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회 하이파이클럽 시청회 후기
팔콘랩 Model 503 & 피에가 Coax 711 비교 시청회 후기
어떤 소리를 들을 것인가 ?
세상엔 매우 많은 종류의 스피커가 있습니다. 그 기준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로 불리죠. 예를 들어 가장 자주 거론되는 기준은 로딩 방식에 따를 것입니다. 후면에 포트를 뚫어 만든 저음 반사형 그리고 인클로저를 완전히 막아놓은 밀폐형, 유닛 후방 에너지를 마치 미로형처럼 생긴 브레이싱 구조를 통해 방사하는 트랜스미션 라인 등. 이 외에도 상당히 많은 로딩 방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피커를 구분하는 방식 중에 지향성이라는 부분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지향성이라는 것은 스피커 유닛으로부터 만들어진 공기의 파동과 그로 인한 주파수가 어떤 방향성을 갖는지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편적으로 듣는 스피커들은 소리가 청취자를 향해 방사됩니다. 이 외에 배플 반사나 청취 공간의 벽 반사가 있지만 어쨌든 소리는 청취자 쪽으로 날아옵니다. 혼 스피커가 되었든 정전형 스피커가 되었든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방향성, 지향성이 없는 스피커도 있습니다. 특정 방향으로 소리를 방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 방향으로 주파수를 방사시키는 것이죠. 이를 우리는 바이디렉셔널 스피커. 우리말로 무지향성 스피커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MBL같은 독일 스피커 메이커가 있죠. 이번 시청회는 바로 지향성이 강한 스피커와 지향성이 따로 없는 무지향성 스피커를 비교하면서 음질적 특징을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과연 어떤 소리를 들을 것인가가 고민이라면 이런 방식의 스피커 비교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좀 더 확실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팔콘랩 503 그리고 피에가 Coax 711
우선 무지향성 스피커를 대표해서 일본의 팔콘랩 503을 공수했습니다. 이 스피커는 4웨이 5스피커로서 얼마 전 시청회를 통해 소개했던 플래그십 707의 하위 기기입니다. 팔콘랩에 대해 생소한 분들을 위해 먼저 소개하자면 대표는 오랫동안 미국과 일본의 스피커 제조 분야에 종사했던 엔지니어입니다. 그는 아마르 보스의 ‘Stereo Everywhere’ 설계 이론을 직접 배우고 연구했다고 합니다. 1977년부터 3년간 보스 스피커 개발에 참여해 음향의 지향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인피니티 IRS 계열의 유닛 개발에도 참여했습니다. 지금 팔콘랩의 스피커와 좀 다른 설계방식이지만 보스나 인피니티 모두 전 방향으로 소리를 방사하고 직접음보다 반사음을 통해 현장음을 유사하게 재현하려 노력했던 메이커입니다.
팔콘랩 모델 503은 바로 이런 천재적인 스피커 엔지니어들로부터 영향받은 그들이 완벽한 무지향을 추구하며 만들어낸 역작입니다. 우선 우퍼는 펄프 진동판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고 풍성한 저역을 구사합니다. 기존에 모델 707과 유사하게 따스하고 푸근하게 공간을 감싸던 저역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저역 규모는 줄었지만, 오히려 해상력이 높고 스피드도 살아난 느낌이 지배적입니다. 한편 모델 503엔 50mm 구경의 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 소재로 만든 컴프레션 드라이브 유닛을 채용했습니다. 티타늄 다이어프램을 사용해 중역부터 무지향 방식 설계를 따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고역을 담당하는 트위터는 또한 맨 상단에 위치해 전 방향으로 소리를 뿜어냅니다. 이 트위터는 36mm 구경으로 강력한 자력의 네오디뮴 마그넷을 사용하고 폴리 알로이 진동판을 사용해 높은 고역까지 매우 강력한 에너지를 보입니다. 매우 가벼우면서 강도는 높은 캡톤 보빈 코일을 사용하였고 알루미늄을 사용한 웨이브 가이드를 거쳐 매우 자연스럽고 빠르고 소리를 방사하는 타입이죠. 모델 503에서도 중역과 고역의 레벨을 조정할 수 있는 점도 실제 운용에 있어 매력적인 기능입니다.
다음은 국내에서 비교적 많이 알려진 리본 트위터의 세계적 권위자 피에가의 Coax 711입니다. 이 스피커가 이번 비교 청음회에서 선택받은 것은 지향성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무지향과 대비해 일반적인 돔 타입 유닛을 사용한 스피커보다 리본 유닛을 사용한 스피커가 가장 극적으로 비교가 되는 것이죠. 게다가 Coax 711은 라인업 이름인 ‘Coax’에서도 알 수 있듯 동축 설계 리본 유닛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팔콘랩 모델 503이 중역과 고역 유닛이 무지향인것과 반대로 Coax 711은 중, 고역이 뚜렷한 지향성을 갖습니다. 하지만 동축 구성으로 리본 유닛 한 개가 중역과 고역을 모두 담당하고 있습니다.
리본 트위터는 일반적인 돔 트위터에 비해 지향성이 확실히 뚜렷합니다. 동 형태가 둥근 진동판을 가지고 있어 180도로 소리를 방사하는 한편 리본은 평면의 스트립 안에 놓인 자석의 자력 변화를 통해 소리를 내기 때문에 모든 주파수가 정면으로 발생하죠. 그래서 이런 리본 트위터를 라인 소스(Line source) 방식이라고 분류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지향성이 뚜렷한 유닛 중에 혼 스피커도 있습니다만 이번엔 피에가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동축 리본을 채용한 Coax 711을 사용했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지향 VS 무지향의 사운드는 과연 어떻게 다를까요?
무지향 VS 지향
우선 무지향 스피커와 지향성 스피커는 단지 설계 구조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실제 보편적인 가정의 어쿠스틱 환경에서 이 두 종류의 스피커는 청취자에게 매우 상반된 형태로 소리를 전달합니다. 무지향은 전 방향으로 소리를 방사하므로 옆벽과 뒷벽의 반사음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반대로 지향성은 소리를 전면으로만 방사하기 때문에 음압 감쇄가 늦고 매우 균질한 음압 감쇄 특성을 갖죠. 그래서 무지향성과 달리 청취자 후면의 반사가 상대적으로 많지만, 전반적으로는 직접음이 많은 편입니다.
박지윤 - 우리의 하루
parkjiyoon9
팔콘랩 모델 503으로 박지윤의 ‘우리의 하루’를 들어보며 스윗 스팟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시청 위치를 옆으로 옮겨도 보컬의 음상 위치나 크기가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하이엔드 스피커에 비해 포커싱이 뚜렷하진 않지만 어떤 위치에서도 음상이 유사한 것은 때로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아주 집중해서 한 자리에서 음악을 듣는 공간일 경우엔 피에가가 더 유리하겠지만 청취 위치를 자주 바꿀 수밖에 없고 집중해서 듣는 경우가 아니라면 팔콘랩이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청취 스타일에 따라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Arthur Grumiaux
Philips Recordings 1955~1978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어보았습니다. 이 곡은 꽤 오래된 녹음이지만 당시 절정에 오른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음색 적인 부분을 비교해보기 좋습니다. 팔콘랩의 경우는 짜릿한 쾌감보다는 풍부한 배음 구조를 통해 무척 따스하고 온건하며 포근한 소리를 들려줍니다. 디지털 음원으로 재생했지만 오래 들어도 피로감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 소리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피에가는 매우 깨끗한 배경에 마치 세필로 그려 넣은 풍경화를 보듯 정밀하게 재생해주며 짜릿한 고역을 고해상도로 뿌립니다.
Czech Philharmonic - Aggressive Expansion
Film Music of Hans Zimmer, vol. 2
한편 한스 짐머의 영화음악 중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Aggressive Expansion’을 들어봅니다. 팔콘랩의 경우 전체 사운드 스테이징을 웅장하고 품위 있게 살려냅니다. 사운드 스테이징의 크기는 충분히 크지만, 외곽이 면도날처럼 잘라낸 소리가 아니라 풍부한 계조표현을 통해 우아하게 그려냅니다. 인위적인 모습이 없고 마치 공연장의 그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피에가를 사용해 듣자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녹음한 듯 소리가 매우 정교하게 바뀝니다. 사운드 스테이징이 눈에 그려질 듯 정밀하며 각 악기의 위치가 또렷하게 표현됩니다. 이건 마치 라이브 레코딩과 스튜디오 레코딩을 비교해 듣는 느낌입니다.
Mariah Carey & Whitney Houston - When you believe
From The Prince of Egypt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함께 한 ‘When you believe’에서 또 한 번 대단히 다른 양상의 사운드 스케이프가 펼쳐집니다. 예를 들어 팔콘랩 모델 503의 경우 전체적으로 음결이 싱그럽고 예쁘고 달콤한 소리로 일관합니다. 무대 크기를 과장하거나 킥드럼을 바위처럼 부풀리지도 않습니다. 기타는 찰랑거리며 모든 어쿠스틱 악기들의 배음이 매우 풍부합니다. 한편 피에가 Coax 711로 들어보면 포커싱이 또렷하게 맺히며 모든 악기 연주자와 보컬이 배에 힘을 주고 있는 듯 들립니다. 보컬의 억양과 바이브레이션까지 매우 세밀하게 파고듭니다.
시청회를 마치며
이번 시청회가 유의미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점은 각기 상반된 설계구조를 가진 스피커들이 과연 시청룸에서 어떻게 다른 소리를 표현하는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동일한 레코딩임에도 불구하고 팔콘랩이 라이브 레코딩을 듣는 듯한 느낌이라면 피에가는 스튜디오 녹음을 듣는 느낌을 줍니다. 한편 피에가는 음상이 정확히 맺히는 단 하나의 좌표를 찍어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집중해서 음악을 들어야 진가를 알 수 있다면 팔콘랩은 어느 자리에서도 유사한 소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음색 적으로도 차이는 매우 두드러집니다. 팔콘랩이 동양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음결을 들려준다면 피에가는 정밀하게 묘사한 서양의 유화를 연상시킵니다.
애초에 지향과 무지향 스피커의 비교 청음이 목적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음과 반사음의 비율에 따른 비교가 되기도 했다는 점도 유익했습니다. 또한 이런 특성은 실제 스피커를 구입해서 사용할 사용자 입장에선 대단히 중요한 요건이 됩니다. 무지향성 스피커는 반사음이 많기 때문에 공간의 영향이 크며 지향성 스피커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따라서 무지향성 스피커는 벽으로부터 어느 정도 널찍한 거리를 두어야 좋기 때문에 사용할 공간을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는 점도 명확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무언가 절대적으로 최고인 스피커는 없다는 결론입니다. 각각의 음악적 음향적 취향이 가장 먼저 존중되어야 하며 각각 활용할 수 있는 시청공간에 따라서 스피커 종류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도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시청회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