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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d의 역사

아마도 타임머신을 타고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전 세계 곳곳을 영국이 장악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앞선 산업혁명의 성공을 한껏 구가하고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벌어진 두 차례의 대규모 전쟁이 아니었으면, 여전히 세계는 영국의 지배 아래 있었을지도 모른다.

▲ Artera Series(Play+ & Stereo)

하지만 그 배턴을 자기 아들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 넘겨준 상황이므로, 간접적으로나마 영국의 영향력도 남아있는 셈이다. 브렉시트다 뭐다 시끄러운 요즘이지만, 오디오와 각종 문화에 끼친 영국의 업적은 놀랍기만 하다. 적어도 이쪽 분야만큼은 대영제국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20세기를 빛낸 대영제국의 유산으로 비틀즈, 처칠, 데카, 애비 로드 스튜디오, 엘리자베스 여왕, 탄노이, 러셀, 비트겐슈타인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 리스트에 당연히 들어가는 것이 바로 쿼드(Quad)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브랜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아직도 지구촌 곳곳의 애호가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이다.

쿼드의 탄생 시기는 1936년이다.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부문에서 우리의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딸 무렵, 영국에서는 작은 앰프 메이커가 출현한 것이다. 제작자는 프로 오디오 쪽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무려 15년간 일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은 진공관 앰프를 선보이는데, 그게 바로 쿼드 I. 이후 조금씩, 그러나 확고하게 오디오 사를 빛낸 명기들을 하나씩 런칭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1953년에 나온 쿼드 II는 지금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을 정도의 명기다. 같은 해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등극했고, 에베레스트산이 정복되었다.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시기에 등장한 것이다. 이 제품은 무려 18년간 제조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 Quad Z-4

한편 스피커 부문에서 쿼드가 이룬 성과는 오디오 사에 큰 획을 그을 정도다. 바로 56년에 만들어진 ESL-57 정전형 타입으로, 기존의 스피커 업계가 깜짝 놀랄 정도의 해상력과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줬다. 이 제품은 무려 28년간 생산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나의 스피커가 별다른 변경 없이 이토록 오랜 기간에 걸쳐 생산된 예는 전무후무하다.

Artera Series

이어서 1967년에 오면 대망의 TR 앰프를 선보인다. 33과 303 콤비다. 이것은 이후, 4시리즈, 6시리즈, 7시리즈를 거쳐 현재의 9시리즈에 이른다. 특히 405에 탑재된 커런트 댐핑 기술은 현재의 제품에 면면히 이어질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이번에 만난 아르테라(Artera) 시리즈에도 당연히 들어가 있다. 사실 그간 많은 쿼드 제품을 접했지만, 쿼드의 순정 조합을 들어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특히, 동사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앰프와 스피커 조합은 더욱더 없었다. 그러므로 꾸준한 진화를 이룩한 동사의 실력을 가늠하는 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 Artera Series(Play+ & Stereo)

일단 아르테라 시리즈부터 보자. 이 단어는 원래 스페인 말로, 영어로 옮기면, “dexterous, artful”과 같은 의미가 된다. 한 마디로 능숙하고, 숙련되었다는 뜻이다. 오랜 기간 앰프를 만들면서 쌓아 올린 노하우가 절정에 달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총 3종이 런칭되어 있다. 우선 솔루스가 있는데, 이것은 인티 앰프다. 8옴에 75W를 내고 있는데, 다양한 기능이 부속되어 있다. 이를테면 CDT, DAC, 블루투스 등이 그것이다. USB를 통해 PC에 담긴 음원을 즐길 수 있다는 부분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한편 이번에 만난 제품은 분리형으로, 플레이 +(프리앰프)와 스테레오(파워 앰프)의 조합이다. 이중 플레이 +에는 프리뿐 아니라, CDT, DAC 등이 담겨 있어서 다기능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DAC의 기능이 출중하다. USB를 통하면, PCM은 32/384까지, DSD는 256까지 커버한다. 2개의 옵티컬과 2개의 RCA 동축 디지털 입력이 가능하고, 아날로그 쪽은 2개의 RCA 입력단이 배치되어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골고루 즐길 수 있는 컨셉인 것이다. 이어서 스테레오는 채널당 140W를 내는, 본격적인 아날로그 파워 앰프다. 당연히 303에서부터 연마된 기술력이 총집결되어 있다.

Artera 외관

이 세트의 외관을 보면, 일단 사이즈 면에서 그리 크지 않다. 이것은 3시리즈, 아니 진공관으로 치면 저 멀리 쿼드 I부터 지켜온 디자인 철학이다. 그런데 한동안 6시리즈를 써본 경험으로 말하면, 이 사이즈가 주는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만일 동사가 사이즈를 보다 키워 일반 제품과 다를 바 없이 만들었다면, 대단히 실망했을 것 같다.

▲ Quad Artera Play+

그런 면에서 쿼드는 오히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캐치프레이즈에 잘 어울린다. 공산품을 살펴보면 미니 승용차라던가, 롤라이 카메라가 그런 예에 속한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이런 작은 거인들의 존재감은 결코 훼손되는 법이 없는 것이다.

▲ Quad Artera Stereo

아르테라는 바로 그 전통을 지키고 있다. 따라서 좁은 공간에 최상의 기술력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프리는 9Kg이나 하고, 파워는 15Kg이나 나간다. 결코 작다고 깔보면 안 되는 물건인 것이다.

Z-4 스펙

이번에 매칭된 스피커는 Z-4라는 제품이다. Z 시리즈의 톱 모델로, 명실공히 현행 쿼드를 대표하는 스피커다. 물론 ESL 시리즈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제품으로, 실제 판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쪽은 일반 박스형이며, 여기서 Z 시리즈가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 Quad Z-4

Z-4는 무려 3발의 우퍼를 장착하고 있다. 저역의 리스폰스가 40Hz에 이른다. 한편 트위터는 ESL 시절부터 갈고닦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과감히 리본을 쓰고 있다. 동사는 “트루 리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리본에 관한 여러 선입견을 불식시킬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음을 들어보면, 방사각이 넓으면서도 에너지가 충실하다. 결코 무른 음이 아니다.

▲ The Ribbon Tweeter & Woven Kevlar Woofer

좀 더 자세히 스펙을 살피면, 트위터는 리본 타입이고, 미드레인지와 우퍼는 모두 직조 케블라를 썼다. 전자가 150mm 구경이고, 후자는 165mm 구경이다. 감도는 4옴에 90dB. 단, 3.6옴 이하로 떨어지는 법이 없으니, 크기에 비해 구동은 쉬운 편이다. 따라서 아르테라로 연결할 경우, 분리형뿐 아니라 인티로도 별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시청

본 시스템의 청취를 위해, CD뿐 아니라, 스트리밍 쪽도 적극적으로 썼다. 참고로 오렌더의 N100C를 동원했음을 밝힌다.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Beethoven: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2. Allegretto

Beethoven Symphonies Nos. 4 & 7 

우선 베토벤. 테마 자체는 상당히 유명하다. 서서히 그러나 확고하게 전개되는 악상이 교묘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체적으로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그 배후에 흐르는 긴장감이 대단하다. 현을 중심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관악기들이 합세해 규모가 거대해진다. 나중에 음량도 커지고, 스케일도 커진다. 내적인 긴장감이 놀라운 곡이다. 바로 그런 느낌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앰프가 스피커를 완벽하게 움켜쥔 대목이 무척 인상적이다.

Four Marys

피전의 노래는, 오디오 체크용으로 쓰일 만큼 세심하게 녹음되어 있다. 오랜만에 들어보니 그 강점을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악기 수는 많지 않지만, 넓은 공간 여기저기에 멋지게 세팅되어 있다. 따라서 그 하나하나를 제대로 인식하게 된다. 보컬의 숨 쉬는 모습이나 침 삼키는 소리 등이 디테일하게 포착되어 있고, 그 주변을 감싼 공기 감도 정확하게 드러낸다. 확실히 같은 메이커의 제품으로 세팅하면, 이런 세밀한 부분에서 얻는 게 많은 것 같다.

Round About Midnight

마일스의 연주는, 무려 60여 년 전의 녹음이지만, 매우 생생하고, 선도가 높다. 물론 약간 거친 맛도 있는데, 이것을 음악적으로 매력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고수의 몫. 그런 면에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진득하게 음을 감상하게 한다. 베이스라인은 두툼하면서 선이 분명하고, 피아노의 반주는 에스프리가 넘친다. 그리고 뮤트 트럼펫의 강력한 카리스마. 그런데 자세히 들으면 약간 달콤한 느낌도 난다. 역시 내공이 있는 음이다.

Ella & Louis

마지막으로 엘라 & 루이. 그냥 모노 녹음이라, 와이드 레인지라던가 다이내믹스 등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하지만 그런 기분으로 접하면 깜짝 놀랄 내용을 들려준다. 비록 악기가 제대로 포착되지 않고, 협대역이긴 하지만, 보컬의 생생함과 트럼펫의 사실적인 존재는 소름이 돋을 정도. 특히, 중간에 루이가 노래하는 부분은, 이게 사람의 목소리인지 악기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런 위대한 음악 유산을 위대하게 들리게 하는 것이 오디오의 몫이라고 하면, 본 세트는 매우 칭찬할 만하다. 과연 대영제국의 유산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이다.

이 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