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스위스 아미 나이프(SAK)는 남자들의 로망이다. 급한 순간에 SAK를 꺼내 문제를 해결한 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 모습을 꿈꾼다. 정작 현실에서 그렇게 자주 써먹을 일은 없지만 그러한 열린 가능성에 미리 배부터 부른 것이다. 다기능 공구라 할 멀티툴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2015년에 나온 미국 마이텍(Mytek)의 ‘Brooklyn DAC’을 보고 들으면서 필자는 하이테크 SAK를 떠올렸다. 기본은 칼(DAC)이지만 드라이버(헤드폰앰프), 가위(MM/MC 포노스테이지), 눈금자(MQA 디코도) 등이 계속해서 나온다. 뿐만 아니다. 아날로그 입력도 되고, 밸런스 출력도 가능하며, 볼륨단과 프리앰프 기능까지 갖췄다. 칼도 PCM, DSD 두 종류나 갖춘데다 그 날도 잘 벼려졌다(32비트/384kHz, DSD256).

당연히 오디오 애호가들은 이 ‘Brooklyn DAC’에 열렬히 환호했다. 게다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일부 하이엔드 DAC과는 달리 가격도 착했다. 이 DAC을 붙이고 평소 안들리던 소리를 들었다는 분들이 정말 많다. 게다가 MQA 디코딩 기능은 남들보다 거의 1년 앞서 탑재했다. MQA로 전송된 음원을 하드웨어적으로 제대로 펼쳐 들었을 경우 그 오디오적 쾌감은 상상 이상이다.

‘Brooklyn DAC’이 업그레이드됐다. 이번 시청기인 ‘Brooklyn DAC+’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0월 RMAF에서 첫선을 보인 후 연말부터 본격 출시됐지만, 한국에서는 최근에서야 공식 유통되기 시작했다. 필자는 진작부터 이 업그레이드 모델을 들어보고 싶었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특히 엇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마이텍의 클래스D 파워앰프 ‘Brooklyn AMP’와 매칭하면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몹시 궁금했다.

외관과 설계디자인

‘Brooklyn DAC+’는 기본적으로 델타시그마 DAC으로, 미국 ESS사의 ‘Sabre 9028 Pro’ 칩을 써서 USB 입력시 PCM은 32비트/384kHz까지, DSD는 DSD256까지 지원한다. DXD 음원도 재생할 수 있다. 동축이나 광 입력시에는 24비트/192kHz, DSD64로 제한된다. 여기에 MQA 디코더가 장착돼 타이달(Tidal)의 MQA 마스터음원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외관부터 본다. 외관은 전작과 동일하다. 앙증맞은 크기도 그렇고, 무게도 2kg으로 똑같다. 목공예처럼 옴푹옴푹 파인 알루미늄 섀시 디자인과 단단한 만듦새 역시 변함이 없다. 전면 가운데에 있는 OLED의 오밀조밀한 텍스트와 선명한 색감에서 왠지 프로 오디오의 기운이 느껴지는 맛도 여전하다. 마이텍의 미칼 유레비치(Michal Jurewicz)가 원래 그런 엔지니어였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는 내용이지만,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마이텍은 1992년 스튜디오 엔지니어 겸 회로설계가 미칼 유레비치가 설립했다. 오디오파일용 음원으로 유명한 체스키 레코드의 마스터링에 마이텍 장비가 사용됐을 정도로 주로 프로 오디오에서 명성을 쌓았다. 이런 마이텍이 홈 오디오에서도 확고히 이름을 날리게 한 주인공이 바로 2015년 저렴한 가격표에 엄청난 스펙으로 중무장해 출시된 ‘Brooklyn DAC’이었다. 

다시 ‘Brooklyn DAC+’로. 헤드폰 잭은 왼쪽에 2개가 달렸다. 최대 출력이 500mA, 6W에 달해 웬만한 고임피던스 헤드폰이나 평판형 헤드폰도 마음껏 드라이빙할 수 있다. 실제 사용해보니 단품 헤드폰 앰프에 거의 밀리지 않았다. OLED 디스플레이 양 옆에는 각각 2개 버튼이 있는데 각종 입력 선택용이다. 오른쪽 둥근 노브는 볼륨과 입력 선택을 겸한다. -99dB~0dB 사이에서 작동하는 볼륨은 1dB 스텝 아날로그 어테뉴에이터와 32비트 1dB 스텝 디지털 어테뉴에이터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후면에는 각종 입출력단자가 즐비하다. 왼쪽부터 밸런스(XLR) 출력, 아날로그(RCA) 출력 및 입력, 디지털 입력(AES/EBU, 동축 2, USB B타입, 광) 순이다. USB 단자와 광 단자 위에는 클럭 입출력을 위한 BNC 단자가 2개 장착됐다. 외장 클럭을 쓸 수 있다는 얘기이지만, 마이텍에서는 정작 왠만하면 자신들의 내장 펨토 클럭을 믿고 쓰라고 한다. ‘DAC+’ 내장 클럭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0.82ps라는 정밀도를 자랑한다.

이밖에 MM/MC 포노스테이지를 갖춘 팔방미인답게 포노 그라운드 단자, 별도 DC전원(12V)을 공급받기 위한 여분의 단자도 마련됐다. 개인적으로는 이 DC전원 입력단자에서 매우 높은 취미성이 느껴지는데, ‘DAC+’의 내장 SMPS 대신 양질의 리니어 파워서플라이를 붙여줄 경우 보다 순도 높은 DC전원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DAC+’를 자택에 들여놓는다면 반드시 에스오티엠(SOtM)의 ‘sPS-500’을 물려보고 싶다. 이 제품이 12V 출력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DAC+ vs DAC

그러면 ‘DAC+’는 전작과 뭐가 달라졌을까. 실제로 시청을 해보니 ‘DAC+’의 음결이 확실히 스무드해진 점이 가장 두드러졌다. 첫 일감은 ‘Brooklyn DAC’에서 감탄했던 해상력과 공간감은 여전한 가운데 음끝이 부드러워졌다는 것. 예민한 필자 입장에서는 은근히 마음에 걸렸던 전작의 어떻게 보면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인 성향이 상당히 완화됐다.

우선 DAC의 핵심이라 할 컨버팅 칩이 ESS의 ‘Sabre 9018’에서 ‘Sabre 9028 Pro’로 바뀌었다. 칩 자체에 디지털 필터가 몇가지 추가됐고, 해상도 역시 보다 높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컨버팅 파트를 총괄 제어하는 것은 알테라(Altera)의 FPGA ‘Cyclone’ 칩셋으로 동일하다. 참고로 마이텍의 상위 DAC인 ‘Manhattan 2’에는 ‘Sabre 9038’ DAC칩이 장착됐다.

이밖에 마이텍에 따르면 ‘DAC+’가 되면서 아날로그 어테뉴에이터를 좀더 투명하고 노이즈가 적은 쪽으로 개선하고, 아날로그 입력단 및 포노단(MM/MC), 헤드폰 앰프 성능도 업그레이드됐다. 듀얼 모노로 구성된 아날로그 출력단도 손을 봐 좌우채널 분리도를 높였다고 한다. SMPS 전원부의 용량도 키웠다.

개인적으로는 언밸런스(RCA), 밸런스(XLR) 아날로그 출력단의 임피던스가 전작 75옴에서 50옴으로 내려간 점이 눈길을 끈다. 아주 큰 차이는 아니지만 뒷단인 파워앰프에 좀더 많은 전류를 보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루비콘(Rubycon)의 오디오파일급 커패시터, XMOS USB 수신칩 등 주요 내부 부품들은 전작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셋업 및 시청

시청에는 마이텍의 파워앰프 ‘Brooklyn AMP’를 직결했다. ‘Brooklyn DAC+’의 프리단 성능도 함께 테스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Brooklyn AMP’는 듀얼 모노 디자인에 클래스D 증폭으로 8옴에서 250W를 내는 파워앰프. 4옴에서 300W, 2옴에서 400W를 뿜어낸다. 순간 최대 피크 출력은 무려 1200W에 달한다. 입력단은 밸런스(XLR)와 언밸런스(RCA) 모두 1조씩 마련됐고, 스피커 케이블 연결을 위한 바인딩 포스트는 말굽단자와 바나나단자 모두 지원한다.

스펙은 이 가격대 파워앰프에서는 좀체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수준이다. 정숙도 및 노이즈 제거 능력을 알 수 있는 신호대잡음비(SNR)는 121dB 이상, 각 주파수를 얼마나 고르게 재생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주파수응답특성은 10Hz~30kHz(-3dB), 착색이나 왜곡 수준을 알 수 있는 전고조파왜율(THD)은 0.01%를 보인다. 스피커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댐핑팩터 역시 400 이상을 기록한다.

본격 시청에 들어갔다. 두 제품을 위아래로 포개어놓으니 앙증맞은 패밀리룩이 정겹다. 밑에 놓은 앰프의 안길이가 좀더 길다. 무게는 ‘Brooklyn DAC+’가 2kg, ‘Brooklyn AMP’가 3kg. 둘은 블랙캣(Black Cat)의 언밸런스 케이블 ‘RedLevel Tube MK2’로 연결했다. 네트워크 플레이어는 에스오티엠(SOtM)의 ‘sMS-200’, 스피커는 영국 탄노이(Tannoy)의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 ‘D-700’을 동원했다. 음원은 룬(Roon)을 통해 타이달과 DSD 음원을 주로 들었다.

Arne Domnerus - ‘Limehouse Blues’(24비트/192kHz)

Jazz at the Pawnshop

확실히 지금까지 집에서 사용하던 DAC보다 훨씬 높은 해상력을 뽐낸다. 이게 마이텍 DAC의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이었다. 그야말로 평소 안들리던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그 소리 하나하나의 윤곽선이 매우 선명해서 흐릿하거나 애매한 구석이 없다.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색번짐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음의 표면이 상당히 매끄러운 점이 전작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 같다. 전작의 날카롭거나 거친 느낌이 싹 사라져버렸다. 공간감과 깊이감 등 ‘Brooklyn DAC+’의 프리앰프 성능은 일단 의심의 여지가 없다.

Roberta Flack -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24비트/48kHz, MQA 192kHz)

Just like a women

타이달 MQA 음원으로 들었는데, 표시창의 MQA 옆에 분홍색 불이 들어오며 ’24bit/192kHz’라고 뜬다. ‘Brooklyn DAC+’가 접혔던 MQA 음원을 제대로 펼쳐주는 ‘풀 디코더’(Full Decoder)라는 증거다. 무대 안길이가 돋보이는 가운데 삼지사방 펼쳐지는 악기들의 이미지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많은 음수, 둔기로 퍽퍽 내려찍는 듯한 드럼의 저역이 파워풀하고 단단하다. ‘DAC+’도 그렇지만, ’Brooklyn AMP’가 크게 한몫하고 있다는 증거다. 전체적으로 음끝이 단정하고 선명하며 싱싱한 스타일이다. 한 음 한 음이 분명하다.

Eric Bibb ‘Meetin’ at the Building’(DSD128)

Spirit & The Blues.

DSD 음원으로 바꿔보니 그 고운 입자감이 대단하다. 탄력감도 PCM 음원보다 낫다. 무대를 좌우로 넓게 쓰는 점, 악기들이 홀로그래픽하게 펼쳐지는 점도 마음에 든다. 좁은 방에 많은 악기들이 들어와 있는 이 포만감이 좋다. 음들이 필자를 곳곳에서 기분좋게 엄습한다. 기타 연주의 미세한 뉘앙스마저 전해져 듣는 내내 즐거워진다. 물론 웰메이드 프리앰프를 따로 붙였을 때의 깊은 안길이와 공간감까지는 아니지만, 파워앰프에 직결한 DAC이 빚은 음이라고는 쉽게 믿을 수 없다. ‘직결’이 아니라 ‘DAC+프리앰프’에 ‘연결’한 상태라고 보는 게 옳다.

Madeleine Peyroux ‘Bye Bye Love'(16비트/44.1kHz. FLAC)

The Blue Room

뽀송뽀송하고 감미로우며 매끄럽다. 만족도가 매우 높다. 탄력감이나 다이내믹스도 좋다. 한마디로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음들이 출몰한다. 하지만 ‘Brooklyn DAC+’의 프리앰프 성능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았던 탓일까. 무대의 높낮이까지 시원시원하게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값비싼 단품 프리앰프는 이래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어 들은 ‘Change All Those Changes’에서는 다시 한번 ‘DAC+’의 최대 미덕을 확인했다. 악기들이 곳곳에서 들리게 하는 능력과 그 활달한 성정이 듣는 사람의 기분까지 좋게 만든다.

Anne-Sophie Mutter, Herbert Von Karajan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Tchaikovsky Violin Concerto)

Wiener Philharmoniker 

헤드폰 앰프로 들었다. 헤드폰으로 들으니 ‘DAC+’가 펼쳐내는 해상도가 더욱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바이올린 현의 칼칼한 촉감이 생생하다. 음의 민낯, 화장 안한 맨얼굴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고막 가까이에서 들어도 음끝이 부드럽고 표면이 매끄러운 것을 보면 확실히 전작보다 편안하고 윤택한 쪽으로 음튜닝을 마친 것 같다. 이렇게 맑고 투명하며 이미지들이 분명한 점은 만족스럽지만, 두께감이 수반되거나 무게중심이 아주 낮은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다. 콜레기움 보칼레의 ‘Cum Sancto Spiritu’에서는 음 자체가 촉촉한데다 노이즈 관리도 잘 돼 있어 헤드폰 유닛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총평

‘Brooklyn Amp’와 함께 들은 ‘Brooklyn DAC+’는 다시금 필자를 혼란케 한다. 일부 인기 높은 단품 DAC 한 대 값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도 일렉트로닉스의 핵심을 모두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똘똘한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똘망한 스피커만 있으면 된다. 게다가 헤드폰 앰프와 MM/MC 포노스테이지, 여기에 아날로그 입력까지 가능해 그야말로 아날로그 겸 디지털 프리앰프로도 쓸 수 있다.

기능만 갖춘 게 아니다. 귀로 직접 듣는 그 음의 촉감이나 무대의 펼침, 악기들의 이미지 복원 능력은 역시 명불허전. 과연 디지털 냄새를 완전히 휘발시켰느냐 여부는 개인 차이가 크게 작용하겠지만, 해상도나 분해능은 10점 만점에 10점을 줘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전작에 비해 좀더 원숙해지고 소릿결이 좀더 부드럽고 편안해진 것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Brooklyn DAC+’는 기본적으로 태생이 싱싱하고 당차며 적극적인 DAC다.

MQA와 DSD 재생 실력은 발군이었다. 마이텍이 ‘Brooklyn DAC+’를 ‘MQA DSD DAC’이라고 짧게 요약한 것은 그래서 옳다. 작은 OLED 표시창을 보면서 여러 정보를 읽고 버튼을 눌러 이를 바꾸고 그에 따른 차이를 음미하는 일도 즐겁다. 직접 시도하지는 못했지만 외장 리니어 파워서플라이를 통한 음질개선 가능성을 열어둔 점도 기특하다. 특히 가벼운 무게는 출장시나 사무실에 가져가 탄력적으로 운용할 여지를 준다. 진정, DAC계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다.

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