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회 하이파이클럽 시청회 후기
AB테스트로 확인한 마이트너의 마력, Meitner MA-1 V2 DAC
오디오 업계에는 오디오파일들과 프로 전문가들로부터 무한신뢰를 받는 제작자가 여러 명 있습니다. 댄다고스티노의 댄 다고스티노, 비비드오디오의 로렌스 디키, 플레이백 디자인스/AK디자인의 안드레아스 코흐, 코드의 롭 왓츠, 라우퍼 테크닉(메모리 플레이어)의 마크 포칠리, MSB테크놀로지의 래리 걸맨, YG어쿠스틱스의 요아브 게바 등이지요. 이 리스트에 빠져서는 안 될 또 한 명이 바로 에드 마이트너(Ed Meitner)입니다.
에드 마이트너? 맞습니다. 소니, 필립스와 손잡고 SACD를 탄생시킨 주인공이자, 캐나다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 EMM 랩스(EMM Labs)를 주재하는 디지털 전문 엔지니어입니다. 현재 외국 레코딩이나 믹싱, 마스터링 업체에서 쓰는 DSD 컨버터나 재생 장비 대부분은 EMM 랩스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그가 EMM 랩스의 첨단 기술을 담아내면서도 보다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제품을 보급하기 위해 설립한 별도 회사가 바로 마이트너 오디오(Meitner Audio)입니다.
269회 시청회는 마이트너의 MA-1 V2 DAC이 주인공입니다. 무엇보다 입력 PCM과 DSD 신호를 모두 DSD512로 업샘플링한 후 DA 컨버팅을 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컨버팅도 기성 DAC 칩이 아니라 에드 마이트너가 직접 설계한 디스크리트 MDAC 모듈에서 이뤄집니다. 과연 마이트너의 대표작이라 할 MA-1 V2 DAC은 어떤 소리를 들려줬을까요. 특히 이번 시청회에서는 국내에서 꽤 평판이 좋았던 DAC과 AB테스트를 통해 MA-1 V2의 음질적 우위를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청회 시스템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네트워크 공유기 겸 플레이어 : 웨이버사 W Router
DAC : 마이트너 MA-1 V2 DAC, LH랩스 Vi DAC
프리앰프 : 일렉트로콤파니에 EC4.8
파워앰프 :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스피커 : B&W 802 D3
마이트너 MA-1 V2 기본 팩트체크
소니, 필립스와 함께 DSD/SACD 표준을 세운 에드 마이트너는 1998년에 EMM 랩스를 설립했고, 2003년에 일종의 트리클 다운 브랜드인 마이트너 오디오를 세웠습니다. 현재 마이트너 오디오에서는 딱 2가지 제품만 나오고 있습니다. 시청회 주인공인 MA-1 V2 DAC과 CD플레이어 MA-2입니다.
MA-1 V2는 기본적으로 PCM은 24비트/192kHz까지, DSD는 DSD128까지 컨버팅할 수 있습니다. PCM의 경우 일반 DAC이 디지털 입력단에 따라 컨버팅 스펙이 달라지는 것과 달리 6개 입력단(USB, AES/EBU, 광2, 동축2) 모두 같은 스펙의 PCM을 아날로그 신호로 컨버팅할 수 있습니다. DSD의 경우 USB 입력은 최대 DSD128과 DXD 음원을, 다른 디지털 입력단은 DSD64음원을 컨버팅합니다.
전면에는 가운데 작은 입력선택 버튼 6개와 그 위에 작은 LED가 박혀 있는데, 왼쪽부터 AES/EBU, Coax1, Coax2, Tos1, Tos2, USB Audio 순입니다. 아래에 박힌 LED는 컨버팅 음원의 샘플레이트를 표시해줍니다. 왼쪽 3개는 44.1kHz 계열(44.1, 88.2, 176.4), 오른쪽 3개는 48kHz 계열(48, 96, 192)입니다. 후면에는 디지털 입력단과 XLR과 RCA 1조씩의 아날로그 출력단이 마련됐습니다.
Jacintha - Moon River
Autumn Leaves
시청회 첫 곡으로 야신타(Jacintha)의 ‘Moon River’를 들어봤습니다. USB 케이블로 연결한 웨이버사 W Router로 룬 플레이를 했습니다. 우선 적막한 배경과 가수의 호흡을 둘러싼 미세한 디테일이 포착됩니다. 흔히 DAC 성능이 좋을 때 ‘입자감이 좋다’고 하지만, 이번 MA-1 V2는 그런 차원을 뛰어넘었습니다. 음의 입자 자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거의 진공상태에서 음악을 듣는 것 같더군요. 피아노의 오른손 타건음은 짜릿하고 재빠르며, 왼손 타격음에서는 풍부한 배음이 느껴집니다. 모두 촉촉하고 선명하고 깨끗한 음들입니다. 또한, 앞서 흘러나온 음이 일체의 잔상을 남기지 않는 모습도 대단합니다. 덕분에 시종 단정하고 말쑥한 음, 색 번짐이 전혀 없는 음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DSD512로 변환 및 업샘플링을 하는 이유
MA-1 V2 DAC은 어떻게 이 정도로 조용하고 깨끗하며 울림이 풍부한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을 일단 마이트너 오디오/EMM 랩스만의 독특한 DSD 변환 및 업샘플링 과정에서 찾아봅니다. MA-1 V2는 자신에게 입력되는 모든 PCM/DSD 신호를 DSD512로 변환/업샘플링한 후 자체 설계한 디스크리트 DAC 모듈을 거치도록 합니다. 즉, 16~24비트/44.1~192kHz PCM 신호와 DSD64, DSD128 신호를 모두 1비트 22.4MHz PDM(DSD) 신호로 변환, 업샘플링한 후 뒷단인 MDAC 모듈로 보내준다는 얘기입니다.
핵심은 포맷 자체를 DSD로 변환한다는 것과 22.4MHz라는 엄청난 배수로 업샘플링을 한다는 것이죠. 우선 멀티비트 PCM(Pulse Code Modulation) 신호를 1비트 PDM(Pulse Density Modulation) 신호로 바꿔주는 것은 에드 마이트너의 확고한 신념 때문입니다. 그가 여러 인터뷰를 통해 강조했듯이 “아날로그 신호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는 과정(ADC)은 1비트 신호 처리와 비슷하다. 때문에 디지털 신호를 왜곡과 손실 없이 아날로그 신호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1비트 신호(PDM)로 변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업샘플링 이유는 잘 알려진 대로 ADC 과정에서 끼어든 디지털 노이즈(양자화 노이즈)를 최대한 없애주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44.1kHz 신호의 경우 4배 업샘플링이라면 176.4kHz, 16배 업샘플링이라면 705.6kHz 신호가 되겠지요. 이렇게 샘플링 주파수가 늘어나면 디지털 노이즈도 늘어난 샘플링 주파수만큼 가로축(주파수)으로 확장되고 노이즈의 세로축(전압)은 줄어들게 됩니다. 노이즈 양(가로x세로)은 업샘플링 전후가 똑같아야 하니까요. 쉽게 말해, 정사각형 모양의 노이즈를 같은 면적의 직사각형으로 늘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상태에서 DA 컨버팅이 끝난 후 아날로그 로우 패스(low pass) 필터를 걸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업샘플링을 통해 가청영역대 밖의 고주파로 확산됐던(가로축으로 늘어났던) 디지털 노이즈가 마치 무 자르듯 모조리 사라지게 됩니다. 더욱이 로우 패스 필터를 통과한 노이즈의 양도 업샘플링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작아진(세로 전압축이 낮아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노이즈 셰이핑(Noise Shaping) 처리까지 하게 되면, 가청영역대에 그나마 남아있던 노이즈의 상당량이 또 가청영역대 밖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MA-1 V2는 이 과정에서 업샘플링 주파수를 무려 22.4MHz, 즉 CD 샘플링 주파수의 512배로 업샘플링했다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CD 샘플링 주파수는 44.1kHz이고, DSD64가 이의 64배인 2.8MHz, DSD128이 128배인 5.6MHz, DSD256이 256배인 11.2MHz, DSD512가 512배인 22.4MHz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업샘플링을 세게 한 만큼 가청영역대에 남아있는 디지털 노이즈는 대폭 줄어들게 됩니다. MA-1 V2가 ‘버전2’가 되면서 많은 부분이 업그레이드됐지만, 가장 큰 변화는 업샘플링 주파수가 DSD128에서 DSD512로 4배 늘어난 점입니다. 참고로 DSD512를 ‘8 X DSD’로 표현하기도 하는 것은 DSD512(22.4MHz)가 DSD, 즉 SACD 샘플링 주파수(2.8MHz)의 8배이기 때문입니다.
MA-1 V2 설계디자인 : MFAST, MDAT2, MDAC
이제 MA-1 V2에 깃든 다른 설계디자인도 신호 흐름에 따라 간략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MFAST(Meitner Frequency Acquisition System Technology)는 6개 디지털 입력단을 통해 들어온 신호의 지터(jitter)를 들어내주는 비동기(asynchronous) 기술입니다. MFAST를 통해 지터가 제거된 디지털 신호는 MDAT2(Meitner Digital Audio Translator 2)를 통과합니다. 바로 이 장치가 입력 PCM과 DSD 신호를 DSD512로 업샘플링해주는 주인공입니다. ‘2’가 붙은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업샘플링 주파수가 DSD128에서 DSD512로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22.4MHz로 업샘플링된 DSD 신호는 비로소 에드 마이트너가 직접 설계한 디스크리트 DAC을 거쳐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됩니다. 채널당 1개씩 투입된 디퍼렌셜 MDAC(Meitner Digital Analog Converter)입니다. 다른 DAC과 달리 1비트 DSD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죠. 따라서 DSD 재생의 경우 마이트너 MA-1 V2는 다른 DAC보다 훨씬 나은 음질을 제공합니다. 이는 일반 DAC이 DSD를 PCM으로 바꾼 후 컨버팅을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DAC에서 PCM 재생음이 DSD보다 좋을 수가 있는 것도 이 변환과정에서 일어나는 음질 열화 때문입니다.
Norah Jones - Come Away With Me
Come Away with Me
그래서 2번째 곡은 노라 존스(Norah Jones)의 ‘Come Away With Me’를 24비트/192kHz PCM 음원과 DSD64 음원으로 맞비교해 들어봤습니다. 우선 DSD 음원으로 들어보면, 음이 포말처럼 곱게 바스러지고 평소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립니다. 이와 함께 에너지감과 적당한 온기, 배음과 디테일이 잘 전해집니다. 음의 윤곽선에 색 번짐이 없는 모습도 관찰되지만, 무엇보다 노라 존스 그녀가 흉성으로 노래하는 모습이 확연합니다. PCM 음원으로 들어보면 24비트/192kHz 스펙인데도 상대적으로 음끝이 뭉뚝하고 선명하질 않습니다. 기분 나쁜 막이 끼인 듯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거칠고 앙상하며 평면적이며 단조롭습니다. 목과 입으로만 노래하는 점에서도 DSD 재생 때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MA-1 V2 vs Vi DAC
시청회 2부에서는 LH 랩스의 Vi DAC과 AB테스트를 해봤습니다. Vi DAC은 미국 ESS의 Sabre DAC 칩(9018Q2M)을 듀얼로 써서 PCM은 32비트/384kHz까지, DSD는 12.2MHz까지 컨버팅합니다. DAC 칩뿐만 아니라 리니어 전원부와 아날로그 출력단까지 모두 풀밸런스 설계인 점이 특징입니다.
Dave Burbeck Quartet - Blue Rondo A La Turk
Blue Rondo A La Turk
AB테스트로 들어본 곡은 데이브 브루벡 콰르텟(Dave Brubeck Quartet)의 ‘Blue Rondo A La Turk’입니다. 먼저 MA-1 V2로 들어보면 드럼의 라이드 심벌 이미지가 B&W 802 D3 바로 위에 맺힙니다. 거의 실물 크기이지요. 알토 색소폰은 에너지 넘치면서도 맑고 편안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들립니다. 어느 대목, 어느 악기 연주에서도 흐트러지거나 흐물거리는 모습이 없습니다. 피아노 오른손 연주음은 투명하고, 베이스 음은 아주 두텁습니다. Vi DAC으로 바꿔 들어보면, ‘어이쿠’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음이 갑자기 의기소침해지고 스케일이 작아집니다. 라이드 심벌의 위치도 아까보다 15cm 이상 내려간 점도 안타깝습니다. 알토 색소폰은 대충 무성의하게 연주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콰르텟 연주가 앞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다시 MA-1 V2로 들어보면, 무대가 다시 환하게 빛나는 매직이 펼쳐졌습니다.
시청회의 조연 : 일렉트로콤파니에 EC4.8, AW250R
이번 시청회에서 묵묵히 B&W 802 D3 스피커를 울려준 숨은 조연도 소개합니다. 일렉트로콤파니에(Electrocompaniet)의 프리앰프 EC4.8과 스테레오 파워앰프 AW250R입니다. 일렉트로콤파니에는 1973년 페르 아브라함센(Per Abrahamsen)과 스베인 에릭 뵈르야(Svein Erik Borja)가 노르웨이 오슬로에 설립한 오디오 제작사입니다. 마이클 잭슨의 ‘History’ 앨범 크레딧(기술지원)에 이 회사 이름이 들어가 일약 유명해졌는데, 이는 레코딩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디언이 녹음작업에서 일렉트로콤파니에 앰프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프리앰프 EC4.8은 각 채널에 전원부까지 듀얼 모노로 구성한 점이 특징이며, 이 덕분에 채널분리도가 무려 120dB 이상을 보입니다. 밸런스 입력 2조, 언밸런스 입력 3조, 밸런스 출력 1조, 레코드(RCA) 출력 1조 등 풍부한 입출력단도 눈길을 끄네요. 이밖에 볼륨이 게인(-111dB~8dB) 조절 방식인 점과, 주파수응답특성이 0.5Hz~200kHz에 걸쳐 플랫한 점이 돋보입니다. 입출력 임피던스는 보통 수준인 47k옴과 100옴을 보입니다.
스테레오 파워앰프 AW250R은 8옴에서 250W, 4옴에서 380W, 2옴에서 625W를 보입니다. 비록 스피커 임피던스 변화에 선형적인 출력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1옴에서도 1100W를 내주는 점이 대단합니다. 이 회사에서 FTT(Floating Transformer Technology)라고 명명한 전원부에서 보통 앰프 전원부의 2배에 달하는 강력한 전류를 공급해준 덕분입니다. 실제로 최대 피크 전류는 무려 100A에 달합니다. 이밖에 출력 임피던스가 0.008옴에 그치는 점, 왜율이 0.001%에 그치는 점도 파워앰프로서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무게는 39kg을 보입니다.
Jordi Savall, Le Concert Des Nations - Beethoven: Sinfonia Symphont No. 3
대편성곡으로 조르디 사발(Jordi Savall)이 지휘하고 르 콩세르 드 나시옹(Le Concert des Nations)이 연주한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을 들어봤습니다. 첫 대목, 일체의 흔들림 없이 음들이 ‘쨍’ 터져 나오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선명하고 고운 음들이 큰 스케일의 무대와 광폭의 다이내믹 레인지, 해머 같은 다이내믹스와 함께하니 대편성곡 듣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닙니다. 팀파니는 거의 실물 사이즈로 등장해 굉음을 내며 폭주합니다. 그야말로 작렬이고 폭발입니다. 음의 시작과 끝이 예리하고 음결이 깨끗한 것을 보면 그 중심에 MA-1 V2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Unplugged’ 앨범에 수록된 ‘Layla’에서는 마치 4K 대형 화면을 보는 듯한 실감 나는 해상력에 시청회 참석자분들 대부분이 감탄하신 것 같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날 만한 리얼 사운드 그 자체였습니다.
시청회를 마무리하며
마이트너 오디오에서는 MA-1이 버전2가 되면서 내부 프로세서와 클럭 구조를 새롭게 손봐 컨버팅 신호의 정확도를 높였다고 합니다. 사실 MA-1 V2 외관이 전작과 달라진 게 없어 오로지 귀로만 확인해야 하는 시청회였는데, 놀랍게도 이보다 훨씬 비싼 하이엔드 DAC에 필적할 만한 음을 들려줬습니다. DSD512 업샘플링과 1비트 디스크리트 DAC으로 일궈낸 고급스러운 아날로그 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곡에서나 음들이 착착 몸에 감기는 기분 좋은 체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MA-1 V2는 역시 에드 마이트너의 역작이었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