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회 시청회 후기
오디오 세팅, 2시간 동안 소리가 6번 바뀌었다
오디오가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건드릴 때마다 소리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케이블이나 기기 변경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스피커 점퍼선이나 인슐레이터만 바꿔도 소리가 확확 바뀝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예전 스피커 케이블을 살짝 공중부양시켜 큰 재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같은 사연이 서너 개씩은 있을 것입니다.
283회 하이파이클럽 시청회는 바로 이러한 ‘세팅의 매직’을 주제로 다채롭게 진행됐습니다. 액세서리 투입, 파워 케이블 및 스피커 케이블 교체, 기기 변경 등으로 하나하나 세어보니 2시간 동안 무려 6번이나 소리가 바뀌었습니다. 사실 하이파이클럽에서 지금까지 진행해온 수많은 시청회도 이러한 세팅의 결과물입니다. 기기를 그저 서로 연결하기만 해서는 회원님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없기 때문이죠.
일단 이번 시청회의 핵심 기기들입니다.
네트워크플레이어 : Waversa Systems W Router
DAC : Aqua Acoustics Quality La Voce S3
DAC 파워케이블 : Synergistic Research UEF Black AC Power Cord
프리앰프 : Electrocompaniet EC4.8
파워앰프 : Electrocompaniet AW250R
스피커 : B&W 802 D3
스피커케이블 : AudioQuest Aspen Single Wire
그리고 이들 중 일부를 대신해 투입했거나 새로 투입돼 음질 변화를 일으킨 기기와 액세서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접지 노이즈 및 역기전력 제거 액세서리 : Increcable MVD-Earth EBD-1, EBA-1
스피커케이블 리프터 : Hifistay Sound Wings Speaker Kits
파워케이블 : Cardas Clear M Power
스피커케이블 : AudioQuest William Tell Zero+Bass Biwire
업스케일러 : Chord Electronics Hugo M-Scaler
DAC : Chord Electronics Hugo TT 2
음질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반복해서 시청한 곡은 총 3곡입니다.
Eric Clapton ‘Wonderful Tonight’(24 Nights)
Celtic Woman ‘Ride On’(Destiny)
김광석 ‘이등병의 편지’(김광석 다시부르기)
1단계 변신 : La Voce S3에 MVD-Earth EBD-1 투입
아쿠아 어쿠스틱 퀄리티의 La Voce S3는 자연스럽고 향이 진한 아날로그 사운드를 들려주는 디스크리트 R2R DAC입니다. 오버 샘플링을 일절 하지 않은 채로 PCM은 24비트/384kHz까지, DSD는 DSD128까지 지원합니다. 일렉트로콤파니에의 EC4.8은 음색을 중시하는 질감형 프리앰프, AW250R은 스피드와 정확성이 뛰어난 파워앰프, 802 D3는 구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스피커계의 대표적인 올라운드 플레이어입니다.
Eric Calpton - Wonderful Tonight
24 Nights
우선 La Voce S3로 에릭 클랩튼의 ‘Woderful Tonight’를 들어봤습니다. 역시 두텁고 묵직한 저역, 자연스러운 해상력이 R2R 래더 DAC 다운 소리를 내줍니다. 기대했던 대로 온기도 느껴지네요. 하지만 재생음 곳곳이 듬성듬성한 느낌, 정보량이 약간 부족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인크레커블의 MVD-Earth를 투입했습니다. MVD-Earth는 ‘MVD’(Mechanical Vibration Decoupling)가 뜻하는 것처럼 진동제어 댐퍼 역할과 함께 섀시 접지, 회로 접지를 통해 사운드를 개선해주는 액세서리입니다. 디지털 기기용 EBD-1 모델을 La Voce S3 DAC 위에 올려놓고 전용 케이블을 DAC 후면 디지털 단자에 꽂아주면 됩니다.
다시 ‘Wonderful Tonight’을 들어보니, 곡 초반에 들려오는 환호하는 관객 수가 단번에 늘어났습니다. 고역의 정보량도 늘어나는 등 전체적으로 풍성하고 윤택한 음으로 변모했습니다. 소릿결이 매끄러운 점, 음의 밀도감이 높아진 점도 확연합니다. La Voce S3가 이제서야 제 실력을 발휘한다는 느낌이네요. 접지 노이즈가 그만큼 많이 끼어있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MVD-Earth 밑에 붙은 댐퍼도 기대 이상으로 섀시 진동을 잡아준 것 같습니다.
MVD-Earth를 빼니 소리가 가벼워지고 DAC이 왠지 의기소침하고 메마르며 밋밋한 성향으로 바뀝니다. 정보량이 엄청나게 줄어든 듯한 느낌이네요. 다시 투입해보면, 활기와 디테일이 늘어나고 음의 온기와 무게감도 늘어났습니다. 이 변화는 시청회 참석자분들도 거의 인정하셨습니다.
2단계 변신 : 파워케이블 UEF Black vs Clear M Power
지금까지는 La Voce S3에 시너지스틱 리서치의 UEF Black 파워케이블을 꽂은 상태로 들은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MVD-Earth EBD-1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Wonderful Tonight’을 한 번 더 들었습니다. 파워 케이블을 바꾸기 전에 다시 한번 사운드 성향을 기억해두기 위해서죠. 역시 폭신폭신한 촉감에 정보량과 에너지가 많은 그런 소리입니다. 확실히 MVD-Earth를 투입하기 전보다 노이즈가 줄어든 상태입니다.
이번에는 미국 카다스의 Clear M Power 파워케이블로 교체를 해봤습니다. 물론 MVD-Earth EBD-1은 계속해서 La Voce S3 위에 올려놓아둔 상태입니다. Clear M Power는 카다스의 상급 라인인 Clear Beyond Power를 트리클 다운한 모델로, 가격은 시너지스틱 리서치의 UEF Black과 비슷합니다.
가장 큰 변화는 노이즈가 거의 ‘박멸’ 수준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배경이 조용해지다 보니 해상도가 덩달아 높아지고 약음이 훨씬 생생하게 들립니다. 차분하고 단정한 모습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에너지감과 활기, 소릿결의 부드러운 감촉은 UEF Black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3단계 변신 : 802 D3에 MVD-Earth EBA-1 투입
앞서 1단계 변신의 주인공이었던 MVD-Eerth는 스피커로부터 오는 역기전력을 줄여주는 일도 합니다. 이는 아날로그 기기에 연결하는 EBA-1 모델의 전매특허인데요, 본체에 매달린 전용 케이블을 스피커의 마이너스(-) 단자에 꽂아주면 됩니다.
역기전력은 잘 아시는 대로 1) 저역 우퍼의 진동판이 움직여서 생긴 운동에너지가 2) 스피커 모터시스템(보이스코일+마그넷)에 의해 생성시킨 전기에너지입니다. 문제는 싱글와이어링의 경우 이 역기전력이 점퍼선을 타고 고역 유닛들의 움직임을 교란시킨다는 것이죠.
Celtic Woman - Ride On
Destiny
MVD-Earth EBA-1을 투입하자 셀틱 우먼이 갑자기 흉성으로 ‘Ride On’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음의 윤곽선이 또렷하고 에너지감이 늘어난 것도 기분 좋은 변화입니다. 이어 EBA-1을 빼버리면, 저역이 흐리멍덩해지고 음들 곳곳이 뭉개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보컬이 입으로만 노래를 부르네요.
다시 EBA-1을 투입하면 다이내믹스와 다이내믹 레인지가 늘어나고, 배음과 정보량이 확연하게 늘어났습니다. 보컬은 다시 흉성으로 노래하고 전체적인 재생음의 성향이 아날로그적인 색채를 드러냅니다. 스피커 역기전력이 오디오 시스템에 이렇게 큰 폐해를 끼치고 있음을 새삼 절감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4단계 변신 : La Voce S3 vs Hugo M-Scaler + Hugo TT 2
이번에는 소스 기기라 할 DAC을 통째로 바꿔봤습니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금까지 애썼던 La Voce S3를 빼고 코드의 Hugo M-Scaler와 Hugo TT 2를 한꺼번에 투입했습니다. MVD-Earth EBD-1은 계속해서 살아남았는데 이번에도 디지털 기기(Hugo TT 2)의 디지털 입력단에 전용 케이블을 연결했습니다.
Hugo M-Scaler는 코드의 전매특허인 WTA(Watts Transient Alignment) 필터의 탭 수가 100만 개에 이르는 업 스케일러입니다. WTA 필터는 업 샘플링에 동원되는 FIR(정형 임펄스 응답) 필터의 일종인 만큼, 탭 수가 100만 개라는 것은 디지털의 점과 점 사이를 추정해 채우는 수학 연산을 100만 번 수행하는 셈입니다. 코드의 플래그십 DAC인 DAVE가 16만 4000개 탭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입니다.
Hugo M-Scaler는 이 같은 100만 개 탭의 WTA 필터를 통해 듀얼 BNC로 코드 DAC와 연결할 경우 PCM은 최대 705.6/768kHz까지 업 샘플링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싱글 S/PDIF로 일반 DAC과 연결하면 최대 352.8/384kHz까지만 업 샘플링을 수행합니다.
Hugo TT 2는 PCM은 768kHz까지, DSD는 DSD512까지 대응하는 데스크톱 DAC입니다. 코드 DAC인 만큼 업 샘플링은 WTA 필터를 통해 이뤄지는데, 전작인 Hugo TT는 그 탭 수가 2만 6368개였던 데 비해 이번 Hugo TT 2에서는 9만 8304개로 무려 4배가 늘어났습니다. 물론 Hugo M-Scaler와 연결하면 내장 WTA 필터는 바이패스하게 됩니다.
M-Scaler와 Hugo TT 2를 투입한 상태에서 에릭 클랩튼의 ‘Wonderful Tonight’을 다시 들어보니, 무대의 공간감과 현장감이 대폭 늘어나고, 뮤지션과 관객의 이미지가 그야말로 3D로 나타납니다. 배경이 보다 정숙해지고 디테일이 늘어난 점도 특징입니다. 곡 중간 차임 소리가 더 잘 들리는 점, 소릿결이 곱고 매끈한 점도 도드라집니다. M-Scaler가 코드 DAC의 성향을 완전히 변모시켰다고 볼 수 있는 소리였습니다.
김광석 - 이등병의 편지
다시부르기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에서 나오는 하모니카 소리를 M-Scaler + Hugo TT 2 조합으로 들어보면 사람이 호흡으로 부는 악기 소리임이 분명하지만, M-Scaler 없이 Hugo TT 2로만 들어보면 상대적으로 기계가 하모니카를 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일부 참석자분은 “마치 사이렌 소리 같기도 하다”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이후 시청회는 코드의 이 듀오를 투입한 상태로 진행됐습니다.
5단계 변신 : 스피커 케이블 싱글 와이어링 vs 바이 와이어링
시청회 2부는 스피커를 싱글 와이어링으로 구동할 때와 바이 와이어링으로 구동할 때의 음질 변화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1부에서 터줏대감으로 활약했던 오디오퀘스트의 Aspen 싱글 와이어 스피커 케이블 대신 올해 새로 출시된 William Tell Zero+Bass 바이 와이어 스피커케이블을 투입한 것이죠.
윌리엄 텔 제로+베이스 케이블은 단품으로 판매되는 풀 레인지용 Zero 스피커 케이블을 고역용으로, 중저역용 Bass 스피커 케이블을 중저용으로 한 데 묶은 바이 와이어링 전용 스피커 케이블입니다. 앰프 쪽 단자는 플러스(+), 마이너스(-) 바나나 플러그 단자가 1개씩 달렸지만, 이후에는 엄연히 2개 케이블 각각에 스페이드 플러그가 각각 2개씩 달린 바이 와이어입니다.
오디오퀘스트에 따르면 윌리엄 텔 시리즈에는 스피커 케이블에 고유한 특성 임피던스를 말 그대로 제거해주는 ‘Zero Chararacteristic Impedance Technology’를 투입, 고역쪽 트랜지언트 특성과 저역의 다이내믹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합니다. 또한 Bass 스피커 케이블에는 접지 노이즈와 RF, EMI 노이즈를 없애주는 ‘GND(Ground Noise Dissipation) Technology’가 투입됐습니다.
먼저 Aspen 싱글 와이어 케이블로 에릭 클랩튼의 ‘Wonderful Tonight’을 들어봤습니다. 엄정한 비교를 위해 802 D3 단자에 꽂혀있던 MVD-Earth EBA-1은 뺀 상태입니다. 음수와 정보량, 디테일, 배음, 공간감, 에너지감 등 어디 하나 불만이 없는 음입니다. 다만 역기전력 때문인지 보컬이 약간 빅마우스로 부풀어 오르는 점이 거슬립니다. MVD-Earth의 빈자리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셀틱 우먼의 ‘Ride On’에서도 보컬이 부풀어 오릅니다.
이제 William Tell Zero+Bass 바이 와이어를 투입했습니다. 물론 802 D3의 점퍼선은 뺀 상태입니다. ‘Ride On’은 쿵 소리가 날 만큼 저역의 펀치감이 급상승한 가운데 보컬이 실물 사이즈로 단단하게 맺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북소리의 위치가 선명한 점도 큰 변화입니다. ‘Wonderful Tonight’은 음의 윤곽선에 색 번짐이 완전히 사라졌고 무대가 싱글 와이어링 때보다 더욱 넓어졌습니다. ‘802 D3는 무조건 바이 와이어링을 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6단계 변신 : William Tell 바이 와이어링 케이블에
Sound Wings Speaker Kits 투입
바이 와이어링에 의한 사운드 변신에는 한 가지 숨은 공신이 있었습니다. 윌리엄 텔 바이 와이어 스피커 케이블 밑에 하이파이 스테이의 Sound Wings Speaker Kits를 놓아둔 것입니다. 이 사운드 윙즈 스피커 키트는 스피커 체결 부위 근처에 놓는 사운드 윙즈 2개, 중간 케이블 밑에 놓는 사운드 윙즈 브릿지(Bridge) 4개로 이뤄진 세트입니다.
사운드 윙즈의 경우 케이블이 올려지는 부분에는 실리콘 밴드가 있어 1차 진동제어(탄성)를 하고, 베이스 부분에는 3중 레이어 하우스 사이에 고정밀 세라믹 볼이 6개가 투입돼 2차 진동제어(진자운동)를 합니다. 살짝 건들어 보면 마치 젤리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는데, 이를 통해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바이브레이션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게 됩니다.
이 사운드 윙즈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는 이 6개 키트를 동시에 빼버린 순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Ride On’의 경우 저역이 그냥 밑으로 빠져버리고 중고역 보컬은 약간 거칠어졌습니다. 다시 투입해보니 음들이 다시 원기왕성하고 색채감이 또렷해졌습니다. 진하고 맛깔스러운 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최종 비교 : La Voce S2 + 싱글 와이어링 vs
Hugo TT 2, M-Scaler + 바이 와이어링 + 케이블 리프터
이렇게 해서 화려했던 6단계 트랜스포머 쇼는 막을 내렸습니다. 끝으로 과연 음이 시청회를 시작했을 때보다 얼마나 바뀌었는지 최종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La Voce S3 DAC에 싱글 와이어링을 했을 때 소리(A)와 코드 Hugo M-Scaler와 Hugo TT 2 조합에 바이 와이어링 및 사운드 윙즈 조합을 결합시켰을 때 소리(B)를 비교해본 것이죠.
역시 사람 귀는 시청회 2시간 동안 가장 좋았던 소리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간사했습니다. A 상태에서 ‘Ride On’을 들어보면 익숙한 소리이긴 한데 역시나 상대적으로 덜 다듬어진 소리라고 느껴졌습니다. 잠시 세팅을 바꾼 후 B 상태에서 들어보니, 거의 모든 것이 바싹 조여진 소리, SNR이 높은 소리, 3D 이미지가 잘 잡히는 소리,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어진 소리, 공간감이 가득한 소리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총평
액세서리 투입 및 기기 변경으로 소리가 확확 바뀌는 것을 한자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터줏대감으로 자리한 프리 파워 앰프와 스피커의 기본 됨됨이가 받쳐줬기에 가능했던 것이겠죠. MVD-Earth나 Sound Wings 같은 액세서리의 경우 없던 소리를 만들어낸 게 아니라 낼 수 있었던 소리를 끄집어내준 것이니까요. 또한 파워 케이블이나 바이 와이어링 케이블도 앞뒷단의 기기들이 부실했었다면 제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밖에 코드 M-Scaler와 Hugo TT 2 조합도 눈부신 음질 상승을 이끌어낸 주인공이었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