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스피커 리뷰를 하면서 메모장에 '압도적'이라는 말을 이렇게나 많이 한 적이 있었나 싶다. 실제 드럼 사운드보다 더 센 음압을 스피커가 들려주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었다. 독일 타이달(Tidal)의 Contriva G2(콘트리바 G2) 스피커였다. 수입사 시청실에 처박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예전 이 아래 모델 Piano G2(피아노 G2)에도 탄복했었는데, 이번 콘트리바 G2는 그 강도가 더 높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타이달과 '비용은 묻지마'의 세계

타이달은 초정밀 금속산업에 종사하던 엔지니어 외른 얀크젝(Jorn Janczak)이 1999년 독일 퀼른 외곽의 후르트(Hurth)에 설립한 오디오 제작사다. 사명은 외른 얀크젝이 좋아한 여성 가수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1996년 데뷔 앨범 'Tidal'에서 따왔다. 

외른 얀크젝은 타이달의 목표를 처음부터 '울트라 하이엔드'로 잡았다. 그가 타이달 스피커를 '포르쉐 911'에 자주 비유하는 것도 마스터피스 수준의 명품 스피커를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해오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타이달 스피커에 투입된 유닛과 인클로저, 네트워크 부품과 배선재, 바인딩 포스트, 받침대 등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코스트 노 오브젝트'(Cost No Object)의 세계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라인업은 플래그십 La Assoluta(라 아솔루타)부터 시작해, Akira(아키라), Sunray(선레이), Agoria(아고리아), Contriva G2(콘트리바 G2), Piano G2(피아노 G2)로 이어진다. 피아노 G2의 경우 필자가 2017년에 리뷰를 했을 때만 해도, 다이아몬드 트위터 채택을 강조하기 위해 Piano G2 Diacera(피아노 G2 다이아세라)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그냥 피아노 G2로 통일됐다. 전 라인업이 모두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쓰기 때문이다. 

Tiradur cabinet

필자가 타이달 스피커를 보면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인클로저에 들인 엄청난 물량과 시간 투입,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만듦새다. 겉보기에는 그저 ‘피아노 글로스 라커’ 마감이지만, 인클로저 재질 자체가 티라두르(Tiradur)라는 고강성 복합소재다. 타이달에 따르면 티라두르는 1) 알루미늄 같은 메탈 수준의 고강도와 2) 목재나 MDF 같은 소프트 재질의 공진 흡수력을 동시에 갖췄다. 이번 콘트리바 G2의 한쪽 무게가 102kg이나 나가는 첫 번째 이유다.

티라두르 인클로저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 것이 티랄리트(Tiralit)다. 한 유닛 후면에서 방사되는 음파가 다른 유닛에 끼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유닛을 각자 격실에 수납하고, 인클로저의 진동과 공진 방지를 위해 내부는 거의 건물 수준으로 브레이싱 처리했다. 타이달 홈페이지에 공개된 아고리아 모델의 티랄리트 인클로저 내부 구조를 보면 그 복잡함과 꼼꼼함, 시각적 견고함에 순간 아찔할 정도다. 티라두르는 피아노 2G와 콘트리바 G2, 티랄리트는 아고리아와 선레이, 티랄리트 울트라는 아키라와 라 아솔루트에 채택됐다.

피아노 마감 공정은 더 놀랍다. 무려 25kg의 폴리에스터 피아노 라커를 티라두르 인클로저 표면에 바른 후 두께가 3mm에 달할 때까지 수개월에 걸쳐 일일이 수작업으로 문질러 광택을 낸다. 물론 보기 좋으라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영구 사용을 위한 변색 방지와 음질 열화를 막기 위한 제습을 위해서다. 

Passive crossover

크로스오버 회로가 장착되는 네트워크 기판도 ‘묻지마’ 수준. 네트워크 품질이 스피커 전체 음질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만큼 덴마크 듀어런트(Duelund)의 특주 순동 포일 커패시터를 비롯해, 메탈필름 저항, 실버카본 저항, 순은 공심코일 등 호화 부품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멀티레이어 기판 자체도 타이달에서 직접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 회로 기판의 무게는 콘트리바 G2의 경우 무려 16kg. 게다가 마이크로포닉 노이즈 유입 방지와 제습을 위해 이 기판이 스피커 내부에서 또 한 번 격실 처리되니 정말 할 말 다 했다.

바인딩 포스트와 내부 배선재, 아이솔레이션 베이스도 예외는 아니다. 스피커케이블 단자와 직접 맞닿는 터미널은 전도율이 높은 순은 재질이며, 이 터미널을 전자기장 간섭을 막기 위해 특수 강화처리된 폴리머 커넥터가 감싸고 있다. 내부 선재는 모두 극저온 처리를 통한 분자 재배열로 임피던스 값을 크게 낮춘 순은선. 아이솔레이션 베이스의 경우 절삭가공한 스테인리스 스틸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광택을 냈다. 겉만 번지르르한 크롬이 아닌 것이다.

Diamond tweeter

스피커의 핵심이라 할 드라이버 유닛은 타이달 스피커 제작 마인드의 화룡점정. 타이달은 기본적으로 특주한 독일 아큐톤(Accuton)사의 유닛을 쓰는데, 트위터는 모두 1.2인치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채택하고 있다. 라 아솔루트와 아키라는 심지어 5인치 미드레인지까지 다이아몬드 진동판을 쓴다. 이처럼 다이아몬드 진동판을 애정하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를 새털처럼 가볍고 얇게 만들 경우 진동판 재질로서는 적수가 없기 때문이다. 트위터(전 모델)에는 1캐럿 다이아몬드, 미드레인지 유닛(라 아솔루타, 아키라)에는 13캐럿 다이아몬드를 쓴다. 

Contriva G2 본격 탐구

콘트리바 G2는 3웨이, 4유닛의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다. 높이가 받침대 포함 136cm, 무게가 102kg이 나가는 거구로, 실물을 보면 빼어난 블랙 피아노 마감과 유닛의 자태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채택한 Contriva Diacera SE가 2007년, 블랙 코팅한 아큐톤 세라믹(BCC. Black Coated Ceramic) 미드레인지와 우퍼 유닛을 채용한 Contriva G2가 2015년에 등장했다. BCC 유닛을 채택한 것은 심미적인 이유와 함께 세라믹 유닛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BCC Midrange woofer

유닛은 1.2인치(130mm) 다이아몬드 돔 트위터와 7인치(173mm) BCC 미드레인지, 9인치(222mm) BCC 우퍼 2발 구성. 인클로저 재질은 피아노 라커 마감의 티라두르이며,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후면 위아래에 큼지막하게 2개가 마련됐다. 바인딩 포스트는 바이와이어링을 지원한다. 공개된 스펙은 공칭 임피던스가 4옴이라는 것뿐, 주파수 응답 특성이나 감도, 크로스오버 주파수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20W 이상의 앰프면 충분히 구동할 수 있고, 임피던스가 어떤 경우에도 4옴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Vario feet

콘트리바 G2를 옆에서 보면 인클로저 자체를 뒤로 약간 경사지게 설계했는데 이는 유닛 간 위상과 타임 얼라인먼트를 위한 것. G2가 되면서 이 기울기가 3도 더 늘어났다. 인클로저 크기도 약간 줄어들어서 키는 45mm, 가로폭은 5mm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무게가 90kg에서 102kg으로 늘어난 것은 바로 G2부터 티라두르 인클로저(이전 모델은 HP-MDF)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받침대는 지지 모양을 일자형(parallel) 혹은 경사형(slope)으로 취향과 환경에 따라 바꿀 수 있는 Vario feet(바리오 피트)를 채택했다.  

Vario terminal

후면 아래에 있는 바인딩 포스트 인터페이스도 흥미롭다. 싱글 와이어링은 물론 바이와이어링, 그리고 외장 크로스오버를 통한 액티브 바이와이어링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청 환경이 데드(dead) 혹은 라이브(live)인지에 따라 토글스위치로 트위터 커브도 조절할 수 있다. 토글스위치를 'Linear'에서 ‘Gain’으로 내리면 트위터 음압이 2dB 증가한다고 한다. 진정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디테일이다.

콘트리바 G2와 위 모델 아고리아, 아래 모델 피아노 G2의 제원을 비교해봤다. 아고리아는 측면에 우퍼 2발, 후면에 패시브 라디에이터 3발을 단 독특한 구성이며, 피아노 G2는 7인치 BCC 유닛 1개가 중저역대, 다른 1개가 저역대를 커버하는 2.5웨이 구성이다. 

시청

수입사 시청실에서 진행한 타이달 콘트리바 G2 시청에는 미국 브리카스티의 DAC 겸 프리앰프 M12와 모노블록 파워앰프 M28을 동원했다. M28은 8옴에서 200W, 4옴에서 400W를 풀 밸런스 파워앰프다. 

김민기 -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1

몸풀기로 우선 몇 곡을 들어보는데도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은 오디오 테스트 음원으로 써도 될 만큼 해상력과 디테일이 돋보였고 무엇보다 음 끝이 살아있는데도 필자를 편안하게 무장해제시키는 능력이 대단했다. 앰프와 스피커의 보이스코일을 지나가는 전기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스피커에서 이 정도 되는 음이 나오면 룸 튜닝이나 스피커 토인, 앰프 매칭, 케이블링 등이 굳이 필요할까 싶다. 

Herbie Hancock - Cantaloupe Island 

Empyrean Isles

허비 행콕의 'Cantaloupe Island'는 트럼펫이 리얼 사운드를 뽐냈고 배경은 딥 블랙 그 자체였다. 냇 킹 콜의 'I Found A Million Dollar Baby'는 특정 대역이 전혀 부각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대역 밸런스가 일품. 만약 앰프와 케이블, 액세서리 등으로 튜닝을 했으면 감히 이렇게 완벽한 대역 밸런스에는 접근조차 못했을 것이다. 리키 리 존스의 'I Will Be Seeing You'는 원래 해상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흥이 전혀 나지 않는 곡인데, 콘트리바 G2는 이 곡을 너무나 맛깔스럽게 들려줬다. 이 곡을 들으면서 가결론을 내렸다. '게임 끝'이라고.

Claudio Abbado, Berliner Philharmoniker - Tuba Mirum

Mozart Requiem

처음부터 스케일이 큰 무대가 호방한 음들이 빠릿빠릿 뛰쳐나온다. 바리톤에는 힘이 가득 베여있고, 오케스트라는 앞쪽 아래에서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전체적으로 윤곽선이 선명하고 깨끗하다는 촉감이 두드러진다. 통상의 트위터 직경보다 큰 1.2인치 다이아몬드 트위터와 7인치, 9인치 아큐톤 세라믹 유닛의 영향이 클 것이다. 또한 무대의 좌우나 안 길이만이 아니라 높이까지 잘 펼쳐져서 듣는 내내 탁 트인 전망을 만끽했다. 소프라노는 맑고 단아하게 위로 쭉쭉 뻗는다. 역시 다이아몬드 트위터 덕분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시청한 콘트리바 G2의 인상은 나긋나긋하기보다는 진한 색채로 훅 밀고 들어오는 스타일. 평소에 자주 듣는 곡인데도 이 곡의 기세가 이 정도로 대단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이 같은 느낌은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에서도 비슷했는데, 테너는 힘이 있으면서도 곧고 매끄러웠으며, 음들이 순간적으로 쏟아질 때에도 뭉치거나 허둥대지 않는 해상력이 압권이었다. 

Esa-Pekka Salonen, Oslo Philharmonic Orchestra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Grieg: Peer Gynt, Op. 23

초반 여리고 작은 음들의 거동이 이 정도로 확실하게 포착되었던 적이 있나 싶다.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가는 고양이처럼 초반 음들이 모조지 생생하게 들리는 것은 결국 이 스피커가 깔아준 놀라운 정숙도 덕분일 것이다. 그러다 팀파니가 세게 치고 나오는 대목에서는 말 그대로 '음의 압력'이 필자의 가슴을 때린다. 음의 샤워라 할까, 폭음을 뒤집어쓰는 이 쾌감이 아주 좋다. 음들이 폭주할 때에도 자세를 꼿꼿이 유지하는 모습은 역시 타이달 스피커들의 일관된 특징. 이러한 타격감과 음압은 확실히 여느 스피커와는 레벨이 다르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분위기를 바꿔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를 들어보면 시청실이 작은 클럽이 된 것처럼 앞벽이 꿀렁거리며 가공할 만한 음의 습격이 시작된다. 이 곡의 킥드럼 사운드는 거의 역대급. 모노블록 브리카스티 앰프 덕도 봤겠지만 필자가 앉은 소파가 바르르 떨 정도였다. 이러다 아큐톤 세라믹 진동판이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 만큼 번개처럼 음들이 내리꽂히는 기세가 대단했다. 

Lamb of God - Ashes of the Wake

Ashes of the Wake

이 곡은 요즘 오디오 시스템의 다이내믹스와 체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자주 듣는 곡인데, 콘트리바 G2는 거의 원톱 수준의 음을 들려준다. 이러한 압도적인 느낌은 예전 포칼의 그랜드 유토피아 EM EVO에서나 가져볼 수 있었던 것인데, 이를 훨씬 슬림하고 영구 자석(포칼은 전자석 우퍼 사용)을 쓴 콘트리바 G2가 해낸다. 역시 스피커와 시청 환경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다이내믹스와 음압이다. 실제 드럼 사운드보다 더 센 파워를 가정용 스피커와 앰프 조합이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 어렵다. 더욱이 3웨이, 4유닛 구성인데도 마치 커다란 풀레인지 스피커를 듣는 듯한 것은 타이달의 주장대로 크로스오버 설계가 이미 어떤 경지에 올랐음이 틀림없다. 이날 시청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곡을 들었던 것도 이런 기회가 앞으로 자주 있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Jacintha - Moon River

Autumn Leaves

야신타가 필자의 앞에서 노래하는 실체감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동작 하나하나, 음 하나하나가 크고 시원시원한 것이 특징. 음끝을 오래 끌고 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어느 음 하나라도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피아노 오른손 타건음은 어떻게 이 정도로 분명하고 명확하게 들릴 수 있는지 감탄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음들이 잘게 부서져 평소보다 더 많이 들리는 점이 의외라면 의외다. 콘트리바 G2는 들으면 들을수록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 스피커가 펼쳐내는 음 같지가 않다. 그냥 무대에 놓인 악기와 무대에 선 가수가 직접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시청실 바닥에서는 피아노 페달이 밟히는 소리가 피어오르고, 그 위에 건반과 현과 해머, 다시 그 위에 야신타의 목소리가 켜켜이 쌓여있다. 콘트리바 G2 자료조사를 하면서 스펙이 자세히 공개되지 않은 점이 답답했는데, 그 이유를 비로소 알겠다. 직접 들어보면 저역이 얼마나 내려가고 고역이 얼마나 올라가는지, 음압이 얼마나 되는지 그냥 사람의 몸이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총평

개인적으로 타이달은 높은 가격만 빼고는 어디 흠잡을 데가 없는 스피커다. 이번 콘트리바 G2 역시 밑에서 2번째 모델인데도 가격이 1억 원대에 육박한다. 필자 입장에서는 이 넘사벽 가격대에 미리 '신포도' 취급을 하고 싶지만, 소리를 들어보면 물욕과 소유욕이 꿈틀거린다. 피아노 G2와도 체급 차이가 확실히 났다. 7인치 2발을 '.5' 구성으로 한 것(타이달 G2)과 7인치 1발이 미드, 9인치 2발이 우퍼 역할을 한 것(콘트리바 G2)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흘렀다. 콘트리바 G2는 굳이 머리를 싸매고 튜닝을 할 필요가 없는 스피커다. 물론 양질의 파워앰프가 받쳐줘야 하겠지만, 적당한 공간에 적당한 케이블만 물려줘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음이 나온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