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신발을 새로 살 때가 되었다. 필자가 그렇게 느낀 거라면 일반적으로는 버릴 때가 가까운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잠시 회고조에 잠겨 헤아려 보니 대략 이 신발로 다닌 곳이 10여개 국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리 오랜 신은 것도 아니고 작년 CES 끝나고 필자의 회사 대표가 사 준 것이다. LA 교외의 아울렛에서 마침 신발이 필요했던 사장님 것을 필자가 골라드렸는데, 계획도 없던 필자의 것 까지 같이 계산을 하신 것이다. 유후~ 고마울 따름이다. 이후 필자의 출장 차림을 보면 그 이전 회사 대표가 선물한 정장과 그 다음 회사 대표가 선물한 이 신발로 출발해서 그 차림으로 돌아오곤 한다. 

락포트(Rockport), 이미 두 번째 거의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신고 다니고 있는 이 로퍼(loafer)는 사실 정장과 매칭되는 드레스슈즈 컨셉은 아니고 맨발이 적당히 보이게 신거나 오히려 운전화에 가까운 캐주얼풍이다. 여자들 어그부츠 신고다니는 걸 보고 ‘그게 길에서 신는거냐?’고 하면서 스스로는 어쨌든 편하면 되는 것이구나… 이런 비겁한 생각마저 드는데, 어떤 차림으로 어떻게 신든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여하튼 매우 견고하고 가벼워서 아침에 현관에서 신발을 고를라치면 실로 ‘발이 가는’ 신발이다. 억지스러울 지 모르겠지만, 처음 락포트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을 마주했을 때 낯설지가 않았던 것은 필자의 ‘락포트’ 신발에 대한 좋은 느낌 때문이었다. 

디자인과 마감에 이르기까지 일체감이 있고 오래 신을 수 있으면서도 발을 쾌적하게 하는 컨셉과 이어져 있었다. 설마 같은 회사에서? 이런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말이다. 스피커 얘기나 해라. 참, 하다 하다 이제는 스피커 시청기에 신발 얘기를 늘어놓는다고 할 독자들에게는 양해를 구하는 바이지만, 마침 락포트 스피커를 시청하러 가서 좋은 가죽 소파에 앉아 있다 보니 필자가 신고 있는 락포트가 꽤나 꼬질꼬질해 보이더란 데서 얘기는 시작된다. 

같은 장소에서 꼭 일년 만에 락포트의 제품을 다시 시청하게 되었다. 지난 번 시청 제품은 ‘아비오르(Avior)’였고 이번은 출시 중인 제품 중에서 막내가 되는 ‘아트리아(Atria)’이다. 다른 앰프와 주변 기기로의 시청이긴 하지만 꽤나 생생하게 비교할 수 있어서 거의 AB테스트에 가까운 흥미로운 시청의 기회가 되었다. 참고로 좋은 청취환경 그리고 동일한 시청공간에서의 시청은 제품 파악에 유리하다. 공간자체가 레퍼런스가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종종 익숙치 않은 공간이거나 청취 환경이 좋지 않으면 제품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거나 더 시간을 갖고 시청을 하거나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GLV 에서의 시청은 종합적으로 좋은 ‘리뷰환경’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방문시청의 경우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그리고 단 한 번의 시청에 한정해서 판단을 해야 하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 제한적인 시청 상황과 자신의 공간에서의 리포트를 구분해서 다루고 그 상황을 독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했을 때, 비로소 이런 지면의 의미를 갖는 것이리라.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는 하이엔드 오디오계에서 또 한 명의 완벽주의자이다. 어쩌면 근래 가장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90년대에 최초의 공중부양 턴테이블 ‘시리우스’를 출시한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가지만, 스피커제작에 착수한 이래 지난 10여년간의 결과물은 다른 브랜드들의 수십년간의 업적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락포트의 스피커들은 기본적으로 무공진 설계에서 출발한다. 제품의 인클로저는 이음매가 없는 모노코크 바디로 제작되는데, 필자의 ‘아비오르’ 리뷰 편을 보면 좀더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마치 보트를 만들 듯이 유리섬유로 강화처리된 기본 프레임에 에폭시 수지를 부어서 베이스 바디를 완성시킨 후 전면배플을 덮고 후면 네트워크 홀을 막아서 완성된다. 특히 유닛이 장착되는 전면배플은 락포트의 공력이 가장 많이 투입되어 있는 부분인데 3겹의 고강도 댐핑방식으로 제작해서 견고하기도 하거니와 자체 공진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최적의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다. 이렇게 제작된 배플의 두께는 4인치가 되는데 제품의 사이즈와 어쿠스틱을 감안해서 ‘아비오르’에서보다 약간 얇아져 있다. 유닛을 중심으로 배플의 사면은 최소한의 공간만을 남기고 미세한 곡면으로 뒷방향으로 깎아냈는데 주지하다시피 배플면에서의 회절과 이로 인한 위상왜곡을 ‘근절’하기 위한 설계이다. 

시청을 해보면 유사한 방식의 아발론 등의 스피커와는 또 다른 락포트 특유의 이미징과 스테이징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위상일치를 위해 본 제품 또한 뒤쪽으로 살짝 기운 모양을 하고 있는데, 뒤쪽 하단에 위치한 바인딩 포스트 터미널 부분을 돌출시킨 모습은 제작 공정의 편리를 위해 그런 모양이 있겠지만 측면에서 보았을 때 뒤로 기운 구조에 밸런스 포인트가 되는 절묘한 디자인으로 보인다. 기울어져서 생겨난 빈 공간에 대한 기하학적 밸런스로 여겨지는 이런 세부적인 디자인은 락포트의 제조철학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다. 

1인치의 돔 트위터는 베릴륨을 재질로 스캔스픽에서 제작한 ‘특주 리블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본 유닛은 특히 락포트의 최상위 기종에도 사용되고 있는 최고 등급의 제품이다. 유닛과 네트워크간 내부선재는 트랜스페어런트의 제품을 사용해서 결선되어 있다는 점 또한 특기할 사안이다. ’아트리아’는 더블 우퍼를 사용하던 ‘아비오르’에서 우퍼가 하나 생략되었고 높이와 가로, 뒷길이 등의 사이즈가 대략 10% 정도씩 축소되었고 용적과 중량은 약 30% 정도 감소되어 있다. 높이만 보자면, ‘아비오르’가 필자의 가슴 높이에 올라온다면 ‘아트리아’는 허리춤을 살짝 넘어서는 수준이다. 필자의 눈 대중으로 틸의 CS2.4나 WEGG3의 스텔라1 같은 스피커의 높이로 보인다. 일반적인 아파트 거주자가 배치와 청취환경을 구성하기 편리한, 그래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높이이기도 하다.

지난 번 ‘아비오르’는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더니, ‘아트리아’는 마치 핵잠수함처럼 대양을 항해할 것만 같다. 더 작은 사이즈가 왠지 좀더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한다고나 할까? 전천후 기질이 좀더 짙어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거대한 풍체를 필요한 사이즈 속에 숨기고 있는 듯한 날렵함 같은 게 느껴진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스테이징과 이미징을 만들지만, 핵이 깊은 위력적인 슬램이 마치 고래등 같은 윤곽을 보여주고 사라지곤 한다. 본 제품의 시청에는 VTL 7.5, Ayre의 신형 MX-R Twenty, 메트로놈의 ‘칼립소’, 스피커 케이블은 킴버의 6068, 인터커넥터는 같은 킴버를 참고용으로 사용하며 NordOst의 ‘발할라’ 2(V2)로 주로 시청을 진행했다.

이기 팝의 ‘In the Death Car’에서의 고역이 잘 트여있다. 원래 다이나믹스를 듣기 위해 시청하는 곡이지만 베이스 슬램의 쿵 하고 난 직후의 반대편 대역에서 반복적으로 평소 못 느끼던 맑은 음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눈이 시원해지는 듯한 이 높은 중역대 이상에서의 느낌은 배경은 까맣지만 푸른 빛 시린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같은 청명함이다. 그 바람에 곡을 끝까지 시청하게 되었는데, 특히 후반부 이기 팝의 스캣은 가늘게 굴곡을 이어가면서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인 선이 시청실 공간 속에 떠올랐다. 관악기의 뻗침에서도 광채가 서로 엇갈리며 순간 번득이는 느낌이 매우 선명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물론 전 곡의 기저를 흐르고 있는 강렬한 베이스 비트는 본연의 오디오적 쾌감과 안정적인 사운드 기반을 구성해서 대역간의 위화감 없이 일체감 있는 ‘한 덩어리의 소리’를 만들어주었다. 

폴아웃 보이의 ‘Thnks Fr th MMRs’는 경쾌하고 단정하게 위력적인 다이나믹스를 잘 표현하고 있다. 과도하다거나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이 매우 정확한 다이나믹스 퍼포먼스이다. 베이스의 미묘한 옥타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한 개의 비트 속에서도 세분한 분절음들이 느껴졌다는 점이 주로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 곡에서 표현되는 오디오적인 쾌감이 분명하고 명쾌하게 전해져서 만족스럽다. 스테이징 또한 다소 다르게 느껴지는데, 특히 무대의 뒷길이가 인상적으로 깊어져 있으며 그 위에 보컬이 컴팩트한 사이즈로 떠오르는 모습은 잠시 곡의 흐름을 놓칠 만큼 귀를 잡아 끌어 집중을 시킨다. 세부표현에 치우쳐서 필요이상으로 진지해지거나 하지 않은 채로 녹음 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시킨 현장의 열기가 가득하다. 

  Bacalov - Misa Tango(정명훈)

정명훈 지휘, 바칼로프의 <미사탱고> 중 ‘Kyrie’는 아트리아의 장점이 좀더 심화되어 나타나는 곡이다. 일단 이 곡에서부터 스피커는 좀더 위치에 대한 의식을 덜 하게 되는 구체적인 스테이징이 떠오른다. 무대의 크기는 광활하다거나 좁다거나 하지도 않은 스피커 사이에 형성되는 사이즈이다. 소리를 채우는 부분들이 촘촘하고 디테일하게 홀로그래픽 이미지를 떠올려서 마치 옆으로 자리를 옮겨서 들으면 옆 모습이 보일 것만 같은 리얼한 스테이징이다. 코러스의 에너지가 증가하면서 농도가 같이 늘어나서 입체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다. 도입부의 팀파니는 미세하게 중량감이 약간 덜해서 지금보다 좀더 깊고 진하게 나타났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울림이 얇고 위력적인 타격의 결과물을 들려준다고 할 수 있겠다. 

전 대역이 고른 밸런스를 유지하며 독창자의 위치선정이 코러스와 합주 속에서도 도려낸 듯 잘 떠오르는 건 주로 아트리아의 고유설계가 빛을 발하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코러스는 투티에서나 급격한 에너지 변화의 순간에서나 유연하고 여유로운 그라데이션을 그려낸다. 마치 가창오리떼의 움직임처럼 급격하고 일체화된 에너지의 변화를 표현한다. 이상적인 재생의 순간이다. 뛰어난 다이나믹스와 촘촘한 입자의 표현이 이 곡 곳곳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드라마틱한 느낌을 쉽게 고조시킨다. 자연스럽고 의식할 수 없는 스테이징의 품질, 선명하기도 하거니와 우아한 고역표현 등은 거의 최고 수준이다. 각 대역별로 전면과 후면에까지 이어져 있는 레이어링은 특히 일품이다.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바하의 《B단조 마사》 또한 아트리아의 특성을 잘 부각시켜 주는 대표적인 녹음이었다. 6곡 ‘Laudamus Te’에서의 얇은 양철판처럼 찰랑거리는 현악기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공간 속에서 짧고도 감촉이 좋은 하모닉스를 들려준다. 보컬은 섬세하지만 윤기를 품고 있어서 따뜻한 액체를 담고 있다고 느껴지는 인체의 울림이 투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컴팩트하고 선명한 머리 크기, 입을 떠나 빠져나오는 음성의 어쿠스틱 등이 생생해서 긴장을 하며 몰입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옥타브의 이동에도 여유있고 안정적으로 반응한다.

 8곡 ‘Domine Deus’에서의 합주 플룻이 이토록 응집력과 동시에 짧은 순간 공간 속에 뿌려지는 느낌을 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보풀거리는 음의 감촉과 이미지가 전후로 밀려왔다가 줄어드는 순간의 드라미틱한 묘사가 일품이다.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12곡 ‘Cum Sanctu Spiritu’는 언제나처럼 앞서의 곡들의 종합편이다. 이 곡에 이르러 뒷길이가 상당히 깊게 들어가는 스테이징을 보여준다. 짙푸른 색이 느껴지는 배경을 뒤로 한 찬란한 코러스의 투티는 특히 압권이다.  독창자들의 작은 머리에서 생겨나는 미묘한 울림의 변화, 그리고 아지랑이 처럼 공간 속에 약화되어 가는 아름다운 하모닉스를 들려준다. 해상력과 다이나믹스, 입자의 느낌들이 개별적인 세세한 하모닉스와 그 집합이 되어 복합체의 느낌을 주는 프레즌테이션을 펼쳐준다.  

 

락포트의 약 다섯 기종의 최신 라인업 중에서 일반적인 국내 아파트 공간에서의 사용을 감안할 때, 현실적인 선택은 주로 ‘아비오르’와 ‘아트리아’ 두 기종으로 압축될 것으로 보인다. 우퍼가 측면방사형이 아닌 정면을 향하고 있기도 하고, 대역과 제품 자체의 사이즈가 그러하다. 이 두 제품은 유닛의 구성과 약간의 제품 사이즈의 차이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란성 쌍동이 같은 주니어-시니어 관계에 있다. 그러니까 제품간 간격을 눈금 하나를 채 두지 않고 0.5 정도로 책정한 인상을 받는다. 물론 사이즈가 좀더 큰 상급기인 ‘아비오르’가 제품 자체의 존재감과 양감에서 우위에 있음은 당연하지만, 제조사에서도 아트리아는 ‘작은 아비오르’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작은 공간에서 ‘아비오르’와 동일한 퍼포먼스를 내도록 디자인된 제품이라서 사용자의 공간 환경에 따라 선택될 내용이다.

‘아트리아’는 현재까지 락포트가 출시한 제품군 중에서 실질적인 엔트리에 해당하는 제품이지만 (카탈로그 상에는 2웨이의 ‘Alya’가 존재한다), 공간에의 융통성을 발휘한 사이즈와 어쿠스틱 특성에 따른 편성일 뿐 락포트의 특성을 응집시킨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동사가 표방하듯 락포트의 제품들은 ‘울트라 리니어’ 및 ‘하이파워 모터 시스템’ 두 개의 축을 기반으로 저왜곡과 뛰어난 해상도, 방대한 다이나믹 레인지로 여타의 브랜드들과 차별화시키고 있으며, 그런 특성이 고스란히 내려와 있는 제품이다. ‘아비오르’에 비해 드라이브의 어려움은 그리 없어 보이며 제작 특성, 그리고 물량 투입으로 인한 제품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게 유일한 문제로 보인다. 현지 가격으로 2만 5천불을 넘어서는 가격을 놓고 제품을 시청하게 되면 시청자는 갈등이 많을 듯 하다. 시청을 하는 동안 이미 자신의 공간 어딘가에 배치시켜 놓는 상상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성능과 별도의 의미로 대단히 매력적인 스피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