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오디오 역사에 보면 가끔씩 올라운드형 엔지니어가 등장한다. 필자가 보기에 미국 에어(Ayre Acoustics)의 설립자이자 현 주재자인 찰스 한센(Charles Hansen)도 그 중 한 명이다. 그가 먼저 손을 댄 것은 스피커였다. 1986년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Boulder)에 친구 밥 그럽(Bop Grupp)과 함께 아발론(Avalon Acoustics)을 세웠다. 그리고 1993년에는 역시 볼더에 앰프 및 소스기기 제작사 에어를 설립했다. 그 사이 아발론은 1989년 닐 파텔(Neil Patel)이 인수했다.

찰스 한센은 에어 설립 후 트랜지스터 앰프를 선택했다. 트랜지스터 앰프는 통상 초단에 전압증폭, 출력단에 전류증폭이 이뤄진다. 흔히 전압증폭 과정에서 앰프의 음악성이 결정되고, 전류증폭 과정에서 뒷단(파워앰프라면 스피커, 프리앰프라면 파워앰프)의 드라이빙 능력이 결정된다고 한다. 찰스 한센은 전압증폭 과정, 즉 전압 게인을 얻는 과정에서 ‘Equilock’이라는 독자적인 증폭회로를 발전시켰고, 전류증폭 과정, 즉 전류 게인을 얻는 과정에서는 기존 다이아몬드 버퍼(Diamond buffer) 회로를 발전시킨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Double Diamond buffer) 회로를 발전시켰다.

프리앰프의 볼륨 조절은 ‘VGT’(Variable Gain Transconductance) 기술로 승부를 봤다. 입력신호를 감쇄시킨 후 다시 증폭을 하는 기존 어테뉴에이터 방식으로는 음질 열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노이즈(N)가 일정한 상태에서 신호대잡음비(S/N)를 높이기 위해서는 시그널(S)이 최대가 돼야 하고 이는 결국 최대 볼륨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입력신호(S)는 100% 받아들인 다음 이후 프리앰프의 게인을 조절, 볼륨을 제어하면서 동시에 낮은 볼륨에서도 높은 S/N비를 얻는 방식이 바로 VGT였다.

찰스 한센은 또한 프리앰프와 파워앰프에서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을 영원히 추방시켰다. 출력값을 다시 입력값과 비교해 원 시그널과 다른 부분을 ‘제거’한다고 해서 ‘네거티브’인데, 이 NFB 또한 음질을 열화시키는 주범으로 본 것이다. 무엇보다 출력값이 다시 입력값과의 비교를 위해 돌아가는 그 찰나의 시간차가 결국 음의 왜곡과 착색을 불러일으킨다고 봤다. 여기에 파워서플라이에는 ‘AyreLock’이라는 독자적인 정전압 회로를 채택, 부하 임피던스 변동에 상관없이 마치 꽉 차여진 자물쇠처럼 안정적인 전압을 가진 전기를 공급한다. 입력 노이즈(커먼 모드 시그널) 및 위상오차 제거를 위한 디스크리트 풀 밸런스 설계는 기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에어는 어떤 소리를 들려주었나? 한마디로 해발 1633m에 자리잡은 볼더의 자연환경만큼이나 맑고 투명한 사운드였다. 음원에 있는 어떤 것도 변형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긁어와 스피커를 마음껏 드라이빙하는 그런 앰프였다. 사명 ‘Ayre’가 ‘공기’를 뜻하는 ‘Air’의 고어(古語)인 점도 이 같은 재생 사운드 성향을 찰스 한센이 지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카랑카랑하다’ ‘섬세하다’ ‘광대역이다’ ‘디테일에 강하다’ ‘공간감이 좋다’ 이런 느낌을 에어 일렉트로닉스에서 많이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에어의 성향은 소스기기부터 파워앰프까지 에어 브랜드로 통일하고, 게다가 바이앰핑으로 B&W ‘802 D3’를 울린 이번 시청기 조합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에어의 20주년 모델, Twenty”

시청기는 디지털 소스기기 ‘QX-5 Twenty’, 프리앰프 ‘KX-5 Twenty’, 스테레오 파워앰프 ‘VX-5 Twenty’.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시청기들은 에어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을 해서 실제 제품 출시가 2015년에 이뤄진 ‘Twenty’ 모델들이다. 그리고 ‘5’ 시리즈는 플래그십 ‘R’ 시리즈에 투입된 거의 모든 테크놀로지와 에어의 제작노하우를 고스란히 담아낸 에어의 중견으로 2013년 처음 출시됐었다. 스테레오 파워앰프의 경우 ‘VX-R Twenty’가 8옴에서 200W, 4옴에서 400W, ‘VX-5 Twenty’가 8옴에서 175W, 5옴에서 350W를 낸다. 게인은 모두 26dB로 동일하다.

‘5’ 시리즈는 ‘Twenty’ 모델들이 되면서 출력단의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뒤에서 자세히 설명)와 파워서플라이의 ‘AyreLock’ 정전압 회로를 집중적으로 개선시켰다. ‘AyreLock’ 회로는 ‘정전압’이라는 말 그대로 오디오 회로가 더 많은 전류를 필요로 할 경우 파워서플라이에서 더 많은 전류를 ‘푸쉬’(push)해주는 회로. 그런데 ‘Twenty’가 되면서 기존 회로에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하나 더 투입시켜 오디오 회로가 반대로 전류를 덜 필요로 하면 그만큼 전류를 접지로 흘려 보낼 수 있게 했다. 마치 푸쉬풀 앰프처럼 파워서플라이에도 ‘풀’(pull) 회로를 추가, 능동적인 정전압 회로를 완성시킨 것이다.

또한 ‘Twenty’ 모델이 되면서 기존 가변저항기(트림 포트. trim pot) 대신에 서보(servo)로 제어되는 DC오프셋(DC offset) 회로를 투입, 뒷단으로 흘러들어가는 직류전기 허용치를 15mV 이내로 끌어내렸다. 이 회로는 앞단에서 흘러들어오는 직류전기도 차단시킨다고 한다.

“스테레오 파워앰프 VX-5 Twenty”

‘VX-5 Twenty’를 일단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파워앰프 스펙 관점에서 보면, 8옴에서 175W, 4옴에서 350W를 내는 스테레오 파워앰프다. 스피커로부터 부하 임피던스가 8옴에서 4옴으로 떨어져도 2배 출력을 내는, 소위 리니어(linear)한 출력을 자랑한다. 다른 에어의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심플한 외관에 고급스러운 마감이 돋보인다. 전면에는 정가운데에 온오프 버튼과 표시창밖에 없다. 후면에는 파워버튼과 2조의 입력단(밸런스, 언밸런스), 2조의 스피커 출력단이 자리잡았다. 입력 임피던스는 2M옴(밸런스), 1M옴(언밸런스)이다. 하단에 보이는 것은 에어 기기간 연결을 위한 것이다(AyreLink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무게는 25kg.

하지만 필자가 보는 ‘VX-5 Twenty’ 파워앰프의 핵심은 1) 클래스AB 증폭, 푸쉬풀 구동, 2) 풀밸런스 디스크리트 설계, 3) 제로 피드백, 4) 스피커를 드라이빙하는 전류게인 출력단에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 5) 전압게인(26dB)이 이뤄지는 초단에 ‘Equilock’ 증폭회로, 6) 리니어 파워서플라이에 ‘AyreLock’ 정전압 회로, 7) 신뢰할 만한 고급 부품 사용 등 5가지다. 모든 에어 제품에 토로이달 트랜스포머 대신 EI 트랜스포머를 투입하는 점도 특징인데, 에어측에 따르면 EI 트랜스가 AC 전원에 따라오는 노이즈 제거 효과가 토로이달 트랜스보다 더 낫고 무선주파수간섭(RFI) 현상도 덜 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중에서 지금까지 몇차례 언급했던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Double Diamond Buffer) 회로야말로 에어 앰프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내부 사진을 보면 가운데 EI 트랜스를 사이에 두고 좌우 채널 각각에 커다란 히트싱크가 있는데 그 안에 담긴 것이 바로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다.

우선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는 리처드 베이커(Richard Baker) 미국 MIT 교수가 1964년 특허 출원한 앰프 출력단의 전류게인 회로로, 채널당 NPN(드라이빙)-PNP(출력) 트랜지스터 한쌍과 PNP(드라이빙)-NPN(출력) 트랜지스터 한쌍이 각각 푸쉬(push)와 풀(pull) 출력을 담당토록 한 것이 핵심. 그리고 이 4개의 트랜지스터가 드라이빙 NPN은 다른 쪽 출력 NPN, 드라이빙 PNP는 다른 쪽 출력 PNP를 서로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모양이 마치 다이아몬드를 닮았다고 해서 ‘다이아몬드 버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자세히 살펴보면, 드라이빙 트랜지스터와 출력 트랜지스터가 에미터 팔로워(emitter follower) 형태로 연결되고, 출력 트랜지스터에서도 컬렉터(collector)가 아닌 에미터에서 최종 출력이 나온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즉, 두 쌍 모두 드라이빙 트랜지스터의 에미터와 출력 트랜지스터의 베이스(base)가 연결되고, 출력 트랜지스터 역시 에미터로부터 최종 출력(푸쉬, 풀)이 나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드라이빙과 출력 모두 ’에미터 팔로워’이기 때문에 마치 진공관의 ‘캐소드 팔로워’처럼 전압증폭은 안이뤄지고 전류만 더 흘러 스피커 구동력을 키우는 회로다. ‘다이아몬드 증폭’ 회로가 아닌,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면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가 다른 푸쉬풀 출력 회로에 비해 음질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푸쉬풀 출력 회로에는 출력 트랜지스터의 아이들링 전류를 제어하는 바이어스 회로가 있고, 이 바이어스 회로는 반드시 두 드라이빙 트랜지스터 사이에 공통 저항(에미터 저항)을 필요로 했다. 이 때문에 나중에 한 데 합쳐져야 하는 푸쉬 출력과 풀 출력이 미세하게나마 서로 다르다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는 두 푸쉬 출력과 풀 출력 회로 사이에 서로 공유하는 일체의 회로가 없기 때문에 음악신호를 그만큼 더 완벽히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찰스 한센은 그러나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가 앞단인 전압증폭 회로에 너무나 많은 부하(load)를 준다는 점, 그래서 파워서플라이로부터 더 많은 전류를 뽑아와야 한다는 점, 그래서 결국 앰프에 열이 많이 발생하고 이는 앰프 전체의 안정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 문제라고 봤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찰스 한센이 개발한 것이 기존 ‘드라이빙 + 출력’ 트랜지스터 앞에 드라이빙 트랜지스터를 하나 더 붙인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다.

찰스 한센에 따르면 기존 다이아몬드 회로에서 두 트랜지스터의 게인증폭률이 각각 ‘100’이고 스피커 임피던스가 4옴이라면 전압증폭단에 걸리는 부하는 40k옴(100 x 100 x 4)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드라이빙 트랜지스터를 하나 더 붙이면 전압증폭단에 걸리는 부하는 4M옴(100 x 100 x 100 x 4)으로 대폭 줄어든다. 전압증폭단 입장에서 보면 뒷단(더블 다이아몬드 버퍼단)의 입력 임피던스가 4M옴이나 되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없이 전류를 내보내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 채택으로 발열량이 35%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프리앰프 KX-5 Twenty”

‘KX-5 Twenty’는 풀 밸런스 디스크리트 설계, 제로 피드백의 트랜지스터 프리앰프. 파워앰프 ‘VX-5 Twenty’와 마찬가지로 출력단에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 전압증폭단에 ‘EquiLock’ 회로, 리니어 서플라이에 ‘AryeLock’ 정전압회로를 투입했다. 전면 왼쪽 노브는 셀렉터, 오른쪽은 46스텝 볼륨 노브이며, 입력단은 밸런스 4조, 언밸런스 2조, 출력단은 밸런스 2조, 언밸런스 1조가 마련됐다. 뒷면 하단에 에어 기기간 연결을 위한 ‘AyreLink’ 단자 2개가 마련됐다. 무게는 10.5kg.

그러나 역시 에어의 프리앰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VGT’(Variable Gain Transconductance)라고 이름 붙인 볼륨단이다. 말 그대로 볼륨을 줄이면 프리앰프의 게인(증폭률) 자체가 줄고, 볼륨을 높이면 게인이 늘어난다. 즉 26dB로 게인이 고정된 파워앰프와는 달리 볼륨 조절에 따라, 즉 변화되는 저항값에 따라 게인(V = I x R)이 달라지는 구조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게인’은 에어의 ‘EquiLock’ 전압증폭단을 통해 얻어진 전압게인으로, 뒷단에 마련된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에서 생기는 전류게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러한 가변 게인 방식의 볼륨 조절은 필자가 몇년 동안 애용했던 일본 바쿤(Bakoon) 앰프에서도 채택했었다.

게인 볼륨의 장점은 무엇일까. 기존 어테뉴에이터 방식은 ‘attenuator’라는 말 그대로 입력신호를 ‘감쇄’ 시켜 볼륨을 줄이거나 키우는 방식. 이에 비해 게인 볼륨 방식은 입력신호는 일단 100% 증폭회로로 들어오고 이 후 증폭률(게인) 조절을 통해 음량을 조정한다. 이같은 가변 게인 방식은 고정 게인에서 발생하는 임피던스 변동(볼륨 조절)에 따른 주파수특성 열화현상이 없다. 또한 증폭단계에서 볼륨을 줄이면, 시그널(S)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증폭률과 노이즈(N)만 줄어들기 때문에 ’S/N’비가 상승하는 효과까지 발생한다. 반대로 볼륨을 높이면, 시그널(S)은 여전히 그대로인 상태에서 증폭률과 노이즈(N)만 늘어나기 때문에 ’S/N’비는 안좋아진다.

내부 사진을 보면 후면에 톱니바퀴 모양으로 뒷 패널에 장착된 부품이 바로 가변 게인의 핵심인 ‘VGT 컨트롤러’다. 자세히 살펴보면 각 채널당 1개씩 마련된 가변 저항기를 앞에 달린 모터가 벨트로 동시에 구동시키는 형태이며, 가변 저항기는 앞열과 뒷열에 달린 저항들만의 조합을 통해 최종 저항값(즉 감쇄값)을 얻는 래더(ladder) 타입의 어테뉴에이터임을 알 수 있다. 에어에 따르면 수십차례 음질 비교 테스트를 통해 미국 샬코(Shallco)사의 은접점 로타리 스위치를 이 가변 저항기로 채택했다.

“디지털허브 QX-5 Twenty”

‘QX-5 Twenty’는 이더넷, 와이파이, 비동기식 USB 입력단, AES/EBU, S/PDIF 입력단과 내장 DAC를 갖춘 네트워크 플레이어 겸 디지털 소스기기. 무려 10개의 디지털 입력단이 달렸다. 이를 통해 타이달(Tidal)과 디저(Deezer)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BBC 같은 인터넷 라디오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데다 인터넷 기반 음원 플레이어인 룬(ROON) 인증마크까지 받아 룬 플레이시 최적의 네트워크 환경을 제공한다. 한마디로 ‘QX-5 Twenty’만 있으면 디지털 입력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디지털 허브’다. 더욱이 100스텝으로 작동하는 디지털 볼륨이 달려 있어 프리앰프로도, 밸런스/언밸런스 헤드폰 출력단이 있어 헤드폰 앰프로도 쓸 수 있다.

DAC 파트는 다이내믹 레인지 140dB를 자랑하는 미국 ESS사의 ‘ES9038PRO’ DAC칩에 미국 모리온(Morion)과 공동 개발한 신 크리스털 오실레이터를 조합했다. 기본적으로 델타 시그마 방식의 DAC이기 때문에 16배 오버샘플링이 이뤄진다. USB 입력시 PCM 음원은 24비트/384kHz까지, DSD 음원은 DSD128까지 ‘DoP’ 방식으로 지원한다. 네트워크 입력시에는 24비트/192kHz, DSD64까지 지원한다. 디지털 볼륨 파트는 32비트 연산으로 처리, 24비트 해상도를 구현한다. 헤드폰 출력은 4.5V(밸런스), 2.25V(언밸런스). 풀밸런스 디스크리트 설계, 제로 피드백, 리니어 파워서플라이,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및 ‘EquiLock’ 증폭회로는 기본이다.

“셋업 및 시청”

시청에는 스테레오 파워앰프 ‘VX-5 Twenty’를 2대 동원, B&W 802 D3 스피커를 바이앰핑했다. 즉 한 대는 스피커의 중고역, 다른 한 대는 스피커의 저역을 각각 드라이빙토록 했다. 이러한 ‘패시브 바이앰핑’은 스피커 내장 네트워크를 통과하므로 네트워크 크로스오버 회로를 거치지 않은 ‘액티브 앰핑’(외장 크로스오버가 필요)보다는 손실률은 높지만, 대역별 역기전력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싱글 앰핑이나 바이와이어링 연결보다 드라이빙 능력에서 앞선다는 장점이 있다.

Chicago Symphony Orchestra

초반 첼로와 더블베이스로 이뤄진 저역 사운드의 원근감이 깜짝 놀랄 정도다. 오른쪽 B&W 스피커 뒤에서 1m나 떨어져 있을 정도다. 스테이징이 넓고 깊다는 게 첫번째 인상. 그리고 음들은 야생마처럼 펄철 요동친다. 그야말로 날이 바짝 서 있다. 카랑카랑한 이 음색,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어메리칸 사운드’라는 것인가. 해상력과 분해능은 B&W 스피커의 모니터적 성향과 맞물려 손이 베일 정도로 엄청나다. 또한 여린 음 재생에서는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다. 특히 약음에서 디테일이 능하다는 얘기다. 음의 입자가 고운 스타일은 아니지만 윤곽선은 분명하다. 그란카사 울림에서는 일말의 모자람이 없다. 바이앰핑 덕도 크게 봤을 것이다.

For The Stars

안네 소피 폰 오터의 기척과 숨소리, 호흡이 아주 섬세하게, 마치 현미경을 들이댄 것처럼 잘 관찰된다. 이러한 디테일한 재생이 ‘에어 브랜드’의 커다란 덕목임을 새삼 깨달았다. 이 보컬곡에서도 사운드스테이지가 초대형 화면처럼 펼쳐지는데 무엇보다 피아노와 보컬의 원근감이 상당하다. DAC과 프리앰프의 분해능과 스테이징 능력이 그만큼 괜찮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산 일부 하이엔드 앰프처럼 아주 리퀴드하거나 예쁜 소리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툭툭’ 무심하게 던지는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색소폰 소리가 오터의 배를 가르고 나오는 대목, 밸브를 누르는 마찰음까지 들리는 대목에서는 아주 감탄했다.

Women’s Chorus of Dallas

합창곡 ‘Pie Jesu’에서 두드러진 것은 인지가 안될 정도로 초저 노이즈, 극한의 정숙도다. 디스크리트 풀 밸런스 설계를 통해 CMRR(시그널 모드 제거 비율)이 높은 덕분일 것이다. 여성 소프라노의 원근감은 필자가 ‘표준’으로 삼고 있는 스위스 모 브랜드의 풀 시스템 수준인데 망원경으로 봐야할 만큼 멀찌감치 떨어져서 부르는 소리가 정확히 귀에 꽂히는 점이 놀랍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낮게 잘 깔리는 점을 보면 앰프와 B&W ‘802 D3’ 스피커 모두 광대역임이 확실하다. 이어 들은 ‘Sanctus’에서는 무대가 갑자기 상승한 것처럼 여성합창단의 도열위치가 높아졌다. 상대적으로 오케스트라는 밑에 있는 느낌. 이러한 공간감이 기막히다. 전체적으로 맑고 투명한 재생음이다.

Jazz at the Pawnshop

이 라이브 재즈곡에서는 시스템 성향이 돌변한 듯 음의 입자가 상당히 곱게 느껴졌다. 역시 음원에 담긴 정보를 고스란히 가져오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스테이징과 이미징, 악기간 분리도, 악기 자체의 텍스처가 잘 살아나는 것을 보면 특히 ‘QX-5 Twenty’의 분해능과 해상력이 대단하다. 일단 노이즈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비브라폰의 음색과 아티큘레이션을 모조리 긁어온다. 아주 극사실주의적인 재생음이다. 이제 소스기기 따로, DAC 따로인 단품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는 것 같다. 피아노 음들 역시 이 곡에서는 아주 리퀴드하게 들린다. 촉촉하니 먼지 하나 안나게 잘 들린다. 맞다. 아까 ‘말러 2번’ 때는 이들 에어 앰프군이 몸이 덜 풀렸거나 볼륨이 너무 높았음이 확실하다. 이게 리뷰의 어려운 점이다.

Wood

마른 하늘에 번개가 내려치는 것처럼 우드 베이스 현들의 울림이 강력하다. 귓전을 때린다. 확실히 파워앰프 바이앰핑의 펀치력은 상상 이상이다. 이 곡 특유의, 왼쪽으로 약간 치우친 음상도 아주 정확히 캐치해내고 있다. 위태로울 정도로 세밀하게 음들의 맨살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곡에서 또 한 번 느낀 것은 에어 앰프들이 쓸 데 없이 재생음에 양념을 가하는 게 아니라, 무색무취한 공기를 관통하는 것처럼 원음을 있는 그대로 재생해주고 있다는 것. 음 하나하나가 분명하고 주위에 지저분한 보푸라기가 일체 안붙어있는 상태다. 음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타격음이 심장으로 곧바로 저격해오는 것을 보면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출력단의 스피커 드라이빙 능력이 대단한 것 같다.

Vladmir Ashkenazy

지금까지 수십번은 들었을 이 곡이 유난히 낯설게 들린다. 피아노와 비올라의 맨살을 맨 처음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느닷없는 ‘조우’가 매우 매력적이다. 앰프나 스피커 없이 그냥 단 2개의 악기로만 이뤄진 실연 현장을 직접 목도하고 있는 것 같다. 레이어가 투명하다는 것, 증폭과정에서 일체의 착색이 없다는 것이 에어 앰프의 가장 큰 특징임이 분명하다. 교묘하게 치장해서 결과적으로 예쁘거나 선명하게 내놓는 법이 없다. 한 음 한 음 재생에 정성을 다하는 점도 도드라진다. 대충 얼버무려 넘어가는 경우가 전혀 없다. 이러다 보니 음악의 표정 변화에 평소보다 더 집중하고 있는 필자 자신을 발견했다.

“총평”

에어는 여러 면에서 여느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 제작사와는 다르다. 우선은 프리앰프이건 파워앰프이건 각 전류게인 출력단에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를 갖춰 뒷단의 드라이빙 능력을 키우고 앞단에 가해지는 부하를 줄인 점이 첫번째다. 프리앰프의 경우 전압증폭률을 달리 해 볼륨을 조절하고 이를 통해 입력 임피던스 변화에 따른 주파수응답특성 열화 현상을 없앤 한편 낮은 볼륨에서 S/N비를 높인 점이 두번째다. 여기에 ‘AyreLock’이라는 일종의 푸쉬풀 구동 방식의 정전압회로를 통해 안정적인 전압의 전기를 공급하는 점을 포함하면 ‘에어’라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강렬한 키워드 ‘셋’이 완성된다.

그러면 소리는? 맑고 투명하며 일체의 착색이나 왜곡이 없는 사운드다. 노이즈 관리도 무척 잘 돼 있어 정숙도는 마치 칠흙같은 배경이 깔린 것 같다. 이는 위 3가지 기본 특징에 디스크리트 풀 밸런스 및 제로 피드백 설계가 보태졌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피드백을 많이 건 앰프와 제로 피드백 앰프는 몇 번 들어보면 금방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펀치력이나 구동력은 좀 약해진 듯하지만 그 음의 순도와 선명한 윤곽선만큼은 제로 피드백 앰프가 ‘갑’이다. 더욱이 ‘Twenty’ 모델이 되면서 기존 정전압회로와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를 업그레이드, 특히 파워앰프 ‘VX-5 Twenty’의 저역 구동력은 오리지널에 비해 놀랄 만큼 좋아졌다.

소스기기 ‘QX-5 Twenty’와 프리앰프 ‘KX-5 Twenty’의 스테이징 능력과 분해능은 이미 하이엔드 수준. 개인적으로는 ‘QX-5 Twenty’의 다기능성과 스펙은 단언컨대 요즘 나온 소스기기 중 최고였다. 청정한 음들의 맨살을 맛보길 원하는 애호가들에게 이들 에어 3형제의 일청을 권한다. 한치의 얼버무림도 없는 정확한 발성과 발음을 바탕으로, 얼굴 잔근육의 사소한 떨림까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노련한 연극배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 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