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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질 레코딩의 숨은 진주

디지털과 아날로그 포맷의 끝나지 않는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편리한 인터페이스와 가벼운 저장용량 및 일반인들은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디지털 포맷 간 차이. 게다가 저장하지 않고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즐기는 디지털 포맷의 장점은 무궁무진하며 음질도 LP보다 낫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쪽에선 아날로그 포맷의 아성을 절대 디지털은 따라오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양 진영의 주장 모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러나 우리가 듣는, 특히 오디오파일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이나 재즈 레코딩 중 대부분은 아날로그 레코딩이며 이를 수십 년 후 디지털로 변환, 리마스터링 후 발매한 것들이다. 더군다나 최고 수준의 음질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고음질 레코딩 전문 레이블의 경우 최근에도 아날로그 레코딩을 고수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고음질 음원이나 피지컬 포맷 중 DMM CD나 DMM 커팅 LP를 통해 오디오파일에게 인기가 높은 독일 스톡피쉬 레코드를 예로 들어보자. 나의 저서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을 집필하다가 더 깊게 알게 된 이 레이블의 경우 자신들만의 독보적인 커팅 및 리마스터링 기술을 통해 음반을 발매하며 아날로그 LP의 경우 가장 많은 공을 들이기로 유명하다. 그중 AD 컨버터가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닌 EMM Labs라는 캐나다 하이엔드 디지털 메이커의 제품이다.

뛰어난 녹음과 즐겨 듣는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음악까지 음악성과 음질을 양립한 레퍼토리들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예를 들어 ‘No sanctuary here’로 유명한 크리스 존스나 ‘Colour to the moon’의 앨런 테일러 등의 앨범이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 이 외에도 여러 고음질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dCS나 나그라와 함께 가장 애용하는 AD 컨버터가 EMM Labs 제품들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음질을 간극을 최소한으로 만들어주는 디지털 장비에서 EMM Labs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마치 녹음 장비에서 머징 테크놀로지가 그렇듯 EMM Labs 디지털 장비는 고음질 레코딩 스튜디오의 숨은 진주 같은 존재다.

마이트너 MA-1

EMM Labs는 하이엔드 디지털 메이커로서 오디오파일을 위한 여러 종의 DAC 및 트랜스포트 등을 내놓았다. 그들의 디지털 장비들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스튜디오용 AD 컨버팅 기기는 물론 가정용 하이엔드 디지털 장비까지 아우르는 그들은 전문가 위의 전문가 레벨로서 기존 하이엔드 디지털 메이커와 태생부터 다르다. 기본적으로 메이저 시장에서 자주 사용하며 호들갑을 떠는 ESS나 AKM 등의 상용 DAC 칩셋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로서는 상용 칩셋으로 이룰 수 있는 음질적 퀄리티 그 이상을 추구한다. 단지 스펙 그 이상을 뛰어넘는 그들만의 디지털 알고리즘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dCS나 MSB 등 하이엔드 디지털 메이커가 그렇듯 DA 컨버팅에서 필터, 클럭, 전원 그 무엇 하나 보편적인 설계나 소자를 거부한다.

마이트너는 바로 EMM Labs의 에드 마이트너가 독자적으로 설립한 또 하나의 하이엔드 디지털 에고라고 봐도 무방하다. 수천만 원대에 이르는 EMM Labs의 모델에 비하면 가격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지만 EMM Labs의 원천기술을 대다수 적용해 오디오파일로부터 환영을 받았고 그 신호탄이 MA-1이란 DAC였다. 출시 당시 MA-1은 국내/외 오디오파일로부터 커다란 인기를 얻었고 한동안, 이 가격대 최고 수준의 레퍼런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고 디지털 환경은 바뀌고 있다. EMM Labs는 얼마 전 MQA 와 계약을 마쳤고 몇 년 전엔 TX2와 DA2라는 플래그십 트랜스포트와 DAC를 선보이기도 했다. 기존 EMM Labs의 독자 기술이 한 단계 더 진화되어 녹아들며 또 한 번 EMM Labs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드라마틱한 업그레이드, MA-1 V2

이런 분위기에서 마이트너의 신제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한동안 전혀 미동도 하지 않던 마이트너가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새로운 모델이 아니라 기존 모델 MA-1의 업그레이드 모델을 들고 나왔다. MA-1 V2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베일을 벗은 MA-1 V2는 처음 보았을 때 외형상 전혀 변한 게 없어 보였다. 거의 완벽히 동일한 외관 디자인과 섀시를 입고 나타났다. 그러나 내부에선 몇 가지 변화들이 감지되었고 마이트너에서 발표한 스펙을 보면 매우 커다란 음질적 변혁이 이루어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현존하는 여러 디지털 메이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신호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매우 다양한 디지털 회로를 개발해내고 있다. 하나는 FPGA를 통해 자사의 독보적인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해 넣고 DAC로 보내는 일이다. DAC 자체를 직접 만들기도 하며 델타 시그마 방식이 아닌 R2R 래더 덱을 고집하기도 한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PCM이나 DSD를 가지리 않고 모두 DSD 포맷으로 변환시킨 후 DA 컨버팅시키는 방식. PS 오디오나 국내 웨이버사 시스템즈의 등이다. 보편적인 DA 컨버팅 과정에서 생기는 링잉 현상 등 시간축 임플스 응답 부문의 에러를 보정하고 아날로그 파형에 가까운 파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MA-1은 애초에 입력되는 디지털 포맷을 모두 DSD128로 변환시킨 후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런 마이트너의 선택은 대단히 뛰어난 정보량과 해상도로 화답했고 이번 V2 버전에서는 DSD 샘플링레이트를 더 올려 DSD512, 즉 8XDSD로 변환시키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는 SACD의 8배 수준에 해당하는 해상도며 CD에 비해 512배 높은 해상도다. 업그레이드된 MDAT™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더불어 V2 버전에서 입력 샘플링 레이트 한계도 PCM의 경우 192kHz로 동일하지만 DSD의 경우 DSD128 및 DXD까지 모두 대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USB, 동축 등 6개 입력단에서 모두 DSD 포맷에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MA-1 V2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MDAC™라는 마이트너의 독보적인 듀얼 디퍼런션, 디스크리트 DA 컨버터로 내부의 좌/우에 장착되어 있는 모듈이 그 주인공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보적인 클럭 시스템으로 MCLK™을 사용하고 있다. 디지털 부문의 전 과정은 이 마스터클럭에 의해 통제된다. 또 하나 마이트너 DAC가 특별한 점은 MFAST™라는 회로다. 이는 입력된 디지털 신호를 버퍼링해 출력 신호를 비동기 방식으로 완전히 분리시키는 기법으로 이 회로를 통해 지터를 극단적으로 낮추고 있다.

극한의 해상력과 홀로그래픽 음장 구현력

전작 MA-1도 마찬가지지만 MA-1 V2는 다시 한번 해상력이라는 기준을 몇 단계 더 상향 조정하고 있다. 앰프로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 인티앰프와 다인오디오 40주년 기념 북셀프 스피커를 사용했을 때 이 정도라면 하이엔드 시스템에선 상상을 불허할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Gill Shaham, Goran Sollscher - Serenade

Schubert for Two

예를 들어 길 샴과 외란 쇨셔가 바이올린과 기타로 연주한 슈베르트 ‘Serenade’를 들어보면 여타 DAC에서는 작게 들릴 듯 말 듯 들리던 숨소리의 호흡까지 매우 뚜렷하게 들린다. 정보량은 최상급이며 각 악기는 물론 아주 조그만 기척까지도 소름 돋을 만큼 또렷하게 들려준다. 한편 해상력이 높은 대신 온도감은 낮은 편으로 호불호는 갈릴 듯하지만 미세한 약음 표현은 이보다 훨씬 더 비싼 DAC와 비교해도 우수하다. 전체적으로 매우 상쾌하게 소리를 뽑아내며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고 선명한 토널 밸런스를 드러낸다.

Zhao Peng - The moon represent my heart

단 소수의 디지털 전문 메이커들이 집적 DAC 칩셋을 사용하지 않고 디스크리트 방식으로 풀어서 설계하며 독자적인 FPGA, DSP 프로그래밍을 통해 독창적인 사운드 스펙트럼을 그린다. 마이트너 MA-1 V2 같은 경우 마치 생산국인 캐나다의 맑은 공기와 풍광을 닮았다. 조붕의 ‘The moon represent my heart’에서 착색은 거의 완전히 지워지고 그 속의 투명한 정보만 수면 위로 맑게 떠오른다. 전체적인 살집은 조금 빠지며 특히 중역은 얇은 편이나 대신 묻히기 쉬운 플륫 같은 악기가 상쾌하게 롤오프 없이 뻗는 모습이 선명하게 표현된다.

Hugh Masekela - Stimela

hope

동적인 움직임은 매우 빠르고 날렵하다. 더불어 맺고 끊는 표현이나 힘의 강, 약 조절이 명확히 대비되어 에지있게 들린다. 예를 들어 휴 마세켈라의 ‘Stimela’ 같은 곡에서 이런 점은 강건하고 뼈대가 확실한 사운드로 묘사되어 레코딩의 다이내믹스 표현을 배가시킨다. 따라서 현장의 생생한 실체감이 피부로 와 닿을 만큼 충만하다. 함께 비교한 브라이스턴 BDA3에 비해 선이 얇되 더 또랑또랑하며 고해상도로 일관하는 모습. 예를 들자면 코드 DAVE 같은 DAC와 유사한 줄기에 넣을 수 있을 사운드 특색을 보인다. 최근 마니아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토탈 DAC 등 R2R DAC와 정반대 성향이다.

Daniel Barenboim - Saint-Saens:Danse macabre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악기 분리도는 최근 몇 년간 체험했던 DAC 중 코드 일렉트로닉스 같은 브랜드 제품과 함께 가장 높은 편이다. 이런 특성 덕분에 사운드 스테이징 측면에서도 입체감이 무척 높다. 예를 들어 다니엘 바렌보임의 생상스 ‘Danse macabre’를 들어보면 마치 스피커를 바꾼 듯 무대가 좌/우로 넓어지고, 깊이도 깊지만 전체적으로 앞으로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편이다. MA-1 V2의 청감상 SN비나 해상력, 특히 중, 고역대에서 그것은 굉장히 높지만 반대로 사람에 따라선 자칫 피로감을 줄 수도 있다. 좀 더 오래 사용해보면서 케이블 매칭까지 해보면 좋겠지만 이번 시청에선 카다스나 PAD 같은 케이블이 좋은 매칭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한다.

총평

에드 마이트너는 대단히 명석하고 비범한 엔지니어다. 그가 만든 EMM Labs의 디지털 장비는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음질을 추구하는 스튜디오 엔지니어들이 선호하며 직접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홈 오디오에서 동일한 퀄리티를 보여줄 것이라는 증거가 되느냐 되묻는다면 명백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DA 컨버팅을 통해 본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되돌린 것을 다시 아날로그 신호로 되돌리는 작업의 바탕에 AD컨버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게다가 에드 마이트너는 DSD 포맷의 권위자다. 그리고 이런 전체적인 통찰과 기술은 대단히 생생하고 리얼한 사운드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음악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dCS, 나그라와 함께 EMM Labs를 왜 선호하는지 알게 해주는 소리다. 그리고 마이트너는 EMM Labs의 기술과 사운드에 있어 트리클 다운의 정점에 서 있다. MA-1 V2는 흔히 맛볼 수 없는 마성의 마이트너 디지털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