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최근 독일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 T+A의 DAC 8 DSD를 집중 시청했다. 한 달 정도 자택 시스템에 투입, 다양한 음원을 들어보며 기본 DAC 성능과 헤드폰 앰프 성능을 짚었고,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도 다른 시스템에 물려 들었다. 그러는 사이 이 제품에 대한 인상이 확 바뀌고 말았다.

고백컨대, DAC 8 DSD에 대한 첫인상은 좋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요즘 유행하는 네트워크 플레이어 기능이 없는 점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가격이 아주 싼 것도 아니었다. 헤드폰 앰프 출력과 볼륨 조절 기능이 있어 디지털 입력시 프리앰프로도 쓸 수 있지만 이 점 때문에 이 제품을 선택할지는 의문이다. 남 걱정할 입장은 아니지만 포지셔닝이 좀 애매한 DAC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었고 대단한 오해였다. DAC 8 DSD는 벗길수록 속살이 끊임없이 나오는 양파 같은 제품이었다. 32비트 델타 시그마 DAC칩을 무려 8개를 투입해 다이내믹 레인지와 SN비를 높였고, 4가지 오버샘플링 필터를 마련해 유저가 보다 자신에게 맞는 아날로그 사운드를 얻도록 했으며, 트루 1비트 DSD 컨버팅을 통해 거의 독보적인 DSD 재생의 신세계를 들려줬다. 필자의 오디지 LCD-2 Classic 헤드폰으로 확인한 결과, DAC 8 DSD는 단품 헤드폰 앰프로 쓰기에도 충분했다. 미국 스테레오파일이 괜히 추천기기 목록에서 5년 연속(2016~2020년) A+클래스에 이 제품을 올린 것이 아니다.

DAC 8 DSD 팩트 체크

DAC 8 DSD는 기본적으로 PCM은 USB 입력시 최대 32비트/384kHz, DSD는 최대 DSD512까지 컨버팅할 수 있는 DAC이다. 그러면서 헤드폰 앰프와 볼륨단도 겸비했다. 디지털 입력단자는 USB-B 타입 단자를 비롯해 동축 4개, 광 1개, BNC 1개, AES/EBU 1개를 갖췄고 디지털 출력 단자는 동축 1개를 마련했다. 아날로그 출력 단자는 RCA(2.5V)와 XLR(5.0V) 각 1조씩 갖췄다.

외관을 봤을 때는 그냥 아담한 크기의 DAC이다. 가로폭과 안길이가 모두 27cm에 불과하고 높이도 9.5cm, 무게도 4kg밖에 되지 않는다. 대신 마감은 상당히 고급스러운데, 블랙 케이스와 실버 커버는 모두 알루미늄 재질이며 상판과 베이스 커버는 특별히 두께가 6mm에 달한다. 4개 코너를 곡면 마감한 것도 특징이다.

전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몇가지가 눈에 띈다. 우선 입력선택을 버튼으로 할 수 있는 점이 막강하다. 잘 아시겠지만 노브를 돌리고 눌러 입력을 선택하는 방식은 은근히 번거롭다. 이에 비해 DAC 8 DSD는 그냥 버튼만 누르면 된다. 왼쪽부터 SPDIF(동축) 1~4 선택 버튼, 광과 BNC 선택 버튼, USB와 AES/EBU 선택버튼이다. 해당 버튼을 누르면 작은 LED에 불이 들어온다.

다음은 총 8가지에 달하는 유저 인터페이스다. 역위상/정위상 선택 버튼, FIR 오버샘플링 필터 1/2 선택 버튼, Bezier 오버샘플링 필터 1/2 선택 버튼, 아날로그 대역폭 1/2 선택 버튼이다. 대역폭 선택 버튼의 경우 T+A에서는 60kHz까지를 '클린 모드', 120kHz까지를 '와이드 모드'로 명명했다. 따라서 고주파 노이즈가 많은 DSD64 음원은 반드시 클린 모드를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Bezier 오버샘플링 필터 효과가 대단했는데, 이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설계 디자인 : 채널당 4개 DAC 칩, 4가지 오버샘플링 필터, DSD 독자 컨버팅

DAC 8 DSD 내부를 보면 우선 전원부에 큰 신경을 썼다. 토로이달 전원트랜스를 비롯해 정류단과 평활단에 디스크리트 소자를 투입한 전형적인 리니어 구성이다. 자세히 보면 평활 커패시터가 위아래로 나눠져 있는데 이는 전원부가 아날로그 파트와 디지털 파트 각각에 DC 전기를 공급한다는 증거다. 정류단에는 오스트리아 리콤(Recom)사의 4W AC/DC 컨버터를 써서 AC 전기를 리플과 노이즈가 낮은 DC 전원으로 바꿔주고 있다. 전원트랜스는 아일랜드 누보템 탈레마(Nuvotem Talema)의 PCB 마운트 제품을 썼다.

하지만 DAC 8 DSD의 가장 대표적인 시그니처는 32비트 델타 시그마 DAC칩을 채널당 4개씩, 총 8개를 투입했다는 것과 DSD 컨버팅을 독자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이다. DAC 칩의 경우 구체적인 모델명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버브라운(Burr-Brown)의 32비트 듀얼 스테레오 칩을 썼다. 따라서 채널당 총 8개 회로가 투입된 셈인데, 사진에서 보면 'T+A' 골드 플레이트 밑에 이 칩이 2개씩 숨어 있다(Double Differential Quadrupple Converter with 4 DACs per channel). 이처럼 다수의 DAC 칩을 차동 회로로 짤 경우, 다이내믹 레인지와 SN비, 리니어리티는 높이고 왜율은 줄어든다. 실제로 이 같은 쿼드러플 설계로 노이즈가 6dB 줄어들었다고 한다.

DSD 컨버팅은 DAC 칩 가운데에 채널당 3개씩 투입된 프로세서들이 맡는다. 통상 델타 시그마 DAC 칩이 PCM과 DSD 음원을 모두 컨버팅하는데 비해, DAC 8 DSD는 T+A가 자체 설계한 트루 1비트 DSD 컨버팅(True 1 bit DSD Converting) 프로세스를 통해 DSD 음원을 아날로그 신호로 바꾼다. T+A에 따르면, 이처럼 별도 프로세싱을 거치게 한 것은 DSD 음원 컨버팅시 고주파 노이즈 제거가 필수인데 이를 한 칩에서 수행할 경우 PCM 음질까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디지털 클럭은 일반적인 수정발진자(Quartz Crystal Oscillator)를 듀얼로 썼다. 사진 왼쪽 하단에 보이는 2개의 타원형 실버 케이스다. T+A에서 정확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44.1kHz 계열 신호(44.1, 88.2, 176.4kHz)와 48kHz 계열 신호(48, 96, 192kHz)에 각각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80dB~0dB에서 1.25dB 스텝으로 작동하는 볼륨단은 미국 비셰이(Vishay)의 고음질 멜프(Melf) 저항을 이용한 풀 아날로그로 설계했으며, 이를 후면 스위치 선택으로 바이패스할 수도 있다(고정 출력).

Bezier 오버샘플링 필터

위 사진이 DAC 8 DSD의 DSP 파트다. 1) FPGA로 설계한 52비트 프로세서를 통해, 2) 입력 PCM 신호를 8배 오버샘플링한 뒤, 3) DAC 파트로 넘겨주는 역할을 한다. 오버샘플링(oversampling)을 하는 이유는 입력 신호의 샘플링 주파수를 높여 결과적으로 DAC 컨버팅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8배 오버샘플링의 경우 44.1kHz 신호를 보다 촘촘한 352.8kHz 신호로 바꾼 다음 아날로그 신호로 컨버팅하는 것이다.

그런데 DAC 8 DSD는 오버샘플링 방식으로 총 4가지 필터를 준비, 유저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오버샘플링 방식의 대표격인 FIR 필터가 2종, T+A가 독자적으로 마련한 Bezier 필터가 2종, 이렇게 총 4종이다. T+A에 따르면, 기존 FIR(Finite Impulse Response) 필터의 문제점은 오버샘플링 과정에서 음악 신호 앞뒤에 에코(echo)를 만들어낸다는 것.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 Bezier 필터다. 정리하면 이렇다.

오버샘플링 1번 필터 : 표준 FIR 필터(Long FIR Filter). 왼쪽 그래프(주파수 도메인)를 보면 주파수응답특성이 상당히 리니어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른쪽 그래프(시간 도메인)를 보면 음악 신호 앞뒤로 에코가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버샘플링 2번 필터 : 임펄스 개선 FIR 필터(Short FIR Filter). 1번 필터에 비해 리니어리티는 떨어졌지만(왼쪽) 에코 현상이 상당히 줄어들었다(오른쪽).

오버샘플링 3번 필터 : IIR(Infinite Impulse Response) 필터를 섞은 Bezier 필터. 리니어리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왼쪽), 특히 음악 신호 직전의 에코 현상이 거의 사라졌다(오른쪽). T+A는 이 3번 필터가 가장 아날로그에 가까운 음을 들려준다고 한다.

오버샘플링 4번 필터 : 퓨어 Bezier 필터. IIR 필터를 배제한 순수 Bezier 필터로, 리니어리티 확보는 물론 음악 신호 앞뒤의 에코도 모두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T+A에 따르면 이 4번 필터가 가장 완벽히 원 신호를 복원한다고 한다.

오버샘플링 필터 테스트

Claudio Abbado, Berliner Philhamonker
Mozart: Tuba Mirum

이 오버샘플링 필터 효과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체감할 수 있을까. 직접 테스트를 해봤다. 음원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필을 지휘한 '모차르트 레퀴엠' 중 'Tuba Mirum'을 선택했다. 물론 PCM 음원으로 16비트, 44.1kHz 사양이다. 이 테스트는 자택에서 이뤄졌는데, 룬 레디(Roon Ready) 네트워크 플레이어는 솜의 sMS-200 Ultra, 파워앰프는 일렉트로콤파니에의 AW250R, 스피커는 탄노이의 D-700을 동원했다.

1. FIR 1번 필터(블루 LED) : 트롬본과 바리톤이 잘 들린다. 저역의 해상력이 돋보인다.
2. FIR 2번 필터(레드 LED) : 바리톤의 발음이 보다 분명해지지만 트롬본의 저역은 1번 필터에 비해 덜 내려간다.
3. Bezier 3번 필터(블루 LED) : 음들이 필자를 향해 침투해오는 맛이 FIR 필터에 비해 줄어든다. 성악가들의 발음도 약간 불분명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무장해제랄까,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이 든다. 마치 LP를 재생할 때 받는 그런 음의 감촉이다.
4. Bezier 4번 필터(레드 LED) : 체감상 3번 필터와 큰 차이는 없지만, 재생음이 다소 의기소침해진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FIR 필터는 환하고 그림자가 지지 않는 인공조명, Bezier 필터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자연광의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3번 필터가 가장 마음에 들어 이후 DAC 8 DSD 시청에서는 3번 Bezier 필터를 이용해 대다수 음원을 들었다.

DSD 음원 테스트

Oscar′s Motet Choir - Schlichte Weisen
Proprius Records Audiophile Best

오버샘플링 필터 테스트 후에 해본 것은 DSD 음원에 대한 컨버팅 성능이었다. 음원은 룬(Roon) 코어 맥북에 저장해놓은 DSD128 음원. 'Proprius Records Audiophile Best' 앨범에 실린 오스카 모텟 콰이어의 'Schlichte Weisen'다. 처음에는 룬 시그널 경로에 'High Quality'라고 떠서 확인해 보니 'DSD to PCM Conversion'인 상태였다. 한마디로 DSD 음원을 PCM으로 컨버팅했다는 것. 표시창에 352k PCM으로 표기됐던 이유다. 그래서 세팅을 DoP(DSD over PCM)로 바꾸니 비로소 시그널 경로가 'Lossless'로 바뀐다. 참조하시기 바란다.

DAC 8 DSD로 들은 DSD128 음원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천상의 음 같다는 것. 표시창에는 5M6(5.6MHz)로 표기됐는데, 소릿결이 이렇게 곱고 매끄러울 수 있을까 시종 감탄하며 들었다. 노이즈는 한 톨도 남김없이 증발되었으며, 세세한 악기들은 저마다 잘 들렸다. 배경은 조용하고 사운드 스테이지는 넓어진 상황. DSD 음원 헤비 컬렉터들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DAC이 아닐까 싶다. 이어 역시 DSD128 음원인 아르네 돔네러스의 'Kinderszene'을 들어봐도, 아주 잘게 부서진 음들이 필자의 몸으로 쑥쑥 들어오는 쾌감이 대단했다. 기분 좋은 음의 샤워였다.

헤드폰 앰프 테스트

Billie Eilish - Bad Guy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헤드폰 앰프 성능도 궁금했다. 필자의 평판형 헤드폰인 오디지의 LCD-2 Classic을 잭에 물려 여러 곡을 들어봤다.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는 헤드 스테이지가 드넓게 펼쳐지는 가운데 그녀가 필자의 귀에다 대고 숨을 내쉬는 기척이 역력하다. 드럼의 펀치감은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작렬한다. 램 오브 갓의 'Ashes of the Wake'는 애매함이 전혀 없는 재생음의 잔치. 드럼의 금속성 림 플레이는 필자의 뒷목에 비수처럼 꽂힌다. 개인적으로는 DAC 8 DSD의 프리앰프 성능보다는 헤드폰 앰프 성능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에서도 음들을 바로 앞에서 듣는다는 느낌이 좋다. 하지만 필자가 집에서 쓰고 있는 마이텍의 Manhattan II DAC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입자감이 거칠어 고운 맛이 덜했다. 안네 소피 폰 오터의 'Baby Plays Around'는 그야말로 힐링 사운드가 펼쳐진다. 더 이상 무슨 대편성곡이 필요할까 싶다. 반주음이 은은하면서도 또렷이 들리는 것이 특징. DSD128 음원으로 오스카 모텟 콰이어의 'Hosianna Davids Son'을 들어보면 장중하면서도 호쾌하며, 풍성하면서도 매끄러운 음이 필자의 머릿속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헤드폰 앰프 성능에 상당히 만족한 시청이었다.

본격 시청

DAC 8 DSD 시청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필자의 집과 하이파이클럽 제1시청실에서 이뤄졌다. 자택에서는 동축 입력 테스트를 위해 오포의 디스크 플레이어 BDP-105 D, USB 입력 테스트를 위해 솜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sMS-200 Ultra를 동원했다. 두 경우 모두 DAC 8 DSD의 내장 볼륨을 활용, 파워앰프(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쉬트오디오 Vidar)에 직결했다.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는 웨이버사의 W Router, 비투스의 인티앰프 RI-101을 동원, B&W의 802 D3 스피커로 들었다.

장한나, Mstislv Rostropovich, London Symphony Orchestra
Max Bruch Kol Nidrei
Hanna Chang. CD

확실히 입자감은 맨하탄 2 DAC에 비해 밀리지만 앞뒤 레이어감이나 공간감은 더 상급으로 펼쳐진다. 양 스피커 가운데에 음상이 또렷하게 맺히는 점과 윤곽선이 선명한 점, 다이내믹스가 평소보다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맨하탄 2 DAC으로 바꿔 들어보면 무게중심이 보다 낮아진다. 다시 DAC 8 DSD로 들어보면 보다 상쾌하고 싱싱하며 생기 발랄한 재생음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음이나 고운 입자감은 부족하지만 여린 음에서의 표현력은 오히려 DAC8 DSD가 한 수 위인 점이 의외라면 의외다. 이는 DAC 칩의 차이, DAC 칩 투입 개수의 차이, 아날로그 버퍼단 설계에 따른 차이로 보인다.

정명화 - 성불사 주제에 의한 변주곡
한 꿈 그리움

평소 듣던 음에 비해 첼로가 조금 얇고 묵직함이 다소 모자라며 음상이 약간 위에서 맺힌다. 하지만 넘쳐나는 에너지와 기세, 매크로 및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에서는 DAC 8 DSD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야신타의 'Moon River'를 들어보면, 기본적으로 분해능이 좋고 동작이 시원시원한 DAC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골조와 심지가 단단하고 분명한 음이랄까. 그러면서도 보다 탁 트인 무대와 표정이 분명한 음을 들려준다. 멀티 DAC 칩과 밸런스 차동 회로 덕분일 것이다. 피에르 불레즈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중 '카세이 무리들의 지옥의 춤'을 들어보면, 저음을 퉁퉁 밀어내는 능력과 막판 음들을 몰아치는 기세에 크게 감탄했다.

Collegium Vocale
Bach: Cum Sancto Spiritu
Bach Mass in B minor

이 곡은 DAC 8 DSD를 고정 출력(볼륨 바이패스)한 상태에서 비투스 인티앰프로 들었다. 프리단과 볼륨단을 제대로 갖춘 인티앰프로 들으니 확실히 '파워앰프 직결' 때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 그동안 PCM 음원 재생시 DAC 8 DSD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음에 걸렸던 입자감이 큰 폭으로 살아났다. 여성 합창단원들의 목소리가 깨끗하고 선명하게 들리는 점, 남성 합창단원들은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점도 잘 포착된다. 이는 클래스 A 작동 범위가 넓은 비투스 앰프 성향도 크게 반영됐을 것이다. 노라 존스의 신곡 'How I Weep'을 들어보면, 음원에 담긴 악기와 보컬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준다는 인상. 밑바닥에 깔리는 리듬 악기들의 존재감이나 원근감도 잘 살아났다.

Macklemore & Ryan Lewis - Can't Hold Us
The Heist

수십 번은 들었을 곡인데 별의별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린다. 어떻게 저 크지 않은 DAC에서 이렇게나 많은 정보들이 인티앰프로 넘어갈 수 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때로는 조여주고, 때로는 풀어주는 솜씨가 여간이 아니다. 저절로 흥이 난다. 이어 드레이크의 'One Dance'를 들어보면 드럼 타격에 군더더기나 잔상이 일절 없다. 퍼지지 않고 단단한 저역, 홀로그래픽한 무대와 어지러울 정도로 난무하는 음의 습격이 대단하다. DAC 8 DSD를 한 줄 요약한다면, 이처럼 매사가 분명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DAC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DAC의 기본 책무라 할 섬세한 해상력과 플랫한 톤 밸런스, 다림질한 소릿결은 기본이다.  

총평

2018년에 독일 T+A 현지 공장을 탐방한 적이 있다. 당시 취재는 주로 T+A의 가장 큰 시그니처라 할 HV(High Voltage) 테크놀로지와 이를 적용한 플래그십 HV 시리즈의 앰프들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T+A 사운드를 맛볼 수 있는 '8시리즈'에 관심이 쏠렸다. 멀티 소스 기기로 MP 8, DAC 겸 프리앰프로 DAC 8 DSD, 8옴 80W 출력의 파워앰프로 AMP 8을 조합하면 남부럽지 않은 풀 시스템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이 흘러서야 접하게 된 DAC 8 DSD는 필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모듈 형태로라도 네트워크 플레이를 지원하지 않는 점은 두고두고 아쉽지만, DAC과 헤드폰 앰프 전용으로 쓰기에는 차고 넘치는 스펙과 사운드를 들려줬다. 특히 DAC 8 DSD로 들은 DSD 음원은 예전 램피제이터의 하이엔드 DAC으로 들었을 때를 생각나게 할 만큼 대단한 완성도를 보였다. 4개 오버샘플링 필터를 비롯해 유저가 건드릴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제법 많은 점도 마음에 든다. 1년 후 필자는 DAC 8 DSD를 이렇게 기억할 것 같다. 'T+A에서 내놓은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하이테크 DAC 머신'이라고.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