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급 용사들이 모두 모여 벌인 한 방의 잔치 - 서론
예전에 모 잡지사에서 25개의 북셀프 특집을 의뢰한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는 50개인데, 실제 평을 쓰는 것은 25개였으므로 집중 감상한 것은 25개에 그쳤다. 그러나 전반적인 시청평이나 총평을 쓰는 일을 맡았으므로, 결국 이틀에 걸쳐 50개를 모두 듣는 진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하루에 25개씩 들은 셈이므로, 행사를 끝내고 나니 귀에서 계속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 약간의 어지럼증까지 느껴야 했다.
오디오 평론이란 게 어찌 보면 고상한 듯 싶어도, 이런 터프한 일이 꽤 된다. 심지어 세팅을 위해 무거운 스피커나 앰프를 끙끙거리고 땀을 쏟을 때면, 무슨 노가다 현장에 온 듯한 착각도 느끼니, 이런 것을 직업병이라고 웃어넘기기엔 뭔가 비장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디오를 평할 때 제일 비장한 일이 바로 이런 비교 청취다. 나름대로 메이커에서 정성들여 만든 제품이, 마치 노예 시장에 팔려온 쿤타 킨테처럼 다른 제품과 비교 대상이 되어 이러쿵 저러쿵 평을 듣는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야 꽤 공정하고, 의미 있는 일이 되겠지만, 만든 쪽에서는 영 아니올시다, 라고 항변할 만하다.
사실 제품 하나를 제대로 평한다면 엄밀히 말해서 몇 개월 정도 집에서 듣고, 이런저런 공간에 가져가 다른 매칭도 해보고 하면서 감을 잡는 것인데, 짤막한 시간에 들은 인상만 갖고 프리미어 리그 축구 선수의 평점을 매기듯 평을 한다는 것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이 갖는 효율성도 나름대로 있다. 사실 평론을 하면서 많은 매칭을 접하고, 그러면서 특정 제품에 대한 이해도나 몰입도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말자하면 비슷한 가격대의 A와 B 중에 어떤 제품의 성능이 우수한가, 라고 묻는다면 도무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글쎄, 뭐 그쪽 취향이 이렇다면 A쪽으로 하시고, 만일 이런 쪽을 많이 듣는다면 B쪽으로 하시죠... 궁색하게 취향 운운하며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한 자리에 모아놓고 서로 자웅을 겨루는 이런 비교 테스트는 꽤 납득이 갈 만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각각 다른 컨셉과 어프로치로 만든 제품인 만큼, 그 성격이 다르고 개성도 틀리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이번 행사에 참여한 평론가들에게 나름대로 어필하는 점도 흥미롭다. 그것은 다시 말해,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그간 평을 해왔는지에 대한 일종의 점검일 수도 있다. 비교 청취의 자리가 실은 자신의 기준을 되새겨보는 자리가 된다는 이야기다.
사실 필자는 이런 식의 비교 청취에 꽤 익숙한 편이다. 예전에 단독 주택에 살 때엔 무려 40개의 북셀프 스피커가 한꺼번에 집에 온 적이 있다. 혼자 일일이 박스를 뜯고 거실 한 구석에 잘 모셔둔 다음 방에 하나씩 들여서 듣곤 했는데, 꼬박 1주일이 걸렸다. 혹, 친구나 애호가들이 올 때엔 일이 더 복잡해져서, 나중엔 듣고 싶은 스피커가 있으면 알아서 가져와 세팅해, 소리치기까지 했다.
또 비슷하게 인티 앰프 40기종이 온 적도 있고, CDP만 30여 종이 온 적도 있다. 그 시절, 하도 기기가 들락거려 동네 사람들이 대체 이 집은 이사를 가는 건지 오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니, 참 거창하게 기기 리뷰를 했던 것 같다. 여기서 한 가지 배운 것은, 대략 10% 정도는 돈값 못하는 놈들이 있고 또 10% 정도는 의외로 가격대비 똘똘한 놈들도 있지만, 80% 이상은 가격대별로 성능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엄연한 시장 경제의 논리에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평론가의 역할이라는 것은, 이런 20%에 해당하는 예외들을 잡아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 이런 황당한 작업 도중, 도무지 이 가격으로 믿어지지 않는 소리를 내는 제품을 발견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도 풀리는 것 같다. 누가 의뢰를 해오면 두 말 하지 않고 자신 있게 추천하기도 한다. 그만큼 신뢰를 얻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번 시청은 그런 물량 공세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름대로 한다 하는 스피커들이 모였으니, 잠깐 듣고 메모해서 뭐라고 평할 수 있는 급수는 아니다. 제품들의 가격을 보면 대략 1,700만원~2,300만원 정도다. 복싱으로 치면 미들급 정도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미들급이라면 카를로스 몬존부터 해글러, 레너드, 헌스, 두란에 이어 최근의 버나드 홉킨스까지, 그야말로 찬란한 라인 업을 자랑하는 체급이다. 복싱 스타일도 다르고, 신장이나 리치도 제각각이지만 모두 한 방씩은 갖고 있기에 서로 호락호락 상대할 수 없다. 이번 시청에 나온 제품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서로 한 방씩은 갖고 있는 가운데 링에 올랐기에, 섣부르게 판단했다간 그냥 한 방 먹을 수 있다.
실제 25개의 북셀프 스피커를 시청할 때엔, 1시간에 5개씩, 총 5시간이 걸린 기억이 난다. 그중 10분씩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으므로, 실제 할당된 시간은 개당 10분 정도다. 거기에 1~2분의 세팅 시간을 빼면, 7~8분 내외에서 승부를 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에 출품된 5개의 제품을 듣는 데 약 5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실제 한 개당 5개의 북셀프를 처리하는 노력이 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는 많지 않았지만, 워낙 한 방을 갖고 있는 제품들이라 그만큼 힘이 든 것이다.
이번 시청에 매칭된 라인업을 보면, CDP에는 SACD와 CD 공히 재생하는 린데만 820이고, 프리 및 파워 앰프는 다질로 통일시켰다. 케이블은 모두 아르젠토의 최상품인 SMR (Serenity Master Reference)급으로 매칭, 그야말로 호화로운 리듬 섹션이 준비되었다. 스피커는 혼 주자로서의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되는, 매우 이상적인 환경인 셈이다. 게다가 12평의 넓직한 시청실은 마음껏 소리지르고, 고함치고, 노래하기에 적합하다. 이래저래 지난 번의 시청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업 그레이드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청에 동원된 CD 목록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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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ynton Marsal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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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ow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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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반트 지휘의 <브룩크너 심포니 8번 4악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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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 <쇼팽 즉흥환상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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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ia Barber |
-llhtml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