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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암막 환경을 거부한다"

프로젝터가 AV 라이프 깊숙이 들어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단 하나의 불문율을 깨지 못했다. 모든 조명을 끄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조차 차단해야 하는 암막 환경이 그것이다. 암막 환경이 필수적인 프로젝터는 TV와 같은 디스플레이 기기의 카테고리에 있으면서도 널리 보급되는데 발목을 잡아온 것도 사실이다.

프로젝터의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젝터 제조사는 물론 스크린 제조사들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안해왔다. 프로젝터는 스크린에 광원으로부터 나오는 빛을 투사하여 화면을 구현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러한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주변에 광원이 있거나 주광에서는 이미지가 흐릿하여 사용하기 불가능할 정도였다.

가장 먼저 프로젝터 제조사들이 나섰다.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광원의 세기 즉, 밝기를 높이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변광이 있거나 완벽하게 차광이 되지 않더라도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젝터의 밝기만 단순하게 높이게 되면 많은 문제점을 수반하게 된다. 색상 표현력이 부정확하거나 블랙의 들뜨는 현상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크린 제조사도 나름대로의 솔루션을 내놓았다. 스크린의 밝기(게인)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스크린의 밝기를 높이면 상대적으로 스크린에 투사되는 광량이 작아도 이를 극대화하여 밝은 영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 이유의 고광량 프로젝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로젝터와 스크린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단순히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생생한 컬러표현과 깊숙이 내려가는 블랙 등 완성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팬텀 HALR 스크린"

스크린의 명가 스튜어트에서 내놓은 팬텀 HALR(High Ambient Light Rejection)(이하 ‘팬텀’) 스크린은 주변광과 암막 환경이 아닌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주변 광원의 82% 정도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명실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컨셉의 스크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광학 스크린(Optical Screen)이라는 개념으로 덴마크의 DNP라는 업체에서 주광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스크린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광학 스크린은 주광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 적잖은 약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팬텀 스크린은 표면의 반사율과 흡수율을 적절히 튜닝하여 주광에서도 또렷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데, 그 구조를 살펴보면 모두 3개의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이 되는 고정 스크린 본체 위에 반사율이 높은 광학 코팅의 반사층 레이어 그리고 가장 위에는 빛의 투과 및 반투명의 다크 디퓨저를 쌓아올렸다.

이러한 광학계열의 스크린은 태생적으로 반사에 관련된 문제가 불거지기 십상인데, 팬텀 스크린을 이를 완벽하게 극복한 모습이다. 리뷰에 사용된 스크린의 크기는 150인치로 1.0게인의 밝기사양을 갖는 전동 텐션타입의 제품이다. 팬텀 스크린은 4K는 물론, 8K, 16K 이상의 해상도에도 대응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또한, 소비자가 원할 경우 사운드 스크린 타입으로 제작이 가능하며, 스크린의 형태도 현재 출시된 모든 형태로 제작할 수 있다고 하니 그 활용성은 실로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암실 환경에서 탄탄한 기본기"

그렇다면 실제 팬텀 스크린의 능력은 어느정도 일까? 리뷰를 진행한 곳은 하이파이클럽 메인홀. 간접 조명은 물론 직접 조명까지 다양한 조명이 설치된 환경이었다. 사용된 프로젝터는 엡손의 플래그십 프로젝터 EH-LS10500으로 밝기는 1,500루멘이다. 레이저 광원임을 감안하더라도 보편적인 홈시어터 프로젝터의 밝기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스크린의 기본능력을 체크해보기 위해 모든 조명을 끈 암실 환경에서 시청해보았다.

암실환경에서 팬텀의 능력은 인상적이었다. 광학계 스크린은 명실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스크린이지만 암실환경에서는 명암비가 대폭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이러한 결과는 앞서 소개한 팬텀 스크린의 구조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더욱 깊숙이 내려가는 블랙 레벨은 영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해주며, 몰입감을 높여준다. 특히, 이러한 특징은 해상도가 높은 소스에서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다만, 광학계 스크린이다 보니 밝기가 밝은 프로젝터에서 더욱 그 효과가 커진다. 밝기가 낮은 프로젝터에서는 블랙의 레벨은 차분하게 가라앉는 반면, 색상 표현의 생동감이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테스트에 사용한 EH-LS10500 보다 조금 더 밝은 약 2,500~3,000루멘 정도의 프로젝터를 사용했다면 깊은 블랙에 더해 영상의 생동감도 더욱 좋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 조명의 영향에서 얻은 자유"

이제는 팬텀 스크린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명실환경을 체크해보자.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한 뒤 직접광, 간접광, 일반 가정 거실 정도의 조명 등 다양한 환경을 테스트했다. 스크린에 직접 영향을 주는 직접광을 제외하면, 나머지 상황에서는 기대이상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프로젝터는 ‘다이내믹’ 모드와 ‘거실’ 모드를 번갈아 가며 살펴보았는데, 최대 밝기를 보여주는 다이내믹 모드는 디스플레이 기기 제조사들에서 제공하는 4K 데모영상 같은 비디오 클립에서는 명부와 암부에서 모두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UHD 블루레이나 풀HD 블루레이 등 필름 소스에서 다이내믹 모드는 색상의 왜곡이 있어 거실 모드로 시청하는 것이 더 적합했다. 시네마 모드 등 영화전용 모드는 1,500루멘의 밝기 탓에 암실에서는 효과적이었지만, 명실에서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명실환경에서도 암실에 근접한 영상을 보여준다는 부분은 인상적이었지만, 몇몇 약점도 보인다. 암실 환경에 비해 콘트라스트가 다소 떨어져 펀치력이 다소 약해진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특별히 단점으로 꼽을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 명실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계조 표현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간접 조명환경에서는 암실환경과 거의 유사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스크린에 직접 조명만 피한다면 더 큰 스크린으로 TV를 사용하듯 활용할 수 있다. 광학계 스크린의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스파클링 노이즈도 거의 감지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팬텀 스크린이 기존 광학계열의 스크린에 비해 가장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은 핫 스팟이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광학 계열의 스크린 특성상 프로젝터의 광원에서 나오는 빛이 스크린에 반사되는 순간 스크린의 중앙부분에 가장 밝은 빛이 모아지게 되는데, 이렇게 생기는 것이 핫 스팟이며, 아직까지 이를 완벽하게 해결한 스크린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팬텀 스크린은 이를 효과적으로 억제하여 인위적으로 핫 스팟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총평"

최근 4K, HDR 등 프로젝터 분야를 비롯한 디스플레이 기기 분야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반면 전통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스크린은 상대적으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스튜어트 팬텀 스크린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내려간 직시형 디스플레이의 인기로 식어가던 프로젝터 시장에도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 단순히 기능성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암실 환경에서는 탄탄한 기본기를, 명실 환경에서도 암실 환경에 필적할 수준의 영상을 보여 준다는 점은 실로 놀라웠다.

프로젝터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암실환경의 명시적인 강요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스크린이 출시됨으로써 프로젝터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서만 즐기던 취미를 밝은 거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동기부여는 팬텀 스크린의 존재 이유를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Written by 정편(unleash@edg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