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사양이 현실로 다가오다! 다즐 CHT-8550
며칠 전에 아는 오디오 애호가 몇 분과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과 같은 주제에 다다랐다. 과연 중년이 된 지금, 뭔가 가슴이 찡 하고 저려오는 일이 과연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각각이었지만, 이것 하나만은 모두 인정했다. 바로 사랑이다. 정말로 마음이 통하는 여인을 만났을 때, 다시금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가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앉으나 서나 그녀 생각에 초조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라고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덕분에 얼마 전 세기의 로맨스를 펼친 고위직 공무원 이야기도 나왔고, 영화 <데미지>도 새삼 되짚어 봤으며, 멀리 윈저 공의 스토리도 떠올랐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인 현실, 과연 그런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며,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그 뒷감당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온다. 그래도 사랑을 하고 싶다, 라는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으니, 이래저래 심란하기만 하다.
아무튼 가슴을 설레게 하는 항목의 1위가 사랑인 것은 분명하다면, 그 다음인 2위는 무엇이 될까?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모두 오디오파일이니 자연스럽게 “오디오”가 떠오를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여태껏 가슴을 떨리게 했던 오디오는 과연 무엇일까? 필자의 경우, 처음 마크 레빈슨 앰프를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고, JBL 4344를 미친 듯이 좋아했으며, 와트 퍼피의 시연회에서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여러 번의 홍역을 치렀는데, 최근 사례를 들자면 아무래도 다질 앰프가 될 것이다. 특히 다즐과 루멘 화이트가 엮어내는 고품위한 재생 음에는 넋을 잃을 만한 뭔가가 있다. 지금까지 들어온 조합 중 “베스트 10”에 당연히 들어갈 만한 음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우리가 갈구하고, 바라는 것은 대부분 손에 넣기 힘들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을 하게 된다. 때로는 외면하거나 저주하기도 한다. 서글픈 일이지만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만일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과연 믿겠는가? 저 조합이 전혀 부럽지 않으면서 가격적으로 1/4도 안 되는 매칭으로 말이다. 이런 기적의 출발은 이번에 소개할 다즐의 인티 앰프 CNT-8550이고, 그 파트너는 두 종의 스피커다. 정말이지 깜짝 놀랄 만한 품위와 퀄리티를 갖고 있어서, 이 글을 쓰는 순간도 그 흥분을 삭이기 힘들 지경이다. 다가가서 말을 붙이고, 차 한 잔 마시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은 여인을 만났다고나 할까?
일단 CTH-8550부터 시작하자. 당초 본 기의 시작기를 접한 것은 작년 4월 뮌헨에서 열린 하이 엔드 오디오 쇼다. 그러나 불행히도 음은 들어보지 못했다. 일종의 시작기였으므로, 진열만 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외관을 보니 다질이 자랑하는 “플레져 콘트롤” 노브가 달려 있었다. 프리 부분에서 볼륨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마법의 도구가 본 기에 달려있던 것이다.
일단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옵션으로 포노단이 제공된다. 나중에 리포트하겠지만, 이 역시 상당히 훌륭하다. 포노단만으로도 구매의 가치가 충분할 정도다. 게다가 220W의 출력. 어느 분리형 못지 않은 스펙이다. 꿈의 인티라 해도 좋을 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 기를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선 한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바로 USB 키라는 독특한 방식의 인증 절차다. 다즐은 고객을 위해 별도로 메모리 키를 제공하고, 이것을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이름과 기본 정보를 보내면, 그에 걸맞는 고객명과 제품 시리얼 넘버 그리고 펌웨어가 담긴 파일을 보낸다. 이 해당 파일을 USB 키에 저장하여 본 기의 뒤에 있는 단자에 꼽으면 이 앰프에 자동적으로 고객 이름이 등록되고, 펌웨어 및 세팅 등 업데이트가 행해진다. 특히 펌웨어 업데이트는 향후 지속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라 하니, USB 키의 활약상이 자못 기대된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인증 절차가 왜 필요한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딜러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특히 유럽처럼 많은 나라가 밀접해 있으면, 아무래도 가격 메리트가 있는 국가에서 제품을 사올 수 있다. 국경선이 자유로운 것은 좋지만, 딜러에게는 판매처 하나를 잃는 꼴이다. 이런 딜러를 보호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제품 판매가 힘들다. 그래서 이런 조치가 나왔다고 본다. 이는 비단 본 기뿐 아니라, 향후 많은 제품에 통용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배경에는, 보이지 않은 부분에 디지털 관련 기술이 숨어들기 때문이다. 마치 승용차에 숱한 전자 관련 장치가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본 기에도 프리앰프 부분에 DC 드리프트가 발생할 경우, 이를 디지털 회로 기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순수 아날로그 인티 앰프인데도, 이런 기법이 은밀히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펌웨어 부분까지 생각하면, 본 기에서 향후 앰프의 미래상을 엿볼 수도 있는 셈이다.
각설하고 먼저 프리부를 살펴보자. 일단 왼편이 입력 셀렉터인데, 작은 버튼이 잔뜩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총 7개의 입력단이 제공되는데, 다즐 특유의 즐 ( Zeel ) 단자부터 RCA, XLR 등이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두 개의 추가 옵션이 있다. 바로 MC 및 MM 단자의 제공이다. 단, 이것은 공장 출하시 결정해야 하므로, 나중에 물건을 받은 후 뒤늦게 옵션을 요구해도 장착이 불가능하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결정한다는 말은 여기에 쓰이는 것이다.
볼륨단의 동작도 약간 낯설다. 그들이 플레져 컨트롤이라고 부르는 이 노브는, 기존의 어테뉴에이터나 가변 저항이 아닌 광 인코더를 통한 방식이라고 한다. 상당히 고급스런 반도체가 투입된 것으로, 자세한 사항은 비밀에 속한다. 만지는 감촉이 좋고, 볼륨 조정으로 인한 로스가 거의 없는 꿈의 볼륨단인데, 본 기는 독특하게 매우 작은 음량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를 일반적인 원형 노브로 환산했을 경우, 약 12시 정도가 넘어야 통상의 음량이 된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추측이 가능한데,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흔히 자주 사용하는 6시에서 9시 방향까지의 음량을 보다 세밀하게 다듬은 탓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일반 가정에서 통상의 출력으로 앰프를 구동할 경우 9시를 넘어서기 힘들다. 10시만 되어도 아래층에서 연락이 올 정도다. 그러므로 이런 로 레벨에서의 디테일을 증가시키는 데에 힘을 쏟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자꾸 볼륨을 올리게 되어 겁도 나고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했는데, 전혀 고장이 아니니 안심하기 바란다.
프리 및 파워부 모두 듀얼 모노럴 설계로 된 것은 당연한 이치고, 이를 위해 각각 1개씩의 전원 트랜스포머가 제공되고 있다. 용량은 큰 것으로 하되 사이즈는 되도록 작게 한다는 취지인데, 아무래도 전원 트랜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력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한편 파워부는 되도록 신호 경로를 간략하게 만드는 데에 집중했고, 신호와 동작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증폭 동작을 하도록 해서 발열을 최소화시켰다. D 클래스 설계는 아닌데도 이렇게 미지근한 상태로 작동하는 것이 신기하지만, 이것도 본 기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또 2개의 병렬 연결된 출력 트랜지스터 페어를 배치해서 스피커의 임피던스와는 무관하게 작동하게 만든 것도 상당한 기술적 노우 하우라고 보여진다.
참고로 본 기는 별도의 프리 아웃 단자가 제공되는데, 그 중에는 다트(darT) 단자가 있어서 다즐의 파워 앰프인 NHB-108을 추가로 달 수 있다. 물론 다른 회사의 파워 앰프도 연결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이른바 바이 앰핑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기술적 배려가 아닌가 싶다.
실제 숱한 시정 환경에서 실험을 해보면, 바이 와이어링이 제공되는 스피커를 바이 앰핑 했을 때 훨씬 더 디테일이 분명해지고, 저역의 컨트롤이 향상되며, 전망이 좋아지는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기는 향후 추가 펌웨어의 기대와 함께 바이 앰핑의 가능성으로, 그 활용성이 상당하다고 하겠다. 그 외에 블랙 및 골드 옵션으로 제공되는 외관은, 고도의 CNC 절삭 머신으로 가공된 15mm 두께의 알루미늄 프런트 패널로 완성되며, 심플하면서도 기능성이 뛰어난 레이 아웃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자, 그럼 이 매혹적인 제품의 파트너가 될 스피커는 무엇이 될까 생각해보자. 여기서 필자는 초반에 언급했던 황홀경을 접할 수 있었는데, 이는 고가의 하이 엔드를 쓰는 분들한테 전혀 기죽지 않을 정도의 퀄리티임을 밝힌다. 가격차를 생각하면 감지덕지한 내용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WHT의 PR1과 에이온(Ayon)의 고스호크(GosHawk)이다.
둘 다 경향이 달라 그 차이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모두 높은 퀄리티를 갖고 있어서 난형난제의 실력을 보인 점도 특기할 만하며, 본 기의 잠재력을 두루두루 점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꼭 분리형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본 기와 PR1 혹은 고스호크의 컴비로도 얼마든지 만족스럽게 하이 엔드의 음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여기서 소스는 그리폰의 미카도 시그너처로 했고, LP는 다 빈치 턴테이블에 팬텀 암, 에어 타이트 PC-1 카트리지를 사용했다. 참고로 시청 CD 및 LP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쇼팽 : 피아노 협주곡 1번 / 아르투르 루빈슈타인(pf)
-모차르트 : 피아노 트리오 6 번 / 안네 소피 무터 (vn) , 앙드레 프레빈 (pf) 외
-마일스 데이비스 ' Four '
-베토벤 : 3 중 협주곡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cond) ,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pf) 외
-James Taylor ' Handy Man '
우선 앞의 3곡은 CD이고, 뒤의 2곡은 LP다. 여기서 잠깐 두 스피커의 차이를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PR1의 경우, 백 로드 혼 방식으로 만들어진 스피커임에도 불구하고, 전대역의 타임 얼라인먼트가 정확하게 일치해서, 마치 풀레인지를 듣는 듯한 착각을 준다. 여기에 리본 트위터가 내는 개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며, 적절한 양감을 지닌 베이스 역시 만족스럽다.
반면 고스호크로 말하면 아큐톤 특유의 명징함과 활기가 적절히 조화되어 고품위한 음이 재생되지만, 재즈와 록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거칠고 진득한 표현도 소화해낸다. 다즐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에너지다. 본 기에 어떤 배필이 어울릴 지는 실제 비교해서 들어봐야 알겠지만, 빈티지와 통하는 유연함과 매끄러움을 원한다면 PR1, 다양한 소스를 현대적으로 재현하겠다면 고스호크를 추천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PR1과의 매칭으로 경험한 내용을 정리하겠다. 우선 쇼팽을 보자. 녹음 연도가 오래된 만큼, 그런 느낌이나 맛이 잘 전해져온다. 약간 고풍스러우면서 따스한 질감이다. 현악군의 움직임은 날카롭지 않고, 첼로와 더블 베이스가 엮어내는 저역부도 탄력이 좋다. 중간에 출몰하는 브라스군의 돌출은 천장을 뚫을 기세. 무엇보다 곡이 갖고 있는 침통한 분위기가 잘 재현된다.
이윽고 출몰하는 루빈슈타인의 유려하면서 낭만적인 연주는 아, 탄성이 나올 만큼 시정이 넘친다. 터치 하나하나가 영롱하게 빛나고, 긴 잔향과 여운 처리는 그랜드 피아노의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상당히 중독성이 있는 음이다.
모차르트는 일단 안정된 울림으로 다가온다. 현악기의 줄뿐 아니라 몸통의 소리도 잡힌다고나 할까? 바이올린의 요염함과 첼로의 묵직함이 좋은 대비를 이룰 뿐 아니라,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피아노의 여유있는 터치가 곡의 짜임새를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 첼로의 음량이 적절해서 튼실한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풍부한 재생이 되고 있다.
마일스에 이르면, 박력 넘치는 드럼의 인트로에서 가슴이 설레고, 베이스의 나긋나긋한 표정이나 두 혼 악기의 기세가 시청실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특히 현란한 심벌즈 웍이 고스란히 포착되어, 강력한 스윙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상당한 매력이다. 또 트럼펫이나 색소폰도 거칠거나 지저분하지 않아, 약간 클래시컬한 느낌까지 나는데, 이는 다즐 앰프가 갖고 있는 개성이라 하겠다.
이어서 LP를 건 다음, 역시 다즐이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높은 퀄리티에 넋을 잃고 말았다. 우선 베토벤. 워낙 정평 있는 연주인데, 여기서는 악단의 크기며 각 악기의 음색은 당연히 재현되고, 무엇보다 이런 거장들이 엮어내는 방대한 스케일이 고스란히 그려진다는 점에 기가 질렸다. 이 높은 품격과 격조는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의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상상에 맡기겠다.
한편 제임스 테일러는 익히 아는 곡이지만, 여기서 처음으로 상당히 많은 악기가 동원된 곡임을 깨달았다. 약하게 배후에 깔리는 올갠이나 중간에 잠깐씩 등장하는 현악군 또 후렴부에 나타나는 코러스의 크기 등, 미세한 부분까지 일체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테일러 특유의 부드러운 바리톤 보이스가 기분 좋게 중앙을 장식하는데, 그 발성 하나하나가 또렷이 들린다. 리스닝 실력이 부쩍 향상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러면서 이런 숱한 악기와 보컬을 높은 음악성으로 정리하는 부분에서 확연히 다즐의 실력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LP 음을 듣고 나면 절대 되돌아갈 수 없으니, 정말 큰 일이 났다.
시청기기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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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피커 | WHT PR1 MK II |
소스기기 |
Gryphon Audio Mikado Signature |
인티앰프 |
darTZeel CHT-8550 |
케이블 |
P.S.C Audio Custom MK II Inter Connector |
P.S.C Audio Custom MK II Speaker Cable |
|
P.S.C Audio Custom MK II Power Co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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