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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에서 첫인상은 참 중요하다. 음질만 좋으면 됐지, 외모가 무슨 상관이야, 이런 시대에 덜 떨어진 얘기도 아니고, 재색겸비 운운하는 당연한 얘기도 아니다. 오디오의 첫인상에서 사운드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피커는 물론이거니와 파워앰프는 그 모양새와 무게, 마감만 봐도 거의 신기에 가깝게 ‘감’을 잡는 오디오파일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심지어 프리앰프와 DAC, CDP, 네트워크플레이어도 마찬가지로, 소위 얼굴값을 하는 것이다.

이번에 리뷰한 미국 브랜드 비올라(Viola)의 프리앰프 크레센도(Crescendo)와 스테레오 파워앰프 콘체르토(Concerto) 역시 그렇다. 단단한 알루미늄 섀시에 상단 거의 전부를 차지한 각진 돌기(크레센도), 상단 가운데를 그랜드 캐년처럼 함몰시킨 독특한 구조의 히트 싱크(콘체르토)가 강렬한 눈맛을 선사한다. 프리앰프와 파워앰프가 똑 같은 사이즈인데다 프리앰프에는 스위치나 노브 등이 일체 없어 어느게 프리고 어느게 파워인지도 헷갈린다. 크레센도와 콘체르토 모두 프런트 패널 가운데에 역사다리꼴 모양의 표시창이 있어 마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컴퓨터 ‘할’을 닮았다. 둘 다 만져보면 매끈하고 새끈하다. 

첫인상의 핵심과 기대되는 소릿결은 이런 느낌인데, 나름 설계자의 의도도 추측해보았다.  

 

1. 알루미늄 절삭 동체의 육중함 = 외부의 진동과 자체의 공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것이다. 사운드에서 잡맛이 없을 듯하다.

2. 표면을 만졌을 때 느껴지는 부드럽고 매끈한 손맛 = 사운드 튜닝도 이처럼 했을 것이다. 전작 카덴차(프리)와 포르테(모노모노 파워)보다 더 촉감이 좋아진 만큼 소릿결도 좀더 새끈해졌을 것이다.

3. 히트싱크를 상단에 노출시킨 디자인적 파격 = 둘 중 하나다. 파워앰프의 발열대책에 자신감이 있거나, 디자인을 위해 억지를 부렸거나. 

4. 프리와 파워의 일체형 디자인에서 오는 시각적 안정감 = 전작에 비해 디자인에 크게 신경을 썼다. 

5. 프런트 패널의 온갓 잡것들을 없애버린 과격 = 각종 스위치나 노브, 버튼의 기계적 열화에서 자유로울 듯하다. 내부 배선도 많이 줄었을 것이다. 아이팟이나 아이패드로 와이파이 리모트 콘트롤을 하는 만큼 기존 IR(적외선) 리모콘보다 음질적 우위가 있을 것이다.  

이제 스펙을 볼 차례이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첫인상만 갖고 ‘감’ 놀음을 할 수는 없으니까. 우선 제작사 비올라 얘기를 해보면, 비올라는 잘 알려진대로 2001년 폴 제이슨과 고(故) 톰 콜란젤로가 세웠다. 두 사람은 1970년대 마크 레빈슨에 근무하며 시대의 명기 ML-2, ML7을 디자인한 이들로 유명하다. 그러다 1984년 마크 레빈슨이 첼로를 세웠을 때 같이 합류해 오디오 팔레트(Palette), 오디오 슈트(Suite), 퍼포먼스2 등 희대의 오디오를 또 내놓았다. 2000년 첼로가 문을 닫자 이 두 사람이 설립한 회사가 비올라이다. 톰 콜란젤로는 지난 2007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어쨌든 비올라에는 마크 레빈슨과 첼로, ML-2와 팔레트의 유전자가 간직돼 있을 게 분명하다. 

 

 

1. 스테레오 프리앰프 = 전작 카덴차에는 별도 전원부가 있었다. 

2. 아노다이징한 새틴 실버 알루미늄 절삭 섀시 = 공진을 최소화했다. 알루미늄 절삭으로 주요 기판은 천판에 매달린 상태다. 

3. 증폭단은 디스크리트 클래스A로 작동 = OPA(Operational Amplifier)를 탑재한 디스크리트 모듈을 6개 장착했다. 음질향상을 위해 IC(집적회로)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 입력단에 저노이즈 FET 채택 = FET(전계효과트랜지스터) 성격상 잔류성 노이즈가 매우 적으며 혼변조 일그러짐이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게이트(G)에 전압을 가해 전류를 제어하는 것이 FET이고, 입력단에 이 FET를 채택한 만큼 같은 전압증폭소자인 진공관다운 음색을 낼 것이다. 

5. 출력단은 고전류, 저임피던스 = 파워앰프를 쉽게 구동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출력임피던스는 밸런스, 언밸런스 모두 100옴. 

6. 입력 임피던스는 1M옴(언밸런스), 40k옴(밸런스) = 언밸런스의 경우 1M옴이나 된 것은 소스기기의 출력전류를 절약해 그만큼 과도전류 응답과 고주파수 퍼포먼스를 향상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7. 최대 출력 14.6V(밸런스), 7.3V(언밸런스) = 이렇게 높은 출력 전압은 노이즈 관리만 잘 이뤄지면 파워앰프의 구동력 및 게인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8. 주파수응답특성 20Hz~20kHz = 기준점이 통상의 +,- 3dB가 아니라 +,-0.2dB다. 그야말로 평탄한 광대역 주파수응답특성이라 할 만하다. 

9. 무게는 11.3kg = 전작 카덴차는 본체가 7.3kg, 파워서플라이가 9.1kg이었다. 

10. DAC 내장 = 24비트, 192kHz까지 지원. 칩은 버브라운의 PCM1794A.

11. 아날로그 입력단 = 3XLR, 3RCA

12. 디지털 입력단 = 1USB, 1SPDIF

13. 아날로그 출력단 = 1RCA, 1XLR, 1FIXED(tape)

 

 

1. 스테레오 클래스AB 푸쉬풀 파워앰프 = 듀얼 모노럴 구조. 전원트랜스와 초크트랜스가 채널별로 1개씩 배치. 내부를 보면 프런트 패널 앞쪽이 초크트랜스, 뒷쪽이 전원트랜스. 

2. 프리앰프 크레센도와 동일한 크기의 알루미늄 절삭 섀시 = 일종의 전용 링크 케이블인 CAN(Controlled Area Network) 커넥터로 연결해 아이팟터치 등으로 파워앰프의 내부 온도와 동작 상황을 모니터할 수 있다. 

3. 출력은 100W(8옴), 200W(4옴) = 전형적인 선형구조인 만큼 파워앰프 전원장치가 충실할 것으로 예상된다. 브릿지 모드에서는 400W(8옴), 600W(4옴). 전작 모노모노 파워앰프 포르테는 8옴에 75W, 4옴에 150W.

4. 초크트랜스 채택 = 전원트랜스 다음단에 연결돼 있는데, 통상의 커플링 캐퍼시터(콘덴서)보다 고주파 노이즈 및 교류 차단(전원리플제거) 기능이 탁월하다. 이에 따라 초크트랜스를 채택한 진공관앰프의 사례에서 보듯 보다 유연한 음질을 기대할 수 있다. 참고로 초크트랜스는 첼로에서도 즐겨 사용했다. 비올라의 전작 모노모노 파워앰프 포르테에서도 채택했다. 

5. 입력단에는 프리앰프와 마찬가지로 저노이즈의 듀얼 FET 채택 = 초단에 들어간 만큼 진공관다운 음색에 기여할 것이다.

6. 출력단은 모토롤라 써멀트랙(ThermalTrak) 트랜지스터 채택 = 앰프 내 열변화의 정확한 검출과 즉시보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가운데 방열판 양 쪽에 붙어있다. 써말트랙은 온도보상용 온도센싱 다이오드를 트랜지스터에 집어넣은 것으로, 출력석의 온도를 빠르게 체크해 바이어스 전압을 맞춤으로써 순식간에 출력석 온도를 내리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정확한 바이어스 전압 공급으로 인해 클래스AB 앰프의 왜율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한마디로 출력석 패키지 안에 온도검출 다이오드를 직접 넣음으로써 열발생과 디스토션을 최소화시킨 것. 이 써말트랙은 맥킨토시 파워앰프 MC302, 에어의 파워앰프 VX-R에서도 채택됐다. 

7. 입력단 = 2XLR

8. 스피커단자 = WBT nextgen

9. 주파수응답 10Hz~20kHz(+,- 0.2dB), 5Hz~100kHz(+,- 3dB) = 프리앰프 크레센도만큼 광대역이다. 

10. 무게 24kg = 전작 포르테의 1개당 무게는 15.9kg였다. 

 

첫인상과 스펙으로 본 비올라 크레센도와 콘체르토의 예상 사운드는 1. 알루미늄 절삭 섀시에 따른 공진저감으로 깨끗한 사운드, 높은 해상력과 S/N비, 저역의 펀치감, 2. 광대역 주파수응답특성에 따른 와이드레인지감, 3. 입력단의 FET 채택에 따른 진공관다운 따스한 음색, 4. 초크트랜스 채택에 따른 유연한 음질, 5. 낮은 출력 임피던스에 따른 고댐핑능력 등이다. 이게 진짜 맞을지 본격 청음을 시작했다. 청음 환경은 아래와 같다. 프리와 파워 연결은 밸런스 케이블로 했다. 

 

  

Jenifer Warnes - Way Down Deep

Jenifer Warnes - The Hunter
먼저 제니퍼 원스의 ‘Way Down Deep’. 처음 듣자마자 금세 알아챈 것은 음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정숙하고 정갈하다. 초크트랜스와 입력단의 FET, 그리고 공진방지에 애쓴 섀시 구조, 그리고 알테사니아 오디오랙의 오디오기기 공중부양 효과에 따른 S/N비 향상의 결과로 보여진다. 대개 S/N비가 향상되면 저역이 단정하면서 깔끔해지는 경험을 하는데 이번 크레센도+콘체르토 매칭은 더욱 유난하다. 킥드럼의 타격감에서는 콘체르토의 댐핑능력이 대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아무 눈치 안보고, 아무 준비 신호도 없이, 갑자기 ’떵’ ‘떵’ 거립니다. 무게 72kg짜리 아발론의 3웨이 4스피커, 그것도 트위터 미드레인지 우퍼 모두에 세라믹 진동판을 채택한 이 스피커를 힘 하나 안들이고 쥐락펴락한다. 또 하나, 제니퍼 원스의 보컬이 이날따라 유난히 촉촉하고 따스하다. 이들 앰프가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흘릴 것처럼 냉랭하게 생겼는데도 진공관 앰프다운 소릿결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비올라라는 브랜드가 언제든 내세울 만한 장점이 아닐까 한다.

 

샤를 뮌쉬가 지휘하고 보스톤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생상스 교향곡 제3번 오르간’을 들어보았다. 워낙 고가의 하이엔드 기기들의 조합이라 플라시보 효과가 있었겠지만, 1악장 2부가 나오는 순간 “암, 이래야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오케스트라 곡인 만큼 전망이 확 트이는 느낌이다(실제로 1959년 4월5,6일 이 RCA 음반 녹음이 이뤄진 보스톤심포니홀에서는 효과적인 스테레오 녹음을 위해 관객석 의자를 모두 치웠다고 한다!). 앰비언스라고 하나? 보스톤심포니홀 내부 가득한 공기와 먼지들의 입자감, 그리고 그 사이를 뚫고 마이크로 들어간 직접음과 간접음의 고요한 아우성이 스피커로 마구마구 들려온다. 

 

이 곡에서 또 하나 도드라진 점은 피아니시모에서의 음의 윤곽이 선명했다는 것이다. 물론 S/N비가 높아서기도 했겠지만 크레센도의 내부 볼륨회로(디스크리트 박막필름 저항 네트워크 사용) 덕분인 것 같다. IR리모콘 대신 와이파이 리모콘을 사용한 데 대한 음질적 우위도 분명히 있어 보인다. 하여간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그야말로 유연하게 부드럽게 물 흐르듯 솔솔 펼쳐진다.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You Look Good To Me’. 무엇보다 이들 비올라 두 조합이 일궈내는 각 악기의 음색과 크기 재현력이 놀랍다. 드럼은 왼쪽에서, 베이스는 오른쪽에서 등장해 사정없이 연주를 해대는데 그 임장감이 황홀할 정도다. 신기한 것은 (특히 베이스에서) 음들이 나오기 전 연주자(레이 브라운)가 이미 그 자리에 있다는 기척이 느껴졌다는 것. 비올라 프리와 파워, 아발론 콤파스가 차려놓은 정숙감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얘기다. 스펙에서는 몰랐던 것이지만, 프리앰프의 오디오신호 반응속도가 빨라서 그런지 전체적인 리듬&페이스도 상급이다. 이거 너무 좋은 말만 쓰는 것 같아서 자괴감이 슬슬 들지만, 좌악 펼쳐진 사운드 스테이지가 가운데까지  꽉 찬 느낌이 들어 두손두발 다 들었다. 

 

원래는 이 3곡만 집중해서 들으려고 했는데 소스기와 DAC, 스피커에 오디오 랙까지 가세해 워낙 차원이 다른 소리를 들려주니 그냥 ‘감상용’으로 사심(?)을 담아 몇 곡 더 들어봤다. 당시 적었던 메모를 간략히 소개한다. 

 

1. 나탄 밀스타인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2번 BWV 1004’ = 1악장. 정신이 버쩍 날 정도로 윤기가 흐른다. 바이올린은 참으로 여러 소리를 내는 악기다. 음악에 그냥 빠져든다. 2악장. 호소력, 흐느낌이 좋다. 3악장. 사운드 스테이지의 두께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두껍다.

웅산 - Fall In Love
2. 웅산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 웅산이 아무 기척도 없이 청음실에 들어왔다. 그녀가 나를 위해 직접 노래를 불러준다. 그것도 바로 곁에서.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완전히 물을 만났다. 확실히 웅산은 여성보컬의 갑이다. 

3. 케니 드류 ‘Golden Earings’ = 베이스가 역시 발군이다. 피아노의 전조 느낌도 좋다. 역시 이 곡의 주인공은 케니 드류의 피아노다. 이번 매칭의 장기 중 하나는 ‘밀도감’이다. 스피커는 진작에 사라졌다. 음들이 뭉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무대가 앞으로 스윽 다가왔다. 

O-zone Percussion Group - La Bamba
4. 오존 퍼커션 그룹 ‘Jazz Variants’ = 각종 퍼커션들이 스테이지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이게 홀로그래픽이 아니면 무엇일까. 탬버린의 질감은 마치 내 귀에 LED를 들이민 것 같고, 드럼의 장력은 내 온 몸이 조여질 정도로 팽팽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온갖 타악음들이 두서없이 사라지자마자 밀려든 이 정숙감. 마치 고공 장시간 비행을 끝내고 하강할 때 고막이 느끼는 그런 이질감과도 같다. 더 바랄 게 없다. 

 

중국 춘추시대, 자신의 음악세계를 알아주던 절친한 벗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청음 내내 이 종자기와 백아의 이미지가 떠나질 않았다. 비올라 크레센도와 콘체르토는 저마다 백아이자 서로의 종자기라는 것, 그냥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찰떡궁합이라는 것. 우선 서로가 FET, 초크트랜스, 알루미늄 절삭 섀시, 광대역 주파수응답특성이 서로의 DNA안에 사이좋게 들어있음을 안다. 프리는 뒷단에서 자신을 받아줄 파워의 높은(넉넉한) 입력 임피던스, 스피커를 울려줄 남부럽지 않은 출력과 댐핑, 그리고 가뿐한 온도보상 능력과 정확한 바이어스 유지능력을 안다. 또 파워는 프리의 진공관앰프를 닮고 싶어하는 숨은 욕망과 자신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어줄 낮은 출력임피던스를 안다. 사랑하면 서로를 닮는다고 하는데, 제게는 비올라의 이 두 형제가 꼭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