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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관은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캐소드에서 출발한 전자가 투명한 유리관 속을 유영해 플레이트에 도달하고, 이 과정에서 그리드에 전압 형태로 들어온 음악신호가 증폭되는 기막힌 원리. 그러면서 스크린 그리드의 추가로 4극관, 서프레스 그리드의 추가로 5극관으로 발전해온 각고의 역사까지 있다.

진공관 설계와 구동방식에 따라 음색과 출력이 달라지는 묘미도 있다. 필라멘트에서 직접 전자가 뛰쳐나오는 직열관이냐, 히터로 달궈진 캐소드에서 전자가 나오는 방열관이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또한 출력관을 싱글로 구동하느냐, 푸쉬풀로 구동하느냐에 따라서도 소리가 현격히 바뀐다. 필자가 집에서 애용하고 있는 싱글 구동의 직열 3극관 300B의 소리는 그야말로 깨끗하고 투명한 미시의 세계다.

출력관 자체의 소릿결도 각양각색이다. 투명하고 깨끗한 300B, 듬직한 맏형 같은 845, 보드랍고 야들야들한 EL34, 쌉싸름하며 당찬 6V6, 도시적이면서도 파워풀한 KT150, 투박하고 진한 KT88, 잘 자란 KT88의 미래 KT120, 은둔고수의 느낌이 펄펄 나는 EL84 등등. 진공관 브랜드에 따라서도 음이 확확 바뀌는데, 필자의 경험상 이는 초단관 혹은 드라이브관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이러한 진공관의 매력을 한 기기로 음미하고 탐미한다는 것은 그래서 오디오파일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내부저항이 워낙 다른 3극관과 5극관(빔관)을 서로 바꿔 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가장 음악적인 진공관’이라는 EL34와 트랜지스터못지 않은 대출력의 KT150을 한 앰프로 번갈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Prologue Premium의 튜브 롤링

시청기는 네덜란드 프리마 루나(Prima Luna)의 인티앰프 ‘Prologue Premium’. 전면 패널 왼쪽이 볼륨 노브, 오른쪽이 입력선택(RCA 4조) 노브다. 기본으로 장착된 출력관은 텅솔의 EL34인데 채널당 2개씩 푸쉬풀 구동해 클래스AB 증폭으로 35W를 낸다. 초단 및 위상반전관, 드라이브관은 채널당 2개씩 꽂혀 있는 전통의 쌍3극관 12AU7이다.

#1. 제작사에서는 구체적 설명을 안하고 있지만, 12AU7의 역할 분담은 이럴 것으로 추측된다. 먼저 음악신호가 초단관인 첫번째 12AU7에 들어온다. 한쪽 3극관의 그리드로 들어와 플레이트로 빠져나오면서 증폭된 후, 다시 다른 3극관의 그리드로 들어가 캐소드로 빠져나온다(캐소드 팔로워).

#2. 2번째 12AU7에서는 정위상과 역위상 신호로 나눠진다. 즉, 한쪽 3극관의 그리드에 들어온 입력신호가 두 플레이트에서 위상이 정반대인 신호로 동시에 증폭돼 나온다. 물론 출력관의 푸쉬풀 구동을 위한 위상반전이다. 이 경우 통상 캐소드 2개를 공통 저항에 묶어 접지시키는 리크 뮬라드 차동증폭 방식을 주로 쓴다.

필자 입장에서 ‘Prologue Premium’은 무엇보다 튜브 롤링을 아주 강력하게 즐길 수 있는 인티앰프로서 가치가 높다. 기본은 EL34이지만 오른쪽 측면에 붙은 스위치 변환만으로 여러 진공관을 롤링할 수 있는 것이다. 스위치를 위로 올리면 KT88, 6550, KT90, KT120, KT150 출력관을, 아래로 내리면 EL34, 6CA7, 6L6GC, 7581A, KT66 출력관을 꽂을 수 있다.

출력관에 따라 출력도 당연히 바뀐다. EL34를 선택하면 35W가 나오고, KT88에서는 40W, KT120에서는 44W, KT150에서는 48W를 얻을 수 있다. KT150을 푸쉬풀로 구동해서 ‘겨우’ 48W 출력이라는 점이 의외이지만 제작사에서는 소릿결과 진공관 수명을 최우선시해서 가장 미니멈하게 뽑아낸 것이라고 한다.

Adaptive AutoBias, 튜브 롤링의 핵심 기술

스위치 변환만으로 이렇게 많은 출력관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Prologue Premium’의 바이어스 전압 설계가 정밀하게 그리고 편리하게 돼 있다는 증거다. 프리마 루나에서는 이러한 자동 바이어스 전압 조절장치를 ‘Adaptive AutoBias’(어댑티브 오토 바이어스)로 명명했다. 출력관에 따라 바이어스를 ‘자동으로’(auto), ’적응’(adaptive) 시킨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잠깐, 바이어스 전압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자.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진공관 앰프의 바이어스 전압은 이런 개념이다.

1. 증폭이란 그리드 전압을 ‘조금’ 변화시켜 플레이트 전류를 ‘크게’ 늘리는 일이다.

2. 음악신호는 그리드로 들어온다. 이로 인해 그리드 전압이 변하고, 이를 정확히 반영한 증폭 신호가 플레이트에 전류형태로 출력된다.

3. 그런데 첫번째 문제는 음악신호가 교류라는 것. 즉, 플러스 영역과 마이너스 영역을 끊임없이 오가는 그래프라는 것이 문제다.

4. 때문에 플레이트에 나타나는 전류 역시 마이너스와 플러스 영역에 걸쳐지는데(위상반전), 플레이트 전류의 이 마이너스 영역이 2번째 문제다. 전류값이 마이너스다? 한마디로 증폭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5. 따라서 플레이트 전류의 마이너스 영역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리드의 기준전압을 미리 들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음악신호의 플러스 영역이 ‘온전하게’ 플레이트 전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6. 바이어스 전압이란 ‘미리 들어올린 그리드의 기준전압’이다.

7. 바이어스 전압을 얼마나 줘야 하느냐는 진공관마다 다르다. 진공관의 전압증폭률이나 내부저항, 전류증폭률에 따라 증폭의 비직진성 구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8. 바이어스 전압이 ‘-전압’인 이유는 캐소드에서 언제나 ‘-전자’가 뛰쳐나오기 때문이다. 즉, 그리드에 가해지는 바이어스 전압이 ‘+전압’이라면 그리드에서 뛰쳐나온 ‘-전자’가 그리드에 달라붙고는 플레이트(+전압)로는 안 갈 것이기 때문이다.

9. 바이어스 전압을 공급하는 방식은 전원 트랜스에서 직접 끌어다 쓰는 ‘고정 바이어스 방식’(fixed)과, 내부 회로를 이용해 캐소드 저항 양단에 ‘+전압’을 발생케 함으로써 그리드에 상대적으로 ‘-전압’ 이 나타난 것처럼 해주는 ‘자기 바이어스 방식’(self)이 있다.

프리마 루나의 ‘어댑티브 오토 바이어스’는 일종의 고정 바이어스 방식이지만, 센서가 출력관을 끊임없이 모니터해서 필요한 바이어스 전압을 리얼타임으로 가해주는 점이 다르다. ‘Prologue Premium’의 광범위한 튜브 롤링이 가능한 결정적 이유인 셈이다. 그리고 변환 스위치는 이 어댑티브 오토 바이어스의 부하를 줄여주기 위해 출력관에 따라 미리 ‘고전압 바이어스’(KT88)와 ‘저전압 바이어스’(EL34)를 흘려주는 것으로 보인다.

Prologue Premium의 좌표

‘Prologue Premium’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밖에도 100% 하드와이어링 방식의 배선, 메탈 케이스에 함침된 토로이달 전원트랜스, 커스텀 사양의 수작업 출력트랜스, 릴레이 방식의 입력단 설계(RCA 4조), 출력관 상태 표시 LED 등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원트랜스와 출력트랜스 설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이 확실해보인다. 그만큼 이 앰프가 들려준 소릿결과 스피커 구동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1. 전원트랜스는 각 부품에 직류전기를 공급하는 파워서플라이의 첫 출발이기 때문에 앰프의 구동력을 결정짓는 최대의 잣대. 더욱이 증폭된 음악신호가 빠져나가는 플레이트의 경우 동일 전원선에 음악신호가 함께 흐른다는 점에서 음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이 전선을 흐르는 전압(플레이트 가해지는 B전압)이 불안정해서는 이를 올라탄 음악신호마저 출렁이기 때문이다.

#2. 출력트랜스는 특히 푸쉬풀 앰프에서 음질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푸쉬풀 앰프의 경우 각 출력관을 빠져나온 신호는 서로 위상이 반대인 상태인데, 이를 합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출력트랜스이기 때문이다. 즉, 역위상의 신호가 출력트랜스 1차 코일에서 2차 코일로 넘어갈 때 정위상으로 반전돼 마침내 다른 정위상의 신호와 결합되는 것이다. 출력트랜스는 또한 출력관의 높은 출력 임피던스와 스피커의 낮은 임피던스를 서로 매칭시켜주는 역할까지 한다.

그러면 ‘Prologue Pemium’이 프리마 루나에서 차지하는 좌표는 어느 정도쯤일까. 실 구매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좌표 내지 팀내 서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rologue Premium’은 프리마 루나 인티앰프 라인업에서 서열 3위다. 위로는 플래그십 ‘Dialogue Premium HP’와 ‘Dialogue Premium’이 있고, 아래로는 ‘Prologue Classic’이 있다. ‘HP’는 헤드폰의 약자다.

상위 ‘Dialogue Premium’ 두 앰프와 결정적 차이는 출력관과 초단관 구성방식. 상위 모델은 출력관을 채널당 4개를 쓰는 파라(parallel) 푸쉬풀 구성이고 초단관 및 드라이브관도 채널당 3개씩 투입됐다. 출력은 EL34가 70W, KT150이 96W로 정확히 2배 많다. 때문에 전원트랜스와 출력트랜스도 ‘Prologue Premium‘보다 큰 것을 썼다.

이밖에 스위스산 은도금 OCC 선재를 주요 신호경로에 투입해 스피드와 선명도를 확보한 점, 저잡음으로 유명한 일본의 타크만(Takman) 저항과 독일 문도르프(Mundorf) M캡 EVO 실버골드 커패시터를 투입한 점도 돋보인다. 상위 두 모델에서는 또한 출력관을 3극관(triode) 모드와 울트라 리니어(ultra-linear) 모드로 스위칭해 즐길 수도 있다.

아래 ‘Prologue Classic’과도 뚜렷한 격차를 보인다. 출력은 동일하지만 ‘Prologue Classic’에서는 리모컨이 제공이 안되며, KT150은 선택할 수 없다. 릴레이 방식의 입력단이 아니라 스위치 방식을 채택한 점도 다르다. 전원트랜스와 출력트랜스 크기가 ‘Prologue Premium’에 비해 작은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셋업 및 시청

시청에는 스포르차토(Sforzato)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DSP-050EX’와 KEF의 스탠드 마운트 스피커 ‘Reference 1’을 동원했다. 스피커 케이블은 헤밍웨이(Hemingway)의 ‘Western’. ‘DSP-050EX’는 이더넷 입력만 가능한 룬 레디(Roon Ready) 네트워크 플레이어이며, DAC 칩은 ESS의 ‘ES9038Pro’를 채널당 1개씩 썼다. PCM은 32비트, 384kHz까지, DSD는 DSD256까지 재생할 수 있다.

‘Reference 1’은 KEF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니Q(Uni-Q) 5인치 동축 트위터-미드레인지 유닛에 6.5인치 베이스 유닛을 단 3웨이 베이스 리플렉스 타입. 세 유닛 진동판은 모두 알루미늄이다. 공칭 임피던스는 8옴, 감도는 85dB, 주파수응답특성은 45Hz~35kHz(-3dB)를 보인다. 크로스오버는 350Hz와 2.8kHz에서 이뤄진다. 시청에는 ‘Prologue Premium’에 기본 장착된 텅솔의 EL34 출력관을 그대로 썼다.

Bill Evans Trio ‘Waltz For Debby’(Waltz For Debby)

첫 음부터 부드럽고 촉촉한 EL34의 소리다. 단정하고 깨끗하며 억센 구석이 없다. 필자가 기억하는 EL34, 그 특유의 음색이 보다 섬세하고 소프트하게 펼쳐진다. 악기 연주 도중 들리는 접시와 포크 등이 부딪히는 소리, 관객들이 뭐라 떠드는 소리가 모조리 들리는 것을 보면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Prologue Remium’의 전압증폭단이 제대로 임무 수행을 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베이스 음이 단단하고 야무지게 들리는 것은 내부저항이 높은 EL34를 푸쉬풀로 구동, 그 저항값을 낮춘 덕분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무대의 안길이가 다소 평면적으로 등장하는 점은 인티앰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여겨진다.

Oscar’s Motet Choir ‘Christmas Song’(Cantate Domino)

음들의 잔향감이 장난이 아니다. 그러면서 노이즈가 일체 없이 깨끗하게 음들이 잘려나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윤곽선이 선명한 음. 그러면서 소프라노 소리는 아주 매끄럽고 곱게 들린다. 코러스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사운드스테이지마저 확 넓어진다. 음수는 그야말로 풍성함 그 자체. 약간 높은 볼륨인데도 듣기에 편하다. 또한 한 합창단원의 혀가 입천장에 살짝 닿는 소리마저 캐치해내는 디테일에 감탄했다. 왜 EL34가 ‘가장 음악적인 진공관’으로 불리는지 실감한 시청이었다. 파이프 오르간에 주목해서 한 번 더 들어보면 그 파이프 재질이 최소한 황동이나 청동으로 느껴질 만큼 부드럽고 깊은 맛이 생생하다.

Andris Nelsons, Gewandhousorchester Leipzig ‘Bruckner Symphony No.3’(Bruckner, Wagner)

24비트 음원으로 3악장을 들었다. 상쾌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음들이 매끄럽다. 마치 숲속에 들어와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런 느낌. 잘게 부숴진 DAC 파트의 해상력을 바탕으로 12AU7이 이 음들을 더욱 곱고 리드미컬하게 다뤄주고 있다. 몰아부치는 대목에서는 스피커 3유닛에서 음들을 쑥쑥 뽑아내준다. 힘들어 하는 구석도, 음들의 혼탁함 따위도 전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탄한 것은 이 곡 특유의 ‘기세’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 진공관 운운하며 자신의 쓸데없는 색깔 입히기에 급급한 일부 진공관 앰프와 달리, 음원에 담긴 핵심을 보란듯이 제시해주는 점이 대단하다. EL34의 소리는 곱고 예쁘고 선명하며, 안정적이고 포근하다. 가격대를 떠나서도, 이렇게 완성도 높은 진공관 음을 들려주는 앰프는 흔치 않다.

Harry Belafonte ‘Matilda’(Belafonte at Carnegie Hall)

처음부터 그냥 흥겨운 현장이다. 벨라폰테도, 관객도 모두 흥이 나서 무대를 즐기는 점이 너무나 확연하다. 즐거워하는 관객의 표정이 하나하나 다 보이는 것 같다. 음들은 선명하고 깨끗하며, 탄력감은 진공관 앰프 맞나 싶을 정도로 뛰어나다. 에너지감을 동반했는데도 풋워크가 결코 무겁지 않은 점도 매력적. 벨라폰트의 휘파람 소리, 뭐라 말하는 멘트가 필자 바로 앞에서 들린다. 관객의 환호소리가 바닥에 꽂히는 모습은 한여름 장쾌하게 내리는 소낙비와도 같다. 무대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벨라폰테의 음상 역시 기막히다. 이어 들은 다이애나 크롤의 24비트 ‘Jingle Bell’에서는 손을 뻗으면 그녀가 닿을 것 같다. 신나고 경쾌해서 기분마저 좋아진다.

총평

EL34를 다시 보게 됐다. EL34를 싱글로 쓴 진공관 앰프를 몇년 동안 집에서 썼고, 푸쉬풀 구동한 인티앰프도 여러 모델을 리뷰했지만, ‘Prologue Premium’의 EL34 푸쉬풀 소리는 격이 달랐다. 전체적으로 보드랍고 섬세하며 깨끗한 소릿결에, 우려했던 저음 역시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KEF 스피커 소리성향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음들을 말쑥하게 뽑아내서 리드미컬하게 드라이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원트랜스와 출력트랜스, 바이어스 전압 설계가 그만큼 잘돼 있다는 반증이다. 더욱이 튜브 롤링의 무한한 가능성까지 열려있다. 가격대를 떠나, 올해 들어본 인티앰프 중 최상위권에 들 만한 앰프다.

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