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재작년, 그러니까 2013년 그래미 어워즈 ‘Best Surround Sound Album' 부문을 살펴보던 중 우연히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Darcy Proper 라는 인물론 음반을 구입하면 항상 크레딧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 덕분에 기억한 이름이었다. 도널드 페이건과의 작업 등으로 이미 2007년에 그래미에서 이 부문 수상을 받았던 그였다. 그런데 2013 년에 또 한 번 그가 노이네이트되었고 결국 Jim Anderson 등과 함께 두 번째 수상의 쾌거를 이루었다. 해당 앨범은 오디오파일 사이에서도 많은 팬층을 가지고 있는 Patricia Barber 의 앨범 중 하나인 [Modern Cool] 이었다. Darcy Proper 는 이 앨범의 5.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 마스터링을 담당했고 그 해 가장 우수한 앨범 제작자로 선정되었다. 그는 수상과 함께 “이글스턴웍스 스피커는 나의 고객에서 최상의 사운드를 제공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 전해왔다. 이글스턴웍스가 거론된 것은 전혀 뜬금없는 것이 아니었다. Darcy Proper 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인 Wisseloord 스튜디오의 메인 스피커가 다름 아닌 이글스턴웍스의 Savoy Signature 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전히 이글스톤웍스가 하이엔드 오디오파일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애용되고 있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글스톤웍스가 설립된 1992년 이후 수많은 하이엔드 메이커들이 다크호스처럼 등장했지만 현재까지 남아 당시의 명성을 지키고 있는 스피커 메이커는 그리 많지도 않을뿐더러 심지어 사라진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글스톤웍스는 여전히 블루스와 록큰롤의 태생지인 멤피스에서 그 명맥을 굳건히 유지해오고 있다. 한 때 윌슨오디오 등과 함께 아메리칸 하이엔드 스피커를 양분하다시피 했던 이글스톤웍스는 윌리엄 이글스톤 3세가 이끌다가 이후 마이크 세이버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현재는 짐 톰슨이라는 걸출한 엔지니어가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실 이글스톤웍스가 하이엔드 스피커 씬에 혜성처럼 등장해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당대를 대표하는 스피커 메이커로 평가받았던 데에는 설립자이자 현재까지도 천재로 기억되는 윌리엄 이글스톤의 창조적인 능력 덕이 컸다. 

마크 레빈슨이 그랬고 데이빗 윌슨이 그랬듯 당시 윌슨오디오 등과 함께 그는 이른바 하이엔드라는 언어를 대중화시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을 만큼 홈 오디오의 사운드 영역을 몇 배나 확장시킨 전대미문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유명 포토그래퍼의 후예로서 천재적인 능력을 갖추었으나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했던 그는 영화 분야에까지 손을 대기도 하는 등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들어낸 스피커들은 하나같이 오디오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것들이었다. 이글스톤웍스에서 나온 이후에 첼로에서 스트라디바리 그랜드 마스터가 그러했으며 이후 WEGG3 로 독립해 출시한 루나 시리즈 등은 현재도 컬렉터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비범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윌리엄 이글스톤의 최고작이자 이글스톤웍스의 전무후무한 히트작은 Andra 라는 데 이견을 가질 사람을 없을 것이다. Savoy 같은 기함들이 존재하지만 Andra 가 출시 당시 하이엔드 씬에 주었던 충격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닿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스케일을 가진 이글스톤웍스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소타 트위터를 선도적으로 채용하고 이스라엘의 모델 드라이버를 미드레인지용으로 두 발 채용했으며 크로스오버를 바이패스시킨 설계는 유저들에게 상당히 큰 난제였다. 

뿐만 아니라 두 발의 12인치 다인오디오 우퍼를 독자적인 아이소배릭 방식으로 덧대어 만든 Andra 의 제동은 한 때 마니아들의 도전과제처럼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Andra를 제대로 제동했을 때의 쾌감과 몸서리치는 현장감은 그 어떤 스피커에서도 얻을 수 없는 희열을 제공했다. 그리고 윌리엄 이글스톤이 떠난 후 Andra II 가 등장했고 한 때는 리본 트위터가 탑재된 버전이 생산되기도 했으나 과도기적인 모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외부 캐비닛 마감과 유닛 선정 외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수정 등을 통해 Andra III 의 현재 모델에 이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디자인의 아웃라인은 기존의 안드라와 비슷해보이지만 Andra III 까지 계속해서 수정과 업그레이드를 반복해나가면서 상당히 여러 부분에 걸쳐 변화된 점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여전히 44인치의 키에 비해 220파운드의 굉장히 무거운 무게를 자랑한다. 사실 Andra 라는 스피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단순히 어떤 유닛을 채용했는가 또는 어떤 재질로 인클로저를 구성했는가와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이 아니다. 

기존 Andra 스피커와 가장 다른 점은 일단 미드레인지를 담당하는 중역 드라이버다. 이것은 과거 모렐의 폴리프로필렌 콘을 채용한 드라이버에서 바뀌어 현재 Andra III 에서는 카본 섬유 콘을 채용한 6인치 유닛을 채용해 고강도의 최소 질량을 갖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카본 미드레인지에 채용된 모터 구조 또한 최소의 디스토션을 갖는 형태로 진보되었다. 다인오디오의 1인치 에소타 트위터와 함께 전면 배플에 덧댄 알루미늄 패널 위에 장착되어 있는 이 미드레인지는 트위터와 동일한 배플면에 부착되어 있으나 시간축을 정렬을 위해 뒤로 약간 기운 각도로 디자인되어 있으며 기존 버전과 가장 큰 퍼포먼스 차이를 유도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미드레인지의 경우 마치 풀레인지 스피커처럼 크로스오버를 거치지 않는 방식으로 초기 윌리엄 이글스톤의 설계철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두 번째로는 저역을 담당하는 12인치 듀얼 우퍼로 이것은 다인오디오의 12인치 우퍼로 이른바 아이소배릭(Isboaric)이라고 불리우는 방식 설계로 내부에 동일한 우퍼가 한 발 추가되어 두 개의 우퍼가 베이스 재생 대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한 개의 유닛이 저역을 담당할 때보다 통일한 용적의 캐비닛으로 더 깊은 저역 확장이 가능하며 단정한 재생이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설계방식이다. 과거 린의 일부 모델에서부터 시작해 최근의 윌슨 베네시 등에서도 각각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설계해 활용되고 있는 저역 유닛 배치 방식이다. 

1950년대에 Harry Olson 이라는 엔지니어에 의해 고안된 방식으로 캐비닛을 키우지 않은 상태에서 낮은 레조넌스를 유지하면서도 더욱 깊은 저역을 재생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복잡한 캐비닛 설계와 지오메트리,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설계 등에 있어서 상당한 난이도가 필요하다. 중고역은 트로이카 구조의 윌슨 베네시 카디널과도 유사한 설계로 다만 저역의 경우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다발의 우퍼를 배치해 광대역을 완성한 카디널과 비교해 Andra III 는 전면의 대구경 우퍼를 아이소배릭 방식으로 구성해 딥 베이스까지 리니어한 재생을 목표로 한 정통파 설계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로써 현재 출시 중인 Andra III 의 최종버전은 -3dB 조건에서 저역은 믿을 수 없을만큼 깊은 18Hz 에 이르며 고역은 24kHz 까지 뻗는다. 능률은 우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88dB 정도 선에 머물고 있으며 공칭 임피던스는 8옴, 가장 낮을 경우에도 6옴까지가 한계다. 후면 바인딩 포스트를 살펴보면 카다스의 로듐 단자를 사용했고 바이와이어링을 위해 두 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측면의 과거 대리석에서 탈피해 알루미늄 패널로 단단히 고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아이소배릭 방식 우퍼 두발의 공진을 피하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방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청에 동원된 기기는 쟁생한 실력기들로 꾸며졌다. 소스기기로는 오렌더의 W-20 과 오디오넷 DNC 가 적용되었으며 USB 연결에는 BOP를 활용했고 어김없이 헤밍웨이 USB 케이블을 사용했다. 여기에 프리앰프는 스펙트랄오디오의 DMC-30SS, 파워앰프는 역시 동사의 모노블럭 모델인 DMA-360 가 쓰였다. 이 외에 스피커 케이블은 하이 다이아몬드, 파워케이블은 PSC, BMI 파워케이블 등이 사용되었음을 밝힌다.

이글스톤웍스의 Andra I 이 출시된지가 벌써 20년이 넘었고 이후 버전 II 에 이어 III 가 출시되기까지 홈용 하이엔드 스피커는 여러 메이커들에 의해 정복되고 탈환되기를 반복했다. Andra III 가 작금의 구도에서 어떤 의미와 아이덴티티를 갖을지 의문이 많을 수도 있는데 여전히 Andra III 의 정체성은 뚜렷하게 빛난다. 우선 중역의 순도와 음상의 정위에 관한 부분이 핵심으로 현재 일반적인 멀티웨이 스피커들이 갖는 대역간 타임 얼라인먼트를 피하기 위해 채용한 미드레인지의 효용성에 대한 것이 Andra III 의 중요 아젠다이다. 

Patricia Baber - The Wind Song

Patricia Baber - Smash
트위터와의 대역 중첩 현상을 크로스오버를 사용하지 않고 얼마만큼 자연스럽게 극복하는지가 관건인데 우선 카산드라 윌슨의 ‘Another Country'(24bit/96kHz)와 파트리샤 바버의 ’The Wind Song'(24bit/192kHz) 같은 곡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음장형 스피커의 대명사답게 아메리칸 하이엔드 스피커의 광대역과 공간을 가득 메우는 스테이징을 선보인다.  사진으로 친다면 마치 시청실의 조도가 갑자기 상승한 듯 구석구석을 비추는 강렬한 해상력이 집중력을 배가시킨다. 고역은 활짝 열려 있으며 중역대과 고역대의 뛰어난 조화가 일품이다. 우선 카본을 사용한 그들의 발상은 일단 좋은 선택이라고 여겨지며 절대 과장되거나 응축된 중역이 아니라 뒤로 널찍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무대 또한 미드레이지 덕이 크다고 보인다. 카본 특성상 뎁스가 얕거나 메마른 소릴 내주기 쉽지만 빠른 반응과 고역대역과의 조화 덕에 거의 대부분 상쇄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Nils Lofgren - Keith Don't Go

Nils Lofgren - Acoustic Live
닐스 로프그렌의 ‘Keith Don't Go' 에선 특히 스펙트랄 앰프와 이글스톤웍스의 스피드 정합, 다이내믹스 측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치 번개처럼 밀려왔다가 빠르게 빠지는 순별력이 굉장히 좋다. 더불어 힘의 완급조절 능력이 뛰어난 스펙트랄이다보니 어택에서 빠르게 디케이를 지나 릴리즈되는 순간순간이 꿈결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짧은 순간 강력한 클라이맥스를 찍고 어느새 소리가 흩어질 즈음 다시 힘 있게 도약하는 모습에선 숨이 찰 정도다. 기타 현의 스트로크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소름이 돋을 만큼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어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게 되는 최고 수준의 쾌감을 선사한다.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기타 스트링의 텍스처는 밝고 호쾌해 따스함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공간을 빠르게 휘저으면 한순간에 혼을 빼놓는다. 스피드에서 약간의 여유와 잔향이 더해지면 좋을 듯하지만 쾌감이라는 면에서 에지와 스피드가 없다면 이도 저도 아닌 소리가 될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려 8개의 V-FET 증폭 모듈이 탑재된 3백와트의 괴물 스펙트랄 레퍼런스 앰프와의 매칭에서 마주친 풍경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Michael Jackson - Liberian Girl

Michael Jackson - Liberian Girl
마이클 잭슨의 ‘Liberian Girl', 제니퍼 원스의 'Way Down Deep' 같은 곡에서의 딥 베이스 대역은 뼈대가 굵으면서도 강건한 저역 품질을 들려준다. 마치 해머로 바닥을 있는 힘을 다해 내리 찍는 듯한 서늘함이 느껴지는데 그 저역의 양감이 JBL 이나 윌슨처럼 헤비하다기 보다는 좀 더 단단하게 단련된 저역이다. 이것은 대체로 아이소배릭 방식의 베이스 우퍼 구조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유추되는데 여유 있고 풍성하게 공간을 채우는 저역이 아니라 짧은 순간 최고조의 저역 하강을 보이고 깨끗하게 사라지는 저역이다. 음악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면 갑자가 하강하는 저역에 섬뜩 놀랄 수도 있다. 누구나 여유롭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니고 진지한 오디오파일이 집중해서 듣기에 적합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친다.무대는 좌우, 전후로 널찍이 펼쳐져 전방위로 펼쳐지면 중앙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오는 교향곡 팀파니의 쾌감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천재는 혼돈을 지배한다’. 다름 아닌 아이슈타인이 내뱉은 말이다. 어떤 분야 혹은 인생에서 세상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자신의 삶은 주인이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은 물론 혼돈의 세상을 정리하고 지배한다는 이야기. 수십 년 전 Andra I 을 설계했던 윌리엄 이글스톤은 Andra 를 비롯해 Wegg 3 Luna I 등 커다란 족적을 보이며 혼돈을 지배한 후 하이엔드 오디오 씬을 떠났다. 아마도 더 이상 그의 흥미를 당길만한 소리에 대한 이상이 없었을지도...아니면 창창력의 고갈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건 20세기를 넘어 21세기 현재에도 하이파이 스피커 디자인의 한 축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Andra III 까지 진보한 Andra 에서도 초기 버전의 기본적인 설계가 고스란히 이어져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건재한 윌슨, 새롭게 하이엔드 스피커 씬의 왕좌에 올라선 매지코, YG 어쿠스틱 등 수많은 신생 다크호스들 사이에서 Andra III 가 어떤 위치를 획득하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여전히 혼돈을 지배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