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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의 추억

어느 눈 오던 겨울 귀갓길에 단골 레코드샵에 들렀다. 일주일 전 주문해놓았던 음반이 드디어 오늘 입고되었다는 샵 주인장의 문자를 받은 터였다. 그리도 찾아 헤맸지만 지방의 설움인지 잡지책에서 큼지막한 광고가 나왔음에도 지방 소도시에선 구하기 어려웠다. 이제 좀 재고가 여유가 있어졌는지 멀리고 이곳까지 음반이 깔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나를 반기는 단골 샵 주인장은 남은 한 장이라 눈웃음치면서 내게 비닐봉투에 고이 담긴 CD를 건넨다. 하루의 피곤이 연기처럼 한 번에 다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마침 트레이가 말썽을 부리던 와디아를 샵에 넘기고 마크 레빈슨 390SL 신형 버전으로 바꾼 지 나흘 밖에 안 되었다. 어찌나 멋진 자태와 슬라이딩 도어 움직임을 보이던지 바라만 보아도 즐겁다. 귀가하자마자 발도 씻지 않고 CD부터 꺼내 조심조심 비닐을 벗기고 얇은 트레이 위에 CD를 조심조심 얹는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내면의 심미적 만족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감성 온도를 데우기 시작한다.

아마도 과거 CD가 메인스트림 포맷일 때부터 오디오를 만지작거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기억이다. 이후 음원이 CD를 음악 포맷의 권좌에서 급격히 끌어내리며 우리는 리핑하느라 바빴다. 때로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음원을 즐기며 자족했고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이 열리면서 예전엔 그리고 아끼던 CD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몰락한 포맷은 LP의 뒤를 이어 CD도 다르지 않았다.

라이브러리 관리의 사각지대

이젠 CD를 리핑한 16비트 음원을 넘어 24비트 음원이 유통되고 있는 시절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벅스뮤직, 멜론, 지니뮤직은 물론이고 해외에선 스포티파이, 코부즈 그리고 애플 뮤직까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고음질 음원 유통은 타이달이라는 회사가 선점하면서 전 세계 오디오파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음원 재생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푸바 2000이 다수를 차지했던 초기 음원 재생 패턴에서 오디르바나, 아마라, 퓨어 뮤직 등이 출현해 고음질 음원 재생의 대안이 되었고 이후엔 ROON이라는 초유의 재생 및 라이브러리 관리 프로그램이 출현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ROON은 타이달과 선도적으로 연동시켰고 며칠 전 고음질 음원 서비스에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코부즈를 연동시키는데 성공했다.

하드웨어는 네트워크 스트리밍 및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리모트 앱에 빌트인 시키기 바쁘다. 힘들게 장당 몇 만 원씩 주고 아껴 듣던 음반의 시대는 저물고 이젠 셀 수 없이 많은 음악의 홍수 속에 빠져 오히려 피로할 지경이다. LP나 CD 같은 피지컬 포맷이 메인스트림에 있을 때 우리는 적극적으로 음악을 찾아 들었지만 현재는 온라인 음원 서비스 엔진이 찾아주는 음악 듣기에도 버거운 상황이 되었다. 편리함의 반대급부로 능동성을 잃고 수동적으로 음악에 떠밀려 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여기저기 모아놓은 리핑 음원과 그 외 음원들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레퍼토리 중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CD 랙을 보면서 골라 듣는 것처럼 즐기는 게 가능한지. 또한 가용한 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나 그 사각지대에 놓여 잊고 지낸 앨범이 얼마나 많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채널 클래식 GENUINE Special Edition

그래서 여전히 많은 오디오파일과 음악 애호가는 음원과 음반을 동시에 즐기는 경우가 많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이점도 있지만 여전히 클래식과 재즈 음악은 그 레퍼토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누구나 알만한 명반 위주 외엔 아직 LP 시대 명연들은 차치하고 CD 시절 발매된 음원도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되지 않았다. 특히 20세기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명연주, 명음반들을 체계적으로 모두 갖춘 라이브러리가 따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아 하나하나 검색해서 찾아야 한다. 특히 복잡한 스펠링을 쳐서 하나 들을라 치면 음질이 CD에 비해서도 떨어져 음악 들을 기분을 망치곤 한다. 이미 CD로 다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리핑하고 태그 작업을 할 생각을 해보니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도중에 그만두기 일쑤다.

채널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그저 과거 명반들을 정리해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렌더 뮤직 서버에 기본 내장된 것을 들어보긴 했지만 당시엔 본래 커버 플로우가 아니었고 리모트 앱도 당시엔 성에 차지 않아 잘 듣지 않았다. 최근 채널 클래식 GENUINE 스페셜 에디션을 리뷰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실 시큰둥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내가 신경 쓰지 않고 지내던 사이 채널 클래식은 매우 달라졌다. CD 음질의 16비트 음원 3824장을 모은 CD3800 외에 Classic HD250 및 Jazz HD250 이 추가되었다. CD3800 이후로 이젠 24비트 음원까지 라이브러리를 만들어 따로 판매하고 있었다. Classic HD250엔 SACD 101장, HD 리마스터 앨범 118장 그리고 블루레이와 DAD-A 포맷의 앨범 등 총 250장의 앨범이 저장되어 있다. Jazz HD250도 SACD 99장 외에 HD 리마스터 앨범 199장 등 298장이 저장되어 있다. 가장 많은 레퍼토리는 클래식이다. 기본적으로 CD3800 항목에 4천장에 가까운 명반들이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음질만 따진다면 주목해야 할 항목은 레퍼런스 HD250으로 재즈와 클래식 모두 24비트 고해상도 음원을 담았다.

깔끔한 인터페이스, PC와 맥에 최적화된 외장하드

아마도 현재 네트워크 스트리머를 사용하는 오디오파일들도 이 제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데 아쉽게도 본 고음질 음원 스토리지는 PC 또는 맥에 최적화되어 있다. 네트워크 고유를 통한 스트리밍이나 USB 메모리 입력단 등으로 읽어서 재생할 수 없다. 오직 PC와 맥과 USB 인터페이스를 통해 연결 후 다시 USB DAC와 연결해 재생해야 한다. 네트워크 스트리밍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이 제품은 그림의 떡이겠지만 PC와 USB 인터페이스를 통해 음악을 듣는 오디오파일에겐 오히려 독립적인 고음질 스토리지로서 매력이 차고 넘친다.

시청을 위해 얼마 전 리뷰를 위해 테스트했던 린 Selekt를 맥과 연결해 음원을 살펴보았다. 사용한 Selekt는 채널당 50와트 출력의 D 클래스 앰프가 내장된 버전으로 앰프 겸 네트워크 플레이어면서 USB DAC로도 기능하는 제품이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USB를 사용해 테스트했고 스피커는 B&W 804D3를 매칭했다. 채널 클래식은 전용 재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유는 일반적인 외장하드의 인터페이스를 갖출 경우 무한 공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원천적으로 복사와 공유를 막기 위해 폐쇄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게다가 모든 음원을 암호화 처리되어 오직 채널 클래식 전용 플레이어로만 재생이 가능하다.

혹시 재생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가 너무 과거형으로 제작되어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사용해보면 컴팩트 디자인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기능만 탑재해 무척 직관적이며 편리하다. 음악을 듣기 전엔 필히 재생 및 출력 장치를 설정해야 한다. USB로 연결된 제품이 재생 카테고리에 자동으로 뜨므로 해당 USB DAC를 선택하면 그만이다. 더불어 출력 장치도 설정이 필요한데 푸바 2000 등을 사용해보았다면 익숙한 WASAPI 모드, ASIO 모드 등을 지원한다. 푸바 2000이나 J 리버처럼 다양한 세팅 메뉴를 제공하진 않으나 오히려 이런 심플함이 PC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편리할 수 없을 듯하다.

이 외에도 채널 클래식 플레이어는 작곡가 및 곡 제목 등 간단한 검색 기능을 지원하며 즐겨찾기 기능 등을 지원하고 있다. 앨범을 클릭하면 앨범 커버 이미지가 좌측 상단에 뜨며 작곡가, 곡 제목, 연주자 및 오리지널 포맷이 표기된다. 우측으로는 수록곡 세부정보 및 녹음, 발매 연도 등이 차례로 간략하게 표기되어 있다. 마치 최근 전 세계 수많은 컬렉터들이 운집해있는 디스콕스(Discogs)의 앨범 페이지를 보는 듯 일목요연하며 군더더기가 없는 디자인이다.

원본에 충실한 고음질 음원의 보고

앨범 라이브러리를 살펴보면서 몇 가지 음원을 테스트 삼아 재생해보았다. CD3800을 켜서 필립스에서 나온 과거 클래시컬 음악을 CD로 들어보다가 화면을 닫고 다시 Jazz HD250 항목을 클릭해 재생 화면을 띄운 후 블루노트 음반을 들어보기도 했다. 16비트와 24비트의 차이도 정확하며 매우 체계적인 분류체계를 갖추고 있어 앨범 찾기가 수월한 편이다. ROON 정도 외에 이 정도로 편리하게 곡을 찾는 것도 힘든 요즘인데 오랫동안 검증에 검증을 거친 명반들만 수록되어 있어 잡탕 같은 느낌이 없고 무척 액기스만 모아놓아 마치 진수성찬을 받은 듯 군침이 돈다. 구입하기 전부터 과거 명반 CD를 한꺼번에 선물 받은 듯 뿌듯하다.

음질은 어떤 추가적인 필터가 가해지지 않은 본래 음원에 충실하다. 최근 여러 플레이어나 DAC 등이 자체적인 필터를 사용하기도 하면서 원본에 살짝 컬러를 더하는 경우가 있지만 채널 클래식 플레이어는 어떤 필터도 제공하지 않고 원본에 충실한 사운드를 출력해주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야노스 슈타커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집’은 24bit/192kHz로 담겨 있으며 1963년도 녹음으로 지금까지 SACD로 나온 버전이 디지털 포맷 중에서는 가장 좋았는데 착색이나 겉치장 없이 퓨어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이 외에도 수백만 원대 고가에 거래되던 요한나 마르치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 파르티타’의 경우 16bit/44.1kHz 포맷으로 테스타먼트 레이블에서 발매한 버전을 수록하고 있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맹점이 같은 앨범도 여러 재발매 버전이 있음에도 해당 판본에 대한 표기가 없는 것인데 이 부분에선 매우 명확히 알 수 있어 좋다. 아트 페퍼의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호레이스 실버의 ‘Song for my father’ 등 많은 명반들이 HD 리마스터 버전으로 실려 있어 기존에 리핑 파일로 가지고 있던 내게 무척 매력적이었다.

총평

오디오파일이 음악을 즐기는 방식은 매우 다양해졌다. 일반 대중들은 벅스와 멜론으로 음악을 즐기지만 오디오파일은 타이달을 즐긴다. 재생 프로그램도 알송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푸바 2000이나 J 리버를 사용하고 여러 플러그인을 구입해 사용하기도 한다. 모두 최고 수준의 음질을 즐기기 위한 고군분투의 소산이다. 더불어 음원 재생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기존에 보유한 CD와 LP를 즐겨듣는다. 자신의 손때와 추억이 서려있는 음반은 오히려 쉽게 듣고 쉽게 잊는 인스턴트식 온라인 스트리밍 시대에 갈수록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요가 적어졌다고 해서 그 가치가 낮아진 것은 아니며 개인의 가치 평가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채널 클래식 GENUINE 스페셜 에디션을 들으면서 나는 그 옛날의 음반 수집의 역사를 떠올렸다. 학창시절부터 직장시절까지 용돈과 월급을 아껴가며 수집했던 명반의 행렬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그 모습이 GENUINE에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었다. 족히 수억 원을 들였을 법했던 음반 수집 비용을 생각하니 채 백만 원도 안 되는 이 제품의 가격 앞에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는 여기 포함된 앨범 중 다수의 앨범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욕심을 내 구입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일 클래식과 재즈 명반을 별로 많이 가지고 있지 않거나 CD로 가지고 있으나 리핑이 귀찮다면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방황하지 말고 이 제품을 구입하길 권한다. 앨범 선정도 탁월하며 정확한 커버 아트웍 그리고 무엇보다 겉치레 없이 순수한 고음질 음원을 날카로운 선정 과정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앨범을 고른 식견 그리고 음질에 대한 고민 및 편리한 전용 플레이어까지 매우 잘 만든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고음질 스토리지의 결정반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