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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한반도에 있어서 일종의 일 년의 여로를 결정짓는 분수령이자 한 해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용광로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다양한 보양식을 만들어 땀과 열기에 의해 허해진 신체의 기운을 보강하고자 했다. 그러하기에 여름 보양식에는 유달리 오리나 닭, 장어처럼 기름기가 풍부한 단백질류의 음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단샘이 솟는 듯한 육류 위주의 식단은 질리기 마련. 이러한 보양식은 몸에 영양분은 보충될지 몰라도 당장 봄에 풍부하게 느낄 수 있었던 그 향기로운 나물이나 단백한 해산물에 도취되었던 입 안의 싱그러운 포만감과 비강의 엇구수한 충만감에 대한 기억까지를 재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여름에 항상 평양식 냉면이나 일본식 소바를 찾게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냉면의 그 차가움이라기보다는 메밀의 향과 정서에 이끌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석이 자신의 시 ‘백화’에서 읊었듯이 하얀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산골 마을에 새하얀 초승달이 뜬 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삼는 소리를 연상케 하는 지극히 서민적이고도 토속적인 음식이 바로 메밀이다. 영양분도 풍부하고 특유의 서늘한 기운을 갖고 있는 이 메밀은 제분과 저장 기술이 발전한 탓에 보관이 잘 되어 이제는 여름을 대표하는 식재료로 거듭나게 되었다. 도정을 높게 한 하이얀 메밀면에서 비롯하는 은밀하고도 청명하며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향기와 맛, 이것이 바로 심 오디오 앰프의 사운드가 간직하고 있는 선험적 경험이기도 하다.

 

내년 2014년 창립 30주년을 맞는 심오디오는 지금까지 꾸준한 개발과 판매망 구축을 통해 오디오 메이커로서 탄탄한 기술력과 인지도, 사운드 퀄리티를 쌓아오고 있다. 캐나타 몬트리얼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심 오디오가 2005년 처음 선보인 에볼루션 시리즈는 이 회사의 간판과도 같은 제품으로서 풀 밸런스 작동과 듀얼 모노 회로를 채택하여 보다 깨끗한 음질과 힘이 있는 파워를 선보였고, 이러한 특징은 전세계 오디오 매니아들로부터 마크 레빈슨이나 제프 롤랜드의 뒤를 잇는 명문 앰프 전문 브랜드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음질이나 회로의 뛰어남은 물론이려니와 금속절삭가공에 있어서도 섀시의 둥근 모서리 디자인이 주는 곡선감은 단연 돋보이고 금속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고급스러운 디자인 또한 이 브랜드만의 가치를 확립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이렇게 특유의 향기롭고 싱그러운 사운드와 우직한 듯한 모노톤 디자인이 주는 이미지의 앙상불은 가히 메밀이 갖고 있는 미덕에 다름 아닌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이번에 심 오디오는 이전에 발표했던 거함급 시리즈인 P-8/W-8의 기술력과 사운드를 고스란히 계승한 P-7RS/W-7RS 모델을 발표했다. 가격은 다운그레이드되었지만 디자인은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이 특징으로서 이전 모델보다 훨씬 모던한 이미지와 고전적인 구성미가 부각된다. 특히 정교함이 돋보이는 CNC 절삭 섀시 가공 퀄리티와 원추형 스파이크 장착을 통해 진동에 대한 보다 세심한 배려와 디자인적으로도 앞서나가는 감각을 보여준다. RS는 문 에볼루션 시리즈 가운데 특정 국가에서만 판매되는 스페셜 에디션으로서 보다 정교한 제조과정과 향상된 부품을 선별한 것이다.

프리앰프인 에볼루션 P-7RS는 P-8 모델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회로를 갖고 있다. 듀얼 모노 디자인으로서 3개의 트랜스포머와 3개의 정류회로로 전원이 3등분되어 사용된다. 중앙부는 인터페이스 및 컨트럴을 위한 회로고 좌우에 위치한 회로는 각 채널당 10VA 트로이달 트랜스포머로 전기가 공급된다. M-eVOL이라고 명명된 볼륨 컨트럴은 게인은 ±10dB 내에서 1dB 혹은 0.5dB로로 조절할 수 있고 좌우 밸런스 역시 거의 완벽하여 맥시멈 볼륨은 조절할 수 있다.

인풋과 아웃풋 잭은 2채널을 중심으로 거울 대칭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에는 네 개의 언밸런스 RCA 인풋과 두 개의 밸런스 XLR 인풋, 한 개의 밸런스 XLR 아웃풋이, 위에는 두 개의 언밸런스 RCA 아웃풋과 테이프-루브 RCA 아웃풋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다양한 포트들이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각 파트를 별도의 트랜스포머로 작동하고 상호간섭을 철저히 배재한 이 프리앰프는 음원의 정보를 보다 순도 높게 전달하기 위한 심 오디오의 단호한 노력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파워앰프인 W-7MRS는 한 마디로 모든 면에 있어서 모노럴 파워앰프의 이상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스펙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동력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 AB클래스 구동인 이 효율적인 파워 앰프는 8오옴에 500와트, 4오옴에 1000와트라는 엄청난 수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스기기로 역시 심 오디오의 360D CD플레이어로 시청한 이 P-7RS/W-7MRS 콤비의 구동력은 실로 환상적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이들이 펼쳐내는 음악적 표현력은 이전 시대의 하이엔드 솔리드스테이트 분리형 앰프들에서 받았던 감동을 재현하는 듯했다. 특히 편안하면서도 라이브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포컬 오디오의 스칼라 유토피아를 이토록 온전하게 구동하는 조합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 것이다.

 

 

이 앰프의 조합의 해상도와 무대구현능력을 체크하기 위해 처음으로 틀어본 음반은 쿠바 피아니스트인 호르헤 루이 프라츠의 2011년 스페인 자라고자 오디토리움에서의 리사이틀 실황(DECCA). 홀 사이즈가 작은 편이라 청중의 미세한 움직임과 홀의 잔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음반인데, 기대 이상으로 다이내믹 레인지가 크고 중저역이 강하게 재생되었다. 특히 피아노의 직접음도 훌륭하지만 배음의 색감과 분위기가 매혹적이라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키스 자렛의 Still Live(ECM) 또한 실황으로서 이 앰프들이 갖고 있는 장점을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앨범이다. 자렛의 터치와 악기의 음상이 정교하게 표현되는 동시에 역시나 환상적인 악기들의 배음(특히 더블베이스)이 직접음과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며 현장감과 공간감을 리얼하게 재생해냈다. 특히 마이크와 악기 사이의 적절한 거리감과 자극적이지 않은 피치를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실제 연주 무대의 직접음과 미묘한 시간차에 의한 잔향의 어우러짐을 리얼하게 경험할 수 있다. 한편 더블베이스 저역으로 대변되는 저역 컨트럴 또한 매우 훌륭하여 위쪽 대역의 템포에 이끌려가지 않으며 타이트하면서도 독특한 질감을 재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대표하는 결정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엘리아후 인발이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말러 교향곡 2번(Exton)을 들어보면 이 P-7RS/W-7MRS 매칭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도쿄 산토리 홀의 특성을 이만큼 과장되지 않으면서 투명하게 재생할 수 있는 앰프 매칭이 또 있을까 싶다. 첫 인상은 다이내믹 레인지나 대역별 포인트를 강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 전체 무대의 규모와 대역간 밸런스를 정확하게 잡아낸다는 것이었다.

 

예술의 전당 2층 맨 앞에서 듣는 사운드에 콘서트 홀 특유의 특정 대역별 솟아오르는 잔향을 제거한 댄디한 느낌이랄까, 각 악기들의 디테일한 모습(오보에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과 정확한 포지셔닝(금관의 위치감)이 더 없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더군다나 차분한 안정감과 정확한 균형감을 바탕으로 음악의 변화무쌍함에 격조를 더했다. 에너지감도 상당한데 이러한 광활함이 충격적인 자극보다는 실연에서 청자를 감싸앉는 듯한 파장으로 작용하는 모습에 심 오디오의 예술적 심미안을 가늠할 수 있었다. 여러 특성을 종합해 보면 포컬 오디오와의 조합 외에 다른 대형 스피커들과도 좋은 상성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앰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신호의 순도를 유지하면서 스피커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하여 가장 자연스럽고 정돈된 형태로 처리, 증폭시키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과정에 충실하고자 최선의 테크놀로지와 최고의 디자인을 도모한 심 오디오 P-7RS/W-7MRS 매칭이 보여준 청명하면서도 질감 높은 재생음향은 단연 군계일학일 뿐만 아니라, 하이엔드적인 재생음이라는 수치적인 한계를 벗어나 실제 공연에서의 느낌을 충족시켜주는 리얼한 현장감과 음악 본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은은한 음향적 향기야말로 심 오디오 앰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