒷받침되어야 구현 가능한 영역이라서 필자에게는 인상적으로 들렸다. 

같은 피아곡 중에서 좀더 다이나믹이 부각된 ‘브리타니아 변주곡’을 들어보면 왼손의 다이나미즘과 울림의 폭이 늘어난 하모닉스가 분명하게 그려진다. 녹음의 시기가 빌 에반스보다 훨씬 나중인 부분도 기여하고 있지만 정교한 스테이징과 다이나믹스의 폭이 다르게 표현된다.

그룹 퀸의 ‘Killer Queen’은 그룹 초기의 곡이면서도 필자가 아는 이들의 음악 중에서 가장 뛰어난 깊이감을 느낄 수 있고 포커싱의 품질이 뛰어난 음원 중의 하나인데, 고유의 레이어링과 다이나믹스의 표현이 최고 수준이었다. 시청 스피커인 ATC의 매시브함이 가미되어 있지만 이 사운드에는 원곡 특유의 구조적인 완성미를 잘 부각시키고 있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도입부분의 도발적인 핑거 스냅이 매우 사실적인 음향과 콤팩트한 사이즈로 그려진다. 

 

본 제품의 심플한 디자인은 절반 정도는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사운드와 디자인을 놓고 보았을 때, 특히 국산제품의 개발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안전한 포트폴리오라고도 할 수 있다. 알루미늄 합금 재질 섀시를 사용한 실물을 보면 견고한 만듦새를 느낄 수 있다. 입력은 USB, 광학, 동축, AES/EBU 등을, 출력은 언밸런스 이외에 밸런스도 지원하고 있다. 기타, 전술했듯이 본 제품에 투입된 내용들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본 제품을 두고 국산치고는 괜찮다던가 가격대비 성능이 우수하다던가 등의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좋은 의미에서 매우 매력적인 소리를 들려주는 제품이다. 특히 최근의 수많은 DAC들 중에서 눈에 뜨이도록 제작된, 원래 본 제품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런 특성을 보이는 제품이다. 어떤 면에서는 다소 회고조의 음색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중후한 밸런스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부분을 24비트/192KHz까지 끌어올린 다이나믹스와 해상도, 그리고 다양하게 투입시킨 필터와 지터 저감 설계를 통해 트렌디한 최근의 DAC들의 발랄함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본 제품을 높게 평가하게 된다. 제품을 시청하는 동안 필자 스스로가 이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추천하고 싶은 사용자들이 머리 속에 속속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