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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디지털 전쟁”

진공관과 솔리드스테이트, 디지털과 아날로그, DSD 와 PCM, 델타 시그마와 멀티비트 R2R,  멀티웨이 스피커와 풀레인지, 하이엔드 오디오 영역에서 절대 끊이지 않을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현재 하이엔드 디지털에서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주제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고 결국 CD, SACD 트랜스포트에까지 다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DAC 쪽에서 현재 가장 진지한 하이엔드 오디오파일 사이에서 주목받는 DAC를 조사해보면 그 결과는 놀랍다.

dCS 에서부터 시작해 MSB 등은 이해가 가지만 더 진지한 오디오파일 사이에서는 토탈 레퍼런스 D1, 램피제이터 Golden Gate, 트리니티 DAC 등 새로운 브랜드가 대거 화두로 등장한다. R2R 방식 칩셋을 사용하는 메이커가 다수 등장하며 아큐페이즈 같은 브랜드의 과거 R2R DAC까지 소환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 더 거론하자면 독일 T+A를 들 수 있다. 해외 포럼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고 대규모 라인업을 운영 중이지만 국내에 소개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브랜드가 T+A였다. T+A는 국내에선 이상하리만큼 미싱 링크로 존재했다.

“예견된 T+A 의 급부상”

T+A 의 여러 상위 라인업이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은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그리고 수입되어 셋업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실제 처음 접한 T+A 의 모습은 무척 멋진 디자인으로 나를 반겼다. 정확히 말하면 T+A 일렉트로어쿠스틱. 마치 CH 정밀이나 에소테릭 등의 커다란 몸체를 떠올리는 육중한 몸매와 탱크 같은 만듦새는 소유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사실 T+A 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1970년대 설립된 토종 독일 브랜드로 30여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앰프, 시디피, DAC를 비롯해 스피커에 이르기까지 오디오에 관련된 모든 컴포넌트를 자체 개발, 생산해왔다. 최근 많은 유럽, 미국 브랜드가 생산 공장을 중국에 두는 것과 달리 T+A 는 순수 독일 생산 기지를 갖추고 엄격한 품질관리를 해오고 있다. 이번에 국내 론칭한 T+A 라인업은 최상위 HV 시리즈다. 발단은 2003년 발포한 레퍼런스 진공관 라인업 V 시리즈였다. 이는 진공관 베이스로 매우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으며 개발 과정에서 많은 기술적 성과가 있다. T+A 는 바로 HV 시리즈라는 전대미문의 솔리드스테이트 레퍼런스 라인업 개발에 나섰다.

“막강한 통합 디지털 소스 기기의 탄생”

PDP 3000HV 는 HV 라인업 중에서도 소스 기기를 책임진다. HV 라인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HV, 즉 ‘High Voltage’ 전압 특성으로 HV 시리즈 프리와 파워앰프는 물론이며 소스 기기인 PDD 3000HV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T+A 는 이런 설계 철학을 통해 매우 낮은 디스토션과 다이내믹스를 제공하고 있다.

PDP 3000HV 의 몸체는 거의 웬만한 인티 앰프나 레퍼런스급 프리앰프의 몸매를 보는 듯 위풍당당하다. 전체적인 기구적 특성은 매우 독특하면서 동시에 이상적이다. 전원부를 따로 분리한다던가 트랜스포트와 DAC를 분리하는 등의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 제품은 CDP이며 SACDP이고 DAC다. 또한 DAC 와 트랜스포트 양 쪽 모두 균등한 비중을 두고 개발된 제품으로 피지컬 및 디지털 포맷에 완벽히 대응하고 있다.

전체 케이스부터 남다르다. 솔리드 알루미늄을 모노코크 방식으로 깎아 어떤 자기적 간섭이나 진동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물론 후면은 별도로 장착되는 구조로 이를 제외하면 알루미늄 섀시는 무려 다섯 개 블록으로 나눠진다. 일단 중앙 상단은 DAC 파트며 평행으로 잘라 하단은 CD/SACD 트랜스포트를 구성해 탑재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전원부의 구성인데 좌/우 사이드, 그러니까 앰프로 치면 방열판이 위치할 곳에 전원부를 완벽히 분리, 수납한 형태다. 그리고 좌/우 측이 완벽히 분리된 가운데 한 쪽은 디지털 전원부, 또 다른 한 쪽은 아날로그 회로를 위한 전원부를 설계했다. 따라서 이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전원 케이블이 필요하다.

내부 회로 자체도 완전한 듀얼 모노 설계를 구사하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사실은 PCM 와 DSD 에 대응하는 T+A의 방식에 있다. T+A 는 PCM 신호와 DSD 신호에 대한 신호 처리를 각각 완벽히 분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 DSD 와 PCM 신호의 DA 변환을 담당하는 DAC 칩셋부터 필터를 모두 따로 설계해놓고 있다. PCM 의 경우 전용 쿼드 더블 디퍼런셜 DAC 를 탑재하고 있으며 DSD 엔 T+A True 1bit DSD DA 컨버터를 탑재했다. 이로써 USB 입력의 경우 PCM 32bit/384kHz 는 물론 무려 DSD512 신호까지 독립적으로 컨버팅 가능하다.

오버샘플링 필터는 총 네 가지 옵션이 있어 long FIR, short FIR, Bezier FIR, Bezier 등에서 선택 가능하다. 특히 Bezier 옵션은 T+A가 가장 이상적으로 주장하는 자체 개발 오버샘플링 방식으로 약간의 차이를 두고 두 개 옵션으로 나누고 있다. 또 하나는 SACD DAC 모드에서 두 개 옵션을 두어 사용자가 사용하는 앰프와 스피커에 따라 가장 최적화된 노이스 셰이핑과 시그널 프로세싱을 돕고 있다. 또한 DSD DAC 모드도 따로 존재한다. 이는 DSD 신호 처리에 있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초고역 노이즈 및 대역 커트 그리고 T+A 가 고안한 True DSD 기술에 대한 적용 유무로 구분한다. 총 네 개의 DSD 모드는 유저가 사용하는 시스템에 따라서 신중하게 결정, 적용할 필요가 있다.

PDP 3000HV 의 이와 같은 PCM VS DSD 구도는 후면 단자 구성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디지털 입력은 옵티컬 2계통, AES/EBU 및 코엑셜 각 1계통, BNC 등, USB 까지 다양하게 지원하며 코엑셜 디지털 출력까지도 지원한다. 그런데 아날로그 출력단이 무려 네 조나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 좌/우 대칭 구조에 PCM 과 DSD에 별도의 아날로그 출력단을 부여해 배치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쪽은 PCM 전용 출력단으로 이는 PCM 인코딩 음원출력에만 대응한다. 또 하나는 DSD 대응 출력단이지만 동시에 PCM 출력에도 대응한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테스트에 사용한 앰프는 T+A 의 P3000HV 프리앰프와 A3000HV 그리고 독립형 전원부 PS3000HV를 사용했다. 스피커는 T+A 의 테스트에서 그 상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된 아발론 Transcendent 스피커를 매칭했다. PDP3000HV 가 기본적으로 CD/SACDP 지만 주로 오렌더 N10과 AES/EBU 및 USB 등의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DAC로서의 성능 테스트에 주력했다. 시청실은 양재동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우선 주지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T+A를 떠올리면서 오디오넷이나 버메스터 등 지금까지 독일 제품의 음질적 특성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T+A 는 독일 제품다운 정교한 만듦새와 진동과 전기적 특성을 고려한 첨예한 설계와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이다. 그러나 음질적으로는 건강미 넘치는 호방함에 더해 첨예한 음조의 균형감각 그리고 어떤 군더더기도 없는 명확한 음상처리가 특징이다. 그리고 절대 음의 엣지를 강조하여 딱딱하거나 건조한 음색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무척 부드럽고 투명하며 아날로그적인 늬앙스가 충만한 편이다.

T+A PDP 3000 HV 는 좀처럼 앙상하거나 건조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풍부한 계조 표현과 함께 세밀한 그라데이션을 통해 악기들의 표현력을 구름처럼 풍부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반대로 음의 진행 방식은 힘 있고 당차다. 예를 들어 폴 사이먼의 ‘The boy in the bubble’ 같은 곡에서 드럼 타격음은 넓은 면적에 걸쳐 우람하고 밀도 높게 들린다. 아발론 스피커의 홀로그래픽 음장을 뿌옇게 흐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고역에서 저역까지, 후방에서 전면까지 팽팽하게 확장한 광대역 특성을 보인다. 기본적인 정보량이 무척 풍부하고 높은 해상력 덕분에 각 악기의 표면 질감이 매우 생생하게 드러난다. dCS 보다는 MSB 쪽에 더 가까운 사운드로 더블 베이스의 중역대가 두터우면서 부드럽고 묵직한 탄력감이 일품이다.

아슈케나지가 연주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삼중주 2번 3악장에서 음색적인 특성은 절정에 이른다. 중역과 고역을 오가는 악기 힘의 강약 조절이 무척 세밀하게 그려지져 첨예하며 긴장감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대체로 낮은 약음에서도 절대 에너지가 휘발되지 않으며 낮은 볼륨에서도 밸런스와 이미징이 저하되지 않고 선도 높은 실체감을 끈질기게 유지한다. 낮은 약음부터 좀 더 강한 음까지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무척 뛰어나며 그 폭이 굉장히 넓다. 온도감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냉정한 독일 사운드도 아니다. 시종일관 진하고 묵직한 힘과 적절한 잔향 등은 신경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게 음악에 몰입하게 만든다.

어떤 시스템에 T+A가 PDP 3000HV 가 삽입되면 마치 프리앰프를 업그레이드한 듯한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전체적인 추진력, 다이내믹스는 물론이며 악 악기의 위치가 선명해지고 무대가 확장되어 드넓고 풍요로운 무대와 마주하게 된다. 게다가 광활한 광대역 특성은 물론 무대의 전/후 레이어링은 기존에 듣던 음악에 한층 더 풍부한 생명력을 부여해준다. 예를 들어 한스 짐머의 ‘Dark Knight – Aggressiv Expansion’을 들어보면 순간적인 어택이 빠르면서 묵직한 펀치력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방금 잡아오린 활어처럼 살아 숨쉬는 듯 한 역동적 저역 움직임이 깊게 서려있다. HV, 즉 고전압 설계의 장점이 충분히 성공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짐작된다.

“총평”

벨벳처럼 포근하고 보드랍다. 그리고 그 표면엔 윤기가 스며있어 마치 스시를 음미하듯 포만감 넘치는 식감이 느껴진다. T+A 는 해외 하이엔드 오디오 쇼 리포트에서 많이 접해보았던 메이커지만 국내 소개되지 않아 개인적으로도 무척 궁금한 메이커였다. 토종 독일 브랜드지만 매우 다양하고 방대한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주 지역까지 그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테스트 결과 그 이유는 분명했다. 피치가 다소 높고 에지가 강해 강도 높은 쾌감으로 단시간 청취자를 제압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따라서 장시간 감상시 쉽게 피곤해지는 법이 없다. ‘Digital Fatigue’를 없애기 위한 그들의 독보적인 필터와 오버샘플링 기술 등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앰프로 비유하자면 약간 더 밝은 그리폰 같고 디지털 기기로는 MSB 나 기타 R2R 래더 DAC처럼 아날로그의 향기를 힘껏 품고 있다. PDP 3000HV 는 디지털의 오랜 담론에 대해 탁월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피지컬 포맷과 음원, 그리고 CD와 SACD, PCM 과 DSD 에 대한 해묵은 헤게모니 전쟁이 적어도 이 모델 앞에서 무색해진다. PCM 과 DSD 음원을 모두 아우르며 CD 와 SACD 등 피지컬 포맷을 여전히 즐기는 오디오파일을 위한 꿈의 소스기기가 등장했다.

Writ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