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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앰프를 네 가지 사분면으로 분류해서 대표적인 앰프 브랜드들을 배치시켜 본 적이 있다. 종종 필자에게 제품구매 관련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쌓이다 보니 이런 일괄된 표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스스로도 점차 늘어가는 제품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껴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로축은 오디오적인 음 vs 현장음 으로 양쪽 지점을 지정하고 보니, 세로축은 뭐가 되어야 할까 생각이 필요했다. 가로축과 조합해서 전체 사운드맵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요인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찾은 정답은 ‘스피드’였다. 그리고 이 스피드의 수직축 끝 지점에는 코드, 네임, 스펙트랄, 골드문트, FM 어쿠스틱스 등의 브랜드들이 배치되었다. 

물론, 객관적인 근거, 혹은 계측기로 측정한 결과물도 아니고 그렇게 계수화되는 의미의 스피드가 아니지만, 동일한 스피커를 기준으로 음악신호를 흘려서 느껴지는 청감상의 스피드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작게는 출력이고, 포괄적으로는 댐핑팩터와 크게 관여한다. 여하튼 그렇게 만들어진 표에는 1사분면의 끝으로 갈 수록 스피디하고 현장음에 가까운 재생을 하는 앰프들이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 부근 어딘가에 ‘트라이곤’을 추가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점차 그 경계도 모호해져 가고 있고 해서 제조국별 전형성이라는 것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지만, 사운드 스타일만을 놓고 보자면 필자가 알고 있는 독일 앰프들과는 노선을 꽤나 달리하는 성향을 보인다. 그래서 신선하기도 하거니와 전능한 퍼포먼스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 오디오파일들의 눈길을 끄는 조건을 잘 갖추었다.

’트라이곤(Trigon)’이라는 이름이 오디오파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역시 독일의 스피커 제조사인 ‘오디오피직(Audiophysic)’의 매칭 파트너, 혹은 레퍼런스 앰프로 활약하면서부터였다. 오디오피직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온 최근 10년간을 감안할 때, 바꾸어 말하자면, 트라이곤은 오디오피직 사운드를 들려주기 위한 지속적인 드라이버가 되어왔다. 오디오피직의 상위기종들을 직접 사용해본 경우라면 이 스피커들에서 전 대역에 걸쳐 고른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트라이곤이 제작을 시작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간다고 한다. 필자가 아는 독일 앰프 브랜드들끼리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트라이곤 또한 혹시라도 신비주의 마케팅을 지향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윤곽이 잘 드러나지 않는 브랜드였다. 필자가 이 회사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대략 5년도 넘은 얘기인데, 그 이후에 이 앰프를 시청해 볼 방법은 없었다. 전시회에도 2011년 CES에 모습을 나타냈을 뿐, 지속적으로 참가한 이력이 발견되지 않는다. 자국내 전시회 이외에는 캐나다와 여타의 미국내 전시회 등에 산발적으로 등장했다는 게 필자가 아는 트라이곤의 스토리이다. 다만, 전시회나 시연장에서 트라이곤을 시청한 오디오파일이나 관계자들로부터의 전언들만이 에피소드가 되어 쌓여왔을 뿐이었다. 참고로 트라이곤의 메인영역은 앰프분야이지만, 리눅스기반 뮤직서버 기능을 탑재한 CD플레이어와 기타 전원장치들에 이르기까지 전원을 꽂아 사용하는 총 15종 정도의 하이엔드 오디오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트라이곤은 필자가 알고 있는 독일식 디자인의 전형을 따르고 있으면서도(독일 중부 ‘헤센’ 주 소재) 컨템퍼러리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어 보인다. 반듯반듯한 레이아웃과 모노톤의 마감, 직선 속에 최소한으로 조합시킨 라운드 그립, 공차가 거의 없이 꼭 들어맞는 만듦새 등이 전후좌우, 상하 어느 방향에서도 균일하게 느껴지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특히 프리앰프 등에 버튼과 노브를 꽤나 적극적으로 채용하려한 흔적이 느껴진다. 독일내에서 사용할 제품으로 기획되었다면 이보다 더 튀는 디자인은 모험이 될 것이다.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두 기종 모두 동사의 최상위 기종들이다. 미국의 하이엔드가 종종 그렇듯이, 트라이곤의 제품개발 방식도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을 따르고 있어 보인다. 다시 말해서 프리앰프 다이아로그와 파워앰프 모노로그, 트라이곤 사운드를 대별하는 이 제품들로부터 트라이곤이 시작되었다. 

파워앰프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본 제품 고유의 밸런스 출력단은 데이지 체인(Daisy Chain)을 통해 바이앰핑 및 멀티앰핑 전송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또 다른 한 가지 특이한 부분 중의 하나는 두 개의 스피커 터미널 사이에 있는 ‘SPEAKON’ 출력인데, 얼핏 PA용 캐논링크처럼 생긴 본 출력단은 쇼트방지용 전용케이블을 사용하도록 제작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사용할 일이 많지 않겠지만 사용자에 따라서는 단순히 쇼트방지용의 목적 이외에도 향후 이 특이한 연결에 호기심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스피커의 단자가 혹시라도 쇼트의 위험이 있을 경우라면 시도해볼만하다.   

파워앰프 모노로그의 포괄적 역할에 다소 활동반경이 다소 줄어든 듯한 느낌을 갖을 지 모르지만, 프리앰프인 다이아로그의 뒷패널을 보면 잠시 시선을 멈추게 될 것이다. 파워앰프 모노로그와 마찬가지로 입력단에서부터 출력단에 이르는 경로를 풀 밸런스로 구성해서 제작된 다이아로그는 다소 유난스러울 정도로 각 입력단을 모듈구성하고 있는데, 각 모듈은 슬롯형태를 넘어서서 모두 격벽을 가진 독립 체임버로 제작되어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모듈형 프리앰프와 크게 차별화된다. MM/MC 로딩 선택이 가능한 포노모듈을 포함, S/PDIF, 광학, 싱글엔디드, 밸런스, USB 등 가능한 모든 모드를 지원하며 입출력 구분없이 최대 8개까지 확장가능한 본 세퍼릿 모듈은 경량의 견고한 알루미늄 케이스에 수납되어 있다. 뒷패널 좌측에 붙박이로 되어 있는 전원부로부터의 DC입력단과 USB입력 이외에 기본사양이 어디까지 제공되는 지에 대해서는 사전에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CH프리시전이 자사제품에 사용했던 표현과 마찬가지로, 트라이곤은 이런 구조에 대해 ‘미래를 대비한 제품(Future Proof)’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담아 설명하고 있다. 독립 전원부 또한 2mm 두께의 두터운 알루미늄 섀시에 수납시켜 노이즈와 라인 인터페이스를 제거해서 정숙하고 안정적인 전원공급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제품 타이틀 그대로 고정밀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전용 리모콘 ‘DIRECTOR’가 옵션으로 제공되는데 감도도 뛰어나고 앰프처럼 반응이 빠르다. 제품의 마감도 두 가지 색상(실버/블랙)의 기본 알루미늄 아노다이징 섀시 이외에 크롬도금 프론트패널과 목재 사이드패널, 그리고 실버 및 차콜 마감의 커버로 된 프리미엄 패키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전 기능은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의해 정밀조정되는데, 역시 붉은 색 LED로 표시되는 전면패널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모니터된다.  우측 끝에는 파워스위치와 그 모니터 LED가 위치하고 좌측 끝에 있는 마름모 틀 안에는 상하좌우 메뉴 셀렉터들과 모노-스테레오 전환 버튼을 배치시켰다. 곡면처리한 볼륨의 느낌과 화이트 실버 톤의 섀시, 그리고 레드톤의 모니터창 등을 보면 90년대 CP시리즈 클라세의 프리앰프들을 떠올리는 깔끔하고 격조높은 디자인을 하고 있다. 

본 제품의 시청은 하이파이클럽의 메인 시청실에서 오렌더 S10, 브리스카티 M1, 엠마(Emme)의 갈릴레오 스피커를 통해 진행했다. 참고용 앰프로는 다즐의 조합(NHB18NS & NHB108)을, 케이블은 노도스트의 발할라와 헤밍웨이의 신제품 크리에이션 얼티밋 XLR버전을 비교하면서 시청했다.

안나 레트레브코가 노래하는 푸치니의 <라보엠> 1막에 나오는 ‘Quando Me’n Vo’에서의 포커싱은 매우 정밀해서 정교한 미니어춰가 운동하는 듯한 스테이징을 만들어 낸다. 특히 강직하면서도 미세한 탄력이 느껴지는 떨림은 절제된 생동감을 들려준다. 에너지의 변화와 목과 입의 동작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뛰어난 묘사력이다. 급격한 옥타브 이동에서도 여유있고 안정감을 준다. 넓은 무대의 공간이 감지되도록 목소리의 울림이 미세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특히 일품이었다.

‘칸타테 도미노’ 도입부 파이프 오르간의 잔향이 길지 않아서 오르간 자체의 사이즈가 컴팩트하게 느껴지지만, 천정이 높고 넓은 성당 전체의 크기가 느껴질 만큼 공간의 끝까지 깔끔한 윤곽을 그려낸다. 약음 코러스가 정밀하게 시작되어 총주에 이르면 파이프오르간의 울림보다 더 큰 사이즈로 무대를 채운다. 혼성코러스의 각 파트가 선명하게 구분이 되어 들려서 마치 푸른 빛과 흰 빛이 빠른 속도로 교체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순간의 쾌감이 대단하다. 이 녹음 특유의 실제 홀의 사이즈가 잘 느껴지는 연주였다. 

마이클 스턴이 캔자스 심포니를 지휘한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에서의 육중한 에너지를 스피커에 까지 잘 전달한다. 마치 윗층에서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린 순간의 묵직한 베이스를 사실적이고 안정감 있게 들려준다. 밀도감이 높은 단단한 슬램의 순간을 강한 집중력으로 대형기에서 선명하게 뽑아낸다. 강한 임팩트의 위력적인 베이스이지만 한편으로 거칠지 않고 온화한 촉감으로 느껴진다는 사실 또한 본 제품의 매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유의 탄력 때문이다.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 24/96KHz 리마스터를 들어보면 역동적이고 유연한 베이스가 눈에 뜨이지만 그 윤기가 필요한 만큼을 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절묘한 리마스터링의 품질을 잘 들려준다. 적극적인 사이즈로 앞으로 나서는 무대와 무대 주변을 안개처럼 감도는 화이트 노이즈, 귀를 간지럽히면서 선명하게 무대의 윤곽을 보여주는 식탁에서의 미세한 접시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소리 등이 선명하게 감지되는 뛰어난 스테이징을 연출한다.

 

시청을 마치고 보니 이 제품의 작명 또한 시쳇말로 센스돋는 감각이 발휘되어 있다. 트라이곤 플래그쉽 라인의 세 기종은 다른 제품들과 구분해서 모두 -log로 끝나는 이름을 하고 있다. 그래서 Chronolog(CDP)가 시간순으로 배열을 해오면, Dialog(프리앰프)가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Monolog(파워앰프)가 상하좌우 각각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본 제품은 원래 독일어 발음대로 ‘트리곤’, ‘디알록’, ‘모노록’ 등으로 불리우지만, 국내 딜러의 결정에 따라 모두 영문으로 발음하고 표기해서 유통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간 궁금했던 ‘트라이곤’의 소리를 조합을 갖춰 확인하게 되어 좋은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 말일 지 모르지만, 트라이곤의 홈페이지에 있는 ‘당신의 눈이 경청할 것’이라는 말은 사실 트라이곤 사운드의 핵심을 콕 집어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스피커가 소스신호를 틀림없이 그리고 빠짐없이 표현한다고 가정했을 때, 일반적인 녹음일 경우 눈 앞에 연주현장이 그대로 떠오르는 게 정상이다. 트라이곤 조합이 스피커를 통해 구현하는 사운드 품질은 소스신호에 충실하도록 한다는 데 그 본질이 있어 보인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 때 모노블럭 한 쌍으로 제작된 파워앰프를 좌우 스피커 가까이에 두고 밸런스 케이블을 여유있는 길이로 뽑아서 시청 위치 가까이 프리앰프를 두고 음악감상을 하는 인테리어를 이상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모노블럭 파워앰프가 갖는 장점이라면 바디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 그래서 그 상태로 스피커를 좀더 기민하게 드라이브할 수 있다는 점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모노블럭의 완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 스피커를 들이대 본 것은 아니지만, 트라이곤 조합은 스피커라는 대상에 대해 많은 부분을 파악하고 있어 보인다. 멀티유닛 구성의 대형기를 자유자재라는 말이 어울리게 운전하고 있었다. 고출력의 앰프를 들여놓고도 대형유닛과 바디로 디자인된 스피커를 구사하지 못해 고충이 있거나, 혹은 그런 상황이 두려워 원하는 스피커를 선택하지 못했던 오디오파일이라면 필히 시청을 해볼 제품으로 보인다. 사실 그런 용도를 위해 제작된 앰프이다. 이 조합의 사용자가 된다면 사용자는 또 한 번 지평을 넓힐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스피커 선택의 폭이 한층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