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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를 본거지로 활동하는 진공관 달인 서병익씨가 2008년에 설립한 서병익오디오는 그동안 다양한 진공관 오디오 기기를 제작해 오면서 많은 오디오파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가 서병익오디오 기기를 처음 접한 시기는 2009년 말이었는데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브랜드로 출시한 첫 작품이자 플래그십 모델인 “쏘나레 콘솔릿” 프리앰프와 후속작 “쏘나레 인테그라” 프리앰프를 모 오디오 전문잡지를 통해 리뷰한 바 있다. 톤 컨트롤, 라우드니스등의 다양한 소리 보정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입출력을 갖추고 있어 대규모 오디오 시스템의 메인 컨트롤 타워 프리앰프로서 손색이 없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포노앰프 로샤의 스펙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CR형 등화회로를 기반으로 해서 진공관 증폭단으로 마무리한 무귀환형 RIAA 앰프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제품 설명을 참조하면 논 클립(non-clip) 출력전압을 44볼트까지 올려놓음으로서 입력전압에 대한 마진폭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마란츠 7형 포노단 (NFB 형식)보다 두 배가 넘는 수치라고 한다. 로샤는 또한 두 개의 포노 입력단을 구비하고 있어 두 대의 턴테이블, 혹은 두 개의 톤암을 구동하는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MM 입력만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트랜스를 별도로 부착해서 MC 입력도 직접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기기를 열어 내부를 들여다보니 PCB 기판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하드 와이어링 스타일로 정리되어 있는 회로 디자인과 실장 형식이 실로 정연하고 깔끔하다. 역시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든 기계 특유의 아우라가 존재한다고나 할까. 사용된 진공관은 러시아제 퉁솔 12AX7 (3개), 일렉트로 하모닉스의 6CA4등이다. 진공관식 포노앰프는 어떤 출력 진공관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소리의 성격이나 질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의 취향에 맞는 빈티지관을 사용하면서 소리를 튜닝 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로샤 포노앰프를 시청하는 주안점은 일단 CR형 포노앰프만이 줄 수 있는 개성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NFB (부귀환) 포노앰프, 즉 마란츠 7 계열의 회로를 기반으로 하는 RIAA 증폭이 대부분의 오디오파일에게 익숙한 소리일 텐데 이와 다른 방식인 CR (무귀환)형의 변별점을 확인해보는 일이라고 하겠다. 한편 필자가 현재 구동하는 럭스만 E06 포노앰프가 트랜지스터 소자로 설계한 CR형 포노앰프 이다보니 진공관 소자를 사용한 CR형 포노앰프 로샤와 직접 비교하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로샤 포노앰프의 시청을 위해 동원된 필자의 아날로그 시스템은 MC 트랜스에 피델리티 리서치의 FRT-4와 시네마그 (Cinemag)의 CMQEE3440a, 비교 포노앰프는 SME SPA1HL, 럭스만 E06, Aqvox 2Ci, KTS 소네트의 포노단 등이었고 이에 SPU, EMT 계통의 다양한 카트리지를 매칭해보는 방식을 취했다. 턴테이블은 마이크로 세이키 1500, 톤암은 다이나벡터 DV507MkII 와 FR64s, 스피커는 ATC SCM10, 앰프는 쿼드 510과 Music First 트랜스 프리앰프이다.

우선 MC 트랜스가 카트리지 안에 부착되어있는 SPU GTE 카트리지를 MM단에 직접 연결해서 들어보니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로샤의 특성은 배음이 양질이면서도 풍부하다는 점이었다. NFB형 포노단에 비교해서 CR형 포노단이 갖고 있는 가장 직접적인 비교우위 요소가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었는데 정격연주로 레코딩된 바로크 음악을 재생할 때 매우 만족감이 높을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또한 시원스러운 개방감도 인상적이었는데 이 또한 마란츠 7형 NFB회로의 “답답함”을 해소해주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카라얀이 1970년대 중반에 레코딩한 일련의 브룩크너 교향곡 녹음은 과다한 멀티마이크 사용, 다이내믹을 컴프레스하는 레코딩 기법으로 인해 연주의 완성도가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녹음 상태가 언제나 아쉬움의 근원이라고 회자되었는데 7번 교향곡 (DG 2702 102, 1978년 발매) 3악장을 오랜만에 들어보니 그러한 아쉬움이 오래된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테이지가 넓은 후련한 개방감을 내세우면서 음반을 재생 해주었다. 

한편 디테일을 묘사하는 대목도 좋았다. 럭스만 E06 포노앰프를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느끼는 점이었지만 CR형 포노앰프가 연주하는 악기소리 디테일과 그 연주가 이루어지는 장소의 앰비언스를 조화롭게 표현하는데 탁월하다는 느낌이었는데 로샤 포노앰프도 이러한 특성을 갖고 음악을 들려주었다. 특히 목관악기 앙상블을 들어보면 직접음과 간접음을 잘 구분하면서도 그 밸런스가 출중했다. 로우레벨의 표현력도 만족스럽다.

매칭 하는 기기 소리를 구분하는 변별력도 우수했는데 MC 트랜스의 성격을 명료하게 드러내준다. 시네마그 트랜스는 알텍의 4722 트랜스를 기본 디자인으로 제작한 제품으로서 호방한 사운드를 내어주는 가성비 높은 제품인데 로샤 포노앰프와 비슷한 성향인 연유로 두 기기의 매칭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여기에 EMT XSD15 카트리지와 다이다벡터의 DV507MKII 톤암을 매칭해서 브룩크너 음반을 들어보니 대규모 관현악 재생에 있어서 더 이상 바랄나위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레코드를 연주해주었다.

한편 노이즈 레벨도 준수한 편인데, 필자의 레퍼런스인 SME, 럭스만 포노앰프와 비교해보면 이들을 능가할 정도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이 대목에서 소리에 욕심을 부린다면 물량의 투입으로 전원부를 강화하거나 회로를 더 세심하게 설계하는 방법이 있을 터인데 마침 서병익오디오에서는 로샤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다양한 고급 포노앰프를 소개하고 있다. 쏘나레 레퍼런스가 대표적인 제품이고, 진공관 헤드앰프 회로까지 구비되어 있는 쏘나레 로얄은 플래그쉽 포노앰프라고 하겠다. 기회가 되면 이 제품 또한 시청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날로그를 즐기는 -또는 즐기기 시작하게 된- 오디오파일이 선택해서 사용할만한 신제품 포노앰프가 많지 않은 환경에서 매우 반가운 제품이라고 하겠다. 해외산 고급제품이 몇몇 눈에 들어오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특히 그러하다. 로샤는 오랫동안 진공관 앰프를 연구해온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진 좋은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