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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애호가들 중에는 오디오는 무조건 소리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극렬파’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제품의 외관과 품위를 중시하는 ‘온건파’들도 많다. 필자는 소리를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직접 집에서 사용하는 경우를 전제한다면, ‘온건파’ 쪽에 조금 더 가까울 것 같다. 오디오 기기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더라도 매일 보아야 하는 것이고, 게다가 음악을 집중해서 들을 때 우리의 눈은 대체로 오디오 랙 쪽을 향해 고정되기 마련이니, 기왕이면(귀와 함께) 눈도 아름다운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요즘 시장에서 유통되는 기기들은 어느 레벨만 넘어서면 대체로 괜찮은 소리를 들려주므로, 디자인이 아름다운 것들로 시스템을 구성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훌륭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필자가 ‘온건파’에 합류하게 된 이유이다. 어쩌면 희망 사항인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하이엔드 기기라고 불리는 고가의 제품이라면 디자인만 아름다운 엉터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의 패토스는 진공관과 반도체의 좋은 점을 취하여 독특한 하이브리드 앰프를 꾸준히 만들어 온 꽤 유명한 중견 메이커다. 이 메이커의 제품들은 잘 연마된 섬세한 소리는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이탈리아적’ 감성을 듬뿍 담은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애호가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어왔다.

필자는 그동안 트윈 타워 25주년 기념작과 인폴2 같은 앰프들을 리뷰하면서, 아름다운 디자인과 색감에 깊이 감탄하고 탄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혹시 패토스의 제품들이 그 유별난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정작 소리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흔히 부족한 어떤 것을 커버하기 위해 다른 것을 부각하는 경향을 갖고 있지 않은가. 혹시 애호가들이 패토스 제품들이 갖는 아름답고 공들인 외관을 보면서, 부족한 소리를 커버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의심할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좋은 오디오 기기라는 것은 소리가 훌륭한 것은 당연하고, 기왕이면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아름다운 외관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패토스는 그동안 인티 앰프로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동사의 레퍼런스는 ‘인 컨트롤’이라는 전원부 분리형 프리앰프와 ‘인 파워’라는 모노블록 파워 앰프였다. 그런데 이 제품들은 레퍼런스 기기답게 하급기보다 분명히 훌륭한 소리를 갖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제품의 디자인이나 컨셉에서 있어서 조금 애매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인티 앰프의 디자인은 한 마디로 기능과 외관이 멋들어지게 어울린 ‘완결’의 느낌인데 반해, 이 분리형 콤비는 인티 앰프를 기능별로 나누어 놓은 것 같은 ‘미완’의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특히 프리앰프는 내부가 무척 간단한 진공관 방식으로 인코더를 이용한 볼륨 외에 독특한 점을 찾기 어려웠는데, 역사가 짧지 않은 중견 앰프 메이커를 대표하는 레퍼런스 프리앰프로는 분명히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한편 동사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인폴’ 회로가 장착된 인 파워의 디자인 감각과 성능은 상당히 좋았지만, A급 증폭으로 70W라는 대출력을 작은 몸체에 담다 보니 열이 지나치게 많이 나서, 기능과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런 것을 의식했기 때문인가. 패토스에서 실로 어마어마한 레퍼런스 세트를 출시했다.

비로소 패토스의 명성에 걸맞는 대표 선수가 나왔다는 기분인데 프리앰프는 '시냅스', 파워 앰프는 '아드레날린'이라는 의학 책에서나 보일만한 이름을 달고 있다. 음악이 유기체와 닮았다는 뜻일까. 이 프리, 파워 세트의 디자인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과연 대단하다. 실제로는 상당한 크기인데 작게 보이는 이유도 디자인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너무나 개성이 강한 모습이다 보니,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아무래도 소화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패토스 제품에서 볼 수 있었던 화려한 색깔의 대비가 순화되었는데, 예컨대 디자인상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었던 커패시터의 ‘이탈리언 레드’를 파워 앰프의 속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 지금까지 패토스의 디자인으로 고수해왔던 재료의 대비(목재와 알루미늄, 그리고 크롬)도 마찬가지인데, 아마도 크기가 이전 제품보다 커졌기 때문에 자칫 조잡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결과적으로 디자인에서 예전 제품보다 오디오에서 조금 멀어진 대신, ‘진짜’ 조각 작품 쪽에 가까워졌다. 아마 이 제품들이 예술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애호가들은 없을 것으로 본다. 이제 프리앰프 시냅스부터 살펴보자. 시냅스는 언밸런스 입력 셋, 밸런스 입력 셋을 가진 풀 밸런스 하이브리드 프리앰프이다.

새시는 전원부가 분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내부에서는 상하 두 부분으로 격리되어 있다. 아랫부분에는 파워 앰프가 연상될 정도의 중량급 전원부와 컨트롤부를 담았고, 윗부분에는 순수하게 음악 신호를 위한 증폭 회로만을 담고 있다. 전원부는 좌우 채널이나 히터 전압은 물론, 볼륨 회로나 컨트롤 부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분리 독립되어 있다. 훌륭하다. 하지만 이런 전원부는 명실 공히 최고 수준의 하이엔드 앰프라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 기천만원 수준의 하이엔드 프리앰프라면 다른 메이커에서도 할 수 있는 물량 투입 같은 것 말고, 뭔가 자신만의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이 프리앰프에서 단연 돋보이는 부분은 음악 신호의 순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입력단과 버퍼의 연결 부분에 기계적 또는 전기적 셀렉터를 사용하지 않고 독특하게 포토 커플러를 사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기계적 또는 전기적 셀렉터를 사용할 경우 어쨌든 그라운드를 통해(선택되지 않은) 다른 입력단의 소리가 미세하게 섞일 수밖에 없는데, 이 프리앰프에서는 빛의 형태로 전환하여 컨트롤하므로 입력단과 버퍼단이 전기적으로 완전 절연된 상태가 된다. 절대로 입력 신호들이 섞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라면 입력단을 통해 외부의 노이즈가 개입될 우려도 전혀 없으니, 놀고 있는 입력단을 쇼트시켜 두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

한편 이 프리앰프는 하이브리드 증폭 회로를 갖고 있는데, 쌍삼극관인 6H30을 사용하여 1차 2차 버퍼를 구성하고 출력 측에 FET를 붙여 출력 임피던스를 낮추고 있다. 워낙 하이브리드 회로에 강점을 가진 회사이니 당연하다고 하겠으나, 그동안 12A_7 계열을 즐겨 쓰던 패토스에서 러시아 계열의 쌍삼극관 6H30을 썼다는 것은 조금 의외다. 아마도 요즘 추세를 반영한 것 같다.

증폭단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볼륨으로, 반도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요즘 앰프에서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풀 밸런스 4채널 구성으로 무려 168 스텝(0.5dB 간격)이나 되는 지극히 정교한 구성은 특별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게다가 입력별로 프리셋시킬 수 있는 기능도 갖고 있다. 특별하게 아름다운 디자인에 걸맞는, 수준 높은 내부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모노 블록 파워 앰프 아드레날린에는 패토스의 심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폴’ 회로가 장착되어 있다. 인폴 회로의 골자는 진공관 하나로 전압을 증폭하고 반도체로 전력을 증폭하는 것. 진공관은 반도체보다 동작 전압이 높아 전압 증폭에 유리하고 반도체는 진공관보다 전류를 크게 흘릴 수 있으므로, 인폴은 소자들의 장점을 각각 살린 참신한 하이브리드 회로다.

한편 설계자의 고집에 의하여 네거티브 피드백은 전혀 걸지 않으며, 진공관 하나로 전압증폭을 하므로, 분류하자면 싱글 엔디드 순A급 증폭 방식이 된다. 패토스 - 인폴 회로의 소리는 중역이 충실한 낭랑한 음, 섬세하고 부드러운 다소 연한 톤이었고, 투명한 수채화의 질감처럼 가볍고 산뜻해서 매우 매력적이었는데, 다만 싱글 엔디드 소출력 A급 증폭 방식은 구동하는 스피커에 따라 출력이 작고 힘이 부치는 듯 여겨질 때가 가끔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패토스에서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패토스는 인 파워에 인폴 회로를 채널당 두 개씩 장착해서 출력을 70W로 증강시켰다. 채널당 70W라는 출력은 A급 증폭 앰프로는 상당한 수준이었고, 게다가 풀 밸런스로 구성했기 때문에 출력의 증가 외에도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패토스에겐 그것도 부족했나 보다.

이번에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채널당 출력이 180W라는, A급 증폭 앰프로는 실로 막강한 모노블록 파워 앰프를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A급 증폭의 발열을 감당하기 위해 파워 앰프의 크기는 무척 커졌는데(인 파워에 비해 서너 배는 족히 되는 것 같고, 무게는 70kg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글자 모양 방열판의 면적이 크게 증가해서 그런지 열은 많이 나지 않는 편이다.

한편 스펙에서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데, 1Hz에서 80kHz에 달하는 광대역은 이 가격대의 앰프라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수준. 다만 왜율이 1W 기준에서 0.01%, 50W 기준으로는 0.2%라는 것은, 이 앰프가 네거티브 피드백을 전혀 걸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실로 낮은 것이다. 이 왜율은 아드레날린이라는 파워 앰프가 단지 기존의 자사 앰프를 크게 만들고, 물량을 투입하여 출력을 증가시킨 것이 아닌, 질적인 측면에서도 큰 개선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아직 그들의 홈페이지에도 이 강력한 파워 앰프에 대해 설명이 나와 있지 않은데, 최근에 INPOL2를 만들며 하이브리드 전원 기술(스위칭 전원과 아날로그 전원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이다)을 새로 고안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아마 아드레날린에도 더 효과적이고 진보적인, 강력한 전원부가 탑재되었을 것이다.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플레이백 디자인의 MPS5를 소스로 하고, 윌슨오디오의 사샤를 물려 여러 장르의 음반들을 들었다. 케이블을 포함하여 시스템 전체 가격이 얼마나 될까 하는, ‘속된’ 생각을 잠깐 했지만, 들려오는 음악소리 때문에 금세 잊어버렸다.

소리? 당연히 좋다. 하이파이클럽에서 미리 이것저것 매칭해보고 잘 맞는 것을 물려 놓았을 테니, 이 시스템이 재생하는 소리를 놓고 이렇다 저렇다 지적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음색의 경향은 중역이 도톰하고 고역이 섬세한 패토스 앰프의 장점을 담은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인폴 특유의, 보호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병적이고’ ‘연약한’ 느낌은(아마도 남성들은 이 표현이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번에는 당당하고 씩씩하게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활력에 찬 매력으로 바뀌었다.

특히 사샤와의 매칭은 섬세한 것은 물론, 통쾌하고 시원하며 넓어서 어떤 장르를 들어도 음악을 듣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이 시스템에서 얻을 수 있는 음악적 감동은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쪽보다는 심원하고 방대한, 실제 스케일에 육박하는 본격적인 것이다. 다만, 장난삼아 이 앰프 세트를 사샤 옆에 서있던 우퍼가 작은 소형 스피커와 매칭해보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앰프에서는 열심히 대출력을 보내는데, 소형 스피커가 이를 소화하느라 너무 쩔쩔매는 것 같아서 음이 뭔가에 자꾸 걸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런 초하이엔드 앰프 세트를 조그만 스피커에 연결할 사람은 없을 테니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사샤보다 더 큰 우퍼를 가진 초대형 스피커를 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평생 처음 듣는, 가장 통쾌하고 시원한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