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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ture is Carbon'. 다름 아닌 윌슨 베네시가 오디오 메이커로 첫 발을 내디디면서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문장이다. 그 캐치프레이즈대로 윌슨 베네시는 뒤도 안돌아보고 내달렸다. 카본 섬유 등 소재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한 그들은 ACT. 1 톤암을 비롯 스피커 인클로저를 카본으로 뒤덮는 등 신선한 발상과 함께 대단위 연구를 거듭했다. 아마도 오디오 분야에서 소재에 대한 연구는 가장 깊고 앞서간 메이커가 윌슨 베네시가 아닌가한다.

이후 여러 하이엔드 메이커가 여러 소재를 오디오기기에 적용했고 윌슨 베네시의 연구는 직,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금속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가 높고 훨씬 가벼운 카본을 적극 활용한 그들이 목표로 했던 것은 명확하다. 캐비닛으로 인한 공진 및 회절을 최소화할 수 있다. 커다란 인클로저와 무거운 질량을 가지지 않고도 이러한 문제를 영민하게 해결한 그들은 스피커 설계구조에서도 그 목표를 일관적으로 실현시켰다. 

A.C.T. 스피커는 그들의 진보한 기술이 선도적으로 적용된 결과물 중 하나로 배플면을 카본으로 만들되 음향적으로 이상적인 커브 형태로 디자인했다. 게다가 배플 내부엔 알루미늄 합금 패널을 설치해 전면에 장착하는 유닛의 공진을 최소화했다. 물론 소재나 구조 뿐 아니라 유닛의 경우도 자사가 개발한 Tactic 유닛을 사용해 설계 목표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이 유닛은 세계 최초의 아이소택릭 폴리머 다이아프램(Isotactric Ploymer Diaphragm) 구조의 유닛으로 질량을 낮추어 입력되는 신호에 상당히 효율적으로 반응하다. 여기에 크로스오버는 최대한 간소하게 1st order 로 만든다. 유닛의 성능과 캐비닛 구조, 포트 등의 설계, 소재만으로 거의 완성된 소리를 만들어내고 크로스오버는 최대한 단순히 만드는 선택을 했다. 

카본와 알루미늄의 적극적인 활용 통한 캐비닛 착색, 노이즈를 최소화하는 한편 최대한 간결한 크로스오버와 자체 고성능 유닛의 활용. 이 모든 것은 윌슨 베네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믿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것은 통 울림이나 캐비닛으로 인한 소리의 왜곡을 막고 일체의 착색을 없애 가장 정확한 소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다. 이는 현대 하이엔드가 추구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소리에서도 그대로 증명된다.

우선 리빙스턴 테일러의 ‘Isn't she lovely’(24bit/96kHz, Flac)을 들어보면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이 스피드다. 굉장히 빠르고 날렵하게 공간을 치고 들어온 휘파람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두께 자체가 다소 얇고 조금은 가볍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민첩한 대역반응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로 인해 얻는 것은 깨끗하며 군더더기 없는 소릿결이다. 전, 후 공간감이 그려지는 고해상도의 중역은 보컬의 입모양까지 그려질 정도로 뛰어난 세부 묘사력을 갖추고 있다. 명석하고 차분하며 빠르고 정교한 소리로 브리티시 하이엔드 스피커의 또 다른 장르를 구축했다고 할만하다.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24bit/96kHz, Flac)에서는 옥타브와 옥타브의 단계가 세밀하게 펼쳐진다. 보컬과 후면의 기타, 베이스, 드럼의 이미징이 선명하게 구분되며 원근감이 깊게 표현된다. 다소 뒤로 물러난 음장으로 호소력 짖게 다가오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상당히 얌전하게 들린다. 어떤 대역도 부풀리거나 커다란 딥도 느껴지지 않아 매우 플랫한 대역 밸런스를 펼쳐주는데 오디오넷 앰프가 이런 성향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두 개의 Tactic 우퍼가 펼쳐내는 저역은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며 매우 밀도있고 컴팩트하다. 단순히 BGM 으로 음악을 듣기엔 음악이 아닌 음질을 끊임없이 분석하게 만드는 아카데믹한 스타일의 사운드를 펼쳐낸다.

임동혁과 김수연의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D.574 - I. Allegro moderato’(24bit/96kHz, Flac)에서는 A.C.T. 의 음색적인 특징, 특히 하모닉스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은은하지만 길게 하모닉스를 가져가지 않아 말끔하고 타이트한 느낌이다. 카본 인클로저와 알류미늄으로 이루어진 패널을 활용한 덕에 굉장히 단단하게 조탁된 텍스처를 만들어낸다. 서스테인이 짧고 어떤 착색도 포착하기 힘들만큼 견고하며 빠른 진행을 보여준다. 이런 특성 덕에 특유의 질감이나 풍부한 잔향보다는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아바도가 지휘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2악장 ‘Scherzo’(24bit/48kHz, Flac)에서는 기음과 배음, 다이내믹레인지, 스테이징 등 여러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기음과 배음의 구분이 매우 명확하며 빠르고 기민한 주파수 반응이 눈에 띈다. 이러한 특성 덕에 교향곡에서의 각 악기들의 위치, 공간에서의 움직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마스킹 현상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생략되는 소리도 없이 현미경처럼 교향악단을 조망해준다. 차오르는 현악, 밀고 나오는 관악과 타악의 분리도, 추진력 등 혼탁함이 느껴지지 않으며 깊은 곳에 위치하는 무대는 매우 차분하다. 벅차오르는 음악적 감동보다는 세밀하며 분석적으로 음악을 듣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오디오넷보다는 드비알레 또는 패스랩스처럼 잔잔한 잔향을 동반한 A클래스 앰프의 매칭을 추천하고 싶다. 

오디세이 라인업의 최상위 모델이자 3세대 개량버전인 윌슨 베네쉬의 베스트셀러. 마크3 정도로 타이틀을 붙였어야 할 만큼, 원형베이스를 잘 유지하고 리모델링한 제품이다. 거의 10년 단위로 업버전을 출시하는 독특한 컨셉으로, 나무마감이었던 94년 오리지널 버전 A.C.T. One과 메탈 모노코크 바디로 제작한 2004년 버전 A.C.T.를 거쳐 금속과 카본을 부위별로 혼합해서 사운드의 품질이나 외관을 일신했다. 또한 이제는 상위 라인업으로 이동한 A.C.T. one과 two를 거치면서 내부 인클로저 구성과 유닛제조방식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고유의 A.C.T.야 말로 카본을 도입한 금속 인클로저의 장점에 자사제 밀봉형 바스켓 유닛(Tactic 드라이버)을 장착해서 뛰어난 선형성과 공진제로 메커니즘으로 한 세대 가까이 윌슨 베네쉬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제품이라 할 수 있다. 

포뮬러 원에 적용된 경량급 고강성 소재기술에 착안해서 제작된 특급 프로젝트로서 영국정부의 소재개발 지원까지 받아 완성한 수제품 등급의 제작기술이 투입되어 있다. 자사제작 유닛은 2.5웨이 구성으로 인클로저는 더블 체임버 구성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미드베이스 유닛은 후면의 통로를 통해 상단으로 레플렉팅하도록 설계되었다. 군용등급의 은도금 동선으로 와이어링되어 있으며 특유의 테플론 코팅 바인딩포스트를 일렬로 배치해서 장착하고 있다. 

 

처음 이 스피커를 시청할 경우 약간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잔향이나 베이스울림이 통제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음원에 있는 만큼을 재생하는 표준을 제시하는 어쿠스틱이다. 인클로저에서 공진을 제거하고 외벽에 카본을 붙이고 밀봉한 유닛 드라이버를 직접 제작하는 듯 윌슨 베네쉬 고유의 설계방식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왜곡이나 컬러레이션은 일체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모니터스러운 건조한 음색은 물론 아니다. 음색적으로 정확하고 간혹 잘 설계된 밀폐형 스피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유의 밀도감은 오디오적 재미가 크다. 특히 스테이징의 품질은 본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상하방향 스테이징이 잘 감지되었는데 녹음의 품질, 음원의 상황에 따라 스피커가 쉽게 사라지곤 한다.  

‘Isn’t She Lovely’의 휘파람소리의 핀포인트는 현재까지 시청한 제품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거의 월등하다고 할 정도의 음상과 위치정보를 보여준다. 휘파람이 가장 눈에 뜨이지만 오른쪽 기타의 동작과 어쿠스틱의 느낌도 매우 선명하게 들어온다. 보컬의 사이즈가 생각보다 약간 크게 그려지지만 외곽선을 선명하게 그리면서 허공에 떠오른다. 뛰어난 입체감이다. 베이스의 양감은 다소 축소된 듯 단정하지만 실제 연주라고 여겨지는 정도의 울림이다. 탄노이, 프로악과 비교한다면 이 부분의 양감은 다소 왜소하게 느껴진다. 스테이징도 약간 축소되어 스피커 양쪽 끝을 넘어서지 않고 안쪽에 형성된다. 다시 얘기하지만 매우 입체감있게 떠오른다.

 

‘Temptation’에서의 중량감을 앞의 곡과 선명하게 대비시켜 준다. 과장되지 않고 느껴지는 이 대비의 느낌으로 이 스피커의 정보량을 짐작하게 한다. 구간의 변화를 정교하게 구분하고 있다. 보컬의 음량이 작아지는 순간에서의 미세한 새김과 세부묘사가 뛰어나지만 무성음이 되는 순간에도 잠시나마 자극적으로 들리지 않아서 음의 마무리가 각이 진 곳이 없이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럽다. 다만 이런 곡에서의 매시브한 충진의 느낌이 다소 약하다는 점에서 시청자의 호불호가 엇갈릴 듯 하다. 이 곡에서 이 스피커의 성향이 분명하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또한 이제까지 시청한 중에서 현장에서의 상황에 가장 근접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피아노의 어쿠스틱이 매우 사실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슬램과 임팩스 순간의 다이나믹스와 양감의 크기, 하모닉스 등이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있는 실제 피아노의 모습을 보고 있는 느낌과 유사하다. 울림이 짧은 스타일이지만 어느 부분에서도 왜소해지지 않고 밀도있는 울림도 만족스러웠다. 높은 음과 짧은 음의 순간에도 예리해지는 부분도 없었다.  

브루크너 교향곡은 약음에서도 약화되지 않는 어쿠스틱이 약음파트 현악기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소위 마이크로 다이나믹스가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다. 팀파니에서 시작되는 투티부분의 분해력 또한 비교시청 중인 기종들과 비교해서 우월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뛰어났다. 기본적으로 빠른 템포의 이 부분에서 대역간 악기간의 어쿠스틱이 서로 겹치거나 혼탁해지는 느낌이 거의 없다. 특히 현악합주의 광채넘치는 연주는 과도한 장식을 들이대지 않으면서도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관악기가 음량에 따라 에너지가 늘고 감쇄하는 구간이 촘촘하게 구분되어 들려서 아름답게 느껴진다. 중량감은 다소 덜해 보이지만 임팩트의 순간과 에너지로의 이동이 분명한 팀파니도 선명하게 기저에 흐르고 합주가 되어서도 각자의 경로가 있는 듯 과도한 울림이 느껴지지 않게 조합이 전체 연주의 품질을 고급스럽게, 분위기를 세련되게 만들어 주었다. 훌륭한 브루크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