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디지털 알고리즘의 역사적 순환이 이제 턴어라운드를 도는 시점이라고 상정할 때 우리는 현재까지 디지털의 발전해온 방향과 결과를 회고하며 반성할 시점도 동시에 도래했다고 판단하고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발매된 김광석 4집 LP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면 그러한 반성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그것은 디지털을 아날로그와 확연히 구분 짓는 디지털의 무한 복제와 이퀄라이징에 관한 부분과 연관이 깊다. 디지털 녹음과 발매가 보편화되면서 얻는 것은 깨끗하고 선명하면서 높은 해상도의 음질 감상이었다. 그러나 점점 더 가속화된 디지털 음원은 급기야 녹음 체계부터 믹싱, 마스터링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녹음과 감상이라는 입구와 출구의 괴리를 점점 더 넓혀놓았다. 김광석 4집의 경우에도 애초에 녹음된 마스터가 LP 로 출시되었을 때의 것과 현재 재발매 된 것과의 차이는 심각한 간극으로 벌어졌다. 

이러한 괴리는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는 표피적인 예에 불과하다. 우리는 상당히 많은 레코딩에 있어서 이러한 오류를 겪고 있고 그것이 진실인 것 마냥 소비하고 즐기고 있다. 마치 사기와 비슷하지만 그것이 보편적으로 수용되면서 애써 모른척하는지도 모른다. 

MSB 가 지금 현 시점에서 ANALOG 라는 다소 베이직한 이름의 DAC을 출시한 것은 디지털의 역사에서 어떤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각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판단된다. 그리고 애초에 그들은 그런 생각에서 출발한 확고한 철학 하에 물밑에서 꾸준히 테크놀로지를 갈고 닦았다. 그러나 그다지 대중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높은 비트 레이트와 샘플링 레이트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대중들을 향해 업계에서 선택한 것은 초창기 멀티비트 R-2R이 아니라 델타 시그마 방식 DAC 였다. 최근 범용적인 고급 DAC 칩으로 엄청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ESS SABRE32 칩셋, 그리고 공룡이 되어버린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여러 칩셋들, 더 나아가 델타 시그마 초창기부터 시작해 24bit/192kHz를 넘나드는 버브라운까지 합하면 대세는 델타 시그마이다. 그도 그럴 것이 1비트 단위로 저항과 스위칭을 정밀하게 설계하지 않는 이상 정교한 출력을 얻기 힘든 멀티비트 R-2R, 즉 래더 DAC 는 채산성에서 최약체였기 때문에 통째로 세월의 파도 속에 송두리 째 짧은 챔피언 자리를 물려주어야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R-2R DAC 칩이 트렌드와 비즈니스적 약점에 의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자작 매니아 그리고 일부 업체에서는 R-2R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있었다. 신형 칩셋이 최고라고 외치던 대중은 영원히 끝날 것만 같았던 R-2R 칩셋의 장점을 뒤늦게 통감하게 회고하기 시작한다. 현재도 굉장히 많은 메이커에서 카피가 이루어지고 있는 구형 필립스 칩셋이 고가에 거래되기도 하는 기현상도 일어난다. 왜냐하면 R-2R 방식 칩셋은 굉장히 세밀하고 정교한 스펙과 제조 공정이 요구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구현했을 경우 적어도 클럭 부분에서는 오차가 거의 없으며 이른바 음악성이 출중해 델타 시그마로는 대체가 불가능한 성격의 DAC 칩셋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 오디오쇼에서 미국의 라이트 하모닉스(Light Harmonics)는 Sire 라는 이름의 DAC를 출시했고 1억이 넘는 가격표를 붙이고 나타났다. 이 DAC 의 칩셋이 바로 R-2R 래더 타입이었다. 그 전에 이들이 만든 Da Vinci DAC  또한 R-2R 칩셋을 사용했다. 재미있는 것은 PCM 은 R-2R 칩셋, DSD 는 일반적인 델타 시그마 타입 칩셋을 사용해 종 두 개의 디지털 프로세싱 경로를 내부에 장착했다는 점이다. 수만불, 수십만불대 DAC 가 이러한 R-2R 래더 타입을 힘들게 고수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구적으로 스펙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최종 음질의 퀄리티 때문이다. MSB 는 이러한 R-2R 래더 타입 DAC 르네상스의 선구자라는 것은 의미가 크다.

MSB는 바로 이러한 R-2R 래더 타입 DAC 의 우수성에 대한 굳은 믿음과 연구결과를 통해 이미 여러 DAC 들을 출시한 메이커다. 우리에겐 과거 Link DAC부터 시작해서 플래티늄 DAC등 한 세대 전의 모델들이 생각나겠지만, 우리가 잊고 지낸 사이 엄청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는 온갖 MSB 자체 기술로 중무장한 SELECT부터 시작해서 Signature DAC를 잇은 Diamond DAC 등은 물론 음향과 영상을 모두 아우르는 여러 트랜스포트까지 다양하게 포진해있다. 그리고 이번엔 상위 레퍼런스급 DAC 들에 적용된 테크놀로지를 이어받은 독보적인 DAC 이 탄생했다. 이름은 이름 그대로 The ANALOG. 이름부터 MSB 의 뭔가 심상치 않은 의도가 느껴진다.

우선 처음 DAC를 마주한 모습은 넓고 얇은 디자인의 비행접시를 떠올린다. 항공우주 분야에서 쓰이는 가공기술 수준으로 CNC 머신을 사용해 제작되었으며 실제로 표면 마감은 상당히 견고하고 미려하다. 표면에는 어떤 볼트나 나사도 보이지 않는 통 알루미늄이며 우측 상단에 납작하고 둥근 노브만이 보인다. 이것은 입력 선택과 볼륨을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노브다. 하단 네 귀퉁이엔 뾰족한 스파이크가 설치되어 있고 전용 슈즈가 제공되어 랙 위에 올려놓으면 마치 최근 드비알레나 B&O 등 럭셔리 컨슈머의 그것을 떠올린다. 과거 MSB 의 그 투박한 디자인 감각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후면을 살펴보면 전원부와의 연결을 위한 전용 잭이 설치되어 있고 RCA 와 XLR 출력단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USB 입력단이 설계되어 있는데 그 외에 코엑셜, AES/EBU 등이 보이지 않는다. MSB 는 입력단 설계를 USB 입력 외에 모두 옵션으로 설계한 결과다. 마치 최근 CH 프레시전의 C1 또는 다즐의 프리앰프들처럼 USB 입력 한 계통 외엔 모두 모듈을 추가로 구입해 장착해야한다. MSB 는 급변하는 디지털 전송 규격 등에 대해 그 때마다 탄력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PC 나 NAS 등 주로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사용자가 원하는 입력단만 선택하면 된다. USB 입력단 사용이 주된 용도일 경우엔 별도의 입력단을 제거하고 그만큼 가격을 낮춘 Analog DAC 의 컨셉은 소비자 입장에선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MSB 테크놀로지는 기본적으로 델타 시그마 타입의 DAC칩이 아닌 R-2R 래더 방식의 DAC를 자체 제작해 모듈식으로 자사의 장비에 탑재시킨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입력은 24bit/384kHz PCM 과 더블 DSD(DSD 128)까지 지원하는 USB2 Basic 384 하나 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옵션 사항이다.  그래서 프리미엄 QUAD USB2 입력 모듈을 별도로 개발해 옵션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탑재할 경우 32bit/384kHz PCM. 뿐만 아니라 쿼드 DSD(DSD 256)까지 Dop와 Native 로 모두 대응하게 된다. I2S 입력 베이를 여러 개 배치해놓은 후 입력 모듈을 선택해 적용하는 방식은 굉장히 체계적으로 보인다. 그 영역은 동축 및 옵티컬 등 S/PDIF(24bit/384kHz), PRO I2S(32bit/768kHz)에서 시작해 네트워크 스트리밍을 위한 독자적인 설계로 DSD 까지 포함한 거의 모든 음원에 대응하는 MSB 네트워크 렌더러까지 포함된다. 옵션은 이 뿐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공급되는 전원부에 있어서도 MSB 는 또다른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베이직 파워 서플라이만으로도 디지털과 아날로그 서킷에 별도의 전원을 공급하는 분리형 전원부가 설계되어 있으나 옵션으로 제공하는 파워 베이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원부가 구성되어 있다. 12V 트리거로 본체와 연결되어 리모콘으로 연동되는 옵션 파워 베이스는 총 다섯 개의 트랜스포머가 아날로그단 외에 디지털 프로세서, 클럭, 입력 모듈 등에 모두 별도의 전원을 공급한다. 입력 모듈 뿐 아니라 파워 서플라이에 이르기까지 옵션의 유혹이 어마어마하다.

시청은 국내에서 손 꼽히는 하이엔드 & 홈시어터 전용 시연공간을 자랑하는 GLV 메인 시청룸에서 이루어졌다. Analog DAC 은 기본 USB2 입력단 외에 긴급 공수된 프리미엄 QUAD USB2 입력단을 장착해 테스트했다. 스피커는 작년 한 해 뜨거운 평가를 받은 락포트 테크놀로지의 Avior, 프리앰프는 비올라 Crescendo, 파워앰프는 본체와 전원부가 분리된 비올라 Bravo II 가 동원되었다. Analog DAC 과 연동할 트랜스포트는 일반 PC 나 맥이 아니라 브라이스턴의 BDP-2를 매칭해 쾌적한 시청환경이 만들어졌다. 참고로 볼륨 조절이 가능한 Analog DAC 의 게인은 0 으로 고정하고 프리앰프의 볼륨만 조절하며 테스트했음을 밝힌다.

시청은 기본 옵션 USB2 와 별도로 장착한 QUAD USB2 의 비교 위주로 이루어졌다. 우선 카산드라 윌슨의(Casandra Wilson)의 ‘Another Country(24bit/96kHz)'를 들어보면 보컬, 즉 중역대의 맑고 매끈한 느낌이 굉장히 청량감이 넘친다. 무대는 좌/우로 상당히 넓고 고역이 개방감 넘치는 소리로 하이파이의 객관적 기준으로 볼 때 디테일과 사운드 스테이징, 다이내믹스 등 빠질 것이 없는 소리다. 

그런데 QUAD USB2 입력단으로 바꾸어 들어보면 또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무대가 좌/우로 더욱 넓어지며 홀 톤이 더 상승한다. 반대로 중역대와 높은 저역대의 살집이 조금 빠진다. 당연하게도 중역이 약간 홀쭉해지면 무대가 뒤로 약간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며 저역 윤곽도 더 세밀하게 잡히는 편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기본 USB2 와 호불호가 갈릴만한 부분이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후자가 더 정확하고 그레이드가 높은 소리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바로 배경의 정숙함이다. 기본 USB2 에서의 소리도 물론 깨끗한 배경을 보여주지만 QUAD USB2 에서의 그것은 적막할 정도다. 아마도 노이즈 레벨이 더욱 더 낮아진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QUAD USB2 입력으로 고정한 뒤 [Tutti] 오케스트라 샘플러에서 ‘전람회의 그림’을 PCM 과 DSD 로 번갈아가면서 들어보았다. 엄청난 다이내믹 레인지와 정확한 음상, 수많은 악기의 스테이징이 화려하게 펼쳐지면서도 산만한 느낌이 없다. 종종 지나치게 스펙만 올리며 정보량을 감내하지 못하는 DAC 의 경우 다이내믹 레인지가 좁은 가운데 화소수가 줄어든 듯 한 빈약하고 텅 빈 입자를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Analog DAC 의 경우 상당한 수준의 S/N비와 거의 나타나지 않는 지터와 THD 수치 등이 그대로 소리로 드러난다. 높은 정보량과 디테일을 보이면서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프리의 볼륨을 한참 많이 높인 가운데에서도 핵이 뚜렷하며 넓은 공간에 수많은 악기 사운드를 입체적으로 도열시킨다. 

DSD 음원과 PCM 음원을 동일한 곡으로 비교한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그 차이가 아주 크진 않았다. 물론 DSD의 장점인 부드럽고 유연한 음의 진행, 미립자처럼 부서지는 DSD 특유의 텍스처 표현은 느껴지지만 DSD 음원에서 종종 나타나는 펀치력 저하, 스피드와 힘의 완급 조절 등 페이즈가 약간 느려지는 듯 한 단점이 별로 보이지 않아 고음질 PCM 과는 유사한 소릴 들려준다. QUAD USB2 는 기본 USB2 입력단과 비교해 노이즈 레벨의 하락에 의한 배경의 변화 외 중,저역 양감의 소폭 감소 등으로 인해 전체적인 토널밸런스가 더욱 가다듬어지며 무대의 전망이 물러나는 등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쿼드 DSD(DSD 256)을 듣기 위해 적용하기보다는 USB 입력단의 업그레드를 통한 PCM 과 DSD 의 기본 음질을 총체적으로 좀 더 상승시킨다는 의미에서 그 가치가 있다고 본다.

디지털의 역사가 계속해서 진보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음질이 뛰어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다만 진보된 기술은 이용하기 좋고 다수가 즐기기에 보편성을 가지고 자본을 등에 업고 마치 그것이 진리인양 비춰진다. 반대 진영은 마치 시대에 뒤쳐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많은 억울한 면을 가지고 있다. MSB 테크놀로지는 디지털 시대의 커다란 흐름에 역행하고 오직 음질적인 우위를 위해 오랜 시간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고 이제 Analog DAC 은 MSB 뿐만 아니라 디지털 트랜드를 턴어라운드 위에 올려놓았다. 라우드니스 워(Loundness War), 오랜 시간 여러 번의 디지털 리마스터를 거치며 훼손된 오리지널 아날로그 레코딩 등 디지털의 폐혜는 걷잡을 수 없다. MSB 테크놀로지는 Analog DAC을 통해 이를 증명해보이고 있으며 디지털의 해상도, 광대역 등 힘자랑에 지친 디지털의 재건을 외치고 있다. Analog DAC 은 진심으로 압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