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윌슨 오디오파일

데이브 윌슨이 원한 것은 녹음 장소를 가지고 다니며 또는 녹음한 결과물을 스튜디오에서 확인하며 사용할 스튜디오 모니터가 필요했다. 이미 WAMM이라는 플래그십 거함을 개발해놓은 상태였지만 모니터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1977년부터 시작한 데이브 윌슨의 녹음 작업은 여러 하드웨어적 접근을 추동했다. 마크 레빈슨의 MLAS에서 그의 오른팔이었던 존 컬이 울트라 마스터 레코더를 직접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윌슨은 여전히 쓸 만한 스튜디오 모니터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여러 스피커들을 전전해왔으나 모두 그가 추구하는 현장의 폭넓은 다이내미즘과 현장의 살아 숨 쉬는 앰비언스 그리고 악기 고유의 하모닉스를 그대로 재현해줄 스피커는 결코 없었다.

이런 상황은 그에게 스튜디오 모니터 제작에 대한 구체적 열망을 심어주는 계기로서 강력하게 작용했다. 그 첫 번째 제품이 바로 현재 사샤의 원형이 되는 와트/퍼피의 상단부분인 와트(WATT) 모니터다. 그가 와트를 만들었을 때 주변의 전문가들은 이를 상품화시켜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본래 데이브 윌슨은 이를 상품화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윌슨 오디오파일 레이블을 통해 출시할 음반 모니터용으로 만든 것이다. 상품화를 생각한 것은 그 이후였다. 결국 퍼피(PUPPY)라는 커다란 베이스모듈을 개발하게 되었고 그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방식을 통해 제작, 와트와 합체시켰다. 1980년대 와트/퍼피는 출시와 함께 하이엔드 스피커의 레퍼런스로 우뚝 섰다. 향후 반세기를 지배할 하이엔드 스피커 모델 하나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윌슨의 북셀프 - TuneTot

데이브 윌슨의 첫 번째 북셀프 모니터로 탄생해 이후 퍼피와 짝 지어지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WATT. 풀어서 ‘Wilson Audio Wilkins Audio Tiny Tot’이라 불렸던 전설을 다시 되살리려는 시도가 데이브 윌슨의 아들 대럴에 의해 이어졌다. 윌슨의 사망 이후 그의 어머니와 함께 회사를 이끌어가게 된 대럴은 아버지 윌슨의 작업을 승계하며 새로운 윌슨의 세대교체를 열망했다. 그리고 그것은 윌슨 오디오의 시작이나 진배없는 WATT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TuneTot이 그 주인공이다.

사실 TuneTot은 여러 장소에서 마주한 바 있다. 윌슨의 Alexx나 Sabrina 같은 신제품 속에서 이 작은 스피커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으나 윌슨 WATT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마치 그 옛날의 WATT를 새롭게 리이슈한 스피커처럼 보여 흥미를 유도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새로운 북셀프 모니터에 항상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그 성능이 궁금했던 차였다. 직접 마주한 TuneTot은 높이 37.67cm에 좌/우 넓이가 21.87cm, 깊이가 25.88cm 정도에 그친다. 윌슨 오디오가 내놓은 스피커는 물론 현재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작은 스피커다.

하지만 그 면면을 파악해보면 TuneTot엔 윌슨의 신기술이 가득 담겨있다. 윌슨의 공식적인 프레스 릴리스에 의하면 TuneTot은 현재 최상위 모델인 WAMM Master Chronosonic과 동일한 엔지니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더불어 상위 모델 Alexx 및 Sabrina에 적용한 캐비닛 및 드라이버를 사용한다. 이는 대럴 윌슨을 중심으로 새롭게 전열을 정비한 Wilson Special Applications Engineering™ (WSAE)의 첫 번째 작품에 대한 오마주이면서 가장 최신 제품 중 하나로서 상당히 공을 들인 모델이다. 따라서 크기가 작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우선 TuneTot은 2웨이 북셀프 타입으로 고역 및 미드/베이스 유닛을 각 한 발씩 사용해 65Hz에서 23kHz까지 커버하고 있다. 이는 윌슨이 상정한 일반적인 시청룸 환경(RAR)에서 +/-3dB 기준 주파수 응답 특성이다. 정확히 말하며 20Hz에서 40Hz 근방의 낮은 저역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이후 중간 저역인 65Hz부터 초고역까지 충실하게 재생하는 스피커라고 불 수 있다. 트위터는 1인치 컨버전트 시너지 트위터를 사용하고 있으며 미드/베이스 유닛은 5.75인치 구경 드라이브 유닛을 사용하고 있다. 상위급 스피커와 동일한 트위터에 Alexx의 미드레인지와 동일한 유닛을 채용해 유닛 자체의 다운그레이드는 없다.

인클로저 설계를 살펴보면 후방에 바닥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포트를 마련해놓은 모습이다. 능률은 1W/1M/1K 기준 86dB의 능률을 얻었다. 실제 윌슨 오디오의 여타 모델이 90dB를 넘나드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낮은 감도를 갖는다. 하지만 공칭 임피던스는 8옴에 172Hz 낮은 중역에서 최저 6.61옴으로 임피던스 낙폭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앰프 쪽에 꽤 높은 파워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전체 디자인은 윌슨의 여러 모델에서 보여주었던 비대칭 디자인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더군다나 데스크탑 환경 등 보편적인 넓은 리스닝 룸이 아닌 복잡하고 작은 공간에서도 사용하게끔 만들기 위해 더 많은 환경적 요인에 대응해야 했다. 윌슨 엔지니어링 팀은 이런 환경적 요인에서 발생하는 기기 간 간섭 및 회절, 진동 관련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해야 했다. 내부는 복잡다단한 공진과 브레이크업 모드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매우 복잡한 브레이싱 구조를 마련했고 인클로저 외부 또한 회절의 최소화하는 형태로 디자인했다. 외부 마감은 상위 모델에서 사용하는 X 메터리얼과 S 메터리얼을 전격 투입해 마감했다. 여기에 더해 별도의 스탠드 없이 책상이나 테이블 위에 놓고 사용할 때도 음질적 변형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연구도 이어졌고 이는 ISOBase라는 솔루션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외에도 전용 그릴 및 미드/베이스용 알루미늄 링을 별도로 마련해 옵션으로 판매하고 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실제 TuneTot을 구입해 사용한다면 윌슨 스피커에 익숙지 않은 경우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TuneTot 스피커와 함께 여러 개의 알루미늄 스파이크와 스파이크 패드 그리고 이를 조정할 수 있는 렌치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여러 스피커 메이커 중에서도 셋업에 관해 매우 세밀한 조정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툴을 직접 공급하는 것이 윌슨의 전통이다. TuneTot이 작은 사이즈의 북셀프 모니터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데이브 윌슨의 집요하리만큼 결벽증적 태도는 TuneTot에서도 유효했다. 간단히 말하며 스피커는 시청 위치에 앉았을 때 좌/우 사이드 패널이 거의 보이 않도록 토인을 주어야 하며 스피커 상단이 아주 약간만 보이도록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이를 위해 스피커 높이 레벨을 조정할 수 있는 툴이 제공되며 매뉴얼에 상세한 세팅 방식을 설명해놓고 있다.

Kat Edmonson - Lucky

Way Down Low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D 및 마이트너 MA1 V2 그리고 W 코어 및 W 라우터를 세팅한 다음 한 곡 한 곡 들어보면서 특성을 파악해나갔는데 윌슨의 혈통은 여전했다. 캣 애드몬슨의 ‘Lucky’를 들어보면 저역 제한이 뚜렷한 북셀프 모니터 스피커지만 음상이 매우 뚜렷하고 감상자를 중심으로 홀로그래픽 음장이 매우 선명하게 잡힌다. 캣 애드몬슨의 목소리와 악기들의 경계가 면도날로 깎아내린 듯 명확히 구분되며 꽤 두터운 기음의 두께가 묵직한 무게감을 갖고 호소력 높게 어필한다. 참고로 청취자 위치에서 토인과 높이를 정확히 세팅하기 전과 후의 사운드는 무척 다르므로 필히 매뉴얼에 따라 장소에 꼭 맞는 세팅을 진행한 후 즐기길 바란다.

Robert Plant & Alison Krauss - Sister Rosetta Goes Before Us

Raising Sand

앨리슨 크라우스와 로버트 플랜트의 ‘Sister Rosetta Goes Before Us’에서 청아한 앨리슨의 목소리 아래로 깔리는 꽤 둔탁한 퍼커션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들린다. 왜곡이나 꾸밈없이 매우 실체감 넘치게 재생되는 아메리칸 사운드의 전형이다. 단, 2웨이 소형 북셀프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커다란 스케일의 저역을 원하는 게 아니고 방에서 기골이 뚜렷한 윌슨 사운드를 만끽하고 싶다면 최적의 스피커로 활약할 것이다. 게다가 ISOBase를 합체시켜 책상 위에 설치하면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Tsuyoshi Yamamoto Trio - I'm A Fool To Want You

Misty

다이내믹스 측면에서 TuneTot는 비슷한 가격대 어떤 스피커와 비교해서도 탁월하다. 이 정도 캐비닛 용적과 드라이브 유닛을 채용한 스피커에서 상상하기 힘든 에너지의 강, 약 구분, 음영 대비가 뚜렷해 짜릿한 텐션을 만끽할 수 있고 동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역동적인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츠요시 야마모토 트리오의 ‘I'm A Fool To Want You’같은 조용한 재즈 레코딩에서 피아노 타건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강력하고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스피커는 흔치 않다. 더불어 브러시, 심벌 울림 등 매우 낮은 레벨의 악기 소리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해준다. 전체적으로 기음이 두드러지는 편이며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사운드다.

Andris Nelsons, Boston Symphony Orchestra

Shostakovich Under Stalin's Shadow: Symphonies Nos.5, 8 & 9 : Suite From 'Hamlet'

윌슨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물론 WATT와 PUPPY다. 모든 것은 이 모델에서부터 촉발되었고 윌슨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WATT와 비교해볼 때 의심할 여지도 없이 TuneTot의 성능은 훨씬 더 진화한 윌슨 사운드를 대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드리스 넬슨스 지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쇼스타코비치 5번, 4악장에서 후반부 연타로 쏟아붓는 총주에서 다이내믹스 표현은 이 사이즈 북셀프에서 최대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저역의 깊고 웅장한 스케일은 아쉽지만 또렷한 정위감과 입체감 그리고 그 와중에도 무너지지 않은 하모닉스 특성 및 무게감은 대단하다.

총평

오디오파일의 개인적 취향과 별개로 윌슨 오디오의 업적에 대해선 누구도 토를 달을 수 없다. 하이엔드 오디오가 추구하는 현장 녹음의 열기와 다이내미즘, 특히 입체적 사운드스테이징을 가정용 스피커에 구체화시킨 프론티어이기 때문이다. 미국 하이엔드 스피커는 윌슨의 와트/퍼피가 출시되기 전과 후로 극명히 나뉘었으며 이후 많은 스피커 메이커의 멘토로 기능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조그만 WATT 스피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비효과처럼 커진 윌슨 스피커의 독창적인 설계 방식과 윌슨의 결병증적 튜닝, 디자인이 이젠 TuneTot라는 스피커에 전이되었다. TuneTot는 WATT의 21세기 환생을 보는 듯하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