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보통의 스피커는 지향성(diretivity)입니다. ‘지향성’이라는 단어가 쉽게 입에 붙지 않아서 그렇지, 전면에 유닛이 달린 스피커들이 대표적인 지향성 스피커입니다. 이런 스피커는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들을 때 음량을 비롯해 음향 특성이 저마다 다릅니다. 물론 가장 잘 들리는 것은 앞에서 들을 때입니다. 이렇게 방향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고 해서 ‘지향성’이라는 말을 붙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지향성(non-directivity) 스피커는 어떤 스피커일까요. 어느 방향에서 듣더라도 소리가 달라지지 않는 스피커이겠지요. 즉 유닛에서 나오는 재생음이 앞뒤 좌우 모든 방향에서 골고루 퍼져나가는 스피커입니다. 무지향 스피커를 전방향(omni-directional) 스피커라고도 부르는 이유입니다. 독일 MBL은 자신들의 무지향 스피커를 라디알슈트랄러(Radialstrahler)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방사형(radial) + 방사기(Strahler)’의 조어입니다.

293회 하이파이클럽 시청회는 이러한 무지향, 360도 방사형 스피커 4종을 한자리에서 비교 시청해본 자리였습니다. 독일 MBL의 111F, 헝가리 베이즈 오디오(Bayz Audio)의 Courante(쿠랑트), 독일 듀에벨(Duevel)의 Sirius(시리우스), 일본 팔콘랩(FalconLab)의 Model 707(모델 707)이 주인공입니다. 이들 무지향 스피커가 한자리에 모인 경우는 아마 국내 최초는 물론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청회 세팅

시청회는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혼 모양의 가이드가 달린 듀에벨의 시리우스와 팔콘랩의 707이 1부, 고역 트위터가 직접 360도 방사음을 내는 MBL의 111F와 베이즈 오디오의 쿠랑트가 2부에 각각 등판했습니다. 이들을 울린 소스기기와 프리, 파워앰프는 모두 MBL 제품입니다. 상위 노블라인(Noble Line)의 CDP/DAC N31, 프리앰프 N11, 모노블록 파워앰프 N15가 위용을 뽐내며 하이파이클럽 메인 시청실에 자리 잡았습니다. 네트워크 뮤직서버는 오렌더의 W20 SE입니다.

시청은 1, 2부 모두 동일한 8개 음원을 계속해서 들어본 후 스피커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음원은 오렌더 앱으로 타이달(Tidal) 스트리밍 음원을 선택했습니다. N31은 PCM 24비트/192kHz, DSD64 사양의 DAC을 내장한 CDP이고, N11은 최대 출력전압을 2V로 유지하는 유니티 게인을 채택한 프리앰프입니다. MBL 고유의 증폭 방식(LASA 2.0)을 채택한 N15는 4옴에서 560W를 뿜어냅니다.

듀에벨 Sirius

먼저 들어본 것은 듀에벨의 시리우스였습니다. 듀에벨은 독일 오스나브뤼크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마르커스 듀에벨(Markus Duevel)이 1988년에 설립한 무지향 스피커 전문 제작사입니다. 현재 6개 스피커로 라인업이 짜였는데, 시청회 주인공인 시리우스 위에 최신 플래그십으로 등장한 Sirius BE(시리우스 BE)가 있고, 시리우스 밑에 Bella Luna(벨라 루나), Venus(비너스), Enterprise(엔터프라이즈), Planets(플래니츠)가 포진했습니다.

시리우스는 위에 네모난 박스가 있고 그 밑에 나팔 모양의 나무 혼이 2개, 그 밑에 네모난 인클로저가 있는 스피커입니다. 맨 위 박스 밑에는 5인치 나이트리드-티타늄 트위터가 장착돼 밑으로 고음을 방사하면 2개 혼 사이로 음들이 360도 방사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래 인클로저 위에는 12인치 카본 미드우퍼가 장착돼 위로 중저음을 방사하면 그 위에 있는 혼에 부딪혀 역시 360도로 음들이 방사됩니다.

따라서 시리우스는 기본적으로 2웨이, 2유닛 스피커이며 저역 튜닝은 베이스 리플렉스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하단 인클로저 후면에 이를 위한 커다란 포트가 나 있습니다. 트위터는 직경 130mm의 네오디뮴 링 마그넷과 노멕스(Nomex) 보이스코일 포머를 채택했고, 미드우퍼는 직경 26mm의 네오디뮴 마그넷을 16개개 채택했습니다. 공칭 임피던스는 6옴, 감도는 93dB, 주파수 응답 특성은 30Hz~23kHz(+,-3dB)를 보입니다. 무게는 65kg입니다. 스피커 터미널은 싱글 와이어링만 지원합니다.

팔콘랩 Model 707

팔콘랩은 1999년 설립된 일본 제작사로 시청기인 모델 707이 플래그십이고 그 밑으로 503, 401, 301, 201, 그리고 PC파이용 M20i이 있습니다. 물론 전 모델이 무지향 스피커입니다. 팔콘랩의 무지향 방식도 듀에벨과 비슷합니다. 유닛에서 나오는 음을 혼 모양의 가이드에 부딪혀 음들이 360도로 퍼져나가게 하는 것이죠. 다른 점은 무델 707의 경우 12인치 우퍼 2발이 하단 인클로저 정면에 수납됐다는 것입니다.

모델 707은 4웨이 5유닛 스피커입니다. 외관상으로는 상단 3개 알루미늄 기둥에 의해 지지되는 2개의 원반 모양 혼이 눈길을 끕니다. 상단 혼에는 1인치 티타늄 트위터가 위를 향해 장착돼 그 위에 올려진 조그만 알루미늄 웨이브 가이드와 자신을 수납한 혼 가이드를 통해 음들을 360도 방사시킵니다. 하단 혼에는 2인치 티타늄 컴프레션 드라이버가 역시 위를 향해 장착돼 상단 혼과 하단 혼 사이로 중고역을 360도 방사시키고, 하단 인클로저 위에는 12인치 펄프 콘 우퍼가 위를 향해 장착돼 하단 혼 곡면을 이용해 중저역을 360도로 뿌려줍니다.

스펙을 살펴보면, 공칭 임피던스는 6옴, 감도는 93dB, 주파수 응답 특성은 35Hz~45kHz를 보입니다. 듀에벨의 시리우스와 마찬가지로 혼을 단 스피커답게 감도가 아주 높네요. 4웨이 스피커인 만큼 크로스오버는 280Hz, 1.3kHz, 10kHz에서 이뤄지는데, 정면을 향한 우퍼 2발이 280Hz 이하 저역, 위를 향한 우퍼가 280Hz~1.3kHz 중저역, 하단 혼에 박힌 컴프레션 드라이버가 1.3kHz~10kHz 중고역, 맨 위 트위터가 10kHz 이상을 커버합니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하단 인클로저 밑바닥에 있고 스피커 터미널은 바이와이어링을 지원합니다. 무게는 81kg입니다.

Sirius vs Model 707

Michael Buble - Fly Me To The Moon

buble!

시청회 첫 곡을 우선 듀에벨의 시리우스로 들어봤습니다. 처음부터 선도가 높은 음이 흘러나옵니다. 확실히 일반 지향성, 그러니까 유닛에서 전면으로만 음이 나오는 스피커와는 촉감이 완전히 다른 재생음입니다. 지향성 스피커의 경우 세팅을 잘 하면 무대 중앙에 음상이 실제보다 더 핀포인트로 맺히는데, 시리우스 스피커는 그냥 현장의 악기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역대를 12인치 미드우퍼 한 발이 책임지기 때문에 저역의 양감은 예상대로 많지 않지만 대신 맑고 깨끗한 점도 매력입니다. 이에 비해 팔콘랩의 모델 707은 저역대를 12인치 3발이 담당하므로 저역의 양감이 훨씬 많습니다. 보컬의 음상 역시 자기 자리를 확실히 지키는 모습이네요. 시리우스에 비해 음의 밀도감이 좀 더 단단해진 점도 차이를 보입니다.

Jan Kraybell

Organ Symphony No.6

Organ Polychrome-The French School

시리우스로 들어보면, 가상의 사운드스테이지가 두 스피커를 싹 밀어버린 느낌입니다. 모델 707로 들어보면, 시리우스에서는 그냥 지나쳤던 파이프 오르간의 육중한 초저역이 쇠 느낌을 보태며 강력하게 터져 나옵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에너지감이라 할 만했습니다. 하지만 디테일에 있어서는 시리우스가 좀 더 앞서는 느낌인데, 이런 점에서 모델 707은 앰프 매칭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Neeme Jarvi, Royal Scottish National Orchestra

Danse Macabre

Saint-Saens

시리우스의 경우 음들이 술술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이 곡의 경우 저역이 모자란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고역은 계속해서 맑고 투명한 매력을 선사하고, 순간적으로 치고 빠지는 모습에서는 박진감마저 느껴집니다. 특히 금관악기 소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들리는 점이 큰 매력이네요. 그러나 음수가 쏟아져 나올 때는 해상력에서 약간 한계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모델 707로 들어보면 확실히 음의 파괴력과 단단함, 무게감이 돋보입니다. 음수가 많아질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해상도가 높아지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어쨌든 점점 무지향 스피커의 음에 익숙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광석 - 이등병의 편지

다시 부르기 1

시리우스는 아주 섬세하고 나긋나긋하며 입자감이 높은 음을 들려줍니다. 순하디 순한 음, 표정에 그늘이 없는 음이네요. 모델 707은 저역의 넘쳐나는 양감 때문인지 음이 확 트인다는 느낌은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대신 이 노래를 불렀던 당시 30대 김광석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에 비해 시리우스는 하모니카 소리는 보다 선명했지만 왠지 김광석의 나이가 20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모델 707에서 묘한 빈티지 스피커 느낌이 나는 점도 꼭 언급해두고 싶습니다.

Daft Punk - Get Lucky

Random Access Memories

시리우스가 들려준 킥드럼의 펀치감과 에너지감은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게인이 높게 녹음된 곡은 저역의 해상도도 높은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저분하거나 갑갑한 기분이 들지 않고 계속해서 깨끗하고 맑은 음을 들려주는 시리우스 스피커입니다. 모델 707에서는 저역의 펀치력이 마치 클럽에 온 것처럼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음의 압력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가슴이 ‘두근두근’ 그냥 반응을 해버립니다. 무대도 훨씬 커졌네요. 하지만 무대 자체는 뒤로 약간 물러났고 저역 해상력은 약간 줄어든 것 같습니다.

Dave Weckl - Heads Up

Heads Up

시리우스는 탁 트이고 시원시원한 음을 쑥쑥 들려줍니다. 밝고 선명한 음이네요. 그리고 무지향 스피커의 최대 매력은 역시 ‘스피커가 사라진다’는 것임을 시리우스로 들은 이 곡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현장에서 노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일반 지향성 스피커보다 훨씬 강합니다. 모델 707 역시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면서도 시리우스보다 윤곽선이 진하고 밀도감이 단단한 음을 토해냅니다. 저역의 에너지와 양감, 귀가 아니라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모습도 여전합니다.

Carla Bruni - The Winner Takes It All

French Touch

시리우스로 들어본 칼라 부르니의 촉촉한 목소리는 그야말로 황홀 그 자체입니다. 그녀의 실체감이랄까, 존재감이 지향성 스피커 때보다 도드라집니다. 음이 유닛에서 출발한다는 느낌도 없습니다. 그냥 음들을 무대에 흩뿌려놓았다는 느낌입니다. 모델 707로 들어보면 시리우스에 비해 음의 밀도감은 빽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늘어나지만 중고역의 해상력은 시리우스에 비해 밀리는 것 같습니다. 두 스피커 형상은 비슷한데 우퍼 구성 때문인지 음의 무게감이라든가 밀도감에서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푸근하고 호소력이 있는 쪽은 역시 모델 707입니다.

MBL 111F

독일 MBL이 처음 무지향 스피커인 라디알슈트랄러 mbl 100을 내놓은 것은 설립 바로 그 해인 1979년입니다. 따라서 MBL의 무지향 스피커 역사는 40년이나 되는 셈이죠. MBL 라디알슈트랄러 유닛의 기본 원리는 라멜라(lamella)라는 얇은 금속판 여러 장을 이어붙인 꽃봉오리 모양의 진동판을 동심원상으로 움직여 소리를 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진동판 윗부분이 축에 고정돼 있고, 아래쪽 라멜라들은 마그넷과 코일에 의해 위아래로 움직이니까 결국 진동판이 부풀고 수축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른 스피커 유닛과 마찬가지로 라디알슈트랄러 역시 꽃봉오리 진동판 지름이 작을수록 고역대, 클수록 중저역대를 담당합니다. 시청 모델인 mbl 111F의 경우 맨 위에 있는 작은 유닛이 라디알슈트랄러 트위터, 그 밑에 조금 더 큰 유닛이 라디알슈트랄러 어퍼 미드레인지입니다. 트위터(HT37)는 24개의 카본 섬유 라멜라, 어퍼 미드레인지(MT50)는 12개의 카본 섬유 라멜라가 투입됐습니다. 참고로 상위 모델인 mbl 101E mk2는 우퍼까지 라멜라 구조의 라디알슈트랄러입니다.

이에 비해 mbl 111F는 중저역대 이하를 일반 인클로저에 수납된 우퍼들이 담당하는 하이브리드 구조입니다. 중저역대는 상단 인클로저 양옆에 한 발씩 장착된 6인치 알루미늄 콘 유닛이, 저역대는 하단 인클로저 양옆에 역시 한 발씩 장착된 8.6인치 알루미늄 콘 우퍼가 담당합니다. 6인치 콘 유닛은 인클로저 내부에서 알루미늄 바로 연결돼 푸시푸시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이는 콘 움직임에 따른 인클로저의 진동을 사전에 차단시키는 동시에 저역 재생능력을 키우려는 설계입니다.

mbl 111F는 이렇게 8.6인치짜리 우퍼 2발을 통해 저역대는 24kHz까지, 라디알슈트랄러 트위터를 통해 고역대는 40kHz까지 커버합니다. 4웨이 방식이기 때문에 크로스오버는 170Hz, 750Hz, 3.5kHz에서 이뤄지며, 슬로프는 아주 가파른 4차 오더(-24dB)로 짰다고 합니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하단 인클로저 뒷면에 큼지막하게 하나가 나 있습니다. 공칭 임피던스는 4옴, 음압은 83dB에 그치기 때문에 앰프 선정에 아주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MBL이 앰프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렇게 낮은 음압의 라디알슈트랄러 스피커를 제대로 울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베이즈 오디오 Courante

이번 무지향 스피커 4기종 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디자인은 베이즈 오디오의 쿠랑트일 것입니다. 쿠랑트는 2018년 4월 출시 때부터 그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해 오디오파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무지향 스피커입니다. 처음 볼 때는 원통 모양의 수도관을 위아래 붙인 것 같기도 하고, 가운데 트위터 부분은 마치 커피포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보기와는 달리 한 손으로 번쩍 들을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점도 역시 카본 재질로 인클로저를 만든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쿠랑트는 전면 가운데에 길게 실린더 모양으로 늘어진 트위터가 360도로 움직이며 2kHz 이상의 고음을 방사합니다. 베이즈 오디오에서는 이 유닛을 BRS(Bayz Radial Speaker)라고 부르는데, 한마디로 라디알 트위터인 셈이죠. 일반 돔 트위터보다 방사면적이 30~50배에 달하고 스피드도 훨씬 빠르다고 합니다. 어쨌든 트위터 유닛 자체가 무지향 음을 방사한다는 점에서 MBL 111F의 라디알슈트랄러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중저역대는 이 라다일 트위터를 위아래에서 잡아주는 인클로저에 각각 장착된 미드우퍼 2발이 담당합니다. 이집트 파피루스 진동판을 단 이 미드우퍼는 SB 어쿠스틱스, 스캔스픽 등에서 하이엔드 진동판을 디자인한 프랭크 닐슨(Frank Nielson)이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카본 인클로저는 안드라스 볼로스크주크(Andras Volscsuk)가 만들었는데 그는 포뮬라 1 모노코크를 위해 새로운 카본 소재를 개발한 전문가입니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후면에 2개가 나 있고 스피커 터미널은 싱글 와이어링을 지원합니다. 주파수 응답 특성은 28Hz~22kHz, 공칭 임피던스는 4옴, 감도는 90dB를 보입니다.

111F vs Courante

Michael Buble - Fly Me To The Moon

buble!

같은 집안(MBL) 앰프에 물려서인지 MBL 111F가 들려주는 음은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상당한 우위를 보여줍니다. 음이 선명하고 단단하며 편안합니다. 에너지감을 동반했는데도 해상도는 4기종 중 가장 높았습니다. 라디알슈트랄러 2개 유닛과 4개 우퍼 유닛의 대역 밸런스가 절묘하게 이뤄진 것 같습니다. 대신 워낙 음압이 낮기 때문에 실제 시청 시에도 볼륨을 더 높여야 했던 점은 언급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베이즈 오디오의 쿠랑트로 들어보면, 보다 좋은 마이크로 녹음을 한 것처럼 음의 순도가 아주 높습니다. 남성 보컬이 이렇게나 디테일이 풍부한지도 거의 처음 알았습니다. 전체적으로 탁 트인 음이며, 성정 자체가 활달하고 쾌활한 스피커인 것 같습니다.

Jan Kraybell

Organ Symphony No.6

Organ Polychrome-The French School

111F로 들어보면, 저역은 풀어지지 않고 차돌처럼 단단합니다. 음의 윤곽선이 흐릿하거나 음상이 애매해지는 순간이 일절 없네요. 하단 인클로저 양 측면에 자리 잡은 우퍼 2발이 선사한 초저역부의 재생 품질도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쿠랑트의 경우 대구경 우퍼가 따로 없는데도 파이프오르간의 초저역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져 깜짝 놀랐습니다. 비결은 아무래도 위아래 미드우퍼를 수납한 긴 파이프 모양의 인클로저 구조와 카본 재질의 탁월한 물성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입자감이 곱고 푸근한 점, 음으로 샤워를 해도 될 만큼 음수가 많은 점도 쿠랑트 스피커의 매력입니다.

Neeme Jarvi, Royal Scottish National Orchestra 

Danse Macabre

Saint-Saens

111F는 음들을 꾹꾹 눌러 담았는데도 탄력감이 느껴지는 묘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헤드폰에 비유하면 밸런스드 아마추어(BA) 드라이버와 다이내믹 드라이버(DD)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헤드폰으로 듣는 것 같습니다. 총주의 해상력, 가슴을 저격하는 저역의 압력, 재빨리 치고 빠지는 트랜지언트 능력 등 실로 대단한 스피커인 것 같습니다. 진짜 현장에서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본 것 같습니다. 쿠랑트로 들어보면, 다이내믹 레인지가 보다 늘어나고 대역 이음매가 보다 매끄러워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총주 파트에서의 해상력은 111F에 밀리네요.

Daft Punk - Get Lucky

Random Access Memories

111F로 들어본 다프트 펑크의 ‘겟 럭키’는 그냥 레퍼런스로 삼을 만했습니다. 단단하고 빠르고 경쾌하며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4개 스피커 중 이 곡에서 의외의 실력을 선보인 것은 쿠랑트였습니다. 음상이 부풀지 않으면서 단정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저역 에너지가 배가 부를 정도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게인이 높은 팝이나 록, 힙합 장르에서 쿠랑트가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펑퍼짐하지 않은 저역, 해상도가 높은 저역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음수와 배음도 최소한 이 곡에서는 4개 기종 중 가장 많이 들렸습니다. 그야말로 외관을 배반하는 그런 소리였습니다.

Dave Weckl - Heads Up

Heads Up

111F는 계속해서 분명하고 또렷한 음을 들려주지만 이 곡에서는 중고역이 조금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편안한 느낌이 덜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실제 현장 분위기를 너무나 생생히 전해준 데 따른 부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정신이 번쩍 날 만큼 기세가 대단한 재생음이었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한 몇몇 분들은 심지어 온몸으로 리듬을 타시기도 했습니다. 이에 비해 쿠랑트는 편안하고 누긋한 사운드를 들려줬습니다. 연주자들 자체가 보다 고참들로 채워져 몸에 힘을 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대신 에너지감은 약간 빠졌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이 스피커의 중고역 특성이 워낙 좋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위쪽 대역에 에너지가 몰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Carla Bruni - The Winner Takes It All

French Touch

111F가 이번에는 온기 가득한 음을 선사합니다. 장르에 따라 음의 온도와 채도가 확확 바뀌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는 듣는 사람들이 애써 해석한 것일 뿐 111F 스피커는 그냥 처음부터 음악 신호를 충실히 재생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무지향 스피커를 연이어 듣다 보니 보다 잘 알 수 있게 됐습니다. 무지향 스피커의 가장 큰 매력은 ‘인클로저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는 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쿠랑트로 들어보면, 배음과 음수가 보다 풍부해진 가운데 칼라 브루니의 비음이 더 잘 들리고 목소리의 촉촉함도 더 도드라졌습니다. 음에서 아예 윤기와 광택이 나네요. 보컬과 반주 악기들의 레이어감도 잘 느껴졌습니다. 한마디로 매우 고급스러운 재생음이었습니다.

시청회를 마무리하며

오래간만에 하이파이클럽 메인 시청실이 스피커와 앰프로 가득 찼던 시청회였습니다. 사실 시청회 전에는 무지향 스피커 4기종, 그러니까 총 8개 스피커를 좌우에 4개씩 도열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더군요. 여기에 MBL 소스기기와 앰프 4대까지 가세하니 그야말로 꽉 찬 무대였습니다. 게다가 시청회와는 상관은 없었지만 포칼의 그랜드 유토피아 EM EVO와 아방가르드의 트리오 혼 스피커, 네임의 플래그십 프리/파워앰프인 스테이트먼트까지 '배경화면'으로 가세하니 실로 보는 눈맛이 대단했습니다. 

이번 시청회는 자주 들을 수 없는 무지향 스피커를, 그것도 4기종을 연속해서 들어보며 음질 차이와 스피커 됨됨이를 서로  비교해본 흔치 않는 자리였습니다. 같은 무지향 스피커라도, 혼 모양의 가이드를 이용해 음을 방사하는 경우(듀에벨 Sirius, 팔콘랩 Model 707)와 유닛 자체를 움직여 음을 360도 퍼지게 하는 경우(MBL 111F,  베이즈 오디오 Courante)의 소리와 무대감이 다른 것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저역이야 원래 무지향 성격이 강하지만, 중고음을 이렇게 무지향으로 확산시키면 실제 현장에서 어쿠스틱 악기를 직접 듣는 것 같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스위트 스폿이 지향성 스피커에 비해 크게 넓어진 점도 큰 장점이라 할 만합니다. 시청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