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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사이즈 스타인웨이 피아노 위에 걸쳐 있는 트랜스페어런트의 90년대 판 광고는 여전히 필자의 기억 속에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사실 적절한 연출이라기 보다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부조화의 전형으로 보이는 이 광고는, 같은 이유로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데 그게 원래 광고 제작자가 지향한 것이었음을 상기해보면, ‘천잰데?’ 라는 개그를 떠올리게 한다. 정작 케이블의 전국시대가 오기 이전, 혹은 이미 그 서막이 오르고 있던 무렵의 90년대 초반의 하이엔드 케이블 브랜드들은 이미 오디오시장의 파이를 나누고 있었다. 예컨대 이미 전 부문에 걸쳐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던 오디오퀘스트, 프로모션에 힘입어 오디오퀘스트보다 우위의 제품으로 인식되던 몬스터, 선재를 재배열하는 이론을 도입한 기술혁신의 킴버와 XLO, 그리고 여기에 신개념 하이엔드를 표방한 MIT와 트랜스페어런트가 등장했다. 가장 미국적이라 할 수 있는 카다스, 해외파 실텍 등은 아직 존재감이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독자노선을 걷고 있지만, 사실 MIT는 트랜스페어런트가 설계하고 만들어낸 제품이었다고 보면 90년대 하이엔드 케이블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블랙(TC) 앤 화이트(MIT)’는 모두 트랜스페어런트에서 기원한 것이었다. 특히 그 원리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채, 여전히 오디오파일들에 의해 그저 ‘도시락통’이라고 불리우는 네트워크 박스라는 신개념을 20여년전에 도입시킨 주인공이 트랜스페어런트였다. 윌슨오디오의 와트 퍼피(WATT & PUPPY)는 초기제품부터 내부선재를 MIT로 와이어링했으며, 트랜스페어런트가 공공연한 브랜드로 출범하면서 와트 퍼피 버전 5의 선재를 모두 트랜스페어런트로 교체하며 버전 5.1을 출시했던 사건은 오디오 역사에서 꽤나 유명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결과 ‘5’와 ‘5.1’은 같은 반이 되기 어색한, 거의 다른 스피커가 되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사실, 트랜스페어런트가 도입한 이 ‘네트워크 박스’의 원리는 케이블을 독립된 패시브 콤포넌트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앰프와 같은 다량의 전류덩어리와 연결되는 상황에 대해 원래 소스의 신호를 약화시키지 않기 위해 가장 현실적으로 연구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재생 주파수를 분리시키고 개별적인 임피던스 보정을 하는, 다소 인위적인 방식에 대해 석연치 않아 하는 오디오파일들도 많았지만 실제 시청의 결과는 놀라왔다. 브랜드가 표방하는 그대로 ‘투명한’ 프레즌테이션의 개념을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 확산시키게 되었다. 트랜스페어런트의 전원과 전류, 노이즈에 대한 노하우는 하이엔드 앰프를 설계했어도 크게 빛을 발했을 것이라 보인다(PS 오디오는 이런 니치에 성공한 좋은 사례). 고유의 원리와 보편적 사운드로 이끌어내는 튜닝, 그리고 말단까지 치밀한 제품의 완성도 등에서 그런 신뢰를 갖게 된다. 대신, 트랜스페어런트의 작업은 전원과 관련된 소품들로 이어졌다.

 
트랜스페어런트의 차폐트랜스나 멀티탭 등은 오디오파일들이 알고 있는 뮤직링크, 뮤직웨이브 등의 케이블 프로젝트보다 먼저 진행이 되었던 부문이라서 이미 많은 제품과 그 업버전이 출시되어 왔다. 본 파워뱅크 6 또한, 필자의 기억이 맞는다면, 이미 90년대 초반에 국내에도 소개가 되어 있었다. 파워뱅크 6의 외형은 전형적인 멀티탭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제작되는 휘황찬란한 제품들과 비교해본다면 오히려 왜소할 정도의 평범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220볼트 시장용의 본 제품은 어스 단자가 있는 3구 방식 미국버전과 모양새가 많이 다르게 제작되어 있다.

 

일단 미국버전에 있는 전원스위치는 생략되어 있는데 제품의 퍼포먼스와 단가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국내 오디오파일들의 성향으로 보아 이 부분은 오히려 바람직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국 버전보다 폭이 넓게 제작되었는데, 220볼트 소켓의 구조상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약 2미터 길이의 전용 케이블은 동사의 퍼포먼스 파워링크 12AWG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매우 신뢰감이 가게 한다. 호기심 차원에서 본 케이블을 필자의 파워앰프에 직접 연결해서 시청해 보니 상당히 흥미 있는 결과를 보여준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극성을 잘 맞춘다면 다른 내용을 차치하고 파워뱅크 멀티탭을 거치기 전후의 상황이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하에 부연설명 하겠지만, 본 제품의 특성으로서 전원장치의 태생적 문제로 지적되는 전원용량의 저하문제를 일주일이 넘는 시청 기간 내내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특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6개의 소켓은 제품의 좌측으로 배치시켰고, 전원선이 연결되는 우측으로는 3개의 LED 인디케이터가 있다. 차례대로 protection, line, power 모니터를 할 수 있는 불빛들인데, ‘power’는 전원선이 연결되었고 6개의 소켓이 모두 정상작동하고 있음을, ‘protection’은 본 제품 고유의 보호회로가 작동하고 있음을 적색등으로 표시해준다. 중앙에 있는 ‘line’은 어스(earth)단자의 연결여부를 알려주는데, 어스 처리가 안된 경우에는 녹색 LED가 들어온다. 이 기능이 유용한 부분은 소위 극성이 제대로 되었는 지 확인할 수 있는 ‘극성체커’로서의 효용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전원 케이블이 극성과 반대로 연결했을 경우는 어스 단자가 없을 경우처럼 녹색등이 들어온다. 다른 두 가지 등과 다르게 이 등이 들어오면 극성이 반대로 연결되었다는 경고가 되며, 실제로 들이 들어올 때와 아닐 때의 소리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재삼 부언코자 한다.

 
필자가 사용하거나 테스트를 해본 전원장치는 그럭저럭 다양한 편인데, 방식과 제품의 등급과 무관하게 사용 전후의 결과는 상당히 명확하다. 직결보다 완벽히 우세하기 위해서는 결국 가격이 많이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대세로 자리잡았던 AC제너레이터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차폐와 노이즈 제거 등에 있어서 지금까지 제조되어 온 어느 방식보다도 우수하지만, 결정적으로 전원용량에 크게 좌우된다는 한계를 안고 있으며, 그 용량은 가격과 거의 정비례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 파워앰프를 제외한 저 전원 용량 콤포넌트들에 사용하는 정도로 활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필자의 경우 또한 배경이 깨끗해지고 스테이징이 명쾌해지는 효과로 전원장치를 사용하다가도 다이나믹스의 열세가 확연하게 느껴져서 파워앰프만을 벽체전원에 직접 연결해보면 전원장치에 대한 신뢰감이 순간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의 시청실에 5년 이상 붙박이처럼 자리잡고 있는 전원장치가 있는데, 국내에는 정식 론칭을 하지 않은 Environmental Potential의 EP2450이라는 제품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몇 년 전 스테레오파일의 편집장 존 앳킨슨이 사용하고 있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간단한 필터 이외에는 액티브 설계를 하지 않아 전원손실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하우징 구조를 갖춘 CDP 정도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실은 멀티탭에 다름이 없는 규모의 이 제품을 필자는 거의 불만 없이 사용해 오고 있었는데, 이보다 높은 가격대의 말끔한 차림새의 제품들이 여러 모로 적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기특함이 있다. 그래서 마침 파워뱅크 6와 여러가지 특성들을 비교해볼 수 있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두 제품을 통한 결과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면 파워뱅크 쪽이 다소 넉넉한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다.

전술했듯이 파워뱅크 6는 몇 가지 전제조건만 지켜준다면, 전원부의 용량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특유의 까맣고 적막한 공간과 선명한 스테이징을 쉽게 만들어 준다. 필자가 테스트해 본 전제조건 중에 가장 큰 부분은 전원 어댑터나 기타 본 제품의 보호회로와 극성관리 시스템이 최종 목적지인 대상 전원부까지 연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식 3구 단자로 된 110V케이블을 사용하기 위해 변환어댑터를 사용한다거나 하면 벽체 직결보다 못한 결과가 되었고, 당연한 얘기지만, 무엇보다 전원케이블의 품질이 좋을수록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본 제품이 보여주는 성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전원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와 비교한다면 그 대비가 더욱 커지겠지만, 우선 배경이 적막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보통 차폐트랜스를 처음 사용했을 경우의 느낌과 유사한 까맣고 적막한 배경 속에 순도 높은 소스정보를 뿌려준다. 르네 야콥스와 RIAS 실내합창단,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팀이 연주하는 바하의 ‘모텟’ 중 ‘Singet dem Herr nein neues Lied’를 들어보면 특유의 정적 표현으로 홀의 구체적인 사이즈와 스테이징, 특히 천정 상단이나 전후간 거리가 실제의 공간으로 느껴진다. 홀의 사이즈가 느껴지는 이런 상황이 만들어내는 이 곡 특유의 울림은 필자가 항상 이 곡에서 느끼곤 하는 마치 탐스러운 눈 오는 날의 공기감과 유사한 공간울림을 들려준다. 눈발로 서서히 흐려지는 원거리의 벌판을 보는 듯한 감동의 순간을 자연스럽게 연출해준다.

 

그 다음으로 파워앰프 전원 연결시에도 다이나믹스가 왜소해지는 경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디오적인 음질의 차원에서 보면, 이 부분이 좀더 직관적인 특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헤레베헤 지휘의 B단조 미사 중 ‘글로리아’는 강렬하지만 귀를 자극하지 않는 세밀한 입자들이 피부에 와 닿는 듯한 유쾌한 질감을 선사한다. 코러스의 집합적 에너지 변화묘사가 마치 니모를 찾아서의 생선떼의 순간 움직임과도 같은 민첩함을 보여준다. 중량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생동감이 뛰어난 움직임은 분명한 효과로 느껴진다.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의 ‘Killing In the Name’을 들어보면 이 이질적인 하이엔드적 다이나믹스가 이 곡의 열기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 지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B단조 미사에서와 유사하게 훅이 강한 스트록이 뛰어난 순발력으로 정확한 움직임을 그려낸다. 일부 밀도감이 다소 성긴 듯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원곡의 느낌대로 긴장감과 열기 속으로 시청자를 몰아간다.

 

시청을 거듭할수록 이 편리하고도 명쾌한 소품은 트랜스페어런트 고유 사운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적막한 배경과 사실적인 무대의 조명, 어느 대역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해상도와 구체적인 대상묘사 등이다. 이런 특성은 전원에서 유입되는 불건전한 요소들을 적절히 필터링했을 때의 상황이다. 종종 필자는 잘 세팅된 전원장치의 효과는 앰프를 교체한 것과 상응하는 결과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바, 사용자의 시청환경에 따른 적절한 전원장치의 활용은 예상치 못했던 수확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물론, 앰프 사이즈 만한 고가의 전원장치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지만, 예산과 공간 그리고 전후간 부가적인 장치들의 병행 문제를 놓고 사용자가 취사선택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 간편하고 효과만점인 파워뱅크 6와 같은 제품은 빛을 발할 오디오파일의 필수품이라고 생각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적인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