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독보적인 속주테크니션으로 퓨전시대를 풍미했던 기타리스트 ‘알 디 메올라’는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을 해서 ‘기타를 잘 치기 위한 비결이 뭐냐?’ 는 질문에 ‘여행을 많이 다녀라’는 쌩뚱맞은 답을 했다. 10대 후반 이래 그의 경이로운 음악세계에 한없이 빠져들었던 필자는 순간 그의 무심한 대답을 탓했다. ‘이게 뭔 한량주의같은 소리래… 자신의 작품세계를 놓고 대중과 너무 거창한 거리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오만함마저 느껴졌던 그의 얘기는, 하지만, 15년도 더 지난 지금이 되어서는 시간이 갈 수록 공감을 하고 있다. 

요컨대 여행이 특정 소재와 영감을 제공해서라기 보다는, 그보다 넓은 반경에 걸쳐 환경을 변경하고 체험시켜서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감성에 대사(代謝) 메커니즘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과의 대비가 큰 환경에, 가능한 오랜 동안 몰입될 수록 그 효과는 크다. 그건 음악 뿐만이 아니라 사업이나 글을 쓰는 일 등에 모두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신을 당황하게 할 만큼 대안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 마주쳤을 때 여행은 종종 직간접적으로 답을 제시하곤 한다. 매너리즘, 닳아빠진 표정과 인사들, 달고 살아왔던 심신의 고갈 등 너무나 오랜 동안 의식도 못한 채 반복하고 있는 일들은 벗어나서 바라보았을 때 올바른 관조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오랜 경력을 가진 특정분야의 전문가일 수록 그 현상과 의미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헤밍웨이의 제품을 처음 접하고 시청했을 때, 작가 헤밍웨이의 꽤 넓은 반경에 걸쳐 있는 여행 히스토리가 떠올랐다. 필자의 짧은 지식으로 헤밍웨이의 제품들이 그의 작품세계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풍부한 감성을 배경으로 한 넉넉함과 풍요로움의 발현이라는 차원에서는 헤밍웨이라는 브랜드명에 상당 부분 공감을 하는 바이다. 특히 그가 아프리카와 쿠바에서 보낸 짧지 않은 시간들은 그 쐐기같이 박혀오는 거친 표현의 이면에서 거대한 감성의 물결처럼 선명하게 흐르고 있어 보인다. 

이상과 같이, ‘얼티밋’은 세 가지 종류의 동선을 메인 전송선재로 해서 동선합금을 추가한 전송특성을 보인다. 시청 이전에 얼핏 짐작하기에도 이전의 제품들, 특히 ‘인디고(Indigo)’와 같은 히트상품과 비교했을 때 대역별 특성이 강화되거나 보정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분자 성분을 입힌 듯한 매쉬구조로 최종마감을 한 블랙톤 외관이 단자들과 대비되어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인다. 케이블에도 디자인개념이 추가된 이래, 헤밍웨이의 세련된 디자인은 사운드 이전에 헤밍웨이의 판매에도 많은 지원을 할 것으로 보인다. 감각적인 디자인이다. 

 헤밍웨이의 독창적 제작 기술, 사운드 특성 등은 오디오파일들에게는 익숙해질 만큼의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된다. 잠시 상기해본다면, 케이블의 피복에 일정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 자기장을 억제하고 전자의 방향성을 견고히 한다는 기발한 발상의 FMFC(주파수 변조 공동화 원리; Frequency Modulation Cavity Fundamentals)방식은 마치 음악팬들의 입맛을 꿰뚫어 본 듯한 튜닝과 결합되어 물리적으로 뛰어난 품질과 소위 ‘듣기 좋은’ 음색을 잘 결합시켰다. 

본 제품의 시청은 트라이곤의 다이아로그+모노로그의 조합, 브리스카티 DAC, 오렌더 W20의 연결을 통해 EMME의 Galileo 로 시청을 했다. 비교시청을 위해 다즐의 프리-파워 조합, 그리고 인터선은 더 비싼 가격대의 유명 브랜드 인터 선을 전후간 교체하며 시청을 했다. 

무엇보다 비교시청에 사용된 인터 선은 유사한 가격대이기도 하고 헤밍웨이와 사뭇 다른 스타일의 레퍼런스로 좋은 비교가 되었는데, 헤밍웨이의 일반적인 성향은 음의 윤곽에 미세한 탄력이 생겨나서 마치 살집이 생겨난 듯한 여운이 느껴진다. 음상에도 약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반대로 말하자면, 타사의 인터 선은 컴팩트한 음상과 정밀한 움직임에 민감한 쪽이며 뛰어난 홀로그래픽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며 일급의 스테이징을 보여준다. 대신 무게중심이 다소 올라간 듯한, 그래서 마치 스테이징의 위치도 어딘가 다소 위쪽으로 이동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헤밍웨이에 비해 미세하면서도 귀를 간질이는 약간 날이 선 촉감이다. 타사의 케이블이 날 것의 느낌이라면 헤밍웨이는 거북하지 않을 만큼 숙성되고 매끈한 표면을 지쳐지나가는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도 눈에 뜨이는 건 헤밍웨이 크리에이션 얼티밋이 다이나믹스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박두할 때와 천연의 빈 공간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준다. 헤밍웨이쪽이 확실히 풍요롭게 들린다. 

안나 네트렙코 - O Mio Barbino Caro
PUCCINI - O MIO BABBINO CARO (ANNA NETREBKO)

안나 네트레브코가 노래하는 지아니스키키의 ‘O Mio Barbino Caro’는 약음과 강한 에너지가 큰 폭으로 대비되며 빛이 나는 가는 선처럼 매끄럽게 슬라이딩을 하는 느낌이다. 정교하게 집약되고 응축된 컴팩트한 스테이징이 마치 세필로 새겨넣은 움직이는 미니어춰의 인상을 주는데, 이 컴팩트한 무대를 감도는 공기의 움직임이 그녀의 강한 미성을 타고 열렸다 닫혔다 하는 순간을 그려내어 시청자를 집중한다. 정밀한 스테이징의 표본과도 같은 지점을 잘 포착한 순간이다. 짧은 여운의 가늘면서도 유연한 음색은 참으로 듣기 좋았다. 서포트 현악합주의 하모닉스와도 잘 어울린다.

레트레브코의 노래를 연속으로 들어본다. 푸치니의 라보엠 1막에 나오는 ‘Quando Me’n Vo’ 또한 그녀의 컴팩트한 음상이 실제의 모습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크리에이션이 극명하게 바꾸어 놓은 음상은 피부의 촉감이 더 늘어있는 느낌이랄까, 작은 물체 표면에서의 탄력 같은 떨림이다. 소위 액체가 들어있는 대상이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목이 언제 열리고 닫히는 지, 옥타브가 언제부터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 지 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급격히 치고 올라갈 때의 안정감도 일품이다. 메마르거나 불안한 순간이 발견되지 않는다. 무대와의 거리나 사이즈가 앞서 들은 ‘지아니스키키’와 다르기도 하지만, 라이브 녹음 특유의 트인 공간과 스테이징이 자연스러운 울림을 연출한다. 그녀를 우연히 본 관객도 노래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다.

프로프리우스의 걸작 ‘칸타타 도미노’는 간만에 실제 이 녹음 특유의 실제 홀의 사이즈가 느껴지는 연주였다. 공간의 끝이 눈에 그려지는 멋진 그라데이션을 잘 보여주면서도 선입관에 비해 잔향이 매우 간결하게 마무리되어 깔끔한 무대를 연출한다. 대신 다이나믹스의 분명해서 살아있는 현장의 생동감이 잘 느껴진다. 에너지 뿐만 아니라 파이프 오르간보다 큰 코러스의 사이즈가 입체적으로 잘 느껴진다. 

한편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에서의 육중한 에너지를 스피커에 까지 잘 전달한다. 마치 윗층에서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린 것이 아닐까 싶은 묵직한 베이스를 사실적이고 안정감 있게 들려준다. 위력적이지만 나를 해칠 것 같지 않은 온화한 베이스의 느낌이다. 뛰어난 밀도감과 단단한 슬램이 압권이다.

 

빌 에반스 - Waltz For Debby
The Bill Evans Trio - Waltz for Debby (24bit/96kHz studio master)

역시 방문 시청이었지만, 몇 가지 조합을 비교해서 진행했던 이번 시청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트라이곤’의 소리가 나오는 지점까지의 처음 얼마간은 소리가 계속 바뀌고 있었다. 약 20분이 지나자 마치 웜홀을 통과한 우주선처럼 점차 경질의 소리가 가라앉고 유체가 순환을 하는 듯한 느낌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존의 헤밍웨이 케이블과 비교시청을 시도해본다면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 될 거라 보이는데, 무엇보다 같은 곡을 통해 ‘크리에이션’을 시청하면서 느낀 기존 헤밍웨이 제품과의 차이는 정교할 때와 넓어져야 할 때를 겸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기존의 헤밍웨이는 질감이 뛰어난 음색이라는 생각이 50% 나머지의 90%는 자연스러운 스테이징이었다. 인위적으로 튜닝되어 있거나 제어되지 않고 원래의 소스의 소리를 들려주는 제품이었다. ‘크리에이션’에서는 대비가 좀더 강렬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보인다. 질감에 강렬함을 더 얹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기조로서의 자연스러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듣는 재미가 배가되어 있어서 원래 들었던 음원들을 가능한 모두 찾아서 듣고 있었다. 

본 크리에이션 얼티밋 밸런스의 가격은 700만원대이다. 드물긴 하지만, 예전에 이 가격대의 케이블들은 개성이 강하다거나 뭔가 드라마틱한 쇼를 펼쳐주어야 한다는 게 제작자와 구매자 모두의 희망사항이었다. 그 다음에는 인위적으로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케이블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갈 시점에 와있는 것 같다. 소스를 그대로 드러내지만 굴곡이 분명하고 보정하지 않는 한도내에서 극한의 강렬함을 선사하는 것, 그래서 감동이 일게 하는 것. 이 가격대의 케이블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