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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순수 오디오 애호가 시절, PMC 북쉘프 스피커 ‘TB2i Signature’를 1년여 동안 쓴 적이 있다. PMC의 트레이드마크인 ATL(Advanced Transmission Line)이 적용된 덕에 크기에 비해 단단하고 풍성한 저역이 나왔다. 영국 스피커 특유의 명료한 중역도 마음에 들었다. 또한 시그니처 버전이라 설립자인 피터 토마스(Peter Thomas)씨의 사인이 들어간 점도 이 스피커에 더욱 애착을 갖게 했다.

피터 토마스씨를 만났다. PMC의 새 플래그십인 ‘Fenestria’(페네스트리아) 국내 론칭을 맞아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한 것이다. 고백건대, 사진으로만 보던 그를, 홈 오디오는 물론 프로오디오에서도 확실히 입지를 굳힌 PMC의 주인공을 필자가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1955년생, 환갑을 훌쩍 넘겼음에도 긴 머리를 늘어뜨린 피터 토마스는 인터뷰 질문에 너무나 성의 있고 친절하게 답했다. 이메일을 통해 이뤄진 보충 질문에도 장문의 답변을 보내왔다.

인터뷰어 : 김편

인터뷰이 : 피터 토마스(Peter Thomas)

- 반갑습니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외국을 많이 돌아다니는 타입이 아니라 아직 방문하지 못한 나라가 많습니다. 그동안 CEO를 겸하면서 라인업까지 왕성하게 개발하느라 바쁘기도 했고요. 최근 새 CEO를 선임하면서 시간이 나 이번에 디스트리뷰터가 있는 한국을 비롯해 대만, 홍콩, 중국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 피터 토마스는 올해 메리디안 CEO 및 B&W 프로덕트 개발부 총괄책임자를 역임한 팀 아일랜드(Tim Ireland)를 PMC의 CEO로 선임했다.

- 새 플래그십 스피커 ‘페네스트리아’가 출시됐습니다. ‘BB5 se’보다 더 상급 모델인데도 ‘se’ 시리즈가 아니라 ‘fact’(팩트) 시리즈로 분류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se’ 시리즈는 원래 스튜디오나 프로페셔널 오디오에서 쓰기 위해 만든 스피커들이고, ‘팩트’는 상급 하이파이 시장을 겨냥한 시리즈입니다. 외관 역시 스튜디오보다는 가정용으로 쓰기에 맞습니다.

#. 현재 PMC 컨슈머 라인업은 se(IB2 se, MB2 se, MB2-A se, BB5 se, BB5-A se), fact(fact.3, fact.5c, fact.8, fact.12, fact.10c, fenestria), twenty5(twenty5 21, twenty5 22, twenty5 23, twenty5 24, twenty5 26), Gold(DB1 Gold) 시리즈로 짜여졌다.

- ‘페네스트리아’가 무슨 뜻인가요.

‘소리의 창’(window of sound)이라는 뜻입니다. 투명하게 음악만을 전하겠다는 PMC 설계 철학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 그래서 그런지 외관부터 기존 PMC 스피커와는 파격적이라 할 만큼 달라졌습니다.

디자인이 이렇게 나온 것은 모두 음질 향상을 위한 것입니다. 캐비닛은 각 대역에 맞게 서로 아이솔레이션되었고, 미드레인지와 트위터는 별도 하우징에 수납됐으며, 사이드 패널은 공진 제거를 위한 TMD(Tuned Mass Damper)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전면 배플이 좁은 것은 정확한 사운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죠. 좁은 배플은 ‘팩트’ 시리즈의 디자인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일반 가정에서도 잘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죠.

#. ‘페네스트리아’ 스피커는 6유닛, 3웨이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로 6.5인치 우퍼 2발이 각각 별도 캐비닛에 수납돼 상하 대칭으로 배열돼 있는 점이 특징. 미드와 트위터 역시 ‘Nest’(둥지)라고 명명한 솔리드 알루미늄 하우징에 수납됐다. 옆에서 보면 바이폴라 스피커처럼 네스트 하우징 뒤로 미드와 트위터 후면이 그대로 노출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우퍼 캐비넷 양 사이드에는 제진 대책의 일환으로 고층빌딩에 투입되는 TMD 패널이 한 장씩, 총 4장이 붙어있다. 물론 위아래 우퍼 캐비넷 안에는 각각 2.4m 길이의 ATL이 들어가 있다. 트위터는 0.77인치 SONOMEX(소노맥스) 소프트 돔, 미드레인지는 3인치 소프트 돔, 6.5인치 평형 피스톤 우퍼는 카본 파이버 재질이다. 공칭임피던스는 4옴, 감도는 86dB, 주파수응답특성은 23Hz~25kHz를 보인다. 높이는 170cm, 무게는 80kg.

- 우선 트위터와 미드레인지가 수납된 네스트 모듈이 눈길을 끕니다.

네스트 모듈은 캐비닛이 없기 때문에 소리 이미지가 더욱 좋아지고 플랫한 주파수응답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배플이 없고 반사음도 없으니까요. 아주 작은 스피커들을 들어보면 저역은 없지만 포커싱이 좋은데, 네스트 모듈도 이를 위해 최대한 작게 만들었습니다.

- 우퍼 4발이 서로 상하 대칭으로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우퍼는 보통 바닥에 있죠. 하지만 몇 년 전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우퍼를 상하 대칭으로 해 실험을 해보니 저역대 응답특성이 아주 평탄하게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룸 환경이 안 좋은 곳에서도 플랫한 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 PMC의 ATL이 예전 IMF 스피커의 트랜스미션 라인 설계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개인적으로 1970년대 초에 쿼드 정전형 스피커와 IMF 트랜스미션 스피커를 직접 사용했습니다. 두 스피커가 완전히 다른 설계인데도 모두 저역 왜곡이 낮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전형은 성능향상에 한계가 있어 저는 트랜스미션 라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후 ATL을 직접 만들면서 깨달은 것인데, 저역 왜곡이 적어지면 중고역이 훨씬 명료해집니다.

#. 피터 토마스씨는 영국 캔터베리 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1980년대 BBC 라디오에서 스피커 디자인 엔지니어로 일했다. BBC에 납품되는 각종 스피커 소리를 들어보고 채택 여부를 판정하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그러다 BBC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아드리안 로더(Adrian Loader)와 함께 ATL이 적용된 스피커를 개발, 5차례 테스트 끝에 BBC 인증을 받았으니 그게 바로 ‘BB5’다. 하지만 직원이 만든 스피커를 쓸 수 없다는 BBC 결정에 따라 피터 토마스는 BBC를 퇴사, 아드리안 로더와 함께 1991년 PMC를 설립했다. 회사 이름(Professional Monitoring Company)에 처음부터 ‘프로페셔널’이 들어간 이유다.

- 기존 트랜스미션 라인과 PMC ATL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원리는 같습니다. 둘 다 베이스를 컨트롤하는 기술인데, 100Hz 이상 주파수는 안에서 흡수하고 100Hz 이하 주파수는 그대로 통과시켜 벤트로 배출합니다. 트랜스미션 라인과 ATL이 모두 제2의 베이스 유닛처럼 일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우퍼의 부하가 적어져 왜곡이 줄어들고 유닛 자체가 작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미션 라인은 100Hz 주변에서 응답특성이 고르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기존 우퍼 유닛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저음의 양은 많아졌지만 (음이 통과하는 터널의 긴 길이로 인해) 속도가 줄어들었고, 울(wool)이 100Hz 이상 주파수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캐비닛을 더 크게 만들 수밖에 없었죠. 이에 비해 ATL은 유닛을 자체 제작하기 때문에 ATL에 맞춰 유닛을, 또 유닛에 맞춰 ATL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PMC가 트랜스미션 라인 스피커보다 캐비넷과 유닛을 훨씬 작게 만들 수 있는 배경입니다.

- ATL의 출구, 즉 벤트가 예전에는 뒤에 있었는데 최근에는 거의 앞에 있습니다.

벤트가 앞으로 온 것은 ‘Twenty’ 때부터입니다. 사람들이 TV와 같은 위치에 놓일 수 있도록 스피커를 벽에 밀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DB1’은 작은 북쉘프 스피커이기 때문에, ATL 길이를 확보하기 위해 뒤에 벤트가 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PMC 스피커의 벤트에는 모두 ‘Laminair’(라미네어) 기술이 베풀어져 있습니다. 이는 원활한 공기 흐름을 위해 F1 레이싱 카 환기구에 적용된 에어 댐핑 기술인데, 차 바닥에서 생기는 와류(turbulence)를 막아줘 공기가 미끈하게 빠져나가게 해줍니다.

- ‘라미네어’ 벤트가 현재 PMC R&D 센터를 이끄는 아들 올리버 토마스(Oliver Thomas)가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올리버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모터스포츠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뒤 영국 레드불(Red Bull) 레이싱 팀에서 엔진 쪽 엔지니어링 파트를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F1 레이싱카에 적용된 공기역학과 에어 댐핑 기술에 놀라 이를 스피커에 도입하게 된 것이죠.

- 그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4년 전 미국 LA의 캐피탈 스튜디오로부터 130dB이라는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스피커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들어보니 벤트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리더군요. 호기심에 소프트웨어를 돌려보니 정말 벤트 쪽에 난기류가 형성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아들 올리버가 F1 에어댐핑 기술을 적용해보자고 했던 것이고, 그 결과 왜곡이 확실히 줄어든 것이 확인돼 ‘라미네어’ 벤트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라미네어’ 벤트는 이후 소형 스피커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 우퍼 진동판이 평평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콘 우퍼는 안쪽에 많은 압력이 몰립니다. 압력이 강해지면 진동판이 구부러지고 왜곡이 생깁니다. 그런데 ‘페네스트리아’는 강도가 높고 왜곡이 낮은 우퍼, 작은 직경에 큰 폭으로 움직이는 드라이버(small driver with long throw)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드라이버에는 강도가 높은 플랫 타입이 유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스피커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소리, 같은 결과물을 여러 방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스피커 모델에 따라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것일 뿐입니다. 우퍼에 쓴 카본 진동판도 이번 ‘페네스트리아’ 캐비닛 특수성에 맞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 양 사이드 패널이 TMD 원리를 이용했다고 들었습니다. TMD가 고층빌딩 꼭대기에 건물 움직임과 반대로 움직이는 무거운 추를 달아 진동을 상쇄시키는 원리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 패널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요?

‘페네스트리아’의 캐비닛은 캐비닛의 작은 공진까지도 감지할 수 있는 가속도계(accelerometers)로 덮여있습니다. 이 가속도계의 계산에 의해 패널과 고무 마운트가 캐비닛의 공진 주파수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공진을 댐핑 시키게 됩니다. 이는 턴테이블에서 톤암과 카트리지의 무게를 스타일러스 어셈블리에 맞춰 톤암의 공진을 제거하는 원리와 비슷합니다.

- ‘페네스트리아’의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380Hz, 3.8kHz입니다. 고역 크로스오버가 매우 높게 이뤄지는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는 크로스오버 주파수를 되도록 중역대와 멀찌감치 떨어뜨려 설계합니다. 깨끗하고 개방적인 중역대를 얻기 위해서죠. 고역 크로스오버 주파수뿐만 아니라 저역 크로스오버가 380Hz로 낮은 것 역시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페네스트리아’의 광대역하고 우수한 확산특성을 갖는 새 미드레인지 유닛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고역 크로스오버 주파수가 3.8kHz나 되기 때문에 트위터 직경을 좀 더 작게 만들어 확산특성을 개선시킨 점도 획기적입니다.

- PMC 스피커는 -24dB이라는 가파른 크로스오버 슬로프를 보이는데요, ‘페네스트리아’도 마찬가지인가요?

네, 맞습니다. 이론적으로는 1차 오더(-6dB) 크로스오버가 부품 수가 가장 적다는 점에서 음질과 비용면에서 최선의 옵션입니다. 그러나 실제 소리를 들어보면 좋은 경우가 드뭅니다. 이는 각 유닛이 크로스오버 주파수 위나 아래에서 왜곡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즉, 베이스 유닛은 크로스오버 주파수 위에서, 트위터는 크로스오버 주파수 아래에서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소리를 낸다는 것이죠. 그래서 PMC는 ‘페네스트리아’를 포함해 모든 스피커에 4차 오더(-24dB)를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각 유닛은 크로스오버 포인트 위와 아래에서 곧바로 소리를 내지 않게 됩니다. 물론 4차 오더 설계가 부품수도 많고 회로도 복잡하며 전자기장 간섭도 크지만, PMC는 최고의 4차 오더 크로스오버 설계를 위해 모든 기술력과 비용을 쏟아부었습니다.

- PMC 스피커가 완성되면 꼭 30년 넘은 20W 소출력 리시버로 직접 테스트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모델인가요?

1970년대에 나온 일본 테크닉스(Technics) 제품입니다. 이 리시버로 구동이 되면 그만큼 해당 스피커 구동이 쉽다는 뜻입니다. 사실 요즘은 측정이 아주 정교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굳이 필요한 테스트 과정은 아니지만 오랜 습관이기 때문에 지금도 이 리시버로 테스트를 합니다. 저희는 가급적 구동이 쉬운 스피커를 만듭니다. ‘페네스트리아’도 예외는 아닙니다.

- 그런데 예전에 사용했던 ‘TB2i Signature’는 구동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진공관 앰프보다는 대출력 솔리드 앰프와 매칭이 더 좋았습니다.

목표는 아니었지만, 과거보다 지금의 PMC 스피커가 효율이 높습니다. 크로스오버와 유닛이 개선되고, ATL도 최적화되고 있기 때문에 점점 구동이 쉬워지고 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진공관보다 솔리드를 좋아합니다.

- ‘페네스트리아’가 처음 완성됐을 때 어떤 소리라고 느끼셨나요.

너무 환상적인 소리라서 박수를 쳤습니다. 저한테는 ‘페네스트리아’가 액티브 스피커 같은 소리를 내는 최초의 패시브 스피커였습니다. 패시브 스피커는 크로스오버 회로가 있기 때문에 정확하고 깨끗한 소리를 내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페네스트리아’에서 깊이나 디테일, 레이어감에서 액티브 스피커 같은, 새로운 패시브 스피커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 사소한 것인데 평소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예전 PMC 로고 앞에 붙어있던 동그라미 3개는 무슨 뜻이었습니까.

하하. 정말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그냥 디자인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필요가 없어서 이제는 안 씁니다.

- PMC와 ‘페네스트리아’, 그리고 피터 토마스씨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핵심적인 것을 여럿 물어봐 답하기도 즐거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