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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아는 디지털 아날로그 컨버터(DAC)의 종류는 4가지다. 델타시그마 칩을 쓴 DAC, R2R 칩을 쓴 DAC, 저항을 일일이 붙여 컨버팅을 수행하는 R2R 래더 디스크리트 DAC, 그리고 펄스 어레이라는 독자적인 FPGA로 컨버팅을 하는 영국 코드의 DAC, 이렇게 4종이다.

멀티비트 델타시그마 칩을 쓴 DAC 중에서는 오르페우스의 Heritage DAC III가 압도적으로 좋았고 그다음이 마이텍의 Manhattan DAC II였다. R2R 칩을 쓴 DAC 중에서는 네임의 플래그십 네트워크 플레이어 ND555, R2R 디스크리트 DAC 중에서는 MSB의 모든 제품과 MSB R2R 모듈을 투입한 쓰랙스의 Maximinus DAC, 그리고 독자 노선의 토탈DAC 전 제품이 마음에 들었다. 코드에서는 물론 플래그십 DAVE가 압도적이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자택에서 R2R 디스크리트 DAC을 들었다. 이번 시청기인 아쿠아 어쿠스틱 퀄리티(Aqua Acoustic Quality)의 La Voce S3(라 보체 S3)다. 이 이탈리아 브랜드의 명망은 해외 리뷰를 통해 진작 알고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직접 시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라 보체 S3를 시청하다가 턴테이블과 포노스테이지 전원을 넣어 맞비교를 해봤을 만큼 아날로그 향이 가득한 DAC였다.

아쿠아 어쿠스틱 퀄리티와 R2R DAC

아쿠아 어쿠스틱 퀄리티는 제품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 크리스티안 아넬리(Cristian Anelli)와 마케터 스테파노 젤로(Stefano Jelo)가 2010년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에 설립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2가지를 내세웠다. R2R 방식의 컨버팅과 디지털 필터링의 추방이었다. “델타시그마 방식과 오버샘플링 DAC이 스펙은 화려할지 몰라도 오리지널 신호를 가장 순수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디지털 필터링이 없는 R2R DAC”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 선택한 것은 디스크리트 방식이 아닌 R2R 기성 칩이었다. 2010년 처음 나온 오리지널 라 보체와 그 상급 모델로 출력단에 진공관을 투입한 La Scala(라 스칼라)가 그것이었다. 오리지널 라 보체, 즉 La Voce S1은 무려 3가지 R2R 칩을 옵션으로 내걸어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끔 했다. 16비트 칩인 필립스의 TDA1541A, 18비트 칩인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AD1865, 24비트 칩인 버브라운의 PCM 1704K였다.

오리지널 라 보체는 2012년 초 S2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됐다. USB 입력단이 어싱크로노스 타입으로 바뀌고, 옵션이었던 XLR 출력단자가 기본 장착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3개 R2R 칩이 옵션인 것, 디지털 필터링이 일체 적용되지 않은 것, 그리고 토로이달 전원트랜스가 아날로그용과 디지털용으로 2개 장착된 것은 동일했다. 스펙 역시 버브라운 칩일 때 24비트/192kHz, 다른 2개 칩일 때 16비트/44.1kHz가 최대였다.

그러다 2018년 3월 이번 시청기인 S3 버전이 탄생했다. 마침내 칩을 버리고 일일이 저항을 붙여 R2R 컨버팅 스테이지를 만들었다. 아쿠아 어쿠스틱 퀄리티가 칩 대신에 디스크리트 방식을 선택한 것은 2016년 5월 자사 고유의 컨버팅 시스템인 Optologic(옵톨로직)을 채택한 플래그십 Formula DAC(포뮬라 DAC)부터. 이후 2016년 10월 라 스칼라도 mk2 Optologic DAC 버전이 되면서 디스크리트 방식을 채택했고, 2018년 3월에 막내인 라 보체도 마침내 디스크리트 DAC로 변모한 것이다. 일종의 트리클 다운인 셈. 하지만 옵톨로직 버전까지는 수혈받지 못했다. 이를 정리하면 이렇다.

2010년

= La Voce : R2R 칩(3개 옵션) 채널당 1개, 최대 24비트/192kHz

= La Scala : 버브라운 1704K 칩 채널당 1개, 출력단에 12AT7 채널당 1개, 24비트/192kHz

2012년

= La Voce S2 : R2R 칩(3개 옵션) 채널당 1개, 어싱크로노스 USB 입력단, 최대 24비트/192kHz

2013년

= La Scala mk2 : 버브라운 1704K 칩 채널당 2개, 출력단에 12AT7 채널당 1개, 24비트/192kHz

2016년 5월

= Formula DAC : 디스크리트 R2R 래더 뱅크 채널당 2개, 옵톨로직 컨버팅 시스템, 24비트/384kHz, DSD128

2016년 10월

= La Scala mk2 Optologic DAC : 디스크리트 R2R 래더 뱅크 채널당 1개, 옵톨로직 컨버팅 시스템, 출력단에 12AT7+MOSFET 채널당 1쌍, 24비트/384kHz, DSD128

2018년 3월

= La Voce S3 : 디스크리트 R2R 래더 뱅크 채널당 1개, 24비트/384kHz, DSD128

2018년

= Formula xHD DAC : 디스크리트 R2R 래더 뱅크 채널당 2개, 옵톨로직 컨버팅 시스템, FPGA 업그레이드, 24비트/768kHz, DSD256

라 보체 S3 외관과 스펙

DAC로서는 상당히 큰 덩치다. 폭 450mm, 높이 100mm, 안길이 310mm. 그러나 무게는 9kg으로 덩치에 비해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 전면 패널은 새틴 마감된 두께 10mm의 알루미늄이고 본체 케이스는 그레이 넥스텔 파우더로 코팅된 알루미늄이다.

입출력 단자와 인터페이스는 무척 간결하다. 전면에는 전원 온오프 노브와 입력선택(1~4) 노브, 그리고 디지털 위상변환 스위치, 이게 전부다. 후면에는 디지털 입력단으로 동축(BNC), AES/EBS, I2S, USB-B 단자, 아날로그 출력단으로 XLR과 RCA 각 1조를 갖췄다. RJ45 커넥터를 단 I2S 단자는 자사 CD 트랜스포트 La Diva(라 디바) 연결을 위한 용도다.

컨버팅 스펙은 역시 USB와 IS2 입력시 가장 높다. PCM은 24비트/384kHz까지, DSD는 DoP 방식으로 DSD128 음원까지 지원한다. 동축(75옴)과 AES/EBU(110옴)는 24비트/192kHz, DSD64 사양. 눈길을 끄는 것은 내부 PCB 보드도 그렇고 디지털 입력단도 그렇고 모듈 구성이라는 점이다. 덕분에 RCA 동축과 광 입력이 필요하면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RCA 동축은 24비트/192kHz까지, 광은 24비트/96kHz까지 지원한다.

아날로그 스펙은 주파수응답특성이 20Hz~50kHz(-0.5dB), 왜율(THD+N)이 0.1%를 보인다. RCA 출력전압은 2.5Vrms에 100옴, XLR 출력전압은 5.5Vrms에 200옴. 제작사에서는 프리앰프 등의 부하 임피던스로 각각 10k옴 이상과 600옴을 권장하고 있다.

라 보체 S3 설계 디자인

라 보체 S3의 아이덴티티는 디지털 필터가 없는 R2R 디스크리트 DAC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 사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오른쪽 앞쪽에 있는 R2R 래더 보드다. 많은 저항들이 표면 실장된 컨버팅 보드(저항 래더 뱅크)가 위아래로 한 장씩 투입됐음을 알 수 있다.

제작사에서는 구체적인 언급은 안 하고 있지만 R2R 래더 타입의 컨버팅 보드를 24비트로 설계하는 경우 채널당 48개의 디스크리트 저항이 필요하다. 잘 아시는 대로 R2R 래더 방식은 디지털 신호 각 비트에 저항을 2개(R, 2R)씩 붙여 아날로그 전압값을 얻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즉, 2비트라면 4개(2R+2R, 2R+R), 4비트라면 8개(2R+2R, 2R+R, 2R+R, 2R+R) 저항을 붙이고 이 상태에서 각 저항에 붙은 스위치를 일제히 온(on) 시키면 디지털 신호 값에 따라 서로 다른 아날로그 전압값이 순간순간 집계되는 것이다. 물론 비트수(저항수)가 많아질수록, 저항의 오차값이 작을수록 더욱 정확하고 촘촘하며 매끄러운 아날로그 파형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라 보체 S3는 채널당 1개씩의 R2R 래더 보드를 쓰고 있기 때문에 표면 실장된 총 96개 저항이 컨버팅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채널당 2개씩 R2R 래더 보드를 투입, 풀 디퍼런셜(풀 밸런스)로 컨버팅하는 포뮬라 DAC는 따라서 192개 저항이 투입됐을 것이다.

이같은 디스크리트 R2R 래더 보드 앞단에는 아쿠아 어쿠스틱 퀄리티에서 자이링크의 스파르탄(Spartan) 칩으로 자체 설계한 FPGA 보드가 있다. 이 FPGA 보드에서는 각종 디지털 디코딩이 이뤄지지만, 오버 샘플링 같은 디지털 필터링을 일체 안 하는 점이 라 보체 S3를 비롯한 아쿠아 어쿠스틱 퀄리티의 설계철학이다. R2R 칩 시절에도 칩 내부의 디지털 필터는 바이패스했을 정도였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모듈 구성인 점도 큰 특징이다. 즉 FPGA 보드(P608)를 비롯해 R2R 래더 보드(P607), USB 입력보드(P901), 메인보드(P601), 이런 식으로 내부 기판이 나뉘어 있어서 R2R 칩을 썼던 기존 S2에서 디스크리트 S3로 손쉽게 업그레이드(유료)가 가능하다.

이밖에 전원부는 양옆으로 분리된 2개의 토로이달 전원트랜스가 각각 아날로그 파트와 디지털 파트를 책임지고, 정전압 유지를 위한 전압 레귤레이터로는 IC가 아닌 MOSFET, JFET, BJT 같은 디스크리트 소자가 투입됐다. 아날로그 출력단 역시 op앰프 대신 모두 디스크리트 증폭소자로 설계했고, 저잡음 메탈 포일 저항 같은 고품질 부품들을 선별해 투입했다.

라 보체 S3 음의 첫 인상

언제나 그렇지만 자택 리뷰는 마음이 급하고 설렌다. 기존 시스템 그대로에서 해당 리뷰 제품만 달라진 만큼, 빨리 그 변화된 첫 음을 듣고 싶은 것이다. 아마 신품을 사는 큰 재미 중 하나는 박스 개봉과 함께 이 첫 음을 듣는 재미일 것이다. 그리고 보통 이 행복한 허니문은 필자의 경우 채 하루가 안간다. 간사한 귀가 너무나 빨리 그 소리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라 보체 S3를 자택 시스템에 투입한 후 들려온 첫 음은 ‘묵직하고 빽빽한 음’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음 한 음 컨버팅에 정성을 다한다는 인상도 강렬했다. 그 때문에 어떻게 보면 스피드가 좀 더딘, 발걸음이 결코 가볍고 경쾌한 DAC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1000만원, 2000만원대 하이엔드 DAC에서 느꼈던 고운 입자감도 조금은 부족했다. 이게 라 보체 S3에 대한 필자의 솔직한 첫인상이다.

LP와 비교?!

라 보체 S3 음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어느 날, 룬(Roon)을 통해 타이달(Tidal)로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첼로)와 벤자민 브리튼(피아노)이 연주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들었다. 음원은 1999년 발매된 ‘데카 레전드’ 16비트/44.1kHz FLAC 파일. 그때 문득, 평소 자주 듣던 LP 소리와 너무나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DAC를 시청하다가 느닷없이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LP를 틀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프리앰프 입력단 하나에는 포노스테이지, 다른 하나에는 라 보체 S3를 연결해놓고 리모컨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반복 비교를 하는 기묘한(?) 시청이 돼버렸다. LP는 1968년 오리지널 아날로그 마스터 테이프를 갖고 독일 에밀 베를리너 스튜디오에서 커팅한 180g 중량반. 포노스테이지는 올닉의 진공관 ‘H-1201’, 카트리지는 오토폰의 Quintet Red MC를 동원했다.

흔히 DAC 성능이나 소리가 좋으면 ‘아날로그 사운드에 근접한’ 혹은 ‘디지털 냄새를 없앤’ 이런 표현들을 많이 쓴다. 필자 역시 여러 DAC를 리뷰하면서 이런 표현을 자주 썼다. 어차피 DAC의 존재 이유는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꾸는 것이니까, 잘 만든 DAC에 이런 칭찬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1대1 비교 결과, 16비트 음원을 대상으로 한 불공점 게임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역시 LP의 승리였다. 무엇보다 LP가 배음은 물론 공간감까지 제공하는 그 풍부한 정보량에서 디지털 음원을 앞섰다. 하지만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같은 LP 우월론이 아니라, 라 보체 S3가 그만큼 아날로그 사운드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줬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자택에서 적지 않은 수의 R2R 디스크리트 DAC를 리뷰했지만, LP와 비교하게끔 만든 것은 이 라 보체 S3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라 보체 S3가 가격 불문하고 다른 R2R DAC보다 무조건 낫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고운 입자감에서는 확실히 하이엔드 DAC에 밀린다. 대신 묵직하고 빽빽하며 포근한 소릿결은 거의 처음이라고 할 만큼 도드라진 것이 이번 라 보체 S3였다. 진중함이랄까, 한 음 한 음을 정성을 다해 컨버팅한다는 느낌도 좋았다. 바로 이 점이 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LP와 매우 닮았다고 생각한다.

시청

시청에는 올닉의 진공관 프리앰프 L-1500과 300B 싱글 파워앰프 A-1500을 동원했다. 스피커는 탄노이의 D-700과 스캔소닉의 MB-1을 번갈아들었다. 음원은 룬(Roon)을 통해 타이달(Tidal), 코부즈(Qobuz) 스트리밍 음원, 그리고 다운로드한 24비트 PCM과 DSD 음원을 활용했다.

Eric Clapton - Wonderful Tonight

Just One Night

먼저 몸풀기로 에릭 클랩튼의 라이브 ‘Wonderful Tonight’을 들었다. 자택 델타 시그마 DAC로 듣다가 곧바로 라 보체 S3로 바꿔보니 에너지감이 증가하고, 음수와 배음이 풍부하고 풍성해진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대신 해상력은 약간 준 듯하지만, 이 교환이 절대 아깝지 않다는 느낌. 확실히 델타 시그마 DAC보다는 포노를 거친 LP 사운드, 디지털 냄새를 많이 휘발시킨 사운드에 가깝다. 또한 보컬과 악기의 텍스처가 더 잘 느껴진 점, 보다 현장에 와 있는 것 같은 점, 음의 감촉이 좀 더 부드러워진 점이 도드라진다. 사운드스테이지와 이미지는 비슷한 수준. 전체적으로 색채감과 무게감, 밀도감, 에너지감, 이런 계열에서 기분 좋은 변화가 포착됐다.

Mstislav Rostropovich - Sonata for Arpeggione and Piano

Schubert - Sonata for Arpeggione and Piano

이 곡은 위에서 자세히 쓴 것처럼 LP와 맞비교해가며 들었다. LP가 좀 더 굵고 약간 뒤로 빠진 음을 들려준다. 이에 비해 라 보체 S3는 상대적으로 얇고 연하며 앞으로 조금 포워딩해온다. 특히 첼로 사운드에서 비교적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음의 무게감이나 실체감은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상당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거침없이 내려가는 저역과, 해상도는 약간 모자르지만 힘이 실린 고역의 쾌감이 좋다. 이에 비해 자택 DAC는 고역은 섬세하지만 약간 힘이 없는 그런 사운드다. 셋을 비유하면 이렇다. 진공관 포노를 거친 LP 사운드는 깨끗한 시냇물에서 빤 손빨래, 라 보체 S3는 빨랫비누와 빨랫방망이를 쓴 빨래, 자택 델타 시그마 DAC는 세제를 넣은 세탁기 빨래.

Ensemble Explorations - Rossini: Una Lagrima pour Violoncello et Piano

Une Larme

자택 DAC로 듣다 라 보체 S3로 바꾸니 비로소 그랜드 피아노 느낌이 난다. 무게감과 스케일이 늘어난 것이다. 이같은 성정은 비올라 재생에서 훨씬 유리했다. 더 슬프고 더 처연하게 느껴진 것이다. 음들도 평소보다 더 바닥에 잘 꽂힌다. 내 앞에서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도 이쪽이 더 강하다. 디지털 필터링이 없다는 제작사 설명에 따른 착시일 수도 있으나, 배경이 좀더 어두컴컴하고 기름기가 쏵 빠진 점도 도드라진다. 한 음 한 음이 애매하지 않고 분명하게 들리는 점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풋워크의 경쾌함은 자택 DAC에 비해 줄어든 것 같다. 이 곡은 이후에도 여러 번 또 들었는데, 참으로 만족도가 높은 피아노 타건음이 흘러나왔다. 묵직하고 울림이 많으며 찰진 음이다. 비올라는 끈끈하고 단단하다. 위로 휘발 또는 증발되는 음이 없다. 그만큼 악기 연주의 미세한 뉘앙스와 악기 자체의 텍스처가 잘 느껴진다. 커피에 비유하면, 자택 DAC는 확실한 블론드 로스트이고, 라 보체 S3는 다크 로스트에 가까운 맛이다.

Alf Linder, Marianne Melinas, Oscar’s Motet Choir - Christmas Song

Cantate Domino

바닥에 깔리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자택 DAC보다 더 잘 들린다. 각 대역 밸런스가 피라미드식으로 잘 이뤄져서 그런지, 소프라노가 더 깨끗하게 들리는데 이는 바닥이 견고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라 보체 S3의 최대 매력은 이 음의 무게감과 자연스러움이다. 자택 DAC의 첫인상이었던 ‘평소 안 들리던 소리를 들려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대신 ‘평범했던 소리를 눈에 띄게 바꿔주는 스타일’이다. 이어 들은 마들렌 페이루(Madeleine Peyroux)의 ‘Bye Bye Love’(The Blue Room)에서는 보컬은 차이가 없지만, 저역의 밀도감과 양감, 탄력이 늘어났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녹음 당시 이 곡 자체에 끼어든 플로어 노이즈도 이날 따라 유난히 잘 들린 점도 꼭 밝혀두고 싶다. 필요 없는 것은 걸러내서 음들을 예쁘게 들려주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Salvatore Accardo - La Campanella

Diabolus in Musica

첼로의 에너지감이 잘 살아서인지 바이올린에 좀 더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느낌이다. 역시 이 곡에서도 사운드스테이지의 밀도감과 악기 각 음의 윤곽선이 진하다. 선명하거나 투명하며, 깔끔한 계열은 아니다. 맞다. 지금 들리는 라 보체 S3는 감수성이 예민했던 청소년기에 카세트테이프로 듣던 그 소릿결을 닮았다. 1982년 처음 CD가 등장하고 나서 들었던 그 한없이 선명하고 깨끗하지만, 몹시 가벼웠던 소리가 아닌 것이다. 세밀화에서 유화로, 3D 프린팅에서 실제 끌로 깎은 조각으로 넘어간 느낌. 고역대마저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다. 음 자체의 해상력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각 악기의 아티큘레이션은 더 자세하게 펼쳐 내주는 DAC이다. 이를 ‘표현력’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총평

즐겁고 유익한 시청이었다. 평소 잘 안 듣던 음원까지 들어서 즐거웠고, LP와 R2R DAC를 집중 비교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섣불리 ‘아날로그 사운드를 들려주는 DAC’, 이런 말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특히 라 보체 S3의 가격대를 감안하면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소리를 들려준 점이 기특하다. 이러다 보니 상급기인 라 스칼라나 포뮬라는 또 얼마나 더 정제되고 아날로그 사운드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아쿠아 어쿠스틱 퀄리티, 주목할 만한 이탈리아 오디오 브랜드를 하나 접했다. R2R 디스크리트 DAC를 찾는 애호가들에게 일청을 권한다.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