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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와 음악

오디오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는 물론 오디오파일에게도 오디오의 기본은 전기와 진동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전기를 통해 기기를 작동하고 전류를 통해 음악 신호를 전달한다. 여기서 전기가 흐르는 곳에는 진동이 생기며 디스토션, 노이즈가 끼어들기 십상이다. 물론 전기 에너지를 음악으로 변환시키는 것 또한 오디오의 책무다. 과거 물리학자들은 원자에 대해 설명할 때 마치 피아노나 바이올린의 떨림을 비유해서 얘기하곤 했던 것도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전자가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을 보면 특정 주파수 안에서 매우 복잡 미묘한 스펙트럼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피아노나 현악기 등 각 악기마다 그 악기를 연주했을 때 하모닉스 구조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스펙트럼의 차이가 해당 존재의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물리학자들이 그 전자들의 이동 특성을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구조와 요소들이 전자의 특성을 조율하는지 밝혀내는 것은 마치 악기 소리의 특성을 하모닉스 구조를 통해 증명해내려는 것과 같다.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 현상과 내부 구조 또는 주변 변화 등 다양한 요소의 연관관계를 통해 가설을 세우고 유추하며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것. 그것이 과학이고 이는 해당 분야의 커다란 진보를 이뤄내곤 한다.

이런 유추와 가설, 과학적 접근은 오디오 컴포넌트 및 케이블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하이엔드 오디오 분야에서 케이블은 대단히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미 다른 첨단 분야에서 개발된 연구 성과를 적용해 성공한 메이커도 있고 자체적인 연구를 통해 매우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케이블 분야에서 패시브/액티브 절연, 차폐 방식은 물론 도체에 관한 부분까지 매우 다양하다. 전원 케이블로 시선을 옮기면 단순히 전기를 충분히 흘려주는 것을 넘어 어떤 방식으로 전기가 흘러가는지 그리고 AC임에도 전위차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모닉 테크놀로지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것은 역시 도체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전기를 온몸으로 받아 흘려보내는 몸통이기 때문이다. 도체의 성질은 그것의 소재가 금인지 은인지, 동인지부터 갈린다. 또한 산소를 포함 이물질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에 관한 순도에 관하여 기본 4N부터 최대 8N 수준까지 다양하다. 심선의 꼬임 방식에 따라서도 전기 특성이나 사운드 스펙트럼이 달라지며 절연, 차폐 및 케이블의 단면, 배열 등 지오메트리가 만들어내는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이 작은 케이블 하나에도 거대한 우주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중 하모닉 테크놀로지는 20세기 후반, 정확히는 1998년 출범 당시 커다란 화제를 뿌렸던 메이커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헤드쿼터를 두고 창립한 하모닉 테크놀로지는 당시 케이블 메이커 중 선도적으로 OCC 싱글 크리스탈(Single Crystal™) 특허를 가지고 출발해 기존 OFC의 약점을 드라마틱하게 개선했다. 이른바 OCC, 하모닉 테크놀로지에서는 싱글 크리스탈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한 도체를 사용해 케이블을 만들어냈다. 과거 매직 라인업의 경우 국내 오디오파일 사이에서도 꽤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것을 상기해볼 때 과연 현재 하모닉 테크놀로지의 모습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만난 하모닉 테크놀로지는 여전히 싱글 크리스탈 도체를 사용하고 있으며 과거 라인업을 혁신하고 있다. 특히 작년 5월 독일 뮌헨 오디오쇼에서 참여한 그들의 부스에서는 기존의 아날로그 케이블 외에 USB, HDMI 케이블 외에도 헤드폰, 이어폰 케이블까지 선보이며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얼마 후 국내에 수입된 케이블 중 최상위 스피커 케이블을 리뷰했고 이번엔 파워 케이블을 테스트하는 기회를 가졌다.

Muse OC

먼저 Muse OC에 사용하는 도체는 OCC 싱글 크리스탈 형식의 동선이다. 다름 아닌 단결정 도체.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 이전의 OFC들의 불규칙한 결정구조에서 오는 노이즈와 디스토션을 결정구조 변화를 통해 획기적으로 낮춘 도체다. Muse OC는 바로 가장 진보한 최신 싱글 크리스탈을 조합해 만든 케이블이다. +, - 그리고 접지 세 개 케이블 다발이 투입되어 있으며 각 케이블은 테플론으로 감싸 절연시키고 있다. 그 외부는 PE 소재로 둘러싸고 외피는 PVC를 사용한 모습으로 무척 심플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Muse OC에 투입한 싱글 크리스탈 도선은 15 AWG 굵기로 기기 쪽 IEC와 벽체 쪽 AC 플러그 모두 OCC를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이 케이블은 기본적으로 소스 기기 전용으로 개발된 케이블이다. 하모닉 테크놀로지는 DAC 또는 시디플레이어 등 비교적 작은 전류를 흘리는 케이블로서 Muse OC를 사용하기 권장하고 있다.

사용 편의성은 무척 좋은 편이다. 단자는 플라스틱 소재로 가볍고 케이블 자체도 매우 가볍다. 또한 전체 케이블 구경이 그리 굵지 않고 잘 휘어지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설치하기도 수월한 편이다. 케이블 결속력 같은 경우 나의 기기 몇 가지에 꼽아보았으나 너무 빡빡하지도 너무 헐렁하지도 않게 적당히 타이트한 접속력을 보여주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테스트는 보다 정밀한 음질적 특색을 살펴보기 위해 케이블을 빌려와 나의 리스닝 룸에서 진행했다. 더 자세히 말하면 다인 C4와 제프 롤랜드 시너지 프리앰프, 플리니우스 파워앰프로 구성된 제1 시스템과 베리티오디오 피델리오 앙코르, 프리마루나 다이아로그 프리미엄 HP로 구성된 제2 시스템을 오가며 테스트했다. 소스 기기는 동일하게 웨이버사 시스템즈의 W 코어를 룬 코어로 활용하고 마이텍 디지털 맨하탄 II를 DAC로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두 시스템은 상당히 다른 특색을 가진 시스템이었으나 Muse OC을 적용한 맨하탄 II의 소리는 분명한 공통분모를 가졌다.

La Segunda - Gricel

Será Una Noche

일단 전체적인 대역 밸런스 부분은 어두운 쪽보다는 밝은 편으로 선명한 음상과 전/후 거리 표현이 좋았다. 예를 들어 MA 레코딩에서 출시한 La Segunda의 ‘Gricel’에서 체크 포인트인 후방 타악들의 음량 변화에 주목해보면 약음들이 무척 상세하게 노출된다. 때문에 강음들까지 더 리얼하게 들리며 매우 자연스러운 울림을 만들어낸다. 킴버보단 얌전하고 카다스, PAD 같은 케이블보단 약음 표현 등 해상력이 높은 편이다. 일부러 다이내믹을 강조하거나 음상을 왜곡하지 않고 아주 솔직 담백하게 표현해주는데 충실하고 할 수 있다. 중반부 이후 하모니카의 음결 또한 결이 세밀한 계조로 대비되어 실체감이 훌륭하다.

Francois Lazarevitch, Les Musiciens de Saint-Julien

Vivaldi: Il Gardellino

전반적인 음영 대비가 상당히 뛰어나게 표현되는 케이블로서 약음 컨트롤 및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상당히 뛰어나다. 그러나 대역 밸런스는 약간 높았다가 며칠 지나면서부터 조금 내려앉는 것으로 볼 때 번인에 따른 소리 차이도 제법 있는 편이다. 프랑수아 라자레비치와 레 뮈지시엥 드 생 줄리엥이 연주한 비발디의 ‘홍방울새’를 들어보면 어택부터 서스테인까지 길지 않아 빠르고 산뜻한 소리로 들린다. 무척 날렵한 표현력이 포착되며 특정 대역으로 에너지가 몰리거나 뭉개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Noordpool Orchestra

Weird fishes

역시나 누드풀 오케스트라의 ‘Weird fishes’같은 곡에서 이런 스피드, 다이내믹 특성 등은 완연히 그 민낯을 드러낸다. 풋웍이 대단히 빠르고 탄성이 좋은 소리로서 신속하게 끊어 치는 리듬감이 발군이다. 저역은 그 양이나 힘이 과장되어 있지 않고 단단한 편이지만 딱딱하거나 건조하지 않고 꽤 부드러운 힘을 불어넣는다. 비유하자면 발은 바닥을 부드럽고 빠르게 구르고 있으나 수면 위로는 푸르고 높은 하늘 위로 현과 관악이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듯한 풍경이 연상된다.

Ola Gjeilo - Ubi Caritas

Piano Improvisations

밝고 푸르른 색조가 피아노 음결에 진하게 녹아들어 있다. 예를 들어 올라 야일로의 ‘Ubi Caritas’ 같은 곡을 들어보면 하모닉스 구조가 훼손되지 않고 깔끔하게 재단되어 드러난다. 특히 무대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전/후 깊이보단 좌/우 무대의 확장이 눈에 띄며 공간을 사로잡는 모습이 포착된다. 대책 없이 무분별하게 스케일만 키우는 방식은 분명 아니다. 잔잔하게 홀톤을 만들어내면서 선명한 이미징과 입체감을 형성해준다. 이런 특성은 아마도 고역 특성, 서두에서 말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의 향상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총평

수많은 신진 케이블 메이커들이 매우 다양한 과학적 근거를 통해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맞고 일부는 의심쩍다. 도체, 절연, 차폐를 중심으로 케이블엔 대단히 많은 변수들이 있고 그것들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하지만 자사가 연구 개발한 것만 대단히 중요한 것인 듯 설명하고 나머지 사항에 대해선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한다. 여기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하모닉 테크놀로지는 과거부터 싱글 크리스탈 도체를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로 설명했고 6N 또는 7N 순도를 자랑했다.

Muse OC는 보편타당한 소재와 설계를 통해 만들어진 고품질 케이블이며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오디오파일을 현혹하지 않는다. 이번 Muse OC 같은 경우도 도체와 지오메트리 등 모두 검증된 이론적 근거를 중심으로 케이블의 본분에 충실하고 있다. 케이블의 세계는 광활한 전기적, 역학적 구조가 다양한 경우의 수로 얽혀 있다. 하모닉 테크놀로지는 그 원리를 가장 합리적으로 풀어 음악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Muse OC는 하모닉 테크놀로지가 롱런할 수 있었던 명확한 근거 중 하나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