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그간 오랫동안 꿈꿔왔던 탐방 중의 하나가 드디어 이뤄졌다. JBL을 방문한 것이다! 이 회사의 제품을 좋아하던 혹은 싫어하던, 오디오에 관심을 가진 이상 JBL을 의식하지 않은 분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거창한 K2 시스템부터 저가의 보급형에 이르기까지 한 번이라도 이 회사의 제품을 써보지 않은 분 또한 없을 것이다. 한때 스피커의 대명사로 군림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멋진 제품을 만들어내는 JBL은 늘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이번에 드디어 소망을 이루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왜 JBL 하면 제임스 B. 랜싱만 떠올리는가다. 물론 그가 천재 디자이너이며, JBL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단지 그뿐일까? 그가 정식으로 JBL을 창업한 것은 1946년이지만, 3년만에 자살로 비운의 삶을 마감한다.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 대부분 잘 모르고 있다. 이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6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JBL을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쉬운 것은 1969년 회사가 하먼 카든으로 넘어가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 것이다. 어쩌면 하먼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그러나 내 접근은 다르다. JBL을 실질적으로 이끈 디자이너의 존재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1기는 당연히 랜싱의 시대이지만, 실질적으로 JBL을 명실상부한 톱 브랜드로 만든 분은 바로 윌리엄 H. 토머스다. 그가 약 20년에 걸쳐 JBL을 운영하면서 하츠필드, 패러곤, 하크니스, 올림푸스 등 전설적인 명기들뿐 아니라, SA 600 인티 앰프, SG 520 프리 및 SE 400S 파워 앰프 등을 각각 내놓은 점 역시 잊어서는 안된다.

 

그 이후 하먼 카든의 시대가 열리지만, 대략 7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JBL을 지킨 그렉 팀버스 (Gregg Timbers)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를 통해 우리는 L300부터 에베레스트, K2 시리즈, S9800, DD 66000 등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방문에서 놀랍게도 그렉과 만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아무래도 은퇴가 머지 않은 분이라, 실질적으로 그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면에서 상당히 이번 방문은 운이 좋았다.

 

반면 호사다마라고, 불운이 하나 있으니 바로 2년 전에 대부분의 생산 시설을 멕시코 티후와나로 이전했다는 점이다. 좀 더 서둘렀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대목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시제품 제작이나 테스팅 룸, 무음향실 등의 시설을 참관할 수 있었으므로, 그런대로 만족스런 탐방이 되었다.

 

 

 

 

현재 JBL이 위치한 곳은 L.A. 북쪽 노스리치 지역으로, 정식으로는 발보아 대로 8500번지가 주소다. 이곳엔 하먼 인터내셔널 지사도 함께 있는데, 생산 시설의 이전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내부 조직의 변화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참고로 하먼 본사는 코네티컷주 스탬포드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무려 도쿄 돔의 3.8배의 부지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 자리한 2층짜리 커다란 건물은 과연 스피커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JBL의 위용에 부합되며, 이는 동사의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한층 높이게 만들기도 한다. 어쨌든 JBL은 다른 회사들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진 메이커가 절대 아니다. 여전히 그렉 팀버스는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고, 인터뷰 말미에 밝혔지만, 올해와 내년에 걸쳐 몇 가지 흥미로운 모델들이 활발하게 출시될 예정이다. 그러므로 입구에서부터 좀 주눅이 든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건물은 하먼 인터내셔널쪽과 JBL쪽으로 나뉘는데, 방문객은 일단 하먼쪽으로 가야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무슨 호텔의 리셉션 룸을 방불케 할 만큼 단정하게 꾸며진 실내 인테리어에 놀라게 되지만, 한쪽 구석에 비치된 올림퍼스와 DD 66000의 모습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래, 지금 JBL에 와 있구나.

 

아무래도 이곳은 컨슈머용뿐 아니라 프로용 스피커도 제작하는 곳이다. 당연히 보안 검색이 까다롭고, 담당자의 안내가 따르지 않으면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 간단하게 배지 등록을 하고, 그렉을 만나 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공장 시설이 이전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R&D에 필요한 시설은 간단치 않다. 그러므로 투어 자체에 상당한 시간이 투여되었음은 물론이다.

 

 

 

 

이곳은 하먼 카든 건물을 들어서자 만나는 공간이다. 오른편으로 길게 리셉션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고, 왼편으로 소파가 놓여 있다. 그 안쪽에는 하먼 카든 제품들의 전시실이 있는데, 이것은 제일 나중에 참관하게 되었다.

원래 JBL은 하이파이 메이커였지만, 프로용 제품들의 비중도 상당한 편이다. 이번 방문은 컨슈머용에 국한되어, 이쪽 관련 시설만 보기로 했다. 팀버스 씨가 나왔으므로, 그의 안내로 안에 들어갔다.

 

 

 

 

여기는 팀버스씨의 사무실. 한쪽에 동사의 이정표가 된 에베레스트의 사진이 놓여 있고, 책상 맞은편에는 S9800의 미니어처가 놓여 있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디자인이 빼어난 제품이라 다시 생각되었다. 일단 이곳에서 인터뷰를 한 다음, 시설을 둘러보게 되었다. 물론 인터뷰 내용은 본 기사 말미에 나와므로 참조 바란다.

 

 

 

 

처음 들린 곳은 이른바 아레나라고 불리는 측정실이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프로용 스피커들을 체크하는 곳으로, 야구장이나 축구장과 같은 커다란 경기장에 설치될 것을 전제로 설계된 제품들을 테스트한다. 천장에 매달거나, 라인 어레이로 쭉 배열시킨 모습에서 스타디움의 열기가 상상이 된다. 한편에 스크린도 설치되어 있어서 영상물을 틀어놓고 연구하기도 한단다. 여태 가본 곳 중 가장 큰 테스팅 룸이 아닐까 싶다.

 

 

 

 

이곳은 이른바 다각도 시청실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스피커를 이리저리 위치를 옮기거나 각도를 바꿔서 그 음향을 체크하는 곳이다. 사실 하이파이 스피커들은 정면에서 듣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홈 씨어터라고 하면 뒤편에 설치하거나 천장에 다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 어떤 방사각이 나오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주로 이런 각도 부분을 측정하는 공간이라 보면 된다.

 

 

 

 

이쪽은 시제품을 만드는 곳이다. 이언 버거라는 분이 책임자로, 일단 여러 개의 나무에 다양한 형태의 구멍이 뚫린 것이 흥미롭다. 이것은 유닛의 크기에 맞춰 얼마든지 부착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워낙 많은 제품을 생산하다보니 아예 이렇게 크기별로 준비해 놨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모두 연결하면 일단 스피커 통안에 유닛이 들어간 형태가 완성된다. 이를 “쉐이퍼” (Shaper)라 부르는데, 우리로 치면 간이 인클로저 정도로 번역될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두께나 길이 등 변수가 많아 이를 일일이 디지털로 측정해서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므로, 가장 까다롭고 지난한 공정이라 하겠다. 참고로 각각의 인클로저는 나사로 박아서 일단 완성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시제품이 완성되면, 이 박스를 통째로 중국이나 멕시코의 공장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CAD 작업을 해서 설계도를 보내면 그만이지만, 직접 통을 만져보고, 유닛의 위치를 확인하는 등, 실제 제작에 도움이 되는 점은 직접 실물을 확인하는 것이리라. 이 부분에서 역시 오랜 기간 스피커를 만들어온 회사다운 노하우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간단한 부품을 직접 제작하는 곳이다. 사실 이 공장에는 어마어마한 종류의 부품이 모두 망라되어 있지만, 간혹 치수가 맞지 않거나 꼭 요긴하게 필요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커버하기 위한 제작실이다. 

 

 

 

 

양쪽 벽에 빼곡한 선반 가득 들어있는 것이 바로 부품들이다. 스피커 제작에 필요한 나사나 너트 외에 각종 저항, 콘덴서 등이 종류별로 다 비치되어 있다. 물론 메이커들도 다양해서 현행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부품들을 가져다 놨다고 보면 좋으리라.

 

 

 

 

무향실로 가기 전 팀버스씨가 서 있는 곳이 바로 다양한 유닛 부착용 합판들이다. 여기서 원하는 사이즈의 합판들을 꺼내서 시제품을 제작한다.

이어서 들린 곳이 무향실로, “9 마이크 룸”으로 불린다.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을 한 개의 마이크로, 한 방향에서 측정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지 않는가? 긴 막대기에 위 아래 무려 9개의 마이크를 달아 스피커를 측정하는 접근법이 당연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흔히 스피커를 앞에 놓을 때 서서도 듣고, 앉아서도 들으며, 심지어 누워서 듣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연히 다양한 데이터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무향실에 가봤는데, 이곳은 “360도 체크 룸”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즉, 스피커를 360도 각도 모두에서 체크하는 것으로, 당연히 프런트 배플뿐 아니라, 그 뒤로 돌아 나오는 음까지 모두 측정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아 스피커라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모두 체크하고, 다시 고치고 하는 작업의 반복이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공장에서 단순히 조립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공부가 되었다.

 

참고로 흡음재로 쓰인 것들은 IAC라는 영국 회사에서 만든 것들이다. 부피는 크지만 무겁지 않으므로, 개인들이 사서 집안에 꾸미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세 번째로 들린 무향실은 “스탠드 룸”으로 불린다. 이곳은 홈 씨어터 관련 리어 스피커나 작은 북셀프 스피커를 측정하는데 용이한 공간이다. 당연히 스탠드 위에 다양한 각도로 스피커를 올려놓고 측정한다. 360도 전방위로 측정도 가능하다.

참고로 이곳에서 사용하는 측정기는 자체 제작한 것으로, 하먼 카든 소속의 BSS에서 만든 BLV-32라는 모델이다. 9개의 마이크가 있어서 9개의 인풋을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고, 크게는 16채널까지 테스팅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번에 들린 곳은 드라이버 개발실이다. JBL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직접 유닛을 생산하는 것이고, 특히 “혼 + 컴프레션 드라이버”라는 난이도 높은 기술을 아직도 채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클로저만 따로 놓인 복도라던가, 시작품이 여기저기 늘어선 모습이 다수 어수선하지만, 어찌 보면 제일 핵심이랄 수 있는 드라이버 개발은 여기서 이뤄지고 있다. 매번 새로운 소재와 다양한 접근법으로 늘 우리를 놀라게 하는 JBL의 핵심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무슨 첨단 연구실처럼 보이는 이곳은 고역만 따로 측정하는 방이다. 각종 첨단 레이저를 동원해서 유닛이 앞뒤로 움직이는 부분부터 어떤 각도로 방사되는가 등 다양한 측정이 이뤄지고 있다. 

 

 

 

 

패키지용 홈 씨어터를 체크하는 곳. JBL은 어마어마한 플래그쉽 모델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서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이런 보급형 제품도 다양하게 제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고, 이런 식으로 꼭 실전 테스트를 거친다. 경험이 많은 분들이 미세 체크를 수없이 행해서 완성품에 이른 만큼, 이 부분에서 JBL의 강점이 엿보인다.

 

 

 

 

이곳은 하이파이 혹은 하이엔드 제품을 집중적으로 테스트하는 곳이다. 현재는 서브 우퍼를 체크중으로, 그 덕분에 아무래도 어수선해 보인다. S9800이나 DD 66000 등이 이곳을 거쳐서 최종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역시 홈 씨어터용 제품들을 테스트하는 곳이다. 단, 아까 말한 패키지용 수준은 벗어나 본격적으로 AV 리시버를 동원한 가운데 미들 클래스 정도의 스피커들을 배열해서 듣는 수준이라 하겠다. 따라서 여러 가지 스피커들을 연결했다 뺐다 하는 작업의 고된 반복이 이뤄지고 있다.

 

홈 씨어터라는 것이 대충 만들어서 연결하면 우퍼 펑펑 터지고, 폭발음이 작렬하면 그만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런 엄밀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으면 명성에 걸맞는 제품을 결코 만들 수 없다.

 

 

 

 

팀버스씨가 “마이 룸”이라과 표현한 본격 시청실이다. 역시 DD66000을 메인 스피커로 활용하는 가운데, 마크 레빈슨의 제품들이 매칭되어 있다. 여러 곳에서 이 제품을 시청한 경험으로 말하면, 잘 조율되고, 다듬어진 정교한 음향이라 말하고 싶다.

물론 볼륨을 높이면 어마어마한 기세로 달려들지만, 적정 음압으로 맞춘 후 재즈며 록을 들으면 리듬감이 넘실거리면서 음악에 빨려들어가게 한다. 피가 끓는다는 표현을 가끔 쓰는데, 바로 여기서 들은 음이 그랬다. 그러면서 결코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부분이 역시 하이엔드 제품이구나 탄복하게 한다.

참고로 이런저런 음악을 틀어주는 팀버스씨의 표정은 완전히 소년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로 이런 음악에 대한 사랑과 동경이 있기에 지금까지 줄곧 스피커 제작에 매진해오지 않았나 싶다.

 

 

 

 

메인 홈 씨어터는 JBL 신세시스의 전체 능력을 점검할 수 있는 룸이다. 입구에 존 어글 (John Eargle)이라는 분의 이름이 보이는데, 이 분은 30년 이상 스튜디오 엔지니어로 일하며 JBL과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그의 공헌을 높이 사서 이곳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싶다. 만일 팀버스씨가 은퇴하고 나면, 그가 마이 룸이라 부른 공간에 역시 그의 명패가 붙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전체적으로 블랙을 기조로 다소 어두운 분위기가 인상적인데, 실제로 극장에 가면 그렇지 않은가? JBL의 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알텍이며 웨스턴 일렉트릭과 만나게 되고, 극장용 스피커라는 출발점이 나온다. 그 원점이 다시 생각나게 하는 생생하고, 리얼하며, 다이내믹한 음을 만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하먼 카든의 전시실로, 이 회사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성격상 어마어마한 스피커를 전시하기 보다는 우리가 피씨 파이라 부르는 작고 예쁜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천천히 둘러보니 손에 꼭 잡히는 미니 오디오나 해드폰 등이 마음을 흔든다. 참고로 AKG 역시 이 회사 산하의 브랜드다.

이윽고 참관을 마치고 리셉션 룸에서 악수를 하고 헤어지는데 왠지 코끝이 찡해진다. 개인적으로 JBL 스피커로 오디오 취미를 시작했고, 여러 모델을 체인지하면서 받은 감동이 컸기 때문에 이번 방문은 개인적인 염원이 이뤄진 경우라 하겠다.

올해 도쿄에서 신제품을 여럿 소개한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꼭 들러서 시청해봐야겠다.

다음은 그렉 팀버스 (Gregg Timbers)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워낙 할 이야기가 많았지만 시간 관계상 중요한 포인트만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점, 심히 아쉽게 생각한다. 편의상 GT로 표기하겠다.

 

 

 

 

 

GT : 저는 1948년 3월 16일에 LA 지역 밴 나이스에서 출생했습니다.

 

 

GT : 그렇습니다. 실은 조부께서 1895년에 LA로 이주하면서 식구 대부분이 이쪽 지역에서 나고 자랐죠. 물론 할머님도 LA 출생이랍니다.

 

 

GT :조부께서 뮤직 스토어를 경영했던 관계로 일찍이 저희 가족에게 음악은 당연한 존재였습니다. 더구나 모친께선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전도가 유망했죠. 그러나 부친과 만나 결혼하면서 그만두었답니다. (웃음) 집에는 당연히 오디오가 있었고, 3살 때부터 45 RPM 음반들을 만지고 놀면서 레이블에 그려진 그림이며 글을 유심히 봤다고 하더군요. 12~3세 무렵엔 히스 키트를 조립하거나, 래디오 색에 있는 토이 스피커를 구하는 등, 점차 오디오에 빠져들었습니다. 당시 12인치짜리 젠센 코액셜 스피커를 갖고 놀던 기억이 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개의 스피커를 갖고 있었습니다.

 

 

GT : 그렇죠. 도어스, 피터 폴 앤 매리, 마마스 앤 파파스 거기에 샌 프란시스코 지역의 숱한 사이키델릭 밴드들 ... 또 위스키 어 고고나 록시와 같은 엄청난 클럽들이 많아서 한참 음악에 몰두했었죠. 록의 황금기를 리얼 타임으로 체험한 것은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GT : UCLA에서 전기전자 계통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집 부근에 있는 하이파이 색이라는 오디오 숍에서 아르바이트도 시작했죠. 처음에는 테크니컬한 쪽으로 일을 시작해서 인스톨과 같은 일까지 맡았습니다. 그 때 JBL의 영업 사원을 알게 되어, 졸업 후 자연스럽게 JBL에 지원해서 입사하게 된 것입니다.

 

 

GT : 그렇죠. 시드니, 하먼 ... 그러고 보니 시드니는 작년에 타계했군요.

 

 

 

 

 

GT : 제가 사회 초년병이던 70년대 초는 그야말로 오디오 업계가 호황이었습니다. 누구든 팔 수 있을 만큼 팔 정도로 시장이 뜨거웠습니다. 저는 JBL에서 두 세 달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후, 바로 신제품 프로젝트에 배속되었습니다. 이때 만든 것이 4331, 4333, 4315, L300 등입니다.

 

 

GT : 아닙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혼이 장착된 제품을 좋아합니다. 그럴 경우, 2웨이나 3웨이로 제작할 수 있습니다. 관건은 얼마나 혼이 넓은 대역을 담당하느냐죠. 4344나 4340과 같은 4웨이 스피커는 제가 아닌 다른 엔지니어의 작품입니다.

 

 

GT : 그렇죠. 우퍼에 커다란 혼을 더한 포름이 제가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이 경우 크로스오버 포인트를 되도록 낮춰서 우퍼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랍니다. 반면 콘을 사용할 경우, 어쩔 수 없이 3웨이, 4웨이로 제작해야 합니다.

 

 

GT : 1978년 무렵입니다. 알니코 자석을 만드는 코발트라는 소재가 주로 남아공에서 생산되는데, 여기서 내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알니코 가격이 폭등해서 도저히 단가를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페라이트의 장점은 2차 하모닉스에서 발생하는 왜곡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한동안 사용했답니다. 그러다가 에베레스트를 만들면서 다시 알니코로 돌아왔습니다. 비싸지만 자성이 쉽게 입혀진다는 장점을 도외시할 수 없었으니까요. 반면 70년대 초반에 생산된 L 시리즈의 스피커는 다룰 때 조심해야 합니다. 알니코 자석을 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오래 전 물건이라 크게 볼륨을 올리면 자성이 떨어져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 부분을 극복해서 현행 제품의 경우 이런 문제는 없습니다.

 

 

 

 

 

GT : 70년대와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경쟁자도 많아져서 업계 전반을 장악하기 힘들어졌습니다. 또 미국 자체가 불황이었고요. 또 MTV다 뭐다 케이블 방송들이 나오면서 TV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많은 회사들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일례로 알텍과 같은 회사는 더 이상 하이파이 스피커를 만들지 않습니다. 탄노이도 이리저리 매각된 경험이 있고요.

 

 

GT : 하먼 카든을 주재하는 시드니 하먼씨가 JBL을 사들인 것은 1969년입니다. 정확히는 하먼 카든이 사들인 게 아니라, 시드니가 운영하는 저비스 코포레이션 (Jervis Corp.)이 구매한 것이죠. 이때 산하에 JBL뿐 아니라, 오르토폰, 탄노이, 하먼 카든 등이 있었죠. 그러다 1970년대 초에 회사명을 하먼 인터내셔널로 바꿉니다. 그러던 중 70년대 말,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그가 내각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부 일을 하려면 절대로 사기업을 따로 운영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잠시 베아트리스 식품 (Beatrice Foods)에 팔고, 3~4년의 공백기를 가진 후 다시 시드니가 사들인 것입니다.

 

 

 

 

 

GT : 원래 하먼씨는 엔지니어입니다. 버니 카든과 공동으로 1950년대에 하먼 카든을 설립했죠. 그 후 마케팅쪽으로 빠져서 상당히 공격적인 경영을 했습니다. 워낙 창의적이고, 재치있는 분이라 이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죠. 요즘으로 치면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을 연상하면 됩니다.

 

 

GT : 원래 저희 회사엔 덕 워너라는 디자이너가 있었습니다. 70년대에 주로 활약하면서 L300뿐 아니라 피라밋 모양의 L250도 만드는 등,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다 80년대에 오면서 보다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자는 의미로 대니얼과 접촉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첫 작품이 1984년에 나온 DD55000 에베레스트입니다. 사실 댄은 그 전에 일체 스피커를 디자인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성공적이었죠. 이후 컨트롤 1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DD66000 에베레스트 2에 이르기까지 25년이 넘게 저희 회사와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GT : 네. 자신이 경영하는 디자인 회사가 따로 있어서 저희뿐 아니라 다양한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GT : 이 제품은 JBL 창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모던 퍼니처와 같은 아름다움에 패러곤과 하츠필드의 장점을 수용한 디자인을 댄에게 의뢰해서 작업이 이뤄졌죠. 처음에 댄은 4~5개의 디자인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첫 번째 시안을 보자마자 “오, 마이 갓!”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나머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죠. 그만큼 저도 첫눈에 매혹되었습니다.

 

 

GT : 스위프티를 말하는군요. 실제로 이치노세키에 있는 그의 클럽을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옛날 JBL 명 유닛들을 사용해, 역시 JBL 앰프들과 세팅한 소리는 정말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약간 공격적이긴 하지만 실황 연주를 방불케 하는 박력이 압권이더군요. 당연히 저희와 친분이 두텁고, 일본 내 마케팅에서 큰 역할을 해줍니다.

 

 

GT : 사실 JBL은 일렉트로닉스 계열에선 큰 재미를 못 봤습니다. 520과 같은 앰프를 봐도 제르마늄 트랜지스터를 사용했는데, 내구성에선 문제가 좀 있습니다. 이미 저희 그룹엔 마크 레빈슨이나 크라운이 있기에 굳이 따로 앰프를 만들 필요가 없죠.

 

 

 

 

 

GT : 심벌즈는 메탈 소재입니다. 이것을 스틱으로 두드리면 소리가 사방으로 확 퍼져나가는 특징이 있죠.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사용하면 이런 음이 빠르게, 리얼 타임으로 재현됩니다. 반면 돔 트위터를 쓰면 약간 음이 소프트해지죠. 참고로 저희는 우퍼도 아주 고능률의 제품을 사용합니다. 그래야 빠르게 음량이 변화할 때 적극 대응할 수 있죠. 또 킥 드럼이나 더블 베이스의 움직임 등을 표현할 때 상당히 효과적이라 봅니다.

 

 

GT : 아직 비밀입니다. 사실 저는 대형 프로젝트로 기획된 큰 스피커를 제조하는 데에 아직도 관심이 많습니다. 역시 JBL이라는 브랜드에 걸맞는 제품을 만들고 싶은 것이죠. 하지만 요즘 시장의 추세는 이와는 정반대여서, 그 부분에 애로 사항이 있습니다. 제가 은퇴하고 나서도 후배들이 이런 자긍심을 반영한 걸작들을 만들어주길 기대합니다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올해엔 3개 정도의 신제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희에게 일본 시장이 무척 중요하므로, 대략 9월쯤 윤곽을 드러내리라 봅니다. 이 즈음에 도쿄 오디오 쇼가 개최되니까, 그 스케줄에 맞춰야죠. 그리고 나서 내년쯤에 하이엔드 급의 제품이 두 종 나올 계획이랍니다.

 

 

GT : 저희는 대략 3개의 쇼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첫 번째가 도쿄 오디오 쇼고, 5월에 열리는 뮌헨 쇼도 유럽 시장을 위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열리는 CEDIA죠. 올 도쿄 쇼엔 마크 레빈슨에서도 새 라인업을 발표하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GT : 이쪽은 HPAV라고 해서, 하이 퍼포먼스 오디오 앤 비디오라는 모토를 갖고 움직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일반 오디오 숍에서 판매하지 않고, 인스톨을 하는 분들과 직접 대면해서 판매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특별하게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홈 씨어터를 꾸미려는 분들의 세세한 요구에 보다 부응하기 위한 방침이죠. 그래서 이런 인스톨 전문가를 열 명 정도 따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GT : 원래 JBL은 쉽게 구동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별로 가리는 앰프는 없죠. 개인적으로는 집에서는 에베레스트 2를 퀵실버에서 나온 M135와 패스랩의 XA 60.5그리고 앤섬의 스테이트먼트를 트라이 앰프로 울리고 있습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마크 레빈슨도 좋은 매칭이었고, 에어의 제품들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GT : 2010년에 멕시코의 티후하나에 있는 공장으로 대부분 이전했습니다. 여기서는 주로 프로용 드라이버나 블루 배플을 가진 스피커들을 생산합니다. 물론 엔트리 클래스 제품들은 중국에서 생산하고요.

 

 

GT : 저는 JBL 한 회사에서 40년이 넘게 근속했습니다. 지금 회사를 둘러보면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죠. 그래도 은퇴하고 싶지 않습니다. 1주일에 20시간 아니 10시간을 근무해도 좋으니까, 계속 스피커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건강히 오래오래 살아서 애호가들을 위해 멋진 스피커들을 많이 만들어주십시오.

 

GT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