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고음질의 역설

하이엔드 오디오는 수십 년간 보편적 컨슈머를 상대로 하는 가전 오디오와 싸워왔다. 기본적으로 기업 형태에서 개발한 오디오의 역사는 절대 음질 최우선으로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 사용하던 전자제품의 단자만 보아도 그렇고 섀시만 보아도 그렇다. 기본적인 회로는 차치하고서라도 음질에 상당히 큰 영향을 주는 부분들이 온통 원가절감이라는 미명하에 저 품질로 치장하고 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기 위한 기업들의 고군분투는 눈물이 날 지경이다.

뿐만 아니다. 전송 포맷이나 프로토콜도 마찬가지다. 블루투스는 고음질이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며 MP3도 Flac 같은 무손실보다 음질이 뛰어나서 대중화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편리하며 비용이 적게 들고 많은 업체들 사이 이해관계가 맞물려 그 시대에 표준화되기 적합한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 수준의 하이엔드 오디오를 제작하는 엔지니어나 레코딩 관련 엔지니어들은 항상 음악 재생에 최적화된 포맷, 전송 프로토콜을 갈구해왔다.

하드웨어 설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많은 하이엔드 메이커들이 풀 밸런스 설계를 하고 OP 앰프를 사용하지 않으며 풀 디스크리트 설계를 하는가. 왜 시중에서 아주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단자를 놔두고 레모나 딘 단자를 만들어 사용하며 금 도금을 넘어 로듐 도금까지 하는 것일까. 모두 음질 때문이며 메이커 대표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USB 전송 프로토콜이 오디오에 적용된 것도 대용량 고음질 파일 전송 능력 때문이지 프로토콜 자체 성능이 음원 재생에 적합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때로 이런 딜레마는 일부 메이커의 혹세무민과 폭리를 위한 좋은 재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디지털 스트리밍 프로토콜

그렇다면 가장 훌륭한 대안은 무엇인가? 대안 없는 무조건적 비판은 오히려 판을 혼란케 할 뿐이다. 우선 이번 지면에서는 네트워크 스트리밍 프로토콜에 집중해보자. 가장 최근 오디오파일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단연 룬(ROON)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존에 사용하던 프로토콜을 거부했다. 여러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도록 개발된 전송 규격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음원의 고충실도 재생에 초점을 맞춘 프로토콜을 개발했다. 바로 RAAT, ‘Roon Advanced Audio Transport’가 그 주인공이다.

메르디안 Sooloos 소프트웨어 개발팀이 독립해 만든 ROON과 그들의 소프트웨어는 RAAT를 중심으로 고음질은 물론 최고의 라이브러리 관리 엔진을 갖추었다. 게다가 종종 업데이트되는 기능과 오디오 제조사들과의 협업을 보고 있자면 한동안 ROON을 따라올 음악 재생 전용 소프트웨어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 지점에서 국내 웨이버사 시스템즈가 커다란 전기를 마련했다. RAAT를 대체할 새로운 네트워크 스트리밍 프로토콜을 직접 개발한 것. 프로토콜 이름은 WNDR로서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믿기 힘들었다. 우선 연속적인 오디오 신호 흐름과 달리 보편적인 데이터 전송만을 위해 개발된 DLNA와 같은 프로토콜에 비해 혁신적인 RAAT였다. 게다가 재생 플랫폼과 음원 라이브러리 관리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그러나 RAAT를 뒤집을 전송 프로토콜을 개발해 룬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시도가 다른 곳도 아닌 국내 메이커 웨이버사 시스템즈에서 일어났다.

개인적으로 사용 중인 WNDAC3MKII 와 W코어에서 WNDR 대응 펌웨어 업데이트 이후 테스트한 결과는 놀라웠다. RAAT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바로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WNDR은 웨이버사 시스템즈가 독자적으로 개발해 현재 자사 오디오 컴포넌트에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태다. 기술적인 부분은 대외비로서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네트워크 스트리밍에서 발생하는 딜레이나 트래픽을 최소화시키는 기술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전송 프로토콜 비교 테스트

결국 전송 프로토콜을 개발한 웨이버사 시스템즈 시스템을 활용해 WNDR의 음질적 특징을 검증해 보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나의 리스닝 시스템에서는 WNDR의 음질적 특성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다르다. W라우터가 새로 출시되어 시스템에 또 다른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W라우터를 사용했을 때와 그렇지 않고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IPTIME 공유기를 사용했을 때 음질적 성능 차이를 테스트해보았다. 스피커는 B&W 802D3,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는 웨이버사 시스템즈 레퍼런스 V 시리즈 그리고 WNAS3 와 WDAC3MKII, W코어 등을 활용했다.

Hoff Esemble - Dronning Fjellrose(24/96, Flac)

Quiet Winter Night

WNDR 전송을 선택하고 호프 앙상블의 ‘Dronning Fjellrose(24/96, Flac)’을 들어보면 영롱한 피아노 사운드가 선명하며 타건도 상쾌하게 뻗는다. 사방은 극도로 조용하며 불현듯 달처럼 보컬이 두둥실 중앙 무대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어 타악이 좌측에서 가세하며 술렁이기 시작하며 동적 움직임이 뚜렷하게 표현된다. 2L에서 제공하는 녹음시 세팅 위치가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흐릿하거나 들뜨는 현상 없이 명료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이후 룬의 RAAT 전송을 선택해서 동일한 곡을 테스트해보면 RAAT 또한 전반적으로 훌륭한 소리를 들려준다. 기존에 룬을 애용했던 나로서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WNDR과 교차해서 들어보면 WNDR이 확실히 뛰어나다. RAAT로 바꾸면 일단 음상이 약간 흐릿해지면 입체감도 약간은 엷어지는 느낌이다. 대게 RAAT 전송이 과거 메리디안의 사운드와 닮았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모습이다. RAAT가 메리디안 사운드라면 WNDR은 마치 최근 코드 DAC 같은 소리로 비유할 수 있다.

DLNA 전송으로 변경한 뒤 들어본 ‘Dronning Fjellrose(24/96, Flac)’은 WNDR 및 RAAT와 꽤 큰 격차를 보인다. 일단 보컬과 피아노 주변에 약간 지저분한 잔상들이 나부낀다. 마치 옷에 남은 얼룩처럼 잔상이 불규칙하게 남는다. 이런 현상은 명료하게 쭉 뻗어 올라가던 기음과 하모닉스 특성을 왜곡시키며 전체적으로 음색을 건조하게 탈색시킨다. 무대의 깊이는 얕아지고 음상이 들뜨는 등 음색은 물론 무대 전체의 입체적인 조망 또한 탁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W라우터를 빼고 IPTIME 공유기로 다시 성능을 테스트했을 때의 상황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WNDR와 RAAT 그리고 DLNA 등 전송 프로토콜에 따른 음질 차이는 드러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음질이 하향 평준화되는 방향으로 고정된다. 더불어 DLNA 같은 경우는 그 차이가 현격하게 드러나는데 정보량의 저하, 밀도감의 감소 등으로 약간 산만하고 들뜬 소리로 화답한다. 이 외에도 계조 표현이나 다이내믹스 등 내가 알고 있는 미시적, 거시적 지표들이 모두 무너진다. 결론적으로 W라우터를 사용했을 때 각 전송 프로토콜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며 그만큼 WNDR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WAP 단계별 차이

마지막으로 WAP, 즉 웨이버사 오디오 프로세서에 따른 차이도 궁금해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사실 이 차이는 WAP를 장착하고 있는 웨이버사 제품끼리 시스템을 셋업 했을 때 그 매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테스트 자체도 WDAC3MKII 및 WNAS3 등을 활용해서 진행했다. 물론 W라우터만 사용하더라도 여타 메이커에서 출시한 제품과 함께 WAP 3단계의 음질적 수혜를 단 몇 방을 정도는 받을 수 있다. 시스템 구성은 전송 프로토콜 비교와 동일하며 대신 WAP 단계별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WDAC3MKII에 WNAS, W라우터 등을 순차적으로 추가하면서 진행했음을 밝힌다.

Jordi Swall - La Folia(16/44.1, flac)

La Folia

일단 WDAC3MKII만 활용해 조르디 사발의 ‘La Folia(16/44.1, flac)’을 들어보았을 때 사운드는 무척 익숙하다. 개인적으로 상당한 쾌감형 DAC로 생각했지만 몇 가지 부분에서 조금은 약점을 보였던 소리다. 중역이 조금 얇고 고역이 필요 이상으로 밝았던 소리. W코어와 합체했을 때 WDAC3MKII 사운드는 완성된다. 이런 셋업은 WAP 5단계로서 만일 WDAC3MKII만 단독으로 사용한다면 꼭 W코어를 추천하고 싶다. 다른 DAC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WNAS3에서 WAP 3단계를 추가해 총 8단계 WAP를 구성한 후 동일한 곡을 테스트했다. 입자가 좀 더 고와지면 디지털 특유의 뉘앙스가 사라진다. 현의 떨림, 잔향도 말끔하며 우측을 아주 약하게 울리는 타악의 잔향도 세심하게 조망해준다. 이런 디테일의 향상은 실체감의 상승으로 이어져 현실감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W라우터까지 가세시켜 WAP 11단계로 셋업 해보았다. 8단계부터 웨이버사 사운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러나 W라우터가 가세할 경우 또 한 번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이는 단지 WAP 단계의 상승만으로 만들어지는 변화는 아니며 리뷰 1편에서 설명했던 여러 설계 측면의 장점들이 함께 작용해 동반 상승한 변화다. 기본적으로 약음 포착 능력 향상으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향상이 눈에 띄며 더불어 전/후 레이어링이 더욱 세밀하게 펼쳐지는 등 더욱 아날로그 사운드에 근접하는 소리로 진화한다.

총평

1편과 달리 2편은 네트워크 스트리밍 시대 포맷 및 전송 방식의 변화 그리고 WNDR이라는 전대미문의 전송 프로토콜을 중심으로 WAP 단계별 음질 특성까지 테스트했다. 사실 리뷰에서 열거한 음질적 변화는 측정 수치까지 증거로 제출할 수는 없으나 분명히 청감상으로 구분될 수 있는 특징적 변화들을 수반한다.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네트워크 스트리밍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전기적 물리적 노이즈로 인한 음질적 훼손을 W라우터가 최소화시켰다. 음질적 업그레이드는 이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WNDR 전송 프로토콜은 반드시 경험해보길 바란다. 기존 룬 RAAT에서 이미 만족했던 오디오파일도 동일한 플랫폼과 인터페이스는 누리면서 드라마틱한 음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네트워크 스트리밍에서 신경 쓸 부분은 상당히 많으며 입구에서 출구 그리고 네트워크 망까지 소홀히 할 부분은 단 한 곳도 없다. W라우터는 문제의 중심에 있으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음질적 맹점을 발본색원하고 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