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최근 보그 3월호에 ‘봄 패션 블록버스터’라는 제목의 광고가 무려 12페이지에 걸쳐 게재되었다. 다름 아닌 애플의 신제품인 스마트 손목시계 ‘애플워치’의 출시를 앞두고 펼쳐진 대대적인 홍보다. 그런데 카피만 보아서는 전자제품 광고 카피가 아니라 젊은 여성들을 위한 패션 브랜드의 봄 컬렉션 광고카피로 읽히기 쉽다. 여기에 애플의 새로운 승부수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을 관통하는 것은 애플의 ‘아날로그’ 컨셉이다. 애플의 기존 제품들, 특히 스티브 잡스 시절의 제품들이 차가운 IT 제품 안에 아날로그의 미세한 감수성을 심어놓았듯 이번엔 애플워치에 이를 투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단순히 시크한 디자인에 가장 진보한 여러 기능을 담는 천박한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패션 명품 악세사리로서 애플워치를 포지셔닝하려는 애플의 전략이 숨어 있다.

이처럼 요즘 아날로그는 현대의 진보된 기술과 하이브리드되며 놀라운 대중적 반향을 얻어내고 있다. 최신 트렌드의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웬 케케묵은 아날로그냐고 반문한다면 당신은 아날로그의 진짜 민낯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같은 아날로그 디자인을 최신 기기나 패션에 적용하더라도 제대로 구현한 제품은 그리 흔하지 않다. 어설프게 적용한 경우, 때로는 그저 오래되고 멋없으며 구태한 것으로만 비춰지기도 한다. 현재 아날로그는 역사를 한 바퀴 돌아 현대 라이프스타일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되어 디지털 디바이스에 개성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아날로그 시계가 사랑받고 있다. 디지털이 발전하며 아날로그의 이미지를 활용한다한들 여전히 진정한 아날로그 마니아들은 진짜 아날로그 시계만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하이파이 오디오에서도 ‘아날로그’는 LP 가 메인 소스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CD 로 넘겨준 지 수 십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새삼 ‘신선한’ 포맷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디지털이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는 것과 반대급부로 사라질 것 같았던 아날로그가 오히려 부활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턴테이블, 카트리지와 포노앰프, 더 나아가 톤암과 톤암 케이블, 승압 트랜스 등 제대로 된 아날로그 LP 포맷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LP 의 수요는 21세기인 지금 조금씩 늘어나가고 있다.

그 중 포노앰프의 존재는 최근 내게 다시금 그 존재 이유를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연달아 제스토오디오, 프라이메어, 조리다 등의 포노앰프 리뷰를 맞게 된 데에도 이유가 있지만 얼마 전 여러 포노앰프를 모아놓고 비교 청음을 했던 것에서도 그 배경이 있다. CD 나 파일 음원과 달리 RIAA 커브를 통해 보정을 해야하며 mV 단위의 작은 신호를 수십 배 정도의 큰 폭으로 증폭해야하는 카트리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설계에 따라서도 음질이 천차만별로 나타났다. 

배터리로 구동하는 서덜랜드, 최신 하이파이 기술이 집약된 PS Audio 의 포노 스테이지, 독보적인 회로를 구사하는 바쿤, 진공관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화려한 기능을 갖춘 제스토오디오의 포노앰프 등이 그것들이다. 예전에 비해 몇 배고 그 해상력과 대역 커버리지 등이 달라진 시스템에서 포노앰프의 차이는 거의 ‘밤과 낮’만큼의 차이로 카트리지, 턴테이블, 톤암의 그것에 비견될만했다. 결국 아날로그 시스템 안에서 턴테이블과 톤암 그리고 카트리지와 포노 스테이지 등의 매칭 변수는 디지털 소스기기를 메인으로 하는 하이파이시스템보다도 더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준다. 이 모든 것이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한편으로 즐겁기도 하다.

조리다 포노앰프 JD9MKII 는 그 중에서도 단 한 번도 기존에 청음 기회가 없었던 모델. 해외 포럼 사이트 등에서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제로 테스트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조리다는 1983년도 메릴랜드에서 설립된 후 1995년까지 주로 진공관과 트랜스포머 등 여러 부품의 가공과 제조 등에 머물다가 1955년 미국 시장에서 진공관 앰프를 출시하며 하이파이 메이커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조리다는 최근 보기 힘든 ‘착한’ 하이파이 기기를 생산한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가격에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주는 오디오, 탁월한 음질은 물론 진공관 앰프의 안정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높은 내구성과 신뢰도를 가진 오디오를 제작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조리다의 JD9 MKII를 처음 보았을 때 직감적으로 그들의 설계 철학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중저가 포노앰프들의 미니멀 사이즈와 달리 풀 사이즈의 넉넉한 크기에 슬림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어떤 화려한 장식이나 꾸밈없이 굉장히 심플한 섀시 설계를 취하고 있다. 전면엔 스탠바이 버튼 1개만이 전부며 모든 기능은 후면에 위치한다.

 

후면을 살펴보면 우선 좌측엔 턴테이블로부터 출력된 아날로그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언밸런스드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다. 그 옆엔 그라운드 단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으며 우측으로 새끼 손가락만한 금속 명판이 장착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한 명판이 아니다. 이것을 제거하면 그 안에 MM/MC 카트리지에 따른 게인과 임피던스, 커패시턴스 세팅을 위한 딥스위치가 빼곡히 설치되어 있다.

볼티지 게인은 MM/MC High/MC Low 등 세 종류를 지원한다. 5mV 안팎의 MM 카트리지는 MM, 0.5mV에서 1.5mV 정도의 중출력 MC 카트리지는 MC High, 마지막으로 0.25mV에서 0.5mV 정도의 저출력 MC 카트리지는 MC Low 에 세팅하면 그만이다. 그 옆으로는 MM 카트리지를 위해 47PF, 100PF, 150PF, 220PF 등 네 개 커패시턴스 값을 선택할 수 있는 딥스위치. 그리고 MM 또는 MI, MC 카트리지를 위해 100 ohm, 300 Ohm, 1K ohm, 47K ohm 등 총 네 종류의 로딩 임피던스 조정용 딥스위치가 마련되어 있는 모습이다. 로딩 임피던스가 100옴 이하로 떨어지는 극단적인 일부 저출력/저임피던스 외에는 대부분의 대중적인 MM/MC 카트리지에 모두 적용 가능한 포노앰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후면엔 총 두 개의 RIAA 아날로그 출력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하나는 Low, 나머지 하나는 High 게인 출력이다. 이것은 게인단이 아닌 출력단의 출력을 두 개로 분리 설계해 연결하는 인티앰프 또는 프리앰프의 게인에 따라 선택, 적용할 수 있어 상당히 편리하다. 다만 High 게인 출력의 경우 카트리지의 출력전압에 따라 클리핑 노이즈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조리다 JD9 MKII 는 내부에 트랜스포머가 장착되어 있는 리니어 전원부 설계다. 하지만 출력단엔 쌍삼극관인 12AX7을 총 두 알 사용하고 있다. 내부를 보면 트랜스포머를 중심으로 입력단 서킷 보드, 진공관을 포함한 출력단이 모두 완벽히 분리되어 설계되어 있으며 각 보드는 하드와이어링으로 연결해 노이즈 간섭을 최소화하고 음질을 최대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러한 심플한 설계 덕분에 해외에서는 수많은 아날로그 마니아들에 의해 커패시터, 저항, 진공관에 이르기까지 여러 모디파이가 왕성하게 이루어지기도 하는 모델이다. 하지만 조리다는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업그레이드 정책을 내놓고 이를 추천하고 있다. 업그레이드는 I, II, III, IV 등 현재까지 총 네 단계로 마련해놓았으며 각 단계마다 업그레이드로 인한 음질적 차이도 현저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스트는 웰 템퍼드 Amadeus MKII 와 다이나벡터 DV20X2L, VPI HW19 와 데논 DL103R, 오르토폰 T20MKII 등의 아날로그 시스템이 동원되었다. 이 외 B&W 801, 코플랜드 CTA-405, 스텔로 AI700u 등이 활용되었음을 밝힌다. 새로운 포노 스테이지를 셋업하면서 몇 가지 조정을 해야했다. 예를 들어 데논 DL103R 같은 경우 후면 딥스위치 중 게인단을 MC low 쪽으로 설정했고 로딩 임피던스는 100옴에 맞췄다. 후면의 출력단 게인은 High 에서는 일그러짐 증상이 있어 Low 출력을 사용했다. Low 출력이 500mV 인것에 반해 High 출력은 1.8 V 로 상당히 큰 차이가 크다. High 출력을 사용하면 극단적인 저출력 MC 카트리지도 사용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양희은 - 아침이슬

양희은 - 양희은이 처음부른 노래들
보컬 레코딩 중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들어보기로 한다. 김민기의 곡을 다시 불러 레코딩한 LP 로 오랫동안 LP 장식장 안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먼지를 닦아내고 플래터 위에 올렸다. 기존 시스템이 아닌 조리다 JD9MKII를 통해 듣는 이 곡은 마치 당시 젊음의 패기가 투영된 듯 힘차고 임팩트가 넘친다. 음결 자체는 진공관 12AX7 의 특성이 그대로 묻어나 맑고 부드럽다.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한 음결은 그러나 힘없이 잔잔한 진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에너지 넘치면서도 펀치력이 뛰어난 부드러움을 표현한다.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 또한 오래된 녹음임에도 건조하거나 거칠다기보다는 적당히 까슬하며 목가적인 울림을 만들어내 곡을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Pink Floyd - In the Flesh

Pink Floyd - The Wall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앨범을 들어보니 조리다 JD9MKII 의 특성은 더욱 크게 부각된다. 수입반으로 오랫동안 소장했던 LP를 간만에 집어들었다. 첫 곡 'In the flesh' 의 도입부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기타 사운드는 기존에 사용했던 여러 포노앰프들과 확연히 다른 인상을 준다. 굉장히 묵직한 아날로그만의 에너지감이 뚜렷이 상승한다. 가공 식품이 아닌 자연에서 직접 재배한 날것의 느낌이 선연하게 공간을 장악한다. 드럼과 베이스 등 리듬 파트가 파도 같은 커다란 중,저역 울림을 만들어낸다. 묵직한 무게감과 선 굵은 남성미 그리고 그 기저엔 12AX7 의 탁월한 펀치력과 리듬&페이스가 녹아 들어가 있다. 마치 녹음 현장에 있는 듯 현장의 생동감과 열기가 전해져 온 몸에 긴장감과 전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풍성한 하모닉스와 따스한 음색 그러나 반대로 절대 얌전하지 않은 쾌활한 다이내믹스는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선사한다.

Stan Getz & Charlie Byrd - Definado

스탄 게츠와 찰리 버드가 함께한 [Jazz Samba] 앨범 A 면 첫 곡 ‘Definado' 에서는 전/후, 좌/우로 넓고 쾌청하게 뚫린 무대를 펼쳐보인다. 넓고 깊게 리스닝 룸을 가득 메우는 음표는 이른바 생생한 홀 톤의 진수를 보여준다. 근음의 골격이 뚜렷하며 배음이 풍부해 악기들의 음색 구분과 공간 안에서의 스테레오 이미징과 음영 표현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또한 풍부한 하모닉스 안에 기록된 공간 정보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자세하고 풍부하게 표현되어 현장의 그것과 같은 생생한 음악적 열기를 내뿜는다. 마치 과거 파라비치니가 설계한 진공관 명품 EAR834 에 남성적인 힘과 에너지를 불어넣은 듯한 사운드다.

조리다 JD9MKII 는 디지털이 지배하고 있는 현 시대에도 아날로그가 독보적인 영토를 확보하고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함축해서 알려주고 있다.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표면 디자인과 인터페이스에서의 표피적 아날로그가 아닌 진짜 아날로그는 절대 다른 그 무엇으로도 치환될 수 없다. 특히 잘 만들어진 중,저가 포노앰프가 더욱 귀해진 요즘 진공관의 윤기과 촉촉한 음결을 가진 합리적인 가격대의 조리다 JD9MKII 는 가치가 높다. 요컨대 진공관의 부드럽고 따스한 텍스처는 물론 솔리드 스테이트에 육박하는 탁월한 다이내믹스와 펀치력의 조화는  JD9MKII 의 핵심적 가치다. 레퍼런스급의 미세한 분진 같은 표현은 약간 부족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수천불을 더 지불해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튜브 롤링을 해복 싶게 만드는 포노앰프의 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