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오디오에서 대결구도는 무척 흥미로운 사건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 이면엔 어떤 것이 가장 우월한가부터 시작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소리가 가장 실연에 가까운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되곤 한다. 물론 재생음은 현장음과 철저히 분리해서 생각해야겠지만 지금도 많은 오디오파일이나 평론가는 제품의 성능을 대결구도를 통해 판가름하고 때론 실연과 얼마만큼 가까운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한다.

대표적인 사건은 미국에서 있었던 일명 ‘산타페 목장의 결투’다. 1985년 카버라는 메이커를 통해 앰프를 만들어내던 밥 카버가 스테레오파일의 발행인에게 하이엔드 앰프와 손색없는 6백 불짜리 앰프를 만들겠다고 도전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의 도전을 흔쾌히 받아들인 스테레오파일은 당시 꽤 비싼 수천 달러짜리 진공관 모노블록 앰프를 준비했고 이에 대적할 앰프를 밥 카버가 내놓았다.

결국 제품을 완성한 후 밥 카버가 내놓은 앰프보다 훨씬 더 비싼 진공관 모노블록을 A/B 테스트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훨씬 더 비싼 진공관 앰프와 밥 카버의 앰프가 성능 면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물론 이후 스테레오파일 초대 편집장 존 고든 홀트를 비롯해 스테레오파일 최고의 황금 귀라고 알려진 평론가들이 합류해 다시 비교 테스트를 거치며 밥 카버는 꼬리를 내리긴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이후 이런 A/B 테스트가 여러 곳에서 이루어졌고 산타페 목장의 결투는 오디오파일이나 앰프 제조사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밥 카버는 이 당시 만든 앰프를 기반으로 신제품을 만들어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또 다른 사례는 실연과 재생음의 대결 구도다. 지금도 유튜브에 찾아보면 우리에겐 아큐톤으로 유명한 가우더 어쿠스틱 스피커로 실연과 오디오 재생음을 비교하는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시청곡은 필자도 오디오 테스트용으로 자주 사용하는 오존 퍼커션 그룹의 ‘Jazz Variants’. 이런 테스트를 이미 무척 오래전에 실행에 옮긴 메이커가 있는데 바로 영국의 와피데일이다. 창립자 길버트 브릭스는 당시 또 다른 영국 메이커인 쿼드의 피터 워커와 함께 콘서트 현장에서 실황 음악과 녹음된 재생음을 비교해볼 수 있는 콘서트를 기획해 실행에 옮겼다. 이 당시가 1950년대니 벌써 반세기도 훨씬 지난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다.

와피데일 Elysian 4

당시 와피데일은 이처럼 무척 흥미로운 스피커 메이커였다. 미국에서 알텍 등 극장 중심의 스피커를 만들어내던 메이커가 있었고 영국에선 탄노이가 있었다. 본격적인 가정용 고성능 하이파이 스피커가 급격히 발전하고 진화하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지금은 레전드로 평가받는 메이커들이 군웅할거하던 시절이었다. 와피데일도 영국에선 탄노이에 이어 가장 의욕에 넘치며 여러 특허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메이커였다. 마치 탄노이가 프레스티지 시리즈를 리노베이션 하듯 와피데일이 에어데일을 계승, 발전시키고 덴톤에 이어 최근엔 린톤 같은 스피커까지 출시할 수 있었던 데엔 이런 뿌리 깊은 역사의 밀도가 있다.

그런 와피데일에 오랜만에 매우 신선한 모델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아마 와피데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최고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 다이아몬드 시리즈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Evo 라인업을 공개했고 이어서 플래그십 스피커 라인업을 시청할 기회가 생겼다. 이름은 엘리시언(Elysian). 이 멋진 이름의 플래그십 스피커 라인업은 뼛속 깊이 개혁의 필요성을 인지한 와피데일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우선 와피데일은 엘리시언이라는 라인업 하에 엘리시언 2 북쉘프와 엘리시언 4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등 두 개 모델을 두었다. 이번에 시청한 스피커는 엘리시언 4로서 꽤 커다란 체구에 다발의 유닛을 독창적인 구조 안에 배치시켜놓고 있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설계와 유닛 등을 살펴볼 때 지난번 리뷰했던 Evo 스피커의 원류는 바로 엘리시언 스피커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엘리시언 4 스피커는 높이 1188mm에 좌/우 너비 402mm 그리고 432mm 깊이의 꽤 묵직한 본격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다. 요즘 하이엔드 스피커처럼 장승같은 높이를 자랑하지도 않고 뒤로 긴 타입도 아니다. 전통적인 궤짝의 현대적 변형이라고 해도 좋을 듯한 모습으로 무게가 개당 49.5kg의 육중한 무게까지 더해져 안정감이 넘친다. 표면 마감은 피아노 래커 타입으로 마무리해 고급스럽고 각 유닛의 경계면마다 캐비닛에 홈을 파놓아 마치 가우더 어쿠스틱의 디자인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엘리시언 4는 역시 영국 전통적인 명문가 중 하나인 와피데일의 오랜 스피커 제작 기술의 소산이다. 요즘 같아선 훨씬 더 대형기 아니면 자주 사용하지 않는 8.5인치 우퍼를 무려 두 발이나 사용하고 있다. 더불어 미드레인지는 6인치 드라이브 유닛에 맡기고 있는 형태. 베이스와 미드레인지 유닛 모두 유리 섬유를 활용한 매트릭스 진동판을 사용하고 있으나 각각 구경을 달리하고 다른 대역을 할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반전은 트위터에 있었다. 이미 Evo 라인업에서 확인했던 AMT 유닛으로 사실 엘리시언에서 이미 시작된 반전이었다. 엘락도 아닌 와피데일 스피커에서 AMT 유닛을 구경하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AMT 유닛은 곤충의 고속 날갯짓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70년대에 오스카 헤일 박사가 고안한 고역 트랜스듀서 형식이다. 현재는 엘락을 필두로 오디오벡터는 물론 그리폰, 레거시 등 하이엔드 메이커에서도 즐겨 사용하는 유닛. 와피데일의 엘리시언 4엔 3.5인치 AMT 트위터를 전격 도입해 새로운 와피데일로의 항해를 시작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엘리시언 4의 재생 주파수 대역은 30Hz에서 22kHz. 사실 AMT를 투입한 것치고는 고역 한계가 그리 높진 않은 편이다. 크로스오버는 각각 340Hz, 3.1kHz에서 끊어 3웨이 4스피커 시스템으로 설계한 모습이다. 한편 공칭 임피던스는 4옴, 능률은 92옴으로 저역 제어는 전반적으로 쉬운 편이었다.

Shelby Lynne - Just A Little Lovin'

Just A Little Lovin'

세팅은 일전에 리뷰하면서 좋은 인상을 받기도 했고 그 특성에 대해 익숙한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D 인티앰프 그리고 웨이버사 WNAS3를 세팅한 상태에서 테스트했다. 우선 듬직한 디자인만큼이나 엘리시언 4의 소리는 전체 대역 밸런스가 하강해 편안하고 담백한 느낌이 지배적이다. 무게감이 충분히 실린 소리로서 음조 또한 차분한 편이다. 예를 들어 셸비 린의 ‘Just a little lovin’을 들어보면 보컬 음상은 꽤 큰 편으로 묽고 넓게 형성된다. 밀도감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며 입체적 홀로그래픽 정위감보단 좌/우로 와이드하게 펼쳐지는 음장 형성 특성을 보인다.

Fourplay - Chant

The Best Of fouRPLAY

역시 저역 무게감이 돋보이는데 마치 탄노이 기존 시리즈를 업그레이드해 새롭게 만들어낸 최신 GR 라인업들 또는 스펜더 D 시리즈를 생각나게 한다. 새로운 세대의 음향적 취향에 대해 꽤 많은 고민을 거친 것이 아닐까 하는데 와피데일의 기존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현대적 사운드 스펙트럼을 대폭 받아들인 모습이 역력하다. 포플레이의 ‘Chant’를 들어보면 빠르게 콕 때리고 올라오는 저역이 아니라 느긋하되 풍부하며 포만감이 좋은 저역을 들려주며 그 위에 달콤한 중역과 싱싱하고 청명한 고역이 화합한다. 상당히 독특한 하모닉스 구조를 연출하는 모습이다.

Manfred Honeck,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Shostakovich: Symphony No. 5

대체로 엘리시언 4는 풍성하고 따뜻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스피커다. AMT 트위터를 적용했다고 해서 와피데일 사운드의 근간을 흔들진 못한다. 맨프레드 호넥 지휘,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2악장을 들어보면 커다란 다이내믹스 폭을 매우 간략하게 압축해 표현해낸다. 따라서 커다란 소리들을 큼지막하게 잘라 호쾌하게 풀어낸다. 저역은 웅장한 울림을 보여주면 비교적 정확한 음정 표현과 함께 현악과 관악 사운드가 장중하게 펼쳐진다. 더불어 스윗 스팟이 넓은 편이므로 세팅과 청취 위치에 따른 스트레스는 크지 않다.

LA4 - Spain

Just friendS

AMT 트위터와 그 아래 미드레인지의 매칭은 특유의 고역 색채를 만들어낸다. 이는 엘락, 오디오벡터 등 AMT 트위터를 장착한 스피커의 공통적인 현상인데 상쾌하면서도 미음이다. 엘리시언 4의 경우 다행히 토널 밸런스를 크게 헤치지 않는 선에서 어색하지 않게 표현해낸다. 예를 들어 LA4의 ‘Spain’처럼 타격감과 리듬감이 강조되는 재즈 트랙에서 아주 냉정한 저역보다는 다소 느긋하게 통 울림을 만들어낸다. 취향에 따라 앰프 매칭의 묘미를 사릴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다행히 저역 제동 자체는 쉬운 편이다.

참고로 이번에 매칭한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D처럼 단정하고 윤기 있는 트랜지스터 앰프도 좋지만 오히려 저역에 대한 미련을 뒤로하고 진공관 앰프를 매칭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총평

과거 오랜 전통을 가진 스피커 메이커들에게 현재 오디오 산업의 흐름의 기회이자 위기다. 발 빠르게 트렌드에 적응한 메이커는 올인원이나 블루투스 스피커 및 헤드폰/이어폰에까지 그 사업 범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신기술 및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신진 메이커들이 무서운 기세로 시장을 트렌드를 읽어나가며 빼어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 엘리시언 시리즈는 여전히 전통적 스피커 설계를 고집하고 있으나 AMT 트위터 등의 도입을 통해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와피데일의 기회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