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보니 기존의 수많은 하이파이, 홈 엔터테인먼트 관련 메이커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스튜디오 프로용 장비를 생산하던 메이커들까지 합세하면 헤드파이 시장은 춘추전국 시대를 맞이했다. 제프 롤랜드 출신이 설립한 그레이스 디자인, 스튜디오 장비를 생산하던 벤치마크, 마이텍 등도 예외가 아니며 하이파이 스피커에 집중하던 B&W, 포컬, KEF 등 거물들도 헤드파이 관련 제품을 포함해 멀티미디어 쪽으로 사업 지분을 늘리고 있는 중이다. 시장은 점점 포화상태가 되었고 이제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하이엔드급 헤드폰앰프와 헤드폰, 이어폰들도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리버는 물론 국내 캘릭스의 DAP 그리고 최근의 오렌더에 이르기까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트렌드의 흐름에서 전통의 일본 기업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중 데논이 새롭게 발표한 DA300USB 라는 DAC 겸 헤드폰 앰프는 티악 등의 메이커와 함께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이다.  

DA300USB 는 기본적으로 책상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사이즈로 기획된 모델이지만 거치형 메인 시스템에서 사용해도 될 만큼 묵직한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동봉된 거치대를 사용하면 세로로 놓고 사용할 때 가장 편리하다. USB DAC 겸 헤드폰 앰프인 DA300USB 는 기존의 데논 제품들과 달리 아주 심플한 디자인에 전면엔 전원버튼과 볼륨 노브 그리고 헤드폰 잭만이 보인다. 그런데 내장된 USB DAC 의 면면을 살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최근 티악의 제품들도 그랬지만 역시 일본 기업들의 물량투입과 기능성은 굉장하다. 버브라운 PCM 1795 DAC 칩을 사용한 DAC 섹션은 PCM 의 경우 32bit/192kHz 까지 대응하며 최근 화두인 DSD 음원에 대해서도 DoP 는 물론 네이티브로 2.8Mhz, 5.6Mhz 모두 대응한다. 특히 가장 많이 사용하는 USB 입력의 경우 PC 와 맥 모두에서 비동기 방식으로 작동해 지터를 낮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이 정도 가격대에서는 보기 힘든 듀얼 마스터 클럭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음질 적으로 상당히 큰 경쟁력이다. 그리고 화룡정점은 디지털 프로세서 부분인데 데논이 오랫동안 갈고 닦아온 그들의 자랑 AL32 프로세서을 장착해 넓은 다이내믹레인지와 낮은 디스토션을 실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부 서킷 보드는 무려 일곱 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이들 사이가 세심하게 격리시켜 설계되어 있다. 전원은 대게 이정도 사이즈의 제품들이 그렇듯 내장 리니어 전원이 아닌 외장 어댑터를 통해 15V/1A 의 DC를 공급받는 형태다. 대신 데논은 디지털 노이즈에 대해 오디오파일 그레이드 수준으로 완성하기 위해 여러 아이솔레이션 대책을 마련해놓았다. DA 컨버팅 스테이지에서 생길 수 있는 노이즈를 막아내고 제거하기 위해 마이크로 공심 트랜스를 장착한 칩셋에 고속 CMOS 테크놀로지를 적용한 진보적인 아이솔레이터 칩셋을 사용했다. DA300USB 에 적용된 아이솔레이터는 총 9개로 총 18채널 분량이다. 

연결을 위해 후면을 보니 좁은 사이즈에 있을 건 다 있다. 비동기 방식의 B타입 USB 입력단이 하나, 이 외에 코엑셜이 추가로 마련되어 있고 옵티컬 입력단은 두 개나 마련되어 있다. 아날로그 출력은 RCA 타입으로 2Vrms 출력 볼티지를 갖기에 일반적인 인티앰프나 프리앰프에 연결해서 사용하기에 충분한 출력 수치다. 게다가 전면 볼륨 노브를 사용해 게인을 -95dB에서 맥시멈 0dB 까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은 데스크탑 용도로서는 상당히 편리하다. 전면의 헤드폰 출력단은 6.3mm/¼" 규격으로 일반적인 헤드폰단과 동일한 표준을 따르고 있다.

테스트를 위해 전원을 켜니 선택된 입력이 환하게 OLED 디스플레이에 나타나며 음악을 재생하자 입력된 신호가 PCM 인지 DSD 인지 여부와 입력 샘플링 레이트까지도 또렷하게 표기된다. OLED 디스플레이의 시인성은 확실히 뛰어다. 또한 터치 패널 방식이기에 입력 선택은 손으로 패널을 눌러 조작할 수 있다. 

우선 DAC 로서의 성능을 살펴보기 위해 일반적인 PC 환경에서 USB 입력단을 사용하고 B&W 801 과 스텔로 AI700U를 매칭해 테스트해보았다. 재생은 푸바 2000을 사용했는데 데논 홈페이지에서 전용 USB 드라이버를 깔고 재생하는 데까지 채 5분도 안 걸릴 정도로 셋업은 굉장히 간편한 편이다. 

아이유 - 한낮의 꿈

Helene Grimaud - Mozart Piano Concerto

실제로 DA300USB을 구입해서 사용할 유저는 거치형 하이파이 시스템을 통해 DAC 로만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모델의 컨셉 자체도 책상 위에서 테스크탑 하이파이 또는 헤드폰을 사용한 헤드파이를 타켓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엔 헤드폰으로 감상을 해봤는데 젠하이저 HD600을 모니터로 사용해 테스트해 보았다.

Susan Wong - My Live Stories

수잔 웡(Susan Wong)의 ‘I've got a friend (24bit/96kHz)'를 들어보면 보컬은 머리 위 정 중앙에 정확히 위치하며 상당히 정교한 포커싱을 보여준다. 헤드폰으로 들을 때도 단독 DAC 로서만 사용해 스피커로 사용할 때와 진배없이 두터운 텍스처와 뛰어난 펀치력이 돋보인다. 음색은 차갑지 않으며 텍스쳐 표면이 부드러운 편으로 오래 들어도 디지털의 피로감은 없는 편이다. 코드 같은 메이커의 강력한 쾌감과 응축했다가 짧은 타이밍에 강력하게 토해내는 스타일이 아니다. 비교하자면 오히려 메르디안 같은 스타일에 가깝고 여기에 좀 더 남성적인 에너지를 더한 스타일의 음색과 다이내믹을 가지고 있다. 

Pierre Boulez -  The Fire Bird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가 지휘한 시카고 심포니 연주의 스트라빈스키 ‘불새’에서는 DA300USB 가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레인지의 폭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예상보다 뛰어났다. 휘몰아치는 타악, 관악의 거대한 다이내믹 레인지를 제법 잘 받아낸다. 여기서 잠깐. DA300USB 의 게인은 -96dB에서 0dB 에 걸쳐 조절되는데 스피커를 통해 청취할 경우엔 반드시 0dB 까지 올린 후 청취하는 것이 좋다. 헤드폰으로 청취할 경우에도 -10dB 정도까지 끌어올린 후 충분히 즐길만한 음량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정도까지 올리면 그때서야 제 실력을 맛볼 수 있는데 약음과 강음의 드라마틱한 컨트라스트가 살아나고 힘의 분배가 확연하게 대비되며 ‘불새’ 레코딩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공간감, 홀톤이 상당히 좋고 무대도 크고 시원하게 그려주어 마이크로 다이내믹스보다는 매크로 다이내믹스가 뛰어난 소리다. 좀 더 미세한 텍스처 표현까지 더해진다면 아마도 이 가격대 최강의 DAC 겸 헤드폰앰프가 될 것이다. 

데논 DA300USB 는 갈수록 급속도로 발전해가는 최근 디지털 트렌드의 한 단면을 보여준 아주 대표적인 모델이다. 책상 위에서 헤드파이 용도의 DAC 겸 헤드폰앰프로 또는 별도의 앰프와 스피커를 통해 데스크탑 하이파이 시스템에서 메인 DAC로서 손색이 없다. 헤드폰 출력시 아날로그 출력을 막을 수 있다면 더 좋을 뻔 했고 헤드폰 볼륨 외에 아날로그 출력의 게인 조절까지 가능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DA300USB 는 DAC 성능 하나만으로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가격대 상상할 수 없는 퍼포먼스다. 스마트폰이나 올인원 등을 통한 데스크 탑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데스크 탑, 헤드파이 시스템을 꾸릴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많은 업그레이드가 가능할 듯. 또한 일반적인 하이파이 시스템에서도 헤드폰앰프를 제외한 DAC 성능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모델이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시장의 니즈가 가져온 하드웨어 시장의 움직임이 디지털 디바이스에서 최근 몇 년간 현저하게 낮추어 놓은 한계효용의 체감 지점은 놀라울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