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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스피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반듯반듯한 외모에 자연에서 온 듯한 느낌이 충만한 목재 인클로저다. 매끈하게 다듬고 특수한 소재를 활용하는 요란스러움을 상상하진 않는다. 영국의 기품있는 전통미라고 요약할 수 있다. 사실 현재는 많은 브랜드가 그러한 전통에서 벗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그러한 우리의 상상력을 온전히 만족시켜주는 스피커 메이커 중 하나가 바로 프로악이다.

이번 시청에서 드러난 프로악 D48의 위용은 자사의 레퍼런스급답게 웅장한 풍채를 자랑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리스폰스 4 와 한참 뒤 그 뒤를 이은 D40 그리고 이후 현재 D48 까지 이르면서 이룩한 독자적인 리노베이션은 대견하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급진적인 소재 변화나 인클로저 설계 변경을 통한 통쾌한 혁명 같은 것은 없다. 유유히 흐르는 파도가 결국 커다란 바위를 부수며 새로운 해안을 만들 듯 그 안엔 세월을 비껴가는 우직함마저 느껴진다.

 

프로악 D48 은 6.5인치 우퍼 두 발을 중앙 트위터를 중심으로 위, 아래 대칭으로 탑재해 만든 이른바 가상 동축형 설계를 취하고 있다. 1인치 소프트 돔 트위터 및 우퍼 공히 특주로 만들어 적용했고 무산소 동선을 내부 와이어링에 사용했다. 네트워크 설계에는 스튜어트 테일러가 적극적으로 가담한 HQC 네트워크가 적용되었다. 

120cm 의 꽤 커다란 높이에 한 쪽 스피커 무게가 40kg 가까이 되는 거구로 리스닝 룸을 채우기에 손색이 없는 규모다. 체적에 걸맞게 주파수 응답 레인지는 저역의 경우 20Hz 딥베이스 대역까지 소화하며 고역은 30kHz 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감도는 공칭 임피던스 4옴에 90dB 로 용적과 유닛 구성 등에 비하면 높은 편은 아니다.

우선 보컬부터 들어본다. 리빙스턴 테일러의 ‘Isn't she lovely’(24bit/96kHz, Flac)를 재생하자마자 우선 음상이 눈에 띈다. 가상동축 설계로 위상에 있어 유리한 편이지만 음상은 약간 높게 잡힌다. 정확히는 보컬의 포커싱이 청음 위치에서는 다소 높다. 시청거리를 더 넓히거나 또는 약간 높게 앉을 필요가 있다. 소리는 높은 능률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앰프의 막강한 저역 제어 능력에 수혜를 본 것 같다. 고역부터 저역까지 차분하면서도 대역 밸런스 왜곡 없이 편안하고 막힘없이 풀어낸다. 근음과 배음은 스케일이 크고 묵직하면서도 화사하고 풍부하다. 마치 강물이 바다로 이어지는 구간을 반복하듯 저역 에너지가 터질 땐 느긋하면서도 에너지 자체가 양적으로 큼지막하다. 중후한 중역대 질감은 차고 넘치며 기타 톤은 특유의 프로악표 질감이 곁들여져 따스하면서 동시에 은은한 잔향을 길게 남긴다.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24bit/96kHz, Flac)에서 더블 베이스는 실제보다 더 크고 바디가 더욱 웅장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다소 무분별할 수 있는 통울림은 적절히 통제된 매칭이며 소리지만 여전히 그 스케일은 중후장대하다. 서스테인에서 릴리즈까지 구간이 길며 약간 느린데다 풍부한 하모닉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앰프 매칭에서는 상당히 많은 고민이 필요한 스피커로 판단된다. 하지만 적절히 제어되었을 때의 풍부한 표현력과 따스한 잔향은 여타 스피커에서 즐기기 힘든, 또 다른 의미의 쾌감을 선사한다. 간혹 중역대의 느낌은 ATC 의 그것처럼 사이키델릭한 울림마저 풍긴다.

임동혁과 김수연의 [Schubert For Two] 앨범 중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D.574 - I. Allegro moderato’(24bit/96kHz, Flac)를 들어보면 피아노 톤이 우선 특별하다. 화려한 배음과 독자적인 색채감이 덧입혀져 있기 때문에 정교하다기보다는 감성적이다. 톤 자체가 화사하며 몽글몽글 피어나는 듯한 피아노 터치가 매력적이다. 한편 바이올린은 호소력이 짖고 중독성있는 특유의 음색이 더욱 강력하다. 보잉과 함께 바디의 울림까지도 내포한 듯 쏟아지는 음결은 꽃향기처럼 리스닝 룸을 가득 메운다. 화려한 색채의 고역과 농밀한 중역, 다소 느리지만 느긋하면서 풍성하게 물밀 듯이 밀려오는 저역의 양감은 규모에서 오는 쾌감과 음색의 즐거움을 동시에 양립시키고 있다.

아바도가 지휘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2악장 ‘Scherzo’(24bit/48kHz, Flac)에서는 프로악의 스케일에서 오는 쾌감 및 다이내믹스 부분이 좀 더 명확하게 감지된다. 프로악은 음색적인 부분에 매력이 가장 크다. 대신 빠르고 완급조절이 뛰어난 다이내믹스 또는 정교한 스테이징이 강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대규모 편성의 여러 악기와 커다란 다이내믹레인지를 갖는 교향곡에서 느끼는 음악 감상의 즐거움이 대단히 매력적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딥 베이스로 내려가면서도 에너지와 양감의 감소가 별로 느껴지지 않으며 가슴이 후련한 저역 표현은 최근 하이엔드 스피커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것이다. 정확성을 주무기로한 스튜디오 모니터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지만 콘서트 현장의 울림에 더 유사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나도 모르게 곡을 흥얼거리게 만드는 음표의 거대한 일렁임이 온 몸을 적신다. 

프로악의 2웨이 톨보이 시리즈들의 2세대에 해당하는 제품. D시리즈가 되면서 프로악은 트위터와 미드베이스를 모두 특주품으로 교체했다. 트위터는 D40에 사용했던 비파사의 패브릭돔을 업그레이드했고, 미드베이스는 기존 카본 파이버 재질을 카본 파이버 펄프로 업그레이드한 후 폴리프로필렌 코팅처리했다. 

D40의 후계기로 개발된 D48의 기본 포맷은 하위모델이었던 D38의 구성과 유사한데 D시리즈의 톨보이들이 오리지널 리스폰스 시리즈와 구조적으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제품의 바닥에 수직방향으로 리플렉스 포트를 둔 디자인에 있다. 인클로저 하단, 플린스 위쪽 전후간 하나씩 고강도 알루미늄 바로 지지하는 구조를 하고 있어서 좌우방향으로 리플렉스를 하도록 한 구조이다. 포트가 하단에 있어서 배치가 편리한 편이지만 제품의 사이즈에 비해 넓은 공간일수록 실력을 발휘한다. 바닥이 단단할수록 제품의 사운드 품질은 특히 베이스 해상도가 향상된다. 

D48은 D38의 포맷을 유지시키면서 크로스오버 설계를 새롭게 했다. 대역과 능률 등이 비슷한 이 두 제품은 사운드적으로 차별화를 두어 구분하고 있다. D48에 사용한 HQC 크로스오버는 CEO 스튜어트 타일러가 설계했으며 본 제품에만 전용으로 사용된 최상위 등급의 제품이다. 내부결선은 무산소동으로 와이어링 되어 있다. 특히 본 크로스오버는 높은 대역과 낮은 대역의 경로를 완벽히 분리시킨 설계를 핵심으로 하고 있어서 바이와이어링으로 시청하는 게 바람직해보이며 시청 또한 바이와이어링 결선으로 진행했다.

D48은 호방하다고 할 만큼 큰 스케일과 풍부한 표정, 그리고 적극적인 울림으로 호쾌하게 몰아가는 스타일이다. 기본적으로 공간을 가득 채워서 어필하는 베이스와 중고역 대역에 걸친 촘촘한 질감은 프로악의 추종자들에게 표적이 되는 매력포인트이다. 종종 미국의 하이엔드를 떠올리곤 하는 이 스타일은 공간의 선택이 적절할 경우 영미 스피커의 장점을 겸비한 훌륭한 선택이 된다.

‘Temptation’을 들어보면 이 곡이 ‘Isn’t she Lovely’보다 다이나믹스의 폭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워풀한 베이스 리프가 전해주는 육중한 중량감이 호쾌하다. 대역에 따라 두텁다고 느껴지는 구간과 간결하게 느껴지는 구간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컨트라스트가 강해져 있으나 유심히 관찰해 보아도 착색의 인상은 없다. PMC에 비해 약간 입모양이 약간 크다고 할 수도 있고, 동작할 때의 반경이 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는 확실히 여유롭고 표정이 풍부해져있다. 이 곡을 시청하면서 프로악의 톨보이들에게 있어 넓은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연주라고 생각했다. 스피커 주변의 공간도 그렇지만 시청자와의 거리 또한 그렇다. 이 거리에서 시청하면서 대역과 다이나믹스가 확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이올린과 같이 하모닉스가 잘 드러나는 연주에서 이런 내용은 잘 부각되어 나타난다. 적극적이고 강렬하며 윤기가 넘치는 풍요로운 연주를 들려준다. 템포가 느리게 느껴진다거나 하지 않고 간결하고 절도가 있어서 착색이라든가 하는 느낌은 없다. 피아노 또한 풍성하게 울리지만 과도하다는 느낌은 없이 화려해져 있다. 

브루크너 교향곡을 들어보면 낮은 중역대에서 현악기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와서 현의 떨림과 질감의 호소력이 짙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합주에 있어서도 이런 느낌은 손실없이 잘 유지되어 들린다. 이 곡에서의 스테이징을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혼탁해지기 직전까지의 음량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스타일이다.  강하고 빠르게 몰아치는 스타일이 아니라 유연하면서도 템포를 놓치지 않아 잘 통제된 아름다운 음색의 느낌을 받는다. 악기수가 최고조에 이르러 음량이 올라가도 스테이징은 뒤쪽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투티가 지나간 이후의 먼 팀파니 소리 또한 선명하고 존재감 있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