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디오계의 전설과 보낸 멋진 시간
파라사운드 오너 Richard Schram 인터뷰

이종학 2019-03-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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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의 연락을 받고, 인터뷰 대상자가 파라사운드의 CEO라는 말에 적잖이 흥분했다. 파라사운드라면, 전설적인 앰프 디자이너 존 컬(John Curl)의 걸작들이 발표된 브랜드 아닌가? 또 CEO인 리차드 슈램(Richard Schram)씨만 하더라도 그간 다양한 제품에 관여한 이쪽 업계의 레전드라 할 수 있다. 그를 만난다는 것은 마치 오디오 역사책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목적지인 샘 에너지(우리 집에서 무척 멀다)로 가는 길이 그리 멀게 보이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고 또 택시까지 타고 도착한 목적지. 겨우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니 인자하게 보이는 노신사 한 분이 소파에 앉아계셨다. 직감적으로 슈램씨임을 알았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교환하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 마치 오랜 기간 알았던 분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주최 측에서는 시계를 보며 최대 1시간을 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결국 30분을 초과한 인터뷰가 되고 말았다. 이후에 별다른 행사나 약속이 없었다면 2시간 혹은 3시간을 넘겨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못다 한 대화는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 이번 만남부터 요약해서 올리고자 한다. 참고로 슈램씨의 영문 이니셜인 RS로 표기해서 진행하겠다.

 

 

                                               인터뷰어 : 이 종학(Johnny Lee)

인터뷰이 : 리차드 슈램(Richard Schram)

 

 

- 반갑습니다. 마치 오디오쪽의 신화나 전설의 세계로 들어온 듯합니다. 일단 간략하게 자기소개부터 해주시죠.

 

RS : 저는 1946년, 시카고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음악과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 모두 악기를 연주했고, 78 RPM 레코드를 들을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며, FM 방송도 많이 들었죠. 게다가 저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9살 때 노스 웨스턴 대학의 예비 과정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았습니다. 

 

 

 

- 음악과 함께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RS : 맞습니다. 하이파이쪽은 이미 11세 무렵에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키트를 사다가 조립하는 식이었는데, 그때엔 진공관 앰프 시절이었습니다. 한번은 조립을 잘못해서 앰프가 폭발한 적도 있습니다. (웃음) 그러면서 서서히 오디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답니다. 왜 폭발했을까? 전압 문제인가? 결선을 잘못했나? 그러면서 오디오 잡지도 사서 읽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에 미국에선 <오디오 크래프트>라는 잡지가 유명했습니다. 이것을 탐독하고, 이후 다양한 잡지를 접했습니다. 그것들은 버리지 않고 지금도 갖고 있답니다. 아마 창고 어디쯤 숨어 있을 겁니다. 그러는 한편 피아노 교습도 열심히 받았죠.

 

 

-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오디오의 음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것은 언제쯤일까요?

 

RS : 10대 중반 무렵입니다. 더운 여름에 피아노 교습을 받고 자전거로 집에 가는데 무척 더웠습니다. 마침 어느 빌딩에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안에 냉방이 잘 되었던 터라 일단 땀을 식히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뒤쪽에 별도의 룸이 있더군요. 어찌어찌 운이 좋아 제대로 된 기기로 난생처음 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받은 충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스탄 켄튼 밴드가 연주한 (Intermission Riff)인데, 마치 요 앞에서 연주하는 듯했습니다. 그 이후 오디오는 제 평생의 직업이자 취미가 되었습니다. 

- 그렇군요.

 

RS : 또 그 시절, 그러니까 1963년에 시카고에 있는 콘서트 홀에서 실제 연주와 오디오 음의 차이를 비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파인 아츠 쿼텟이 나와 연주를 하는데, 중간중간 그들이 연주 시늉만 하고 그때마다 오디오를 틀어준 겁니다. 교묘한 AB 테스트라고나 할까요? 그때 사용했던 기기가 암펙스에서 나온 릴 데크에 다이나코 MK II 앰프와 AR 3 스피커입니다. 이렇게 실연과 오디오 음을 중간중간 바꿔가며 시연했는데, 아무도 그 차이를 몰랐습니다. 지금 관점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실제 그랬습니다. 하긴 저 멀리 카루소 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요.(웃음)

 

 

 

- 그러고 보면, 사람의 감각이라는 것도 기계의 발전에 따라 함께 진화하는 측면이 있는 것같습니다. 

 

RS : 16살 무렵, 운전 면허증을 취득한 후, 시카고 지역에서 본격적인 오디오 계통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됩니다. 오디오 숍에서 일을 받아 주로 부자들의 집에 가서 인스톨레이션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요즘 홈 씨어터를 뜻하나 싶겠지만, 그 시절엔 그런 장치가 없었죠. 당시에는 앰프를 주로 수납장에 넣었습니다. 또 혼 스피커가 주류라 설치를 제대로 해야 했죠. 턴테이블 세팅도 했고요.

 

 

- 16살 때부터 그런 일을 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합니다. 더구나 당시엔 하이파이라면 무척 낯선 물건이었을 텐데 말이죠.

 

RS : 맞습니다. 이후 1964년, 대학 진학을 위해 샌 프란시스코로 갑니다. UC 버클리에 입학한 것이죠. 전공은 역사, 그것도 미국 초기 역사였지만, 물리학을 부전공으로 했습니다.

 

 

- 역사를 배우셨다니 약간 의외입니다.

 

RS : 그렇죠.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오디오쪽은 물리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입학할 때엔 빈손으로 왔다가 한 학기를 마치고 시카고로 돌아가 제가 갖고 있던 하이파이와 음반을 차에 싣고 친구와 운전해서 숙소로 가져왔습니다. 도저히 음악이 없이는 지낼 수가 없었거든요.

 

 

- 60년대의 SF라고 하면, 정말 대단한 시절을 함께 했다고 봅니다. 거기는 히피의 성지이자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본산 아닙니까?

 

RS :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대표적인 밴드가 그레이트풀 데드인데, 앞으로 소개할 존 컬이라는 분은 젊었을 때, 이 밴드의 라이브 연주를 녹음한 적도 있답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SF에서 출생한 분이랍니다.

 

 

 

- 그렇군요. 미국 하이엔드 오디오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이런 록 문화 더 나아가 카운터 컬쳐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이 시대 쪽만 차분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RS : 오디오 쪽 이야기를 해보면, 당시 대학교 부근에 <퍼시픽 일렉트로닉스>라는 하이파이 숍을 빼놓을 수 없죠. 각종 전자 부품을 파는 곳이었지만, TV도 판매했고, 오디오도 취급했습니다. 시청실도 따로 갖추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하니, 세 명의 오너 중 한 명이 저를 따로 부르더군요. “너 이게 뭔지나 알아?” 이런 식으로 묻더군요. 최대한 공손히 이렇게 말했죠. “당신보다는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날 죽이든지 고용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세요.” 참 당돌한 대답이었지만, 아무튼 채용이되었답니다. (웃음)

 

 

- 대단합니다!

 

RS : 사실 하이파이를 판매하고, 배달하고, 설치를 하면서 일종의 자긍심 같은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면서 돈도 벌고, 친구도 사귀고, 오디오도 다양하게 대면하고 ... 그러면서 대학을 졸업할 즈음, 이 숍도 영업이 잘되어 일종의 분점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이곳의 지점장이 되었죠. 사실 지내고 보니 시카고보다 SF가 여러모로 편리했습니다. 기후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뭔가 활력이 넘쳤으니까요. 

 

 

- 이 부분은 많은 오디오 업계 종사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RS : 이후 70년대에 들어 오디오쪽 경기가 좋아짐에 따라, 여기도 계속 성장을 했습니다. 지점도 계속 열어서 5, 6개가 되었죠. 그러다 1973년, 이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본 CBS가 과감히 매입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상호도 <퍼시픽 스테레오>가 됩니다. 이 체인은 한때 미국 전역에 무려 103개의 점포를 가질 정도로 엄청나게 성공합니다. 저 역시 26세에 이 체인의 부사장 자리에 오릅니다. 정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출세가 아닐까요? (웃음)

 

 

- 계속 저를 놀라게 하는군요.

 

RS : 당시 이 체인이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면, 매킨토시 제품의 경우 미국쪽 판매량의 25%를 커버할 정도였답니다. 덕분에 자체 스피커 브랜드도 만들었습니다. 바로 쿼드라플렉스(Quadraflex)입니다. 한때 매년 10만 개 정도를 판매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답니다. 주로 미국 내에서 판매했기 때문에, 미국 바깥쪽 분들에겐 좀 생경할 겁니다.

 

 

 

- 앰프는 만들지 않았나요?

 

RS : 당연히 만들었죠. 컨셉트(Concept)라는 브랜드입니다. 회사측에서는 최고의 엔지니어를 선별한 끝에 결국 두 명을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만나고 보니,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실 전 단순히 판매나 행정만 담당한 게 아닙니다. CBS만 해도 이미 소니와 합자한 상태라, 다양한 부분에서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십 번 일본을 방문했고, 코네티컷주 스팸포드에 있는 CBS 기술 센터에서 여러 엔지니어와 교분을 쌓은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직접 일본으로 가서 엔지니어를 고용해서 리시버 앰프를 시작합니다. 이때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설계자가 하시다 켄이라는 분입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사장이 격노했습니다. 그러나 난 내 결정이 옳다고 생각했죠. 결국 1978년에 16.5라는 모델로 출시되어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 일종의 항명 사태라 하겠지만, 결과가 좋았으니 그냥 넘어갔겠군요.

 

RS : 그렇죠. 그 여세를 몰아 턴테이블이니 스피커니 리시버니 여러 제품을 기획하게 됩니다. 이미 시장에서 뭘 원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기존의 제품과 차별화되는 기술력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피벗 톤암을 만들면서 헤드셀을 교환할 수 있게 한다거나, 리시버를 기획하면서 히타치가 무명일 때 미리 OEM을 줘서 출시한다거나, 아무튼 다양한 제품을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일본을 방문해서 OEM 업체를 섭외하기도 했고요.

 

 

- 당시 일본엔 다양한 OEM 공장들이 있었죠?

 

RS : 그렇죠. 작지만 강한 기술력을 가진 공장들이 참 많았습니다. 한번은 센다이에 있는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계약서에 사인만 하고 직접 방문하긴 처음이었죠. 수소문해서 가보니 어느 어촌의 작은 주택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아줌마 12명이서 정성스럽게 PCB 기판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제 브랜드를 만들고 OEM을 줄 때, 해당 공장의 모습이 바로 이런 쪽으로 되었으면 하는 그림을 갖게 되었습니다.

 

 

-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RS : 이 과정에서 저는 크게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는 늘 소비자들의 의견을 듣는 쪽입니다. 그들이 뭘 원하고, 뭘 불편해하는지 항상 체크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제품을 설계할 때 뭔가 기능을 넣으면, 그게 확실히 음에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앰프에 버튼이 하나 있다고 할 때, 그것을 누르면 음이 확실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버튼을 다는 게 의미가 없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불만도 있었습니다. 워낙 기업이 거대하고 또 본사가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뭔가 제안을 하면 수많은 체인을 거쳐서 맨 위에 전달됩니다. 그 과정에 뭔가가 부풀리거나 혹은 빠져버리죠. 또 주로 저가의 제품을 양산하다 보니, 뭔가 성능이 뛰어난 고급 제품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본격 하이파이 기기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 그래서 직접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한 것인가요?

 

RS : 그렇습니다. 사실 시작할 때만 해도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죠. 그래도 대형 유통망 출신이니까, 뭔가를 만들어 납품하면 바로바로 팔릴 것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와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퍼시픽 스테레오>도 규모를 줄이는 등 여러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죠.

 

 

 

- 이 대목에서 존 컬씨 이야기를 해볼까요?

 

RS : 사실 그를 처음 본 것은 1974년, 도쿄였습니다. 정확히는 공항버스 안이었죠. 당시만 해도 일본에 외국인이 드물었기 때문에, 일본인들 틈에 섞여 있는 그를 금세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포노 스테이지를 만들고, TIM(Transient in Modulation) 이론을 발표하는 등, 이쪽 업계에서는 신세대 스타로 통했으니 저는 알아볼 수 있었죠. 그러나 일체 친분이 없어서 그냥 멀리서 보기만 했습니다. 당시 그는 하만 카든의 일로 일본을 방문했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저희 회사 직원 중에 그를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 직원을 통해 접촉, 결국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 이렇게 묻기 뭐하지만, 존 컬씨는 어떤 분인지 궁금합니다.

 

RS : 저는 지금도 일주일에 서 너번 만납니다. 만날 때마다 뭔가를 얻죠. 진짜 천재입니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땐, 그가 4년 전에 우연히 발견한 회로 설계 시의 숨겨진 비밀을 이제 완전히 풀었다고 했습니다. 곧 새로운 설계가 나온다고 하니 기대하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나이를 잊고 늘 새로운 분야, 새로운 컨셉에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앰프 설계 분야의 왕으로 군림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죠.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꼭 필요한 데가 아니면 지출을 자제합니다. 대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지르죠. 그런 식입니다.

 

 

- 사실 파라사운드는 자체 생산 외에도 다양한 OEM으로 유명한데요?

 

RS : 맞습니다. 창업 당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다행히 존 컬을 비롯, 여러 유능한 엔지니어를 확보해서 오디오 이외의 분야도 OEM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의료 기기중 태아의 심박수를 체크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그것입니다. 또 오디오만 해도 꼭 앰프에 국한하지 않았죠. 덕분에 스피커 회사도 상대했고, CDP, 턴테이블, 홈 씨어터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습니다. AEI Music, Sonance, Atlas/Soundolier, Memorex, Ultra Analog, Philips, Aragon, Magnum Dynalab, Magnavox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 파라사운드 하면, 아무래도 JC1이라는 모노 블록 파워가 유명합니다. 이 제품에 관련된 일화 같은 것은 없나요?

 

RS : 그 제품은 2000년대 초에 나왔습니다. 당시 저희 회사는 DSP 설계 관계로 무척 머릿속에 복잡했습니다. 뭔가 이런 피곤함을 씻어줄 새롭고, 신선한 아이템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본격 하이파이용 제품을 만들기에 이른 것이죠. 이후 줄곧 <스테레오파일>의 추천작으로 올랐답니다. 아마 단일 모델로 가장 오랜 기간 추천이 된 제품이 아닐까 싶네요.

 

 

- 헤일로(Halo) 시리즈는 언제 나왔죠?

 

RS : 첫 제품이 2002년에 나왔습니다. 사실 이 모델도 오랜 기간 롱런했습니다. 중간에 전원부를 교체한 것을 빼고는 오리지널 설계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처음부터 완성도가 높았던 것이죠. 

 

 

-이번에 시청회를 하는 힌트 6(Hint 6)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RS : 여기서 힌트는 “Halo + Inte”의 합성어입니다. 그게 형번 6까지 진화한 것이죠. 여기서 출력을 보면 8옴에 160W, 4옴에 240W라고 쓰여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희가 아주 엄격하게 계측했을 때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더 나옵니다. 아마 통상의 기준으로 하면 8옴에 200W 이상이 나올 것이라 봅니다.

 

 

- 클래스 AB 방식인가요?

 

RS : 일부는 클래스 A 방식입니다. 즉, 3W 정도는 클래스 A로 동작합니다. 그러다 AB로 전환하죠. 고작 3W냐 싶겠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음성 신호는 이렇게 작은 출력 단위에서 커버됩니다. 갑자기 크게 폭발하는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대출력이 필요한 것이죠. 만일 400W짜리를 순 클래스 A로 만든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저기 있는 오디오 장식장보다 더 큰 제품이 나올 겁니다.

 

 

- 일본과 거래하다 대만으로 생산 라인을 바꾼 이유가 궁금합니다.

 

RS : 1980년대에 들어와 엔고가 되고, 수출선이 막힘에 따라 정말로 작고 좋은 OEM 회사들이 문을 닫습니다. 저는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죠. 다행히 대만에는 오디오와 음악을 좋아하고, 자기 일에 열정적인 작은 OEM 회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꼭 해결합니다. 아직 저는 중국쪽에 관심이 없습니다. 몇 번 알아봤지만, 일단 물량이 많아야 하고 무엇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하지 못하더군요. 현재는 대만쪽이 가장 적합하다고 봅니다.

 

 

- 현재 회사 인원은 총 얼마나 합니까?

 

RS : 총 9명입니다. 대만에서 생산을 하기 때문에, 본사에는 오로지 제품 개발 중심으로 인력을 꾸렸습니다. 특히, 핵심 엔지니어는 존 컬을 포함한 4명. 대부분 저희 회사에 오랜 기간 근속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27년, 또 한 사람이 19년 일하고 있죠. 젊은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약 4년 정도 일했습니다. MIT를 나왔는데, 오디오를 좋아해서 저희 회사에 들어왔죠. 나머지는 행정쪽 일을 처리합니다. 따로 마케팅 부서는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알음알음으로 영업합니다. 제품이 좋고, 가격대가 합리적이면 저절로 소비자들이 찾는다고 봅니다. 또 리뷰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큰 강점이고요. 가끔 제가 전 세계를 돌며 신제품을 홍보하거나 수입상과 상담을 하는 정도입니다. 생각해보면 1986년에 창업한 이후, 지금도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 맞습니다. 축복이나 다름없죠.

 

RS : 그렇다고 과거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늘 미래를 대비합니다. 최근에 FET를 생산하는 주요 3개 회사 중 하나가 문을 닫았습니다. 저는 이 부품을 확보하기 위해 바로 달려갔죠. 결국 저희 창고에는 여기서 만든 FET가 무려 50만 개나 있습니다. 이런 식이랍니다.

 

 

- 정말 배운 게 많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번에 못다 한 이야기를 더 나누도록 하죠.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S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