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Hugo 그 이후

그 수많았던 하이엔드 디지털 메이커는 다 어디로 갔을까? DSLR의 출현 그리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과거 영광의 나날을 보냈던 디지털 메이커 중 잊혀간 것들이 한둘이 아니고 이는 오디오 분야도 마찬가지다. 와디아, 첼로, 비맥, 퍼페추얼 그 옛날의 크렐, 마크 레빈슨까지. 그러나 시대는 메이커를 그대로 놔두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포맷과 해상도에 적응하지 못하면 퇴출해버린다. 디지털의 태생적 특성이다. 그중 코드 일렉트로닉스 같은 경우엔 굉장히 영민한 집단으로 하이엔드 모델을 굳건히 발전시키며 대중적 트렌드에 적응했다. 현재 마치 과거 전통적 스피커 제조사들이 사운드바나 올인원 스피커 또는 이어폰, 헤드폰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것과 비유할만하다.

코드 일렉트로닉스를 처음 만난 건 앰프였지만 현재 코드를 대표하는 라인업은 당연히 디지털 라인업이다. 이 화려한 라인업의 시작은 DAC64 같은 DAC였고 이 코랄 시리즈는 QBD76과 QBD76HD, QBD76HDSD를 거쳐 이제 DAVE까지 당도했다. 그 와중에 코드 일렉트로닉스가 생존할 수 있었던 데는 헤드폰 앰프 겸 DAC의 성과가 있었다. 포터블 기기인 Hugo는 거치형 하이엔드 메이커 코드를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기존 헤드폰 관련 메이커들에겐 커다란 위협이었다. 그렇게 코드의 헤드폰 앰프 시장 침공은 가속화되었고 Hugo는 그 첨병으로 기능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Hugo의 성공은 Hugo 2로 이어지며 승승장구했다.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헤드폰 앰프 시장 침공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Mojo다. 손 안에 꼭 잡히는 이 작은 헤드폰 앰프는 음악 마니아들의 아이폰 같은 존재였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가격대의 하이엔드 디지털 장비에 들어가는 코드의 디지털 기술을 단 몇 분의 1 가격에, 그것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포터블 기기에서 즐길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그리고 전 세계 헤드폰 앰프 시장을 단숨에 석권해버렸다. 

데스크탑 하이엔드 Hugo TT 2

코드 일렉트로닉스가 만들어낸 포터블 헤드폰 라인업 중 최상급 Hugo에 이어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고민에 빠진 듯했다. 이후 코랄 시리즈 DAC보단 작고 Hugo나 Mojo보단 큰, 그 사이를 메울 수 있는 라인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태어난 것이 Hugo TT다. 크기는 일반적인 앰프나 DAC의 절반 사이즈지만 DAVE DAC만큼 크다. 그들에겐 아이폰이나 맥북의 중간, 그러니까 아이패드 같은 모델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스티브 잡스가 서류봉투에서 종이 서류 뭉치가 아닌 아이패드를 꺼내며 프레젠테이션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러나 Hugo TT를 가방에 넣고 다니기엔 조금 쉽지 않을 것 같다. 

최근 Hugo TT 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TT 2로 업그레이드된 제품인데 제작사의 설명을 보니 마이너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거의 모든 부분을 뜯어고친 모델이다. 전체적인 모양만 같은 뿐 내부 프로세싱 및 전원부 등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우선 Hugo TT 2는 데스크탑 DAC 겸 헤드폰 앰프다. B타입 USB, 두 벌의 동축 BNC 및 두 벌의 광 입력을 받으며 두 벌의 BNC 출력단도 마련했다. 게다가 무선 블루투스 기능도 갖추고 있다. 출력은 RCA 및 XLR 각 한 조씩 마련한 모습으로 무게는 2.53kg으로 섀시 크기에 비하면 꽤 가벼운 편이다. 헤드폰 앰프인 만큼 다양한 헤드폰 출력을 자랑한다. 두 개의 6.5mm 잭 그리고 3.5mm 헤드폰 잭을 전면에 배치한 모습이다. 

Hugo TT 2에서는 코드의 신작에서 항상 이슈가 되는 WTA 탭 길이가 무려 98,304탭으로 드라마틱하게 늘어났다. 전작 Hugo TT의 26,368탭에 비해 거의 네 배, Hugo 2의 49,152탭에 비해서도 두 배 높은 모습. 그리고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현존 플래그십 DAC DAVE의 164,000탭에 비하면 약 60%에 근접하는 탭 길이를 자랑하고 있다. 채 절반이 되지 않는 가격에서 Hugo TT는 사실상 준 플래그십의 위치에 올라 있다고 볼 수 있다.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Hugo TT 2에 그들의 WTA 필터 등 핵심 기술을 탑재하면서도 상/하위 모델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설계다. 시간을 인지하는 간격에 대한 속도와 관련 WTA 필터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탭 길이를 늘여가면서 디지털의 단점을 계속해서 혁신해온 코드 일렉트로닉스. 그 핵심 사항인 WTA 필터를 구사하기 위해 86x 208MHz DPS 코어를 병렬로 구성하고 자일링스 Artix 7 FPGA를 심장부에 전진 배치시켰다.

본 작은 기본적으로 PCM 포맷에 대해 무려 768kHz까지 대응하며 DSD 포맷에 관해서는 DSD512까지 대응하는 등 현존 최고 수준의 샘플링 레이트를 서포트하고 있다. 인터페이스는 여타 코드 헤드폰 앰프 겸 DAC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 전면 디스플레이 및 볼륨 조절 노브의 색상 등을 조정 가능하며 전면 버튼이나 리모컨을 통해 대단히 다양한 기능을 조정할 수 있다. 상단엔 마치 우주선 안을 들여다보는 듯 둥그런 창을 마련해놓았고 입력 샘플링 레이트에 따라 열 개가 넘는 다양한 색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헤드폰 앰프에 크로스피드 기능을 지원하고 DAC 단의 경우도 몇 가지 필터를 제공하는데 사용자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하겠다는 코드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런 대단히 다양한 기능은 편의성을 부여하지만 약간 번잡해 보일 수도 있고 특히 상단 디스플레이 창은 종종 너무 화려하게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셋업을 마치면 별로 조정할 부분은 없으며 창은 끌 수도 있다.

사운드 퀄리티

리스닝 테스트는 필자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레퍼런스로 사용 중인 마이텍 맨하탄 II DAC 외에 웨이버사 WDAC 3MKII 외에 코드의 DAVE 및 Hugo 2 등 코드 일렉트로닉스 제품과 비교도 이루어졌다. 앰프는 제프 롤랜드 시너지 프리앰프 및 플리니우스 파워에 다인 C4를 주로 활용했다. 한편 프리마루나 다이아로그 프리미엄 HP 진공관 인티앰프와 베리티 피델리오 앙코르 스피커도 활용했다. 단, DAC 앞단엔 웨이버사 시스템즈의 W 코어 및 W 스트리머를 고정적으로 사용해 공평성에 주의를 기했다.

Aoi Teshima - Rose

The Rose ~I Love Cinemas~ 

사운드 테스트는 주로 코드 DAVE 및 마이텍 맨하탄 II를 번갈아가며 이루어졌다. 초반엔 어느 정도 시스템 적응기를 거쳤으나 아내 안정화되었다. 코드 DAVE나 마이텍 맨하탄에 비하면 Hugo TT 2의 대역 밸런스는 약간 높은 편으로 시종일관 청명하고 현존 최고 수준의 해상력 높은 고역을 들려주었다. 예를 들어 아이오 테시마의 ‘Rose’에서 그녀의 목소리 끝 떨림이 매우 상세하게 들려 소름이 돋을 만큼 리얼하다. 아날로그의 그것이 진하고 묵직한 느낌이라면 Hugo TT 2는 약음 하나하나까지 마스터 음원의 모든 정보를 분석하고 추론해 끄집어내는 느낌을 준다. 

Noordpool Orchestra - Weird Fishes 

필터의 경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1번으로 고정해서 사용했다. 슬로우 롤오프나 특이하게 ‘Warm’ 같은 필터까지 친절하게 마련해놓았지만, 그것은 불행히도 코드의 매력을 조금씩 반감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구태여 코드를 사용할 이유가 옅어진다. 코드 Hugo TT 2의 최고의 매력은 역시 빠른 스피드와 광대역이다. 예를 들어 누드풀(NOORDPOOL) 오케스트라의 ‘Weird Fishes’를 들어보면 마치 도끼로 내려찍는 듯한 드럼과 일렉트릭 베이스의 리듬 섹션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며 흥을 돋운다. 최근 R2R 같은 DAC에 비하면 긴장감, 텐션이 높은 타입으로 그 어떤 DAC도 따라오기 힘든 리듬감과 타이밍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이런 부분에선 상급 DAVE와 비교해도 하위 모델이란 느낌이 없다. 다만 저역 펀치력과 무게감에서 오는 권위감은 DAVE에 미치지 못한다.

Julia Fischer - 소나타 & 파르티타

코드 Hugo TT 2는 하모닉스 구조를 낱낱이 모두 파헤쳐 드러낸다. 가감 없이 드러내는 배음 구조는 이전 세대 코드 DAC 사운드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드라마틱하게 증가한 정보량에서 일단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도 매우 높은 해상력을 자랑했지만, 더욱 촘촘해진 시간축, 주파수 특성 때문인지 좀 더 치밀하고 밀도감이 높아진 모습이다. 율리아 피셔의 바흐 ‘소나타 & 파르티타’를 들어보면 징그러울 정도로 한 올 한 올 분리해 실타래를 풀어놓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DAVE 쪽이 좀 더 유연하고 자연스러우며 단정하게 들릴 정도다.

Rachmaninoff - All Night Vigil

아마도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디지털 제품들의 라인업 구성에서 상/하위 기기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 중 하나는 입체감일 것이다. WTA 필터의 탭 길이를 계속해서 증강시킨 이유 자체가 시간축를 좀 더 잘게 쪼개는 것이고 상/하위 기기 간 이 필터 탭 길이로 차등을 두고 있기도 하다. Hugo TT 2의 경우 DAVE에 비해 전/후 깊이나 좌/우 무대의 펼쳐짐 등에서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킴버 PK-14에서 이 정도라면 아마 케이블에 따라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DAVE와 비교가 아니라면 라흐마니노프의 [All Night Vigil]에서 배경은 검게 그을린 바다처럼 고요하며 충분히 입체적인 음장을 공간에 또렷하게 그려 넣는 모습 등 Hugo TT 2 자체는 그 어떤 DAC에 비해서도 음장감만큼은 최고 수준이다.

총평

코드 Hugo TT 2는 기존 버전을 또 한 단계 혁신적으로 상승시켰다. 뭇 사람들은 과연 언제까지 WTA 탭 필터가 상승할 것인지, 이 진화의 끝은 과연 어디서 끝날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설계자인 로버트 와츠가 말하는 그 종단은 약 100만 탭 주변에 선을 긋고 있다. 그리고 Hugo TT 2의 이번 리뷰는 어떤 필터 증강 없이 오직 자체적인 프로세싱만을 DAVE를 중심으로 비교해나가면서 서술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100만 탭이 이제 가능해졌고 그 숙주는 M Scaler다. 현재 테스트 중인 이 제품을 Hugo TT 2와 합체했을 때 과연 어떤 사운드로 돌변하는지 그리고 DAVE VS Hugo TT 2 + M Scaler 구도에서 승자는 누구일지 가려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코드 Hugo TT 2는 자사의 맏형 DAVE DAC와 함께 가장 뛰어난 DAC임을 굳이 더 부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물론 DAVE와 Hugo TT 2는 확연히 차이가 있으며 좋은 파워 케이블을 사용할 수 없는 Hugo TT 2에 비하면 DAVE는 케이블 변화를 통해 더 많은 음질 상승 가능성이 열려있다. 모든 면에서 DAVE DAC가 압승이다. 그러나 만일 한정된 예산 안에서 선택하고자 한다면 많은 번민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왜냐하면 Hugo TT 2의 전반적인 성능은 DAVE의 60%, 좀 더 후하게 준다면 70%까지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DAVE가 A+ 클래스라면 Hugo TT 2는 A+ 클래스의 문을 두드리는 A 클래스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