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이탈리안 프레스티지

1994년 이탈리아엔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미국에서 출발한 하이엔드 오디오의 훈풍은 더욱더 그 온도를 높여가고 있었고 유럽 또한 새로운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클래시컬 음악의 풍부한 자양분과 그로부터 싹튼 예술성은 하이엔드 오디오와 자연스럽게 융합할 채비가 되어 있었다.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등 현악기 장인들의 숨이 깊게 잠든 그곳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창작 욕구를 참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프랑코 세블린이라는 또 한 명의 명장은 마치 악기의 바디를 연상시키는 스피커를 만들어냈다. 

첫 작품은 과르네리 오마주 북셀프였다. 별도의 스탠드가 필요 없이 길게 뻗은 이 진지한 예술적 디자인의 발로는 소형 북셀프 스피커에 대한 고정관념을 단순에 부숴버렸다. 천연 목재를 결합한 쪽매붙임 방식으로 류트형 설계는 심미적 만족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마치 미술관에 우뚝 선 조각품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한 체험을 선사했다. 이후 1998년엔 아마티 오마주가 과르네리 오마주의 뒤를 이으며 이와 같은 제작방식이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적층 합판과 MDF를 사용하면서 그 재료 측면에서 변화가 있었으나 늘씬한 몸매와 럭셔리 디자인 및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표면 마감은 아름다웠다. 전설의 명장 스트라디바리에 대한 오마주는 그보다 한참 더 시간이 흐른 2004년에 이루어졌다. 

소너스 파베르가 이루어온 일련의 오마주는 그저 현악기 제작의 명장들에게 바치는 경의만 담고 있지 않았다. 과르네리, 아마티, 스트라디바리는 오마주라는 주제 아래 하이엔드 오디오에 대한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위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저 음악이 더 좋은 음질로 들려준다는 기본 명제는 물론이며 시각적 예술성 및 소유의 즐거움을 통해 음악의 역사에 경배하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오마주는 다수의 아류를 낳기도 했다. 류트형 설계 그리고 악기의 제작방식을 스피커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은 소너스 파베르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mati Tradition

한동안 소너스 파베르의 자장은 저 드높은 오마주의 위상을 넘어서기 힘든 듯 보이기도 했다. 이후 여러 모델을 통해 개선을 꾀했지만, 그들이 만들어놓은 자장 안에 갇혀버린 듯 보였고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장벽을 넘지 못했다. 설립자 프랑코 세블린이 회사를 나가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따로 만든 것도 여러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결국 그는 크테마 같은 명기를 또 하나 남겼으나 소너스 파베르를 그는 물론 오디오파일조차 프랑코 세블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오랜 방황의 늪에서 헤어나온 것은 트래디션 오마주 시리즈부터다. 그들은 오마주 시리즈를 잊지 않았고 그 전에 몇 번의 리메이크를 통해 과거의 명성을 되살리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그런 경험은 오히려 소너스 파베르에게 독이 아닌 약이 되었고 결국 트래디션 오마주 시리즈에서 달콤한 열매로 나타났다. 이번 리뷰 제품은 그중에서도 최상급 아마티 트래디션이다. 

아마티 트래디션은 높이 1176mm에 전면 배플 넓이가 411mm, 깊이가 512mm인 중후장대한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다. 유닛은 트위터, 미드레인지 그리고 두 발의 우퍼를 채용한 3.5웨이 4 스피커 타입. 80Hz, 250Hz, 2,500Hz 등 세 개 구간에서 크로스오버 주파수를 끊은 광대역 스피커로서 28Hz에서 35kHz까지 재생 가능하다. 하지만 4옴 임피던스에도 불구하고 90dB 능률을 보이며 그리 제동이 어렵지 않은 범용성까지 두루 갖추었다. 

미국 현지 WOM(World Of Mcintosh)의 타운하우스에서 처음 공개된 아마티 트래디션은 푸른 망토가 벗겨지자 관중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2017년 초 타운하우스에서 열린 신형 아마티 트래디션 및 오마주 트래디션 시리즈는 소너스 파베르의 르네상스를 직감하게 만들었다. 오마주 트래디션 시리즈는 기존 소너스 파베르의 릴리움과 일 크레모네세 그리고 올림피카 컬렉션의 기술적 특징을 더욱 진보시켜 담아냈다. 캐비닛에서 일단 후면 외관 부분에 알루미늄을 사용하고 후방 포트 쪽에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설계 시스템 ‘Stealth Ultraflex’를 도입, 디스토션을 현격히 줄인 것이 특징이다. 상단에서 보면 마치 악기 모양을 보는 듯 유려한 디자인이 시선을 자극한다. 그러나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각진 부분을 없애 회절을 줄인 디자인이다. 

이 외에도 소너스 파베르가 이전부터 사용해왔던 표면 마감 기법은 더욱더 아름다워졌다. 가죽으로 전면 패널을 묵직하고 부드럽게 감싸하고 있어 안온한 느낌을 주며 알루미늄과 목재를 결합해 매우 견고하게 제작했다. 왠지 마감과 레드 마감을 제공하는데 상위 일 크레모네세, 릴리움 또는 아이다의 그것을 물려받은 느낌이다. 후면 디자인에선 상단과 하단에 위치한 댐핑 쉘과 함께 ‘Exosqueleton’ 시스템을 완성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더불어 하단은 기존의 일 크레모네세의 설계를 응용한 것으로 “Z.V.T.” (Zero Vibration Transmission)을 더욱 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스피커와 바닥 면 사이의 물리적 진동을 감쇄시켜 한결 더 깨끗하고 명료한 사운드를 얻기 위한 설계다.

아마티 트래디션은 세라피노 그리고 과르네리 트래디션과 동일하게 28mm 구경의 실크 돔 트위터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소너스 파베르의 “DAD Arrow Point” 기술이 적용된 트위터다. 미드레인지는 중, 고역의 주파수 이음매를 더욱 더 자연스럽게 하고 시간축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트위터와 동일한 배플 프레임 위에 위치시키고 있다. 미드레인지는 네오디뮴 마그넷을 사용한 새로운 모터 시스템을 장착해 매우 선형적인 성능을 가진다. 진동판은 셀룰로스 펄프 콘. 매우 온건하면서도 과거와 달리 높은 해상력과 사운드스테이징을 들려주는 것은 바로 이 중, 고역 덕분이다. 마지막으로 우퍼는 하이테크 Syntactic 코어를 중심으로 두 장의 셀룰로스 펄프를 샌드위치 방식으로 결합한 진동판을 채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크로스오버는 최적화된 공간과 시간축 반응을 위해 특별히 새롭게 고안된 회로를 사용하고 있다. 이른바 “Paracross Topology”로 낮은 주파수 대역에서의 임피던스 특성이 상당이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내부 크로스오버에 사용된 소재는 문도르프 Evo 오일 및 실버/골드 커패시터, Jantzen 인덕터 등 최고급 부품 등이다. 여타 트래디션 오마주 시리즈의 공칭 임피던스는 4옴으로 통일한 모습. 감도는 과르네리 트래디션이 87dB인 것을 생각하면 플로어스탠딩 형식의 아마티 트래디션은 상대적으로 고능률로 분류할 수 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아마티 트래디션은 사실 발매된 직후 오디오쇼에서 필자가 직접 시연해본 경험이 있다. 당시 매킨토시 레퍼런스 앰프와 린 LP12 및 린 클라이맥스 등을 사용했고 오디오쇼 시연장이라는 환경을 감안하면 꽤 뛰어난 소리를 내주었다. 이번엔 매칭을 달리해 오디오 리서치 레퍼런스 10 진공관 프리앰프와 역시 오디오 리서치의 레퍼런스 160 모노블럭 앰프로 구동했다. 한편 소스기기로는 dCS 디지털의 최신형 DAC 겸 네트워크 플레이어 비발디 원을 사용하고 앞단에 웨이버사 W 라우터/W 코어를 셋업, ROON으로 재생했다. 오디오 리서치와 dCS 그리고 소너스 파베르 매칭은 작년 오디오 쇼에 출품되어 대단히 훌륭한 재생 음을 들려준 조합이어서 내심 기대가 컸다.

Michael Jackson - Heal the world

Dangerous

예상대로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의미는 무엇보다 소너스 파베르를 과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최신 하이엔드 사운드의 조류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를 들어보면 역시 기존의 따스한 하모닉스 특성과 함께 냉정하게 끊어치기보다는 유연하고 감칠맛 나게 소리를 이끌어간다. 역시 소너스 파베르의 엔벨로프 특성이나 어택은 맹렬한 야수 같은 면보단 매우 안정감 넘치는 여유가 돋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유닛과 배치, 크로스오버 설계의 변경은 매우 높은 해상도와 디테일, 포커싱의 향상을 가져왔다. 후방 코러스가 흘러나오면서 펼쳐지는 입체적인 홀톤 그리고 전/후 깊이 표현에 있어 레이어링이 여러 겹으로 펼쳐지면서 홀로그래픽 음장을 만들어낸다. 

Oscar Peterson Trio - You look to good to me

WE Get Requests

토널 밸런스 측면에서는 오디오 리시치의 3극, 5극 전환 시 매우 다양한 표정으로 변화한다. 카멜레온 같은 오디오 리서치 프리/파워앰프는 3극으로 적용했을 때 서스테인이 길고 릴리즈도 천천히 길게 이어지는 반면 5극 모드일 때 어택이 빠르고 에지 있고 또렷한 포커싱을 보여준다. 적어도 아마티 트래디션에서는 5극 모드가 제격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역 해상력과 중, 고역 포커싱의 선명도다. 과거 소너스 파베르가 매우 고혹적인 질감 표현이 좋았지만 이번엔 더 맑고 선명한 해상도와 색감 모두를 획득했다. 예를 들어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You look to good to me’ 같은 레코딩에서 트라이앵글 소리가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찰랑거린다. 피아노는 달콤하고 영롱하며 드럼 브러시의 텍스처가 한 올 한 올 느껴질 정도로 세부 질감 표현이 뛰어나다.

Dire Straits - Sultans of swing

Dire Straits

물리적인 촉감은 여전히 말랑말랑해서 최근 미국 하이엔드 스피커의 그것처럼 단단하고 높은 응집력을 보여주진 않는다. 게다가 손에 배일 듯한 첨예한 윤곽으로 어필하지도 않는다. 대신 높은 해상도를 기반으로 하면서 동시에 촉촉한 촉감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한 방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Sultans of swing’ 같은 레코딩은 최근 들어본 그 어떤 사운드보다 진한 중역대의 기타와 보컬이 밀가루 반죽처럼 찰지게 잘 어우러진다. 특히 중역의 배음 성분이 만들어내는 풍부하고 중독성 넘치는 사운드는 질리지 않고 끝까지 음악에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고해상도 중, 고역이지만 절대 파삭하거나 건조하지 않고 윤기가 스며든 촉감이 좋다.

Modest Mussorgsky - 전람회의 그림

Tutti: Orchestral Sampler

아마도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저역 부분의 해상도와 속도 그리고 다이내믹스 표현력일 것이다. 과거에도 대부분 소너스 파베르의 경우 북셀프는 높은 저역 이하가 거의 표현되지 않고 플로어스탠딩의 경우 저역이 딜레이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애서 아마티 트래디션이 완전히 달라져 YG 어쿠스틱스나 매지코, 포칼처럼 민첩하고 강렬한 고밀도 저역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Tutti] 샘플러 중 ‘전람회의 그림’을 들어보면 저역은 꽤 묵직하게 바닥을 흔들며 탄력적으로 움직인다. 양감이 적당히 크고 당당하며 음상의 크기도 실사이즈처럼 충분히 크게 형성되어 현장감이 배가된다. 매우 위풍당당하며 여유 있고 풍성하며 온기가 스며있는 저역이다. 은근히, 진지하게 스멀스멀 다가오다 순간 밀어내는 묵직한 중량감과 임팩트가 공간을 부드럽게 감싼다.

총평

과르네리 오마주와 아마티 오마주 그리고 스트라디바리 오마주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 소너스 파베르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윌슨, 틸, 아발론 등 탁 트인 입체적 사운드스테이징과 정교한 포커싱, 정위감 위주로 승부하던 시절이었다. 와중에 예술적 심미안을 흔들어놓는 소너스 파베르의 오마주 시리즈는 귀는 물론 시각과 심미적 만족감을 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트래디션 오마주 시리즈는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예술적 디자인과 전통 그리고 최신 하이 테크놀로지까지 모두 결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중에서도 아마티 트래디션은 잘 짜여진 옷감이나 잘 지은 건축물 또는 이탈리안 가구 같은 모습으로 오마주의 전통을 흡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질 부문에서도 혁신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21세기에 다시 태어난 아마티 트래디션은 오마주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완벽히 부활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