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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스페이스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지구 밖의 행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 많은 SF 영화에서 소재를 쓰이는 스토리다. 그리고 이제 실제로 우주여행이 수십 년 안에 가능할 거라고 내다보기도 한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인공위성 발사를 성공한 이후 어느 인터뷰에서 화성 여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작년에 본 드라마 한 편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게 나의 촉수를 건드렸다. 지구보다 나은 삶을 찾아 우주로 떠난 할 가족. 그러나 불행히도 원래 계획했던 이주지가 아닌 곳에 불시착하게 된다. 어떤 정보도 없는 미지의 행성은 온통 빙벽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리튬 이온을 가져오다가 얼음 속에 갇힌 딸을 위해 아버지는 마그네슘을 동원한다. 마그네슘은 영하의 서릿발 같은 추위 속에서도 환한 빛을 내며 순식간에 얼음을 녹인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로스트 인 스페이스’에서 본 마그네슘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리스 마그네시아에서 발견된 마그네시아석에서 유래된 마그네슘은 원소기호 ‘Mg’로 불리며 다양한 분야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의학 및 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이유도 이런 마그네슘의 독보적인 특성 덕분이다.

생명의 근원 그리고...

마그네슘은 우리 신체 내에서도 발견된다. 우리 신체에서 네 번째로 많은 무기질이며 그중 뼈에 많은 마그네슘이 함유되어 있다. 마그네슘이 모자라면 혈압과 체온 등에 영향을 주어 심할 경우 의식 장애까지 올 수 있다고 하는데 반대로 여러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제약 쪽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식물의 광합성을 위한 엽록소에서 마그네슘이 빠져나가면 노랗게 말라죽는 현상을 볼 때 마그네슘은 생명의 근원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또 다른 분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마그네슘의 용도다. 이제까지 말한 마그네슘의 높은 발화성 그리고 생명의 근원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알고 보면 산업 분야에서 마그네슘의 활약은 대단하다. 대표적으로 카메라 플래시에 사용되어 밝은 빛을 내주었던 것이 마그네슘이었다. 알루미늄이나 아연 등과 합금시켜 전투기 등에 사용되기도 하고 우주 항공 분야에서도 사용되는 등 그 활용도는 굉장히 다양하다.

하지만 지금 얘기하려는 것은 그런 대단한 미래 첨단 산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마그네슘의 진동 제어에 관련된 특성으로 예를 들면 카메라 바디에 마그네슘을 가공해 사용하는 것과 연관성이 있다. 

선샤인 오디오보드와 흡진실드

여기서 전 세계적으로 마그네슘의 일부 특성을 극대화해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 적용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선샤인이라는 메이커다. 선샤인은 오디오 액세서리를 개발하던 중 마그네슘을 찾게 되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선샤인의 100달러짜리 오디오 보드가 타사의 1200달러짜리보다 더 높은 성능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들은 값비싼 오디오 보드를 구입하는 단 10%의 오디오파일이 아닌 나머지 90%의 대다수 오디오 파일을 겨냥했다. 그리고 결과는 엄청났다. 선샤인 초기 10여 년간 일본에서 무려 8만 개의 오디오 보드를 판매하는 대기록을 세운 것.

마그네슘이 오디오 파일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가져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가벼운 무게에 높은 강도를 가지면서 진동 흡수와 감쇠에 탁월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 게다가 순도를 최대한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능에 비하면 가격은 상당히 저렴해 진입 장벽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테스트한 제품은 B-40 및 ST-1. 우선 B-40은 기존에 많이 선보였던 S 시리즈가 아니라 1.4mm 두께로 금속과 금속 사이에 일종의 수지를 넣은 후 고온에서 압착한 제품이다. 사실 이 시리즈는 A, B, V 등의 시리즈로 나뉘는데 그중 가장 평가가 높은 제품이 바로 B 시리즈다. 제진 강판은 약 10여 년 전 일본에서 자동차 엔진 주변 등 진동이 심한 부위에 사용하던 금속으로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던 것. 하지만 선샤인에서 이를 다시 수작업으로 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주요 사용처는 시디피 등 소스 기기 및 앰프, 스피커 밑으로 진동감쇠가 필요한 곳이다.

두 번째는 선샤인 ST-1 흡진실드라고 하는 제품으로 마그네슘의 특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제품. 진동 흡수와 감쇠 기능은 물론이여 여기에 더해 마그네슘의 전자파 차단 성능을 응용한 제품이다. 이 제품은 총 세 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층에 수지를 중심으로 상단과 하단의 마그네슘 판을 위치시켜 샌드위치 형태로 압착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ST-1의 사용처 또한 디지털 소스기기 및 앰프 등 여러 부분에 효과적인 것은 다른 선샤인 제품과 동일하다. 하지만 시디피 같은 제품에선 자체 구동부로 인한 진동의 감쇠는 물론이며 전자파까지 억제하는 등 두 가지 효과를 모두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두 가지 제품을 동시에 테스트해서 하나의 리뷰에 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두 개를 동시에 사용했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오르페우스 시디피 및 비투스 인티앰프 그리고 B&W 802D3 스피커를 활용해 두 제품의 특징을 간략히 파악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Jachinta - Boulevard of broken dreams
Best of Groove Note

일단 B-40 같은 경우 가장 먼저 눈에 띠는 부분은 음의 투명도에 있었다. 예를 들어 [Best of Groove Note] 컴필레이션 중 야신타의 ‘Boulevard of broken dreams’에서 B-40을 적용하기 전과 후의 차이가 바로 투명도였다. 기타, 피아노는 물론이며 특히 저역 해상도가 상당히 개선되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런 특성은 여러 악기 중 중, 저역 재생에서 더 빛을 발했는데 더블베이스의 낮은 현 소리가 더욱 명료해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ST-1도 마찬가지였다. 이 제품을 오르페우스 시디피의 트레이 바로 위쪽에 적용했을 경우 배경 정숙도 및 트랜스페어런시 측면에서 개선이 돋보였다.

SONNY ROLLINS - St.Thomas
SAXOPHONE COLOSSUS

소니 롤린스의 ‘St.Thomas’처럼 리듬감 및 역동성 등이 중요시되는 재즈 레코딩에서는 전체적으로 사운드의 물리적 움직임과 촉감 등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배경이 상당히 정숙해지면서 응집력은 더욱 높아진 느낌을 받았다. 각 악기들의 배음을 훼손시키는 일은 단연코 없다. 오히려 고역에서 저역까지 싱싱한 다이내믹스를 잃지 않으며 윤곽을 분명하게 소화해낸다. 배경은 더 고요하면서 생생한 리듬감은 더욱 고조시켜주는 모습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인상을 요약하자면 좀 더 말끔하고 단정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이 곡에서도 B-40 하나보다는 ST-1을 함께 사용했을 때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Maurizio Pollini - chopin
Chopin-Polonaises

특히 ST-1의 성능을 가장 드라마틱 하게 느낄 수 있었던 악기는 다름 아닌 피아노 재생에서였다. 폴리니의 쇼팽을 들으면서 ST-1을 넣었다 뺐다 반복했는데 항상 ST-1을 적용했을 때가 더 깨끗하고 명료한 타건음을 들려주었다. 아마도 시디피 내부의 메커니즘 운동 등으로 인한 기구적 잡음의 전이를 약화시킨 결과가 아닐까 판단된다. 이로써 음악 신호를 약간이나마 더럽히던 진동이 제거되고 약음, 배음이 더 명쾌한 모습을 드러냈다.

Anne-Sophie Mutter - Zigeunerweisen
Carmen Fantasie

한편 B-40의 또 다른 면모는 대편성 오케스트라 녹음에서 한 번 더 드러났다. 예를 들어 안네 소피 무터와 제임스 레바인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Zigeunerweisen Op.20’ 연주에서 약음의 디테일이 상승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더욱 성실하고 정교한 세부묘사가 이루어지는데 약음에서 강음까지 그 대비도 더 확연히 드러났다. 확실히 배경 기저 잡음이 사라지면서 말끔한 배경 위에 음악이 더 도드라지며 묘사되는 모습이다.

참고로 B-40과 ST-1을 동시에 적용했다가 그 상황에서 ST-1을 빼고 테스트하면 ST-1의 존재 가치를 알 수 있다. 이 경우 악기의 윤곽선이 약간 희미해지는 현상을 보였다. 마스킹 현상처럼 심각한 현상은 아니지만 약간 번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ST-1을 올렸을 때 느껴지는 단정함과 더 또렷한 악기 분리도 그리고 전/후 레이어링 등은 한 번 맛보면 다시 뒤로 돌아가기 아쉽게 만든다.

총평

개인적으로 아주 간단한 하이파이 시스템을 단 한조만 운용할 때가 있었다. 그땐 지금처럼 오디오랙을 사용하지 않았고 모든 기기를 바닥에 깔았다. 대신 양질의 받침대를 받쳐 진동에 대비했다. 이후 여러 기기 받침대가 등장했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제품은 거의 없었다. 만일 그 때 이런 제품을 알았더라면 한결 뛰어난 소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여러 기기를 사용하면서 어쩔 수 없이 오디오 랙을 사용하지만 층층이 기기를 올려야 하는 오디오 랙이 진동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상당히 힘들다. B-40은 이런 상황에서 훌륭한 서포터가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ST-1은 작은 사이즈로 어느 기기에나 적용 가능해 그 사용처가 매우 다양하다. 더불어 두 개의 선샤인 보드를 한 쌍처럼 사용한다면 그 시너지를 기대해도 좋다. 음악 재생에선 1%의 차이가 상당히 큰 디테일 차이로 다가온다. 그리고 선샤인 B-40과 ST-1은 그 잃어버린 디테일의 회복에 일조할 것이 분명하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