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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케이블(Anti-Cable)의 등장이 밀레니엄 이래 과열을 거듭하던 하이엔드 케이블 시장에서 케이블 본연의 역할에 대해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소위 단심선과 가격파괴, 점차 물량공세와 기술집적으로 경쟁하던 케이블 제품들에 경종을 울리듯 단순화와 정공법에 따른 소위 ‘스트레이트 와이어링’ 운동을 불러 일으키며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들의 방식은 선재의 마감과 결선방식 대신 순도를 높이고 노이즈를 차단하는 독자적인 방식을 통해 최소한의 단면적 만으로도 고품질의 전송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내용이야 이렇듯 설명되지만, 노골적으로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든 모습은 그들의 브랜드 이름에도 나타나 있듯이 꽤나 도발적이다. ‘나는 반대한다, 기존의 방식을…’의 강렬한 메시지는 가히 70년대 펑크 밴드의 이디엄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매우 세련되고 품격높은 사운드는 자꾸만 그 이름 - 안티 케이블 - 을 되돌아 보게 한다. 외관 이외에는 ‘안티’ 라는 단어 자체가 매우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대략 4-5년 전 쯤 빨간 색 에나멜 칠을 한 갸냘픈 케이블이, 역시 같은 마감의 스프링으로 감겨진 채로 던져졌을 때 많은 오디오파일들은 적쟎이 당황했다.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이지? 단자의 생김새로 보아 스피커 케이블, 그리고 인터커넥터가 분명해 보이는 이 ‘철사줄’들을 놓고 혹시 플라이어 등의 공구로 제작하는 공예품의 재료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스피커와 앰프, 앰프와 CDP 사이에 연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들려오는 소리는 오디오파일들에게 회자되던 고가의 케이블들로 하여금 심각한 자아비판의 시간을 갖게 했다. ‘특수재질로 몇 겹씩 포장하고 멋진 옷을 입힌 니들이 저 헐벗은 철사줄보다 나은 게 뭐가 있지?’ 어쩌면 안티 케이블이 꿈꾼 순간은 바로 이런 장면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보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예상은 꽤나 보편적으로 적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피복 및 메쉬 처리된 3가닥의 선재를 꼬은 모양의, 파워코드에서 나오기 힘든 독특한 디자인이다. 세 등급의 제품은 내부 심선의 굵기에 따라 구분되어 있는데, 외관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레벨 1은 6제곱mm, 레벨 2는 12제곱mm, 레벨 3는 24제곱mm 규격의 선재로 하위버전에서 기하급수로 단면적이 증가해서 상하등급간 편차가 분명할 것으로 보인다. 내부 선재는 무산소동을 사용하고 있으며, 불순물 함유비율을 100만분의 5 수준으로 낮춰서 순도를 높여 제작한 심선을 사용하고 있다. 

제조사인 안티 케이블의 권장사항을 참고하자면, 본 제품의 추천 부문은 순서대로 디지털 기기, 파워앰프, 프리앰프, 턴테이블 순이다. 모노블럭인 관계로 파워앰프에는 시도해보지 못했으나 프리앰프와 CDP에 테스트해본 결과는 상당히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필자의 프리앰프 전원부가 그리 특별한 제품이 아닌 이유도 있겠지만, 프리앰프에 사용한 경우에는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킴버의 PK10, 그리고 소위 ‘막선’과 비교시청한 결과를 보면, 막선과의 비교시 디지털의 경우 꽤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인다. 디지털 기기를 본 케이블의 지표제품으로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고 있었다.

프리앰프의 경우 또한 이보다 변화의 폭은 작지만 조금씩 눈에 뜨이는 변화가 생겨난다. 무엇보다 배경이 조용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이다. 종종 배경이 조용해진다는 의미는 노이즈를 효과적으로 차단시킨 결과물이며, 이로부터 입체적인 스테이징과 실제 사이즈의 포커싱이 차례로 이어지는 게 순서이다. 프리앰프에서도 이런 변화가 감지되지만, 디지털에서는 약간 놀라울 정도의 변화가 생겨나 있다. 

PK10과 비교해서 본다면 서로 공유하는 부문과 다른 부문이 존재한다. 예컨대 두 기종 모두 배경이 조용해지는 정도는 유사하다. PK10에서의 저역이 좀더 응집력이 있다고 한다면 안티케이블 레벨 3는 위력있고 다이나믹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아는 이보다 배경이 더 조용한 경우는 PAD의 콜로서스나 파워AC 등의 제품들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꽤나 획기적인 성과를 보여준다. 

팻 메시니와 찰리 헤이든이 연주하는 ‘Message To a Friend’를 들어보면 기타의 마이크로 다이나믹스, 베이스의 매크로 다이나믹스의 변화가 잘 드러난다. 이 슬로우템포의 이중주에 있어 배경이 차분해지는 정도는 많은 의미가 있다. 울림이 정교해지면서 좋은 촉감이 느껴진다. 기타의 투명감이 상승한 듯한 느낌과 더불어 핑거링의 동작이 눈에 잘 들어오고 있다. 구체적인 크기와 운행이 상당히 사실적인 모습에 근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징이 컴팩트해져 있고 작은 부분에서도 입체감이 잘 느껴진다. 

린 레코드의 스튜디오 품질 24비트/192KHz 버전으로 시청해본 바하의 파르티타 3번은 이상적인 울림을 ‘보여주고’ 있다. 귀보다 눈이 먼저 열리고 반응하고 있음을 느끼는 건 이례적인 경우이다. 워낙 출중한 울림 데이터를 담고 있는 음원이라서 이러한 전원의 개선효과는 눈에 뜨인다. 활의 끝에서 끝이 얼마만큼이고 어디까지의 반경으로 움직이고 있는 지 잘 감지된다. 활이 비틀리거나 현 위에서 미묘한 변화를 일으킬 때마다 반응하고 노출시킨다. 연주자와의 거리, 연주자 뒤쪽의 공간, 천정까지의 높이와 울림 등의 데이터가 매우 구체적으로 전달되고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그 결과물로서의 아름다운 울림에 주목하게 된다. 연주자와 시청자 사이에 아무 것도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서 공기의 이동이 오차나 여과없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실로 눈이 시린 연주이다.

역시 린 레코드의 스튜디오 등급 파일로 시청한 정경화-켐페 커플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은 다른 질감의 묘사도 좋았지만, 특히 투티에서의 분해력이 인상적이다. 결코 정교함을 특징으로 하는 연주나 녹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짧은 순간의 임팩트가 근거리에서 명쾌하게 뭉쳤다 사라지는 깨끗한 전망을 선사한다. 약간 어두운 톤의 이 연주가 머리 속을 맑게 해준다. 

 

안티 케이블이 생각하는 파워코드의 이상적인 철학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안티 케이블 파워코드의 사용을 위해 몇 가지 참고할 내용이 있는데, 사실 이 내용은 기존 하이엔드 케이블에 대한 불편한, ’안티’를 상당 부분 담고 있다. 하지만 안티 케이블 사용자들은 숙지할 내용으로서 사용자가 직접 테스트해보고 취사선택할 일이다. 우선, 전원장치에 대한 무용론이다. 안티 케이블에 의하면 자사 파워코드는 벽체 전원에 직접 꽂아서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랬을 때 자사의 제품에서 최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필자의 경우 벽 전원까지의 거리가 도저히 되지 않아 비교해보지 못했으나 본 시청기는 AC 제너레이터 등의 액티브 전원장치를 통하지 않고 오디오파일 등급의 멀티탭(르그랑)을 통한 결과물이다. 

여하튼 이런 조건을 갖추고 시청했을 경우, 자사에서 주장하는 효과는 저역 및 고역 신장, 다이나믹 상승, 까만 배경, 자연스러운 사운드 등 대략 12가지  정도의 항목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사실 이 내용은 가장 이상적인 상황에 대한 내용과 동일해서 굳이 열거하지 않기로 한다. 여하튼, 안티 케이블에 의하면 본 전원코드의 사용자들은 오래지 않아 전원장치를 시청실에서 치우게 되었다고 한다. 기존 케이블도 모두 안티 케이블로 교환했음은 물론이다. 또 다른 사례로서, LP 애호가였던 오디오파일들이 본 제품을 사용한 이후 80% 정도의 감상 음원이 디지털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음반사에 근무하던 시절 그룹 ‘클래쉬’의 베스트앨범을 발매한 적이 있는데, 업무로서가 아니라면 이건 사실 넌센스에 가까운 일이었다. 펑크의 거장 ‘클래쉬’의 프론트맨 ‘조 스트러머’는 그들 최고의 히트곡인 ‘Rock the Casbah’가 빌보드 톱텐에 진입하는 걸 보고 이렇게 얘기했다. ‘그 싸구려 가사로 쓰여지는 바람에 우린 디스코 밴드로 전락했다’고, 펑크 운동이 그랬듯이 이런 류의 안티- 컨셉의 제품들은 의견 개진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진정한 ‘펑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공한 펑크운동은 하나의 스타일이 되어 롱런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와 포스트 그런지, 얼터너티브, 포스트펑크로 확산되어 거대한 주류가 되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안티’는 언젠가 메인스트림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며칠간 시청해 본 ‘안티 케이블’의 전원코드는 시쳇말로 신선한 충격이라는 말에 걸맞는다. 모양새와 컨셉을 제외한다면 이건 모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주 간단히 제거할 수 있지만, 제품에 연결된 코드를 뽑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