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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자는 올닉의 스피커케이블 ZL-5000의 리뷰를 부탁받고 난감했다. 리뷰 자체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런 건 물론 아니었다. ZL-5000의 동생격인 ZL-3000을 불과 며칠 전에 구매해 개인 오디오 시스템에 투입했던 터였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케이블 보호비닐도 채 벗기지 않은 상태였다. 상급기로 잠시 호사를 누렸을 경우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박탈감’이 우선 신경쓰였고, 경제적 부담과 기회비용을 고려해 구입을 미뤘던 ZL-5000에 대해 ‘필자’로서 냉정하면서 객관적인 리뷰가 가능할까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답은 언제나 가까이 있는 것이다. 일체의 선입견이나 부담감 없이 ZL-5000을 듣고 느낀 바를 솔직히 쓰면 된다는 것. 오디오 애호가로서 ‘필자’의 귀와 선구안을 전적으로 믿자는 것. 따라서 이번 ZL-5000 리뷰는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진행됐음을 밝힌다. 

 

 

스피커케이블 역시 오디오 애호가들의 ‘즐거운 고민거리’다. 선택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피커케이블은 애써 완성시킨 소스기-앰프 시스템의 최종 소리를 가감없이 스피커로 전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신경쓰인다. 이는 물론 오디오 시스템의 어떤 컴포넌트도 마찬가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또는 ‘Garbage In Garbage Out’이라는 말로 소스기나 인터케이블의 우선적인 업그레이드를 주창하는 사람들도 많다.

 

분명한 것은 스피커케이블은 다른 신호 케이블과 달리 많은 양의 전류를 보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 유명한 옴의 법칙으로 명쾌히 설명할 수 있다. 필자가 외우고 있는 단 하나의 옴의 법칙은 이것이다. 

 

I = V / R

 

즉 전류(I)는 전압(V)에 정비례하고 저항(R)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이는 이렇게 실전에서 응용된다. 스피커 임피던스(R)가 작으면 앰프에 큰 짐이 되어 같은 출력전압에서 스피커로 보내는 전류(I)가 커진다. 

 

이 옴의 법칙에서 전압(P : 1A의 전류가 1V의 전력이 걸린 회로를 돌다가 1옴의 저항에서 소비되는 전기에너지 = 1W, 즉 P = V * I)을 유도해내면 다음과 같다.  

 

P = I * I * R

 

즉 전력(출력)은 저항이 일정할 때 전류의 제곱에 비례한다. 따라서 오디오의 출력이란 스피커에 전류(I)를 얼마만큼 흘려줄 수 있느냐를 나타내는 수치에 불과하다. 이를 실전에서 응용하면 이런 질문과 답이 가능해진다. 

Q : 200W 앰프가 8옴 스피커에 물렸을 때 스피커에 흐르는 전류의 양은 얼마인가?

 

A : P = I * I * R을 이용하면, 

200 = I * I * 8 

I * ! = 25

I = 5(A)

답은 5A.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해보면 앰프 출력에 따라 스피커케이블에 흐르는 전류의 양(8옴일 경우)은 다음과 같다. 

 

30W = 1.94A

50W = 2.50A

60W = 2.74A

80W = 3.16A

100W = 3.54A

200W = 5.0A

 

너무 에둘러 온 것 같은데, 결론은 스피커케이블의 임무란 큰 전류를 막힘없이 스피커로 전해줘야 한다는 게 처음이자 끝이라는 것, 이를 위해서는 스피커케이블이 가질 수 있는 온갖 저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이게 중요하다. 올닉 스피커케이블 ZL-5000(ZL-3000도 마찬가지지만)은 바로 이 관점에서 출발했고, 스피커케이블 외관이나 스펙, 제작철학에 대한 탐구 역시 이 관점에서 해석함이 옳다.

 

터미널 단자가 다르게 생겼다 = 유저 입장에서 다른 스피커케이블과 가장 달라보이는 것이 바로 이 단자다. 극저온 처리된 티타늄 구리에 로듐 도금을 했다는데, 생긴 게 ‘ㄷ’ 자 모양의 클립형 단자다. 실제로 스피커 바인딩 포스트에 체결해보면 이 단자의 탄성과 접촉률이 장난이 아니다. 올닉에서는 이 특허받은 단자를 통해 접촉저항(Contact Resistance)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주장한다. 

단자와 선재를 연결하는 방식이 다르다 = 보통의 스피커케이블은 납땜이나 클램핑 방식을 통해 단자와 선재를 연결하는데, ZL-5000은 단자와 선재(무산소동. OFC)를 1000도 이상의 초고온 열용접(welding)으로 융합시켰다. 한마디로 케이블(동)과 단자(동)를 한 몸, 하나의 개체(Conductor)로 만들었다는 것. 따라서 그 어떤 저항과 손실(연결저항 Linkage Resistance)이 발생하지 않는다. 참고로 납은 구리에 비해 16배의 저항값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순수한 신호전달에는 부적합하다. 납땜은 300~400도면 충분하지만, 동은 1000도 이상이어야 용접이 가능하다. 클램핑 방식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헐거워지거나 부식이 되는 단점이 있다.

 

케이블 굵기가 애매한데? = 크리스탈클리어 PVC에 순동을 섞은 피복으로 감싼 ZL-5000의 케이블은 다른 초고가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얇다. 전체직경이 16mm에 불과하다(ZL-3000은 12mm). 커다란 뱀이나 구렁이 같은 하이엔드 스피커케이블이 창궐하는 요즘 추세에 비하면 그야말로 왜소할 정도. 하지만 올닉에서는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최적의 선재 굵기를 발견했고 이를 통해 케이블 자체의 저항(Wire Resistance)을 줄였다고 한다. 올닉에 따르면 도체는 가늘수록 고역은 높게 나오지만 저역은 약해지고, 반대로 도체가 굵을수록 소리는 둔탁해진다고. 스펙으로 공표한 ZL-5000의 도체저항은 0.001옴/m(ZL-3000은 0.002옴/m)이다. 

올닉에서는 스피커케이블로서는 세계최저의 도체저항일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 바 초고온 용접기술과 특허기술의 단자를 보면 일응 수긍이 간다.

 

스플리터에 웬 링이? = 자세히 보면 두랄루민 소재의 스플리터에 4개의 실리콘 링이 장착돼 있다. 이는 바로 공진 흡수용이라는 게 올닉의 설명이다. 일종의 댐퍼(Damper)인 셈. 필자가 아는 한 올닉은 이 댐퍼에 대한 노하우가 대단한 제작사인데, 예를 들어 올닉의 모든 진공관 앰프 소켓에는 진공관의 공진 흡수를 위해 젤(gel) 타입의 댐퍼가 들어가 있으며, 이는 국제 특허를 받았다. 외국 평론가들과 제작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소켓 댐퍼다. 

 

 

 

청음은 하이파이클럽에서 진행됐으며, 기존 스피커케이블(A)로 우선 청취한 후,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스피커케이블만 올닉 ZL-5000(B)으로 바꿔 A-B를 비교해봤다. 하이파이클럽 청음 환경은 이랬다. 

 

 

음원은 요즘 CD급 음질(16비트 44.1kHz, flac 파일) 스트리밍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미국 TIDAL 서비스를 이용했다. 즉 필자의 아이폰5S로부터 TIDAL 음원을 스트리밍해 웨이버사 W DAC3를 에어플레이시키는 방식으로 들었다. 스트리밍과 에어플레이, 이상없이 작동했다. W DAC3와 AMP2.5는 밸런스 연결했다. 

 

 

샤를 뮌쉬 지휘, 보스톤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4악장 = 팀파니의 타격감은 예상외로 괜찮지만 약간 벙벙거리는 느낌. 하지만 팀파니가 왼쪽 스피커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보폭은 웨이버사 DAC과 앰프 덕분인지 만족스럽다. 금관악기의 광채나 목관의 음색, 모두 괜찮다. 굳이 불만을 얘기한다면 약간 뭉개진 것이 아닌가 하는 점. 

 

티모시 브라운 지휘 존 루터 레퀴엠 4악장 Sanctus = 남녀 합창은 풍성한 느낌을 자아내며 공간감 역시 제법이라는 인상. 하지만 하이엔드 시스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엠비언스나 1993년 7월 녹음 현장인 달라스홀의 홀톤까지는 느낄 수 없다. 음이 소멸해가는 마지막 여운은 그런대로 잘 포착해냈다. 

 

 

헤레베헤 지휘 바흐 B단조 미사 Cum sancto spiritu = 남녀합창단의 도열위치를 구분하려 애썼으나 선명하게 위치를 파악하는데는 실패했다. DAC의 해상력, 앰프의 구동력, 스피커의 광대역 재생은 역시 합격점. flac 음원을 스트리밍해주는 고품질 허브의 덕도 크게 본 것으로 추측된다. 시스템의 전체 S/N비도 괜찮게 느껴진다. 

 

아바도 지휘, 루체른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 브루크너 교향곡 9번 2악장 Scherzo = 40초 무렵부터 밀고들어오는 패시지의 긴장감이 대단하다. 목관의 음색 역시 거침이나 일체의 채색없이 좋다. 금관 역시 리퀴드(liquid) 하면서도 광채가 난다. 하지만 2분40초 무렵 총주 대목에서는 전체적인 음들이 뭉개지는 느낌. 음끌이 약간 말리는 느낌이 든다. DAC의 분해능을 스피커케이블이 제대로 스피커에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사운드 스테이지의 앞뒤 두께도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 ‘You Look Good To Me’ = 트라이앵글의 광채가 제법이다. 베이스 현의 보윙도 좋게 들린다. 49초부터 본격 재즈 리듬이 시작되는데, 드럼은 왼쪽 뒤에, 피아노는 가운데에, 베이스는 오른쪽에 포진한 사운드 스테이지의 좌우폭이 꽤 넓게 그려진다. 전체적인 음들도 흩날리지 않고 무대 아래로 가라앉아있다. 사실 이 정도면 불만이 있을 수가 없다. 하이햇 사운드도 그냥 ‘찰랑’ 대는 느낌이 아니라 꽤 힘이 실려 듣기에 즐겁다. 드럼의 스톱앤고도 좋다. 하지만 피아노 소리는 다소 굵은 것 같다. 

 

다이애나 크롤 ‘Live in Paris’ 앨범 중 ‘A Case of You’ = 라이브 녹음인 만큼 오른쪽에서 나오는 관객 기침 소리가 리얼하다. 크롤의 보컬은 약간 빅마우스이며 입술은 메말랐다. 발음 하나하나 생생히 느껴지지만 재생음인 것만큼 분명하다. 이 곡에서 퍼뜩 든 생각 하나. 필자가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ZL-3000을 지금 투입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보푸라기가 하나 없이 깨끗한 색채감과 투명감, 고급 DSLR의 선명한 초점, 이런 느낌은 현재 없다는 것에 확신이 든다. 그래도 이 정도면 크게 불만은 없다. 

 

얀센 연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 = 팽팽한듯 탄력있는 얀센의 바이올린 현 소리가 생생하다. 무대는 약간 좁지만 스피커는 진작에 사라졌다. 특히 바이올린 독주시의 S/N비가 높다. 하지만 욕심을 낸다면 얀센의 기척이 더 느껴졌으면 좋겠다. 

 

 

 

샤를 뮌쉬 지휘, 보스톤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4악장 = 사실, A 케이블 청음 후 전체적인 인상은 ‘이 정도면 크게 불만이 없다. 과연 ZL-5000은 이를 뛰어넘는, 쉽게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질적 우위를 보여줄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이 환상교향곡 4악장을 듣자마자 청음 노트에 이렇게 썼다. “아, 비교가 안되는구나.” 음량 자체가 커진 듯해 전율감마저 느껴졌다. 시스템 전체의 S/N비가 비교가 안되게 높아졌다. 역시 보푸라기 하나 없는 투명감이 발군이다. 사운드 스테이지의 앞뒤 두께가 확실히 두꺼워졌으며, 행진곡 풍으로 진행되는 패시지에서는 북소리와 금관들이 서로 뭉개지지 않아 A 때와 크게 비교됐다. 이는 결국 악기별 분리도가 좋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곡 전체의 색채감이 아주 좋아졌다. 그만큼 음들이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음끝이 살아있다는 얘기. 가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순식간에 음들을 발사하는 과도응답 특성이 이제야 살아난다. 

 

티모시 브라운 지휘 존 루터 레퀴엠 4악장 Sanctus = 금관의 광채가 살아난다. 고역이 살아나니까 홀톤이 살아난다. 광대한 현장감이 압권이다. 

 

헤레베헤 지휘 바흐 B단조 미사 Cum sancto spiritu = 음량이 커진 듯하다. 합창단원들의 입모양이 정확히 그려진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ATC가 고스란히 드러내주고 있다는 것. 여성과 남성 합창이 섞일 때의 쾌감은 아까 A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입맛을 자극한다. A 때는 몰랐지만, 올닉 ZL-5000으로 들으니 이 합창곡에서 꽤 많은 악기들이 소리를 내고 있다. 공간감이 늘어나니 청음실 공기마저 쾌적해지는 느낌. 금관은 찬란할 정도로 경쾌하다. 음들이 소멸해갈 때도 이를 집요하게 포착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아바도 지휘, 루체른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 브루크너 교향곡 9번 2악장 Scherzo = 올닉 스피커케이블의 주특기가 마음껏 발휘된다. 단정하며, 정전기가 일체 없이, 그냥 술술 나온다. 스피커에서가 아니라 그냥 스피커케이블 끝에서 음의 가닥들이 동심원상으로 방사돼 분출된다. 총주에서의 박력은 대단해서 악기 수 자체가 늘어난 듯하다. 그러면서도 음들이 뭉개지지 않으니 연주 자체의 품격이 높아진 듯하다. 또 하나.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 바로 약음에서의 재생능력. 약음 파트가 더 여리고 섬세해졌으며 적막감 역시 급격히 상승했다. 플로어 노이즈(floor noise) dB 자체가 내려간 느낌. 이어 매크로 다이나믹스 부분에서는 볼륨을 더 올려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만큼 대음량 파트에서도 일체의 거리낌이나 자극이 없다는 것. 이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이야말로 올닉 ZL-5000의 존재이유를 단박에 입증해준다. 이 파워, 이 몰입도, 이 다채로운 표정. 청음노트에 이렇게 썼다. “역시 형만한 아우가 없다.”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 ‘You Look Good To Me’ = 트라이앵글의 광채는 A 때와 비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음들이 사라질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음들이 사라질 때 트라이앵글이 가녀리게 떨고 있다는 이미지가 순식간에 그려진다. 베이스는 아예 ATC 오른쪽 스피커 밖으로 튕겨나갔다. 재즈 리듬 파트가 시작되자 느낀 것은 왼쪽 드럼이 더 왼쪽으로 나갔다는 것, 베이스 주자의 웅성거림도 더 확실히 들린다는 것, A 때는 피아노가 두드러졌는데 지금은 세 악기의 균형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 역시 이 곡의 백미는 피아노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드럼의 스톱앤고는 마치 레이싱 트랙에 들어선듯 더 강렬해졌다. 오디오 리뷰로 수백번은 들었던 곡인데, 이번처럼 몰입돼 듣기는 그야말로 간만의 일이다. 마지막 음들이 소멸하는 시간은 체감적으로 A 때보다 2,3초 더 늘어난 듯하다. 그래서 숨이 막힌다. 

 

다이애나 크롤 ‘Live in Paris’ 앨범 중 ‘A Case of You’ = A 때는 기침소리를 듣고서 현장 라이브 녹음임을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처음부터, 기침소리가 나오기 전부터 라이브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크롤의 목소리. 그녀의 성량은 A 때보다 커졌는데 신기하게도 빅마우스로는 들리지를 않는다. 그녀가 하이파이클럽 청음실에 들어와 필자가 그녀의 표정과 기척 하나하나를 세밀히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이 대목에서는 크롤의 머리가 약간 뒤로 갔다가 앞으로 나오고, 또 이 대목에서는 오른손이 분명히 올라가고 있을 것 같다는 환영. 이게 바로 ‘기척’이다. 피아노의 페달 밟는 소리, 건반이 손가락의 압력을 받아 눌러지는 소리, 손과 건반이 마찰되는 소리, 피아노에서 참으로 여러 소리가 들리는 이 신기한 체험. 후반부 들어서는 A 때는 느끼지 못했던, 크롤의 입술이 약간 젖어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커다란 박수소리에는 진정 소름까지. 

 

얀센 연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 = 금관 바로 다음에 바이올린이 치고 나오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각 악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정위감과 사운드 스테이지가 대단하다. S/N비, 분해능, 색채감,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공간감..더 이상 메모를 할 필요가 없다. 

 

 

 

흔히 오디오 리뷰는 무조건 새 것과 고급기종에 찬사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기술 발전이나 설계 철학의 진화를 감안하면 당연한 것 같지만, 어제는 A 모델을 ‘지상 최고의 품질’ 운운했다가 오늘은 A 모델 마크2 버전을 ‘전작을 뛰어넘는 지상 최고의 품질’ 운운하는 모양새는 결코 달갑지가 않은 것이다. 더욱이 같은 브랜드의 개량 모델이나 하이엔드 라인업이라면 몰라도, 브랜드 자체를 오고가며 ‘이것도 최고, 저것도 최고’ 떠들어대는 것은 심하게 말해 꼴사납기까지 하다. 

 

그러면 필자는 최소한 이번 ZL-5000 리뷰에서 이러한 ‘꼴 사나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가, 자문해본다. 청음 노트에 적힌 메모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이번 리뷰에 동원한 형용사가 지나치게 찬사 일색이다. 예전 ZL-3000 리뷰 때의 청음노트를 꺼내본다. 그때는 청음환경도 많이 달랐고(DAC은 웨이버사 W DAC3로 동일, 프리파워앰프는 다질, 스피커는 아발론 Compas), 청음곡도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You Look Good To Me’를 제외하면 상이했지만, 그때(ZL-3000)의 리뷰 핵심은 이것이었다. 

 

“환상교향곡 4악장을 듣는 순간, 다이내믹스 재생 실력이 급상승했다. 곡 흐름에 맞춰 볼륨을 줄였다 늘였다는 하는 것만 같다. 가뜩이나 게인이 높은 4악장인데 A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게 들린다. 음의 윤곽과 음영도 분명해졌다. 해서 마침내 현장에서 오케스트라를 듣는 느낌. 그것도 이번에는 무대를 바로 밑에서 위를 향해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전체적으로 A 때에 비해 악기수 자체가 늘어난 것처럼 들린다. 그러면서 어수선하지가 않다. 오히려 정갈하고 차분하며 정숙하다. 음들에서 퍼석퍼석한 보푸라기가 일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두 상반된 가치들의 동시 다발적 상승. 한쪽이 이득을 보면 한쪽은 손해를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스피커케이블의 제로섬 게임을 보란듯이 무너뜨린 이 광경, 전율스럽다.”

 

ZL-5000은 여기서 몇걸음 더 나아갔다. 대충 읽으셨겠지만, 필자가 작정하고 조심스럽게 쓴 위 청음 대목을 다시 인용하면 이렇다.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 바로 약음에서의 재생능력. 약음 파트가 더 여리고 섬세해졌으며 적막감 역시 급격히 상승했다. 플로어 노이즈(floor noise) dB 자체가 내려간 느낌. 이어 매크로 다이나믹스 부분에서는 볼륨을 더 올려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만큼 대음량 파트에서도 일체의 거리낌이나 자극이 없다는 것. 이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이야말로 올닉 ZL-5000의 존재이유를 단박에 입증해준다. 이 파워, 이 몰입도, 이 다채로운 표정.” = 대음량 청취의 욕심 혹은 유혹

 

“역시 이 곡(You Look Good To Me)의 백미는 피아노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드럼의 스톱앤고는 마치 레이싱 트랙에 들어선듯 더 강렬해졌다. 오디오 리뷰로 수백번은 들었던 곡인데, 이번처럼 몰입돼 듣기는 그야말로 간만의 일이다. 마지막 음들이 소멸하는 시간은 체감적으로 A 때보다 2,3초 더 늘어난 듯하다. 그래서 숨이 막힌다. “ = 리얼리티 표현의 증가, 이를 통한 음악적 몰입도(Musicality)의 증가

 

“그녀(다이애나 크롤)가 하이파이클럽 청음실에 들어와 필자가 그녀의 표정과 기척 하나하나를 세밀히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이 대목에서는 크롤의 머리가 약간 뒤로 갔다가 앞으로 나오고, 또 이 대목에서는 오른손이 분명히 올라가고 있을 것 같다는 환영. 이게 바로 ‘기척’이다. 피아노의 페달 밟는 소리, 건반이 손가락의 압력을 받아 눌러지는 소리, 손과 건반이 마찰되는 소리, 피아노에서 참으로 여러 소리가 들리는 이 신기한 체험.” = 기척이 보이는 공간감적 체험

 

ZL-3000의 실구매자이자 유저로서, ZL-5000의 청취소감, 그래서 부러운 점이 바로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표현력, 이에 따른 음악적 몰입도의 증가, 뮤지션의 기척까지 그려내는 가공스러운 이미저리 처리능력’이다. 다이내믹스 재생 실력 또한 ZL-5000이 몇 수 위라는 것 역시 분명해보인다. 다행(?)이라면 투명감과 색채감은 ZL-3000과 ZL-5000에서 유의미할 정도로 구분할 수 없었다는 것. 따라서 만약 전체 오디오 시스템의 체력과 능력이 받쳐만 준다면 ZL-5000으로 갈아타는 것은 옳다. 그러면 다른 동가격대 스피커케이블과는? 앰프가 애써 증폭한 소스기의 소리를 일체의 손실 없이(Zero-Lossless) 스피커로 전달해준다는 의미에서 올닉 ZL-5000은(동생인 ZL-3000도!) 레벨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