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독일 T+A는 세계적인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다. 앰프뿐만 아니라 소스 기기와 스피커까지 만든다. 지난 2018년 5월 독일 북동부 헤르포르트(Herford)에 있는 본사를 탐방한 적이 있는데, 그 규모와 QC 수준에 깜짝 놀랐다. 소리는 더 대단했다. 특히 이들의 플래그십 HV 시리즈 앰프는 진공관의 소릿결과 솔리드의 파워를 겸비해 시청 내내 감탄했던 기억이 새롭다.

최근 T+A의 플래그십 인티앰프 PA 3100 HV를 시청했다. 8옴에서 300W, 4옴에서 500W를 내는 솔리드 인티앰프다. 탱크처럼 크고 단단한 생김새부터 마감, 구동력, 소릿결, 무대와 이미지메이킹 능력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꼼꼼히 살펴보는 설계 디자인은 그야말로 솔리드 앰프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투입했다는 인상. 이런 설계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리를 납득할 수 있었다.

T+A

T+A는 독일 하노버 공대에서 플라즈마 물리학과 전기음향을 전공한 지크프리드 암프트(Siegfried Amft)씨가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78년에 헤르포르트에 설립했다. 회사 이름 T+A는 독일어로 이론과 응용을 뜻하는 ‘Theorie und Anwendung’의 약자. 전기음향의 기술 이론을 적극적으로 제품에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10대 때부터 앰프와 라디오, 스피커를 제작했던 지크프리드 암프트씨는 대학 재학 시절 젠하이저 설립자인 프리츠 젠하이저 교수의 전기음향학 수업을 수강한 뒤 자신이 직접 오디오 회사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T+A는 설립 초기 무지향 스피커 Delta 시리즈를 내놓으며 오디오계에 명함을 내밀었다. 높이 43cm에 무게 7kg에 불과한 Delta 30B의 경우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저역이 33Hz까지 떨어져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인클로저 내부에 저역 보강을 위한 트랜스미션 라인을 투입한 TMR 시리즈, 고전압 진공관 앰프를 내장한 액티브 정전형 스피커 Solitaire OEC 시리즈 등 1980년대 중반까지 T+A는 주로 스피커 제작에 주력했다.

설립 25주년을 맞아 지난 2003년에 출시한 진공관 인티앰프 V10

그러다 1986년 T+A Pulsar라는 이름으로 첫 프리, 파워앰프를 출시하며 T+A는 일렉트로닉스 제품 생산에도 나섰다. 특히 설립 25주년을 맞아 지난 2003년에 출시한 진공관 인티앰프 V10은 SPPP(Single Primary Push Pull)라는 새로운 푸시풀 구동방식으로 80W 대출력과 함께 푸시풀 앰프의 고질이었던 교차 왜곡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주파수응답 특성은 18Hz~100kHz라는 광대역을 보였고 왜율도 0.5%에 그쳤다. 상판에 푸른빛이 도는 아크릴을 투입한 디자인도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진공관 앰프 제작에 관한 한 여느 하이엔드 메이커 못지않은 기술력을 가진 T+A이지만 이 제품 이후에는 주로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에 주력하고 있다. 자신들이 세운 ‘하이엔드 기준’에 맞춰 진공관 앰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진공관이 계속 생산되어야 하는데 점점 그 수급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 대신 뒤에서 자세히 살펴볼 HV(High Voltage) 테크놀로지, 즉 진공관 앰프처럼 높은 전압으로 트랜지스터 증폭단을 제어하는 기술을 통해 진공관 앰프의 대표 장점 중 하나인 리니어리티(linearity)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T+A의 현행 라인업을 보면 A부터 Z까지 다 있다. 앰프는 기본이고 CD/SACD 플레이어, 네트워크 플레이어, DAC, 턴테이블, 올인원,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다양한 헤드폰과 스피커까지 만든다. 스피커의 경우 실린더 타입의 정전형 트위터에 저역 보강을 위한 트랜스미션 라인과 측면 우퍼, 공진 방지를 위한 알루미늄 인클로저 등 라인업에 따라 전문 스피커 제작사 뺨칠 정도의 화려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투입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각종 오디오 케이블과 멀티탭, 포노 모듈, 심지어 LP 전용 스태빌라이저까지 T+A 이름을 달고 나온다.

이중 플래그십 HV 시리즈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M 40 HV : 모노블록 파워앰프(8옴 550W, 4옴 1000W)

SD 3100 HV : 스트리밍 DAC

SDV 3100 HV : 스트리밍 DAC/프리앰프

PDT 3100 HV : CD/SACD 트랜스포트

PA 3100 HV : 인티앰프(8옴 300W, 4옴 500W)

MP 3100 HV : 멀티소스 플레이어

P 3000 HV : 프리앰프

A 3000 HV : 파워앰프(8옴 300W, 4옴 500W)

PS 3000 HV : 파워서플라이

PA 3100 HV 외관과 스펙

PA 3100 HV는 덩치부터 예사롭지 않다. 크고 단단하며 무겁다. 가로폭과 안길이가 모두 46cm 정사각형 모양에 높이가 17cm에 달한다. 전원부와 파워앰프부(하단), 프리앰프부(상단)를 두께 1cm의 알루미늄으로 격벽 처리했기 때문이다. 무게는 38kg. 섀시 자체가 알루미늄(전면 패널 두께 4cm)인데다 안에 1000VA 용량의 대형 토로이달 트랜스와 총 12만 uF 용량의 대형 커패시터가 12개나 들어간 덕분이다.

전면에는 큼지막한 디스플레이 양옆으로 커다란 노브가 하나씩 달렸다. 왼쪽이 입력 선택용, 오른쪽이 볼륨 조절 및 메뉴 선택용이다. 볼륨 노브 밑에는 6.3mm 헤드폰 출력 단자가 있다. 디스플레이에는 VU(Volume Unit) 미터가 2개 있는데, 4옴 기준 좌우 채널 출력을 각각 표시한다. 특이한 점은 전원 온오프 터치 버튼이 이 디스플레이 왼쪽 상단에 박혀 있다는 점. 생각 이상으로 편리했다.

양옆 방열핀을 따라가다가 후면을 보면 입출력 단자와 스피커 커넥터가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그것도 좌우 채널을 철저히 분리한 대칭형 구조다. 오른쪽 채널만 보면 위에 프리 아웃(XLR, RCA)과 입력 1~4(XLR, RCA), 아래에 스피커 커넥터 2조가 마련됐다. 바이와이어링 혹은 스피커 2조 운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눈길을 끄는 것은 가운데에 있는 RCA 입력단 2개(입력 5, 6)인데 이는 출력전압이 높은 소스 기기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옆의 RCA 단자 2개는 레코더 연결을 위한 입출력 단자다.

스펙은 인티앰프가 낼 수 있는 거의 최고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클래스 AB 증폭, 푸시풀 구동을 통해 8옴에서 300W, 4옴에서 500W를 내고, 주파수응답 특성은 0.5Hz~180kHz(-3dB)에 이를 정도로 광대역에 걸쳐 플랫하다. 앰프의 스피드를 알 수 있는 슬루레이트는 60V/us, 즉 100만 분의 1 초 동안 60V를 뿜어내는 수준. 앰프의 정숙도를 알 수 있는 신호 대 잡음비(SNR)는 115dB에 달한다. 노이즈에 비해 신호가 56만 2341배나 높다는 얘기다. 앰프의 신호 왜곡 정도를 알 수 있는 전고조파왜율(THD)은 0.03%에 그친다.

프리앰프부 : 크로스 커플드 JFET 차동 캐스코드 회로

PA 3100 HV의 내부 설계를 신호 흐름에 따라 살펴봤다. 우선 입력단은 금 접점 릴레이 방식. 산화를 막기 위해 가스를 밀봉한 캡슐에 집어넣었다. 볼륨단은 디스크리트 저항과 금 접점 릴레이를 활용한 방식. DC 커플드 설계의 프리앰프부는 위에서 말한 대로 두께 1cm 알루미늄으로 하단 전원부 및 파워앰프부와 격벽 처리됐는데, 좌우 채널을 철저한 미러형으로 설계했다. 물론 좌우 신호 편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여기에 파워앰프부 역시 철저한 좌우 대칭형 설계라 채널 분리도가 90dB 이상을 보인다.

프리앰프부 설계 핵심은 JFET 증폭 소자를 크로스 커플드 차동 캐스코드(cross-coupled differential cascode amplifier) 회로로 짰다는 것. 말이 어렵긴 하지만, 1) JFET을 연이어 붙이고(캐스코드), 2) +, - 신호의 차이만을 증폭시키며(차동=디퍼런셜), 3) 첫 번째 N채널 JFET의 소스(source)를 두번째 P채널 JFET의 소스에 연결(크로스 커플드)했다는 뜻이다. T+A에서는 이 회로를 통해 전압 증폭의 리니어리티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고 한다(“Further measures are employed with the aim of linearising the voltage amplifier stages, such as cross-coupled differential amplifier cascodes with double JFET control transistor”).

JFET과 MOSFET 3개 핀 그림

찬찬히 따져봤다. 우선 JFET(Junction Field Effect Transistor)은 입력 신호의 작은 전압으로 트랜지스터 내 전류를 증폭해 출력한다. 즉, 입력 신호가 들어오는 게이트(gate)의 전압으로 드레인(drain)에서 소스(source)로 흐르는 전류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이너스 전압이 들어오는 N채널(Negative) JFET에서는 전압이 커질수록 전류의 흐름이 증가하고, 플러스 전압이 들어오는 P채널(Positive) JFEF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무엇보다 입력 임피던스가 높아서 주로 프리앰프부에 쓰인다.

캐스코드는 이 JFET을 연이어 붙였다는 것. 즉 입력신호가 들어오는 첫 번째 JFET의 드레인에 두 번째 JFET의 소스를 연결해 두 번째 JFET의 드레인에서 최종 출력 신호를 뽑아내는 구조다(참고로, 첫 번째 JFET은 소스가 접지되고(common source), 두 번째 JFET은 게이트가 접지된다(common gate)). 어쨌든 캐스코드 회로는 증폭 소자를 한 개만 쓸 경우에 비해 당연히 게인값이 높은 데다 커패시턴스까지 낮아져 고역 특성이 좋아지는 장점이 있다.

차동, 즉 디퍼런셜 회로는 말 그대로 두 입력신호가 서로 다를 경우에만 증폭이 이뤄진다. 게인을 A라고 할 때, Vout = A(Vin1 - Vin2)인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입력신호가 플러스(+) 정위상 신호와 마이너스(-) 역위상 신호로 들어올 경우 차동 증폭이 이뤄지며, 증폭된 역위상 신호를 반전시켜 정위상 신호와 합쳐주면 이론상으로 최종 2배 증폭 신호가 출력된다. 이렇게 복잡하게 짜는 것은 +, - 신호에 동시에 끼어든 노이즈, 즉 공통 모드 노이즈를 효과적으로 제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역위상 신호를 반전시켜 정위상 신호와 합칠 경우 노이즈가 서로 상쇄되는 원리다.

크로스 커플드 차동 캐스코드 증폭회로. 이 그림에선 MOSFET을 투입했다.

크로스 커플드 회로는 차동 캐스코드 회로의 한 변형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N채널 JFET이 2개(A, B), P채널 JFET이 2개(C, D)가 있을 경우, N채널 JFET A의 소스에 P채널 JFET D의 소스를 연결해 캐스코드 회로를 이루는 것이다(A-D). 물론 P채널 JFET C의 소스는 N채널 JFET B의 소스에 연결된다(C-B). 결국 차동 캐스코드 회로를 한차례 꼬은 셈인데, 핵심은 이를 통해 게인은 높이면서 고조파 왜율은 줄일 수 있다는 것. 특히 전원 리플을 크게 줄여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워앰프부 : MOSFET 드라이브단, 바이폴라 출력단

PA 3100 HV의 파워앰프부는 하단에 마련됐다. 방열핀 안쪽에 채널별로 8개씩 장착된 바이폴라 트랜지스터가 푸시풀 출력(전류 증폭)을 하고, 그 앞단의 MOSFET이 싱글엔디드 증폭(전압 증폭)해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드라이빙하는 구조다. 그리고 MOSFET 드라이브단은 클래스 A, 바이폴라 트랜지스터 출력단은 클래스 AB로 증폭된다. T+A에 따르면 드라이브단에 MOSFET 소자를 쓴 것은 음의 특성이 진공관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PA 3100 HV는 프리앰프부(입력단)에 JFET, 파워앰프부 드라이브단에 MOSFET, 파워앰프부 출력단에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투입한 셈. 물론 이는 T+A만의 것은 아니며 존 컬이 설계하는 파라사운드의 파워앰프들도 전압 증폭단(입력단)은 JFET, 드라이브단은 MOSFET, 전류 증폭단(출력단)은 바이폴라 트랜지스터가 맡는다. 예전 한국을 방문했던 파라사운드 CEO 리차드 슈램씨에게 물어보니, “JFET은 진공관과 특성이 비슷하고, MOSFET은 짝수차 배음을 내며,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는 출력 임피던스가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HV Technology : 고전압 DC 레일에서 작동하는 전압 증폭단

끝으로 살펴볼 것은 T+A의 대표 기술이라 할 HV(High Voltage) 테크놀로지다. 말 그대로 게인이 확보되는 트랜지스터 전압 증폭단에 진공관처럼 고전압을 흘려주는 기술이다. 독일 T+A 취재 당시 지크프리드 암프트씨에게 직접 물어보니, “T+A 엔지니어들이 진공관 앰프만이 전해주는 하모닉스와 다이내믹스의 비결을 알아본 결과 그것은 다름 아닌 진공관이 고전압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었다”라고 한다.

실제로 직열 3극관 300B의 경우 플레이트 전압은 통상 300V에 달하는데, PA 3100 HV 역시 MOSFET 전압 증폭단에는 360V 고전압을 가한다(JFET 전압 증폭단은 80V). 이에 비해 트랜지스터 OP앰프의 경우 30V, 많아야 38V에서 작동한다. 예를 들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의 LM741 OP앰프 데이터시트를 보면, 공급 전압(supply voltage)은 +15V, -15V, 즉 30V 레일인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이처럼 이 공급 전압 수치가 DC 레일(rail) 개념이라는 것. PA 3100 HV의 MOSFET 증폭단에 360V 전압을 공급한다는 것은 이 증폭단이 +180V, -180V라는 두 레일 중간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JFET 전압 증폭단은 +40V, -40V). 어쨌든 이 세상 모든 앰프는 자신이 공급받는 DC 레일 범위 안에서만 전압 증폭을 할 수 있으며, 이 DC 레일 범위가 넓을수록(고전압일수록)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대표적인 것이 입력신호의 전압 레벨이 높아지거나 심지어 펄스 형태로 들어와도 넉넉하게 출력전압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 출력 음압레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헤드룸에 여유가 생기고 다이내믹 레인지도 늘어난다. 지크프리드 암프트씨는 “고전압으로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를 만들면 좀 더 리니어하고 왜곡은 적으며 다이내믹한 사운드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T+A 앰프들이 내부 온도를 최적으로 유지시켜주는 서멀 회로(thermal circuit)를 갖춘 것도 HV 테크놀로지는 무엇보다 앰프 내부의 온도가 적절히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시청

시청에는 브라이스턴의 스트리밍 DAC BDA-3.14와 B&W의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 802 D3를 동원했다. 전자파 노이즈 및 전원 고조파 노이즈 제거 역할을 하는 BOP QF는 BDA-3.14 파워 케이블에 적용시켰다. 즉, BOP QF의 DC 케이블을 BDA-3.14 파워 케이블에 일정 간격으로 감아준 후 DC 전원을 흘려준 상태다. 음원은 주로 룬(Roon)으로 코부즈(Qobuz) 스트리밍 음원과 룬 코어 저장 음원을 들었다. BDA-3.14와 PA 3100 HV는 밸런스 인터케이블로 연결했다.

익숙한 몇몇 곡을 들어보니 PA 3100 HV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바이올린의 고음은 거의 300B처럼 맑고 깨끗했으며, 쫀득쫀득한 소릿결은 마치 클래스 A 증폭 앰프를 닮았다. 진공관 앰프처럼 어쿠스틱 악기 소리가 유난히 잘 들리고 디테일과 온기, 편안함이 감도는 것도 특징. 저역이 우르릉 처박히거나 고역이 시청실 천장까지 닿을 듯한 엄청난 다이내믹 레인지도 두드러졌다. 특히 저역의 선도 높은 해상력, 배경이 무척 조용한 점도 눈에 띈다.

반대로 PA 3100 HV는 4옴에서 500W를 내는 대출력 솔리드 앰프임에도 대출력을 과시하는 타입은 절대 아니다. 저역을 과하게 강조하지도, 고역이 쨍하거나 거칠지도 않다. 계속해서 듣다 보면 같은 진공관이라도 맑고 투명한 300B나 야들야들한 EL34, 선명하고 힘이 좋은 KT150 계열이라기보다는 정숙하고 파워풀한 845 스타일. 어떤 장르를 들어도 흐릿하거나 애매하게 넘어가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Michael Rabin, Felix Slatkin, The Hollywood Bowl Symphony Orchestra

Saint-Saens Introduction and Rondo Capriccioso

The Magic Bow

일단 첫 음부터 묵직하고, 3극 진공관처럼 소릿결이 매끄럽다. 지금 분명히 스트리밍 음원을 듣고 있는데도 LP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윤기와 밀도감이 생생하다. 온기가 가득한 것도 특징.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음 하나하나를 정확히 그리고 충실하게 재생해 준다는 인상이다. 한마디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845 진공관을 한 발씩 장착한 앰프를 듣는 것 같다. 하지만 빠른 대목에서도 음들이 혼탁해지거나 섞이지 않는 것, 심지가 매우 단단한 것을 보면 역시 솔리드 앰프가 맞다. 음이 야위거나 농도가 묽은 음이 결코 아니다. 전체적으로 앰프의 헤드룸에 여유가 있다. 압권은 오케스트라 현악 파트들의 세세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여린 신호들을 살뜰히 보살피며 챙기는 앰프다. 바이올린의 고음은 거의 죽음 수준이다. 이는 그만큼 PA 3100 HV가 고역에서 리니어리티가 좋다는 반증인데, 이는 JFET으로 크로스 커플드 캐스코드 회로를 짠 프리앰프부 덕분으로 볼 수밖에 없다.

Claudio Abbado, Berliner Philharmoniker - Dies Irae, Tuba Mirum

Mozart Requiem

확실히 마이클 라빈 곡에 비해 무대 스케일이 확 커지고 전망이 탁 트임을 실감했다. '디에스 이래'는 합창단원들이 정말 넓게 도열을 했으며 각 성부들의 음색과 발성도 잘 들린다. 이 같은 높은 해상력은 소스 기기인 BDA-3.14가 앞단에서 잘 해준 덕이기도 하지만, PA 3100 HV가 이를 손실 없이 증폭해 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합창이 주도하는 곡인데도 반주 오케스트라의 여린 선율도 잘 파악됐다. '투바 미룸'에서는 바리톤의 에너지감과 메조소프라노의 맑은 음색, 소프라노의 쭉쭉 뻗는 고음에 감탄했다. 과연 지금이 클래스 AB 솔리드 앰프로 듣는 음인가, 자꾸 의심하게 된다. T+A에서 정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클래스 A 작동 범위가 넓은 앰프로 보인다. 외관을 닮아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밀도가 있는 음과 무대가 나왔다.

Diana Krall - I've Got You Under My Skin

Live In Paris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플루트와 하프의 실체감에 깜짝 놀랐다. 이어 등장한 어쿠스틱 기타와 바이올린 현악기들의 질감도 정말 갑이다. 각 악기들의 레이어와 무대의 좌우 폭도 상당하다. 음들이 저마다 깨끗하고 하나하나 확대되어 잘 관찰된다. 이 곡에서는 또한 다이애나 크롤의 음상이 전혀 미동하지도 않고 무대 중앙에 또렷이 맺힌 점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그만큼 좌우 채널 분리도가 높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유난히 잘 들리고 음에서 온기와 밀도가 잘 느껴진 점도 강조해두고 싶다. 확실히 HV 테크놀로지 덕분에 고음은 거칠거나 쨍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저역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타입도 아니다. 이른바 '잉여 저역'이 없다. 3분 45초 무렵, 피아노가 아주 오른쪽에서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거의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앰프의 헤드룸이 넓어 클리핑에 대한 불안감은 1도 없이 들었다. 정명화가 연주한 '성불사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서는 첼로의 저역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바닥에 꽂혔고 고역은 시청실 천장에 닿을 듯한 맹렬한 기세를 과시했다. 선도와 SN비가 아주 높은 앰프라 할 만하다.

Rage Against The Machine - Take The Power Back

Rage Against The Machine

초반 드럼 연주가 마치 시청실 앞벽이 꿀렁거리며 음들을 토해내는 것 같다. 역시 솔리드 300W 앰프다운 파워다. 무대는 마치 무슨 3D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입체적이며 음들을 삼지사방에 뿌려준다. 보컬은 일렉 음들을 뚫고 리퀴드하게 잘 들리며 한 음 한 음을 또박또박 내준다. 거의 색 번짐 현상이 없다. 무대 자체는 진공청소기로 노이즈를 쑥쑥 빨아들인 느낌. 이렇게 빠른 곡을 들어보니 역시 웬만한 진공관 앰프는 따라갈 수 없는 발군의 스피드를 자랑한다. 캣 에드몬슨의 'Lucky'는 그녀의 목소리가 필자의 뒷목에 살짝 와닿을 정도로 생생했다. 그야말로 깨끗하고 향기로운 음의 촉감. 콜레기움 보칼레의 'Cum Sancto Spiritu'는 마치 모노블록 파워앰프를 물린 것처럼 802 D3 좌우 스피커를 확실히 틀어잡고 뒤흔드는 모습이 확연했다. 싱싱하고 활기찬 재생음, 그 자체다. 키스 자렛의 '쾰른 콘서트'에서는 부드럽고 매끄러우면서도 강단이 넘치는 피아노 연주를 만끽했다. 좋은 앰프일수록 음이 야위지 않고 음수가 많다는 인상을 받는데, PA 3100 HV가 바로 그러했다.

총평

좋은 앰프를 듣는 일은 언제나 복되다. 소출력의 웰메이드 진공관 앰프는 그 정한한 맛이 좋고, 대출력의 웰메이드 솔리드 앰프는 그 노도와 같은 파워감이 좋다. 필자가 자택에서 300B 싱글 앰프와 250W 대출력 솔리드 앰프를 함께 운용하는 이유다. T+A의 PA 3100 HV는 양수겸장이라 할 만했다. 여유 있고 리드미컬하게 802 D3를 드라이빙하는 모습은 틀림없는 대출력 솔리드 앰프이지만, 계속되는 부드럽고 온화한 소릿결은 리니어리티가 좋은 3극관 앰프였다. 이 배경이 무엇일까 따져보면, 역시 고전압 DC 레일에서 작동하는 전압 증폭단 설계로 귀착된다. 단단하고 흐트러짐 없는 음상과 칠흑 같은 배경은 좌우 채널 미러형 설계와 밸런스 증폭, DC 커플드 프리앰프부, 전원부/파워앰프부와 프리앰프부의 격벽 처리 등이 합심해 이뤄낸 결과일 것이다. 맞다. PA 3100 HV는 '과학에서 얻은 지식을 제품에 활용한다'라는 T+A의 설계사상이 고스란히 투영된 플래그십 인티앰프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