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라폰, 콜롬버스의 달걀!
Nura 드래건 페트로비치 CEO 인터뷰
한번 오디오에 대해 생각해보자. 스피커든 앰프든 제작자들은 최대한 평탄한 주파수 특성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계측한 내용을 그래프로 공개하고, 최대한 중립적인 음이라고 홍보한다. 좋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그렇게 최선을 다해 만든 오디오를 듣는 우리의 귀는 어떤가? 우리의 귀는 완벽하게 중립적이고, 평탄한 특성을 갖고 있을까?
이런 의문이 또 다른 의문을 낳고, 그것이 제품 개발로 이어져 지금 세계적인 주목을 이끄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바로 누라폰(Nuraphone)이다.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쇼에 화려하게 데뷔한 후, 곧장 우리에게도 선을 보였다. 이 회사의 수장인 드래건 페트로비치 (Dragan Petrovic) 씨의 방한을 계기로, 전반적인 메이커의 역사와 테크놀로지에 대해 알아봤다. 참고로 페트로비치 씨의 영문 이니셜 DP로 표기해서, 해당 내용을 정리해봤다.
인터뷰어 : 이 종학 (Johnny Lee)
인터뷰이 : 드래건 페트로비치 (Dragan Petrovic)
- 우선 누라폰이 국내에 생소한 만큼, 페트로비치 씨 자신부터 소개해주시죠.
DP :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저는 세르비아에서 1979년에 출생했습니다. 어릴 적이 부모님이 미국에 이주한 관계로 오랜 기간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호주 멜버른에 거주하면서 누라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요즘 세르비아에서 몇몇 브랜드가 핫하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쪽 출신이라는 점이 아무튼 흥미롭군요.
DP : 당시 세르비아는 정세가 불안했습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부친께서 미국으로 건너가셨다고 생각합니다. 미시시피 지역에 있는 대학의 교수로 초빙되었습니다. 전자 쪽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그 기술적 백그라운드를 인정받아 교수 자리를 얻었다고 하겠죠. 물론 당연히 음악을 좋아하셨고, 저 또한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 어릴 적에 특별히 좋아한 음악이 있습니까?
DP : 실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 큰 영향을 줬습니다. 이후 음악에 몰두하게 되었죠. 당연히 CD 컬렉션을 했고요. 고교 졸업 무렵 무려 200장이나 모았더군요. 한 장에 보통 20달러씩 주고 산 것을 생각하면, 용돈 대부분을 CD 구매에 투입한 셈이죠. (웃음)
- 당연히 오디오에도 관심을 가졌고요?
DP : 맞습니다. 실은 15살이 되던 해 여름에 모 대학의 물리학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신호 전송 시 어떻게 하면 파탄이 없이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죠. 여기서 받은 돈을 갖고 인근의 대도시인 멤피스로 갔습니다.
- 멤피스라고 하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레이스랜드가 떠오르는군요.
DP : 맞습니다. 거기서 스테레오 기기를 산 후,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 아들이 사용하고 있죠.
- 부전자전. 역시 아드님도 음악을 무척 좋아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럼 대학 졸업 후 어떤 계통의 일을 했습니까?
DP : 한 10년 정도 시그널 프로세싱에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무선 전송에 관련된 것이죠. 여기서 와이파이용 칩이라던가, GPS, 블루투스 등 다양한 제품의 개발에 관여했습니다.
- 이제 누라폰 이야기를 해볼까요? 우선 누라폰은 어떤 뜻인가요?
DP : 누라(Nura)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누라폰이라고 부르면 그 뉘앙스가 좋아서 만들어본 것이랍니다. (웃음)
- 그렇군요. 그럼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누라폰의 창업에 이르렀는지 궁금합니다.
DP : 현재 저의 파트너는 닥터 루크 캠벨(Luke Campbell)이라는 분입니다. 공동 창업자이면서 기술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죠. 원래 전공은 이비인후과, 그중에서도 귀와 관련된 쪽입니다. 고막 재생이나 달팽이관 문제를 수술로 해결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히어링 사이언스”(Hearing Science)쪽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실제로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 흥미롭군요. 그간 오디오쪽 관련 기술자들은 대개 전자 공학이나 뮤지션 등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청각 전문가가 나타나는 시대로 옮겨간 듯합니다.
DP : 누라폰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히어링 사이언스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어떻게 청각이 작용하느냐, 이 부분에 집중한 것이죠. 사실 저희는 악기를 다룰 줄도 모르고, 녹음 엔지니어도 아닙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합니다. 여기에 과학을 접목시킨 것이죠.
- 캠벨 씨와는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되었습니까?
DP : 이전 직장에서 일할 때, 저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부근에 살았습니다. 그때 알게 된 시모네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서로 관심사가 비슷해서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그분이 호주 멜버른으로 이주했으므로, 한동안 교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침 멜버른에 출장을 갈 일이 생겨서 연락해봤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저녁이나 먹자고 한 것이죠. 한데 시모네 교수가 흥미로운 친구 한 명을 데려가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괜찮다고 해서 만났는데, 그가 바로 닥터 캠벨입니다. 첫 만남부터 오디오와 청각에 대한 수많은 화제로 시간 가는 줄 몰랐죠.
- 거의 운명적인 만남이라 하겠군요.
DP : 사실 청각 연구에 관해서 멜버른은 무척 특화된 도시입니다. 1970년대부터 이 분야에 관해 연구하는 대학과 리서치가 많이 들어섰거든요.
- 멜버른에는 좋은 오디오 브랜드도 몇 개 있습니다. 그 배경에 히어링 사이언스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언제 누라폰을 창업했죠?
DP : 처음에는 닥터 캠벨과 가끔씩 만나면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정말로 뜻이 맞았지만, 일단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일이 제대로 되려면 아무래도 승부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각자 하던 일을 그만두고, 2016년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무려 2년간의 연구 개발 끝에 2018년에 제품이 나왔습니다. 올해 CES에 참가해서 큰 호응을 얻었고요.
- 그럼 누라폰이 추구하는 기술의 핵심 컨셉을 알려주시죠.
DP : 저희 기술을 이해하려면, 일단 인간의 청각 구조에 대해 알아봐야 합니다. 실은 지문처럼 사람마다 이 구조가 모두 다릅니다. 센서티비티도 다르고, 특정 대역에 대한 피크나 딥도 다 다릅니다. 일률적으로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을 우선 이해해야 합니다.
- 아, 그렇군요.
DP : 귀의 구조를 살펴보면, 외부에서 음성 신호가 유입될 때, 일단 고막에 전달됩니다. 그 파동은 세 개의 뼈로 이뤄진 구조에 의해 달팽이관으로 연결됩니다. 망치뼈-모루뼈-등자뼈 등으로 이뤄져 있죠. 이 세 개의 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전달된 음성 신호는 최종적으로 코트티 기관으로 갑니다. 일종의 나선형 터널인데, 이 안에 유모라는 털이 있습니다. 헤어 셀(Hair Cell)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신호를 해독해서 뇌에 보내는 것이죠.
- 상당히 복잡하군요.
DP : 당연히 사람마다 주파수 대응 특성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어느 정도 균등화(equalization)시키는 것이 저희의 메인 컨셉입니다. 피크 된 부분은 내리고, 딮으로 떨어진 쪽은 올리는 식이죠.
-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계측이 이뤄집니까?
DP : 기본 원리는 간단합니다. 사람의 귀라는 것은 외부의 소리만 듣는 것은 아닙니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음도 미세하게나마 바깥으로 배출합니다. 이 경우, 앞서 설명한 세 개의 뼈가 역으로 작동해서 고막을 두드립니다. 그러면 그 음성 신호가 고막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죠. 저희 헤드폰에는 나사(NASA)에서 개발한 특수한 마이크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신호를 분석해, 해당 유저의 청각 특성을 알아냅니다. 이후 어떤 음악을 듣던, 균등화 작업을 통해 교정된 음으로 전달합니다.
- 아, 정말 대단합니다. 그럼 측정은 어떤 식으로 이뤄집니까?
DP : 휴대폰을 사용해서 누라폰 앱을 다운받으십시오. 저희가 제공한 프로그램을 따라가면 됩니다. 한국어 지원도 됩니다. 단, 사람마다 귓구멍의 구조나 크기가 달라, 자신에 맞는 사이즈의 링을 선택해야 합니다.
- 만일 이런 계측이 쭉 이어져서 하나의 빅 데이터가 된다면, 여러모로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나이에 따라 혹은 인종이나 국민에 따라 일정한 그룹이 형성되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DP : 아직 준비 중에 있습니다만,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나중에 홈이나 카 오디오쪽에도 적용해보려고 합니다.
- 그렇군요. 그럼 누라폰만이 가진 특별한 기술에 관해 설명해주시죠.
DP : 저희는 배경을 정숙하게 만드는데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므로 최대한 귀에 밀착해서 음악이 전달되길 원했습니다. 저희 제품의 구조를 보면, 중앙에 관 같은 게 있는 가운데, 그 주변으로 긴 흠이 여러 개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앙의 관은 중고역과 관계되고, 그 주변은 저역과 관계됩니다. 그리고 관을 완전히 귓구멍에 밀착시켜 일종의 실딩 처리가 이뤄집니다. 그 경우, 배경의 소음이 없이,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을 이노바(INOVA)라고 부릅니다.
- 이렇게 되면, 예를 들어 누가 말을 걸거나, 전화가 걸려오면 어떻게 됩니까?
DP : 소셜 모드(Social Mode)가 있습니다. 헤드폰을 살짝 두드리면 바로 활성화가 됩니다. 그 경우, 바깥 소리가 명료하게 들려옵니다.
- 실제로 실험해봤더니 정확하게 작동하는군요. 무척 신기합니다.
DP : 임머션 모드(Immersion Mode)도 있습니다. 더욱 베이스를 강하게 듣고자 원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사실 누라폰을 듣고 놀란 것은, 중고역의 선명도도 좋지만, 역시 저역에서 정말 압도적입니다. 헤드폰으로 마치 가슴을 두드리는 듯한 저역을 듣는 것은 처음입니다.
DP : 저희는 외부 노이즈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클린 ANC라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은 듀얼 레이어로 패시브 타입의 아이졸레이션을 실시한 후, 액티브 타입으로 노이즈 캔슬레이션까지 동원합니다.
- 아무래도 버스나 비행기를 탈 때 해드폰을 많이 쓰기 때문에 노이즈 대책이 절실합니다. 이 부분에서 확실히 앞서 가는 기술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앱으로 체크할 때 동그란 형태의 원이 보입니다. 이게 뭘 뜻하나요?
DP : 사람마다 다른 주파수 특성을 동그랗게 말아서 하나의 형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12시 방향이 저역이고, 오른쪽으로 올라갈수록 고역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 원을 튀어나오면 피크, 안으로 들어가면 딮이라 보면 됩니다.
- 이렇게 원으로 형상화하니 더욱 쉽게 자신의 음향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군요. 아무튼, 한동안 다양한 헤드폰이 출시되었다가 요즘 뜸한 상황인데, 정말로 적시에 멋진 제품이 나왔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DP : 감사합니다.
결론) 콜롬버스의 달걀을 아는가? 정말 혜안이 담긴 접근법이 아닐까 싶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귀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고, 적절한 교정을 통해 정확한 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청력에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시력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일정한 연배가 있는 오디오파일 들에게 더 매력적인 제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처음 안경을 낀 날을 평생 잊지 못하는데, 본 기는 그런 면에서 매우 획기적인 순간을 내게 제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