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마그네슘 쉴드 케이블과 오디오 보드로 유명한 일본 티글론(TiGLON) 제품들이 국내에 ‘본격’ 상륙했다. ‘본격’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예전 티글론이 OEM 제작한 선샤인(Sunshine) 브랜드가 국내에서 판매됐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청기는 티글론이 최근 내놓은 신제품으로, 파워케이블 ‘MS-DF12A’와 밸런스(XLS) 인터케이블 ‘MS-EF12X’다. 물론 이 회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마그네슘 쉴드가 두 케이블 모두에 베풀어졌다.

티글론과 마그네슘 쉴드

일본 가나가와현 야마토시에 위치한 티글론은 2008년 설립됐다. 원래 회사명은 크리나 프로(Kryna Pro), 회사 설립 후 처음 내놓은 스피커 스탠드의 브랜드 이름이 티글론이었지만 2010년부터 회사명을 아예 티글론으로 바꿨다. 마그네슘 쉴드로 일본 특허를 받은 것은 2009년 4월의 일. 그리고 같은 해 6월 마그네슘 쉴드가 처음 도입된 RCA 인터케이블 ‘MGL-1000R’이 출시됐다.

현재 라인업을 보면 인터케이블과 파워케이블은 물론, 스피커케이블, 디지털케이블, 랜케이블, 헤드폰 케이블, 여기에 오디오 보드와 랙, 스피커 스탠드, 인슐레이터까지 망라됐다. 오디오 보드에도 기본 적층 자작나무 및 MDF 외에 마그네슘 플레이트가 샌드위치 형식으로 투입된 점이 눈길을 끈다. 오디오 랙의 버팀대(금속봉) 역시 마그네슘 합금을 썼다.

티글론에서 이처럼 마그네슘(Magnesium)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애지중지하는 것은 마그네슘이 가볍고 강한 데다, 진동 흡수율과 전자기장 차폐, 열 방출 특성이 아주 뛰어난 금속이기 때문. 특히 EMI(전자기장 간섭)나 RFI(라디오 주파수 간섭) 같은 외부 노이즈를 차단해야 하는 케이블 쉴드 재질로는 마그네슘과 니켈 계열 합금인 뮤메탈 정도밖에 없는 실정이다.

마그네슘 쉴드는 말 그대로 마그네슘 합금을 선재의 쉴드로 사용한다는 것.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PVC로 1,2차 절연된 선재 위를 다시 1cm 폭에 두께가 1mm에 불과한 얇은 마그네슘 포일이 꽈배기 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실제로 실물 케이블을 살펴보니 외장 PVC 재킷에 일정 간격을 두고 나선 모양의 선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나선 모양으로 선재를 감싼 마그네슘 포일이 겹쳐지면서 생긴 돌기다. 그만큼 촘촘하게 꼬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티글론의 모든 케이블에는 현재 3세대 버전으로 진화한 마그네슘 쉴드가 적용됐다. 파워케이블과 인터케이블은 물론, 스피커 케이블, 디지털 케이블, LAN 케이블까지 마그네슘 쉴드가 통상의 편조(그물망)가 아닌 포일 방식으로 투입됐다.

DF, 딥 포밍(Deep Forming) 무산소동선

시청기인 ‘MS-DF12A’ 파워케이블과 ‘MS-DF12X’ 인터케이블의 ‘MS’는 결국 ‘마그네슘 쉴드’라는 라는 얘기인데, 그러면 ‘DF’는 무엇일까. DF는 바로 티글론이 최근 신제품에 적극적으로 투입하고 있는 ‘딥 포밍’(Deep Forming)이라는 무산소 동선(OFC) 제작 및 가공기술이다.

딥 포밍은 원래 미국 GE(General Electric)가 개발, 웨스턴 일렉트릭(WE) 제품의 내부 배선에도 활용된 기술. 일본에는 지난 1969년 GE의 딥 포밍 설비가 도입됐다. 티글론에서는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남은 이 딥 포밍 설비를 이용, 4N 등급에 유전율이 100~102%에 달하는 고품질 OFC를 뽑아내고 있다.

그런데 티글론에서는 이 DF 방식에 한가지 기술력을 더 보태 더욱 완성도 높은 OFC를 뽑아냈다. 티글론이 다수의 회사들과 함께 공동 개발한 ‘HSE’(Hyper Saturated Energizer)라는 이름의 장비를 이용, ‘과포화 전류’를 선재에 흘려줌으로써 거의 단결정 상태의 OFC를 만들어낸 것이다. HSE 기기를 일본에 도입한 것은 티글론이 처음이다.

정리해보면, HSE는 ‘과포화 전류’(hyper saturated current)를 선재에 흘려보냄으로써 1) 선재의 내부 분자구조를 흐트러뜨려, 2) 경계선(Grain Boundary) 사이의 산소를 제거하고, 3) 다결정 동선을 거의 단결정 수준으로 변화시키는 장비다. 또한 과포화 전류가 흐르면 선재에서 열이 나는데 이는 선재를 둘러싼 절연체와 마그네슘 쉴드를 유연하게 해주는 부수효과도 있다.

#1. 결정(Crystal)이란 분자가 규칙적으로 배열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전체에 걸쳐 고르게 형성된 것을 단결정(Single Crystal)이라고 하고, 여러 개 결정으로 이뤄진 것을 다결정(Polycrystal)이라고 한다. 금속이 단결정이 되면 결함이 없기 때문에 전선으로 만들면 신호전달 시 노이즈가 사라진다.

#2. 금속을 녹여 케이블을 만들면 보통 수만 개의 원자들로 구성된 알갱이 모양의 그레인(Grain)이 발생한다. 이들 그레인 사이에 나타나는 일종의 빈 공간, 즉, 경계선(Grain Boundary)이 골칫거리. 음악 신호가 이 불연속적이고 불규칙적인 경계선을 통과할 때 순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결정은 이러한 그레인들의 배열을 마치 벌집구조처럼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 경계선을 없앤 상태를 말한다.

MS-DF12A 파워케이블

현재 티글론의 파워케이블은 DF 기술이 미적용된 엔트리급 MS-12A, 이번 시청기인 MS-DF12A, HSE 도입 10주년 기념 모델인 MGL-DFA10, 그리고 주문 제작되는 플래그십 TCA 시리즈가 있다. TCA 시리즈는 마그네슘 쉴드를 2중으로 썼다.

‘MS-DF12A’는 기본적으로 3심(핫, 콜드, 그라운드) 쉴드 전원 케이블. 0.18mm 직경의 매우 가는 동선 84가닥을 꼬은 심선 3개 각각에 내열 PVC를 씌우고, 그 위에 2차 PVC 피복, 그 위에 주석 도금 연동선 편조 쉴드, 최종적으로 마그네슘 포일 쉴드가 감싸는 구조다. 가장 바깥쪽 재킷은 내열 PVC.

선재는 물론 DF + HSE 방식으로 제작한 4N 등급의 OFC다. 커넥터 단자는 오야이데(Oyaide) 029 시리즈 특주 사양. 실제로 커넥터 안쪽에 ‘Oyaide Elec. Made in Japan’이라고 씌어있다. 이에 비해 엔트리 MS-12A에는 스위스 슈터(Schuter) 커넥터, 플래그십 TCA 시리즈는 조델리카(Jodellica) 순동 커넥터가 사용됐다. 시청 모델은 길이 1.8m이며, 1.2m 모델도 있다.

MS-DF12X XLR 인터케이블

티글론의 밸런스 인터케이블은 시청기인 MS-DF12X, 상급 모델인 MGL-X10으로 나눠진다. 언밸런스 케이블 역시 MS-DF12R과 MGL-R10 구성. 상급 모델은 모두 DF-OFC 선재 대신 히타치 메탈(Hitachi Metals)의 6N 등급 HiFC 선재를 썼다.

‘MS-DF12X’ 역시 마그네슘 쉴드 기술과 DF + HSE 방식의 OFC 선재를 쓴 밸런스 인터케이블. 파워케이블과는 달리, 0.18mm OFC 선재 6가닥이 다시 7조씩 꼬아져 각각 3심(핫, 콜드, 그라운드)을 이루는 구조다. 따라서 인터케이블(42가닥)과 파워케이블(84가닥)을 외관상으로 비교하면 파워케이블이 보다 굵다.

XLR 인터케이블의 핫선과 콜드선, 그라운드선은 내열 PVC로 절연됐고 이 위를 다시 주석 도금 연동선과 마그네슘 포일이 감싸는 상태. 때문에 해상력과 정숙도(SNR), 정보량을 극대화했다는 게 제작사 측 설명이다. XLR 커넥터는 뉴트릭(Neutrik) XX 시리즈의 ‘NC-MXX’ 단자를 사용했다. 시청에는 1m짜리 모델을 동원했다.

셋업 및 시청

시청은 자택에서 이뤄졌다. 파워케이블 ‘MS-DF12A’를 올닉의 진공관 파워앰프 ‘A-1500’에 연결, 기존 케이블과 AB 테스트를 했다. 밸런스 인터케이블 ‘MS-DF12X’는 오포의 유니버설 플레이어 ‘BDP-105D’와 올닉의 진공관 프리앰프 ‘L-1500’ 사이에 연결, 역시 기존 쓰던 케이블과 비청했다. ‘A-1500’은 300B를 싱글 구동, 12.5W를 낸다.

파워케이블 AB테스트

파워케이블의 경우 처음에는 집에서 쓰는 차폐 트랜스에 꽂아 테스트했다. 일감은 음색이 조금 어두워지고 적막감이 높아졌다는 것. 촉감도 평소보다 쌉싸름해졌다. 무게감이 늘어난 것도 눈에 띄었다. 대신, 해상력과 밝은 표정은 조금 삭감된 듯한 인상. 에이징이 덜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본격 시청은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해서 벽체 전원에 꽂아 진행했다.

Bill Evans Trio ‘Waltz For Debby’(Waltz For Debby)

사실 이 곡은 오디오 기기 테스트용으로는 집에서 잘 시청하지 않는다. 최소 11시 방향 이상으로 볼륨을 확보해야 이 곡 특유의 현장감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글론 파워케이블의 해상력이 너무 궁금해서 첫 곡으로 택했다. 티글론 파워케이블로 바꾸자마자 ‘아!’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피아노 오른손 터치가 더 청명하고 또렷하게 들린 것이다. 이처럼 고역의 해상력이 한결 높아진 게 첫 번째 특징이었다. 또한 스피커 왼쪽에서 들리는 베이스의 저역도 단정하고 단단하게 조여졌다. 상대적으로 기존 쓰던 파워케이블은 베이스 음이 붕붕 거렸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각 악기 소리가 더 분명하게 그리고 산뜻하게 들린다. 음들이 말쑥해진 점도 특징. 그러나 무대 크기나 안길이 차이는 없었다. 기대를 모았던 찻잔과 포크 부딪히는 소리나 관객이 뭐라 떠드는 소리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Patricia Barber ‘Regular Pleasure’(Verse)

평소 파워케이블을 꽂은 상태에서 즐겁게 일청을 했다. 보컬은 바로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고, 트럼펫은 잘 뻗으며 쏘지 않는다. 편안하다. 더 나아질까 싶었다. ‘MS-DF12A’로 바꾸자, 단번에 느낀 것이 파워앰프의 스피커 댐핑력이 상승했다는 것. 베이스의 울림이 명료하고 단단해진 것이다. 드럼의 심벌 소리도 한결 경쾌해졌다. 트럼펫의 질감도 훨씬 산뜻하게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명암대비가 살아나면서 음들의 실루엣이 선명하고 단정해졌다. 하지만 이 곡에서 가장 놀란 것은 음상이 평소보다 더 또렷이 맺힌다는 것. 패트리샤 바버가 좀 전보다 작게 등장, 마침내 실물사이즈로 느껴진다. 다른 반주 악기들도 마찬가지. 자연스러운 크기로 구현됐다. 이 변화가 가장 크다.

Andris Nelsons, Boston Symphony Orchestra ‘Shostakovich Symphony No.5’

(Under Stalin’s Shadow)

지난 5월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무아지경으로 들었던 쇼스타코비치 5번. 그 정도까지의 감흥은 아니지만 평소 필자 자택 시스템으로 즐겨 듣는 곡이다. 티글론의 ‘MS-DF12A’로 바꿔보니 금관과 목관 악기들이 보다 더 잘 들린다. 재생음이 전체적으로 상쾌해진 것도 특징. 템포감마저 덩달아 나아진 듯하다. 앞에 나온 음들이 뒤에 나오는 음들을 일체 방해하지 않는다. 이 결과 음들이 더욱 깨끗하고 투명하게 들린다. 그야말로 파워케이블 하나 바꿔 젊은 피로 몽땅 수혈을 한 느낌이다. 이 곡에서는 음의 입자들이 고와져서 거친 구석이 사라진 것도 두드러졌다. 4악장 막판 팀파니의 연타는 가슴이 철렁거릴 정도로 강력했다.

XLR 인터케이블 AB테스트

Chet Atkins ‘Un In My Treehouse’(Sails)

주로 CD를 재생했다. 고백컨대, ‘MS-DF12X’ 인터케이블은 파워케이블만큼의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것이지, 먼저 비청을 했더라면 청감상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일단, 좌우를 비수처럼 가로지르는 차임 소리가 좀 더 분명하게 들린다. 착착 거리는 오른쪽 퍼커션의 존재감도 확연하다. 그렇다. 악기들이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부각됐다. 음상 역시 보다 정확하게 맺혀 윤곽선이 분명하고 선명하게 그려진다. 배경이 조금 어둠 껌껌해진 것도 특징. 때문에 메인 악기인 벤조에 더 많은 하이라이트가 비치는 듯했다.

Leonard Bernstein,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Mahler Symphony No.2’

(Mahler 2)

초반 오른쪽에서 들리는 저역 사운드에 강단이 생겼다. 맺고 끊음도 분명해졌다. 그 사이 왼쪽 뒤편에서 울리는 현악기 군들의 잔잔한 연주도 좀 전에는 그냥 지나쳤었는데 지금은 귀가 곧바로 알아챈다. 크지 않은 볼륨에서도 노이즈가 낮아진 덕에 더 잘 들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그동안 묻혀있던 각 대역이 기지개를 편 듯 살아난 것이다. 총주에서도 이전보다 확실히 터뜨려주는 맛이 늘었다. 음의 기세와 응집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체적인 음색이 약간 어두워진 점, 기름기가 싹 가신 듯해진 점도 계속해서 부각됐다. 다시 평소 케이블로 바꿔보면 톤 다운, 의기소침, 이런 열화가 난무했다.

총평

티글론(tiglon)은 호랑이 수컷과 사자 암컷의 잡종으로 ‘범사자’로 번역된다. 왜 이 이름을 브랜드에 이어 회사명으로까지 채택했는지 공식 설명은 없지만, 티글론 이름을 처음 붙인 스피커 스탠드가 공진과 진동 방지를 위해 마그네슘, 알루미늄, 모래 등 이종 재질을 투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티글론의 슬로건은 ‘하이브리드 사운드’(Hybrid Sound)다.

어쨌든 파워케이블 ‘MS-DF12A’와 인터케이블 ‘MS-DF12X’ 투입 후의 음질 변화는 마그네슘 쉴드가 일으킨 나비효과라 할 만했다. 마그네슘 포일 쉴드가 각종 노이즈를 차폐, 음악 신호가 흐르는 인터케이블은 물론 대전류가 흐르는 파워케이블까지 음질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특히 파워케이블의 경우 84가닥 4N OFC 동선과 오야이데 커넥터가 케이블의 3대 저항인 도체 저항과 접촉저항을 각각 크게 감소시켰을 것이다.

‘MS-DF12A’ 투입에 따른 말쑥한 배경과 선명한 사운드, 도드라진 다이내믹스, ‘MS-DF12X’ 투입에 따른 노이즈 감소와 이로 인해 또렷해진 음상과 다채로워진 색채감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시각적으로는 약간 어두워지고 시크해진 표정 역시 티글론 케이블의 시그니처가 아닐까 싶다. 일청을 권한다. 

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